곤고한 삶이여, 이제 위로를 받으라.
시의 사제로서 오십 년 가까운 세월이다. 시를 위해 제사 지내며 내 영혼이 녹슬지 않기를 소망했다.
시 앞에서 너무 경직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이 경직이 나의 문안이요 나아가 구원이다.
살점을 뚝뚝 떼어 시에 붙이고 피를 쏟아 시를 적셨다. 내놓기 부끄러운 말붙이들, 그러나 이 부끄러움
또한 오늘은 나의 자랑도 될지니, 시에 대한 사랑이여 영원히 깨어 있으라.
누군가 세계는 한 권의 책이라고 했다. 이 책 속에는 아름답고 재미있는 이야기나 사연이 무궁무진 가득하다. 나의 떠돌음은 이 거대한 책의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며 읽어나가는 일이다. 한 장을 넘기면 또 다른 이야기가 있고 또 한 장을 넘기도 또 신기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니 나는 이 책장 읽어넘기를 그칠 수 없다.
이렇듯 세상이라고 하는 책을 읽어나가는 일은 실은 내 경험의 축적이요 삶의 질량이다. 그곳에 있는 과거사, 그곳에 있는 사람들, 그곳에 있는 자연과 풍광, 그것들이 어울어져 빚어내는 소중한 사연들이 아무리 채굴해도 계속 캐어져 나오는 금광의 광맥같이 이어지는 한 나는 이 떠돌음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벌레나 풀, 나무 등을 보고 미물이라고 말해 버리는 것, 잡초나 잡목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은 중대한 인식의 오류다. 오만이고 편견이다.
무릇 모든 생명체들은 인간의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는 존엄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세상 운용의 커다란 질서 속 당당한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미물’과 ‘잡초’에 다가가 손잡고자 한다. 이는 우리들 생명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생태계의 실존적 구성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이며 우호와 사랑의 표현이다. 저 반짝임, 저 울음, 저 사투리를 해독하고자 한다. 그들의 비의가 나를 감동케 하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값진 보물이 있음에도 그것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나의 국토 여행은 이러한 보물들을 하나하나 향유해 나감으로써 내 불행을 조금씩 덜어내는 작업이다.
앉아서 백리 서서 천리를 볼 수 있는 눈이 내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런 눈이 없다. 따라서 나는 계속 어딘가를 향해 갈 수밖에 없다. 아지랑이 아물거리는 들끝, 뭉게구름 피어나는 산밑, 파도 일렁이는 바닷가, 거기에 나의 보물과 나의 시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