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전작 『열렬한 책읽기』가 포스트마오 시대 사회주의의 격랑이 지나간 폐허 속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소생시킬 비밀을 찾는 지적 오디세이였다면, 『귀거래』는 1980년대 지청知靑 시절 열정과 좌절, 죄의식이 하나로 응결된 실존적 그림자에 대한 연민을 다루고 있다. 한편 이번 『혁명후/기』는 이들 저작을 관통하는 작가 일생에 걸친 집요한 문제의식, 즉, 문화대혁명을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중국을 규명할 수 없으며 미래를 준비할 수도 없다는 고집스런 사색이 마침내 결실을 맺고 있다. 이는 역사라는 ‘거대한 나’를 망각하고 환골탈태의 환희에 들뜬 현 중국에 보내는 엄중한 경고다.
그렇다고 저자가 중국과 세계의 변화에 등을 돌린 채 과거의 유령과 씨름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변증법과 음양이 몸에 밴 그는 딱딱한 이념이나 이론의 틀 사이를 경쾌하게 넘나들며 날것으로서의 현실의 핵심을 매섭게 포착한다. 특히 그의 탄탄한 사유의 유연성은 문혁을 다루는 데서도 남다른 힘을 발휘한다. “문혁이 인구 대국의 우향우 궤도 전환을 위한 거대한 위치에너지를 축적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또 한 차례의 지구적 확산을 촉진시켰다”는 그의 말은 문혁이 불가해한 광기의 분출이 아니라 20세기 냉전사의 지극히 정상적인 일부이며, 나아가 전체 자본주의 역사의 불가피한 이면임을 암시한다.
‘악마들의 광란’이라는 하드 코드를 깨고 문혁을 살과 피가 도는 인간의 역사로 되돌리려는 한사오궁의 노력은, 문혁을 미화하거나 원천적으로 긍정하려는 중국 지식계 일각의 견해와는 첨예한 비판적 거리를 갖는다. 문혁을 역사 안으로 불러들이려는 그의 욕구는 궁극적으로는 인간 본성의 복잡한 다면성과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을 포착하려는 작가로서의 겸허하고 끈질긴 본능에서 비롯된다. 물질적 욕망의 발산 통로가 가로막힌 냉전시대 사회주의 사회, “모든 욕망이 산더미처럼, 해일처럼 일파만파 정치적 투기장으로 몰려드는” 현상으로 문혁을 해석하면서도, 그는 결코 자기 자신이나 중국 인민에게 면죄부를 내어주진 않는다. 문혁 발발의 본질적인 원인이 인간에 대한 과도한 낙관주의였다는 뼈아픈 반성 속에서, 그가 궁극적으로 경계하는 것은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광기와 폭력이다. 그가 볼 때, 문혁은 현재와 무관한 과거의 유령이 아니다. 가속화되는 자본주의의 위기 앞에서 인류가 그동안 일궈온 문명적 성취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이 요구되는 지금, 문혁은 결코 회고적인 의제일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전작 『열렬한 책읽기』에 감돌던 차가운 냉소에 비해 이 책 『혁명후/기』에는 인간에 대한 한사오궁의 온정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낙관론으로부터 철저한 거리 두기에 기반한 믿음, 즉 불완전한 인간에 보내는 구도자의 연민이다. “도덕은 인류의 거대한 고통과 슬픔, 연민이 있은 후에 생겨나는 정신의 반응”이라는 그의 발언은, 압도적인 비극을 겪지 않고서는 도덕이 생겨날 수 없다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비관과 도덕의 위기가 극에 달했을 때 그것을 치유할 인간의 자기 회복 능력에 대한 낙관 사이를 길항하는 사유의 곤혹을 드러낸다.
-역자 해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