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도>를 집필하기 전에도, 집필하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수면제를 복용했다. 늘 수면제에 취해 비몽사몽인 상태로 소설을 썼다. 수면제의 힘을 빌려 쓴 탓일까. 나는 <고도>를 '나의 이상야릇한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 교정 단계에서 많이 수정하기는 했지만 문장의 혼란, 부조화가 오히려 이 작품의 특색이 될 수도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고도>가 나의 다른 작품과 약간 다른 것은 수면제 덕분일 것이다.
이 소설의 작품 대부분은 이십대에 썼다. 많은 작가들이 젊은 시절에 시를 쓰지만, 나는 시 대신 손바닥소설을 썼다. 무리하게 설정된 작품도 있으나, 또한 절로 물 흐르듯 씌어진 좋은 작품도 적지 않다. 이제 와서 보건대, 이 책을 ‘나의 표본실’이라 하기에 부족함은 있지만, 젊은 날의 시정신은 꽤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