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자들의 이야기’ 같은 주제를 다루는 역사 서술은 관련자들을 단순히 악마적 존재로 규정하는 어떠한 시도도 분명히 거부해야 한다. 집단 학살을 자행하고 강제이송을 담당했던 예비경찰대대 대원들은 이 작전에 참가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거나 은밀하게 회피했던 다른 대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이었다. 따라서 내가 모든 학살자나 회피자의 행위를 최대한 이해하고 설명하기를 원한다면 동일한 상황에서 스스로 학살자 또는 회피자―양자 모두 인간―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 그럼에도 나는 설명이 변명을, 이해가 용서를 의미한다는 식의 상투적인 옛 설명 방식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 설명은 변명이 아니며 이해는 결코 용서가 아니다. 범죄자들을 인간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 없이는 홀로코스트 학살자들을 깊이 있게 다루는 어떠한 역사 연구도 불가능할 것이다. 유대계 프랑스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는 나치에 의해 처형되기 직전 이렇게 썼다. “우리의 연구를 이끄는 목표는 결국 오직 한 단어 ‘이해(understanding)’이다.” 나는 바로 이 정신에 입각해서 이 책을 집필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