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그가 바람의 신발을 신고 왔다. 먼 곳을 상상하는 동안, 온기 같은 그는 사라지고 차가운 신발이 남았다. 이 시집으로 나는 청년이 저물었음을 안다. 그가 남긴 바람의 신발을 신고 이번엔, 내가 타박타박 걸어가야 한다. 먼곳을 상상하는 또다른 형제를 위해. 이제 땀이 밴 희망을 위해. (...)
내가 꿈꾼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여기에 언급된 시인들의 시를 만지고 더듬어서 시로 씌어지기 직전의 '시적인 상태'를 다시금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평형식으로 씌어진 글에서도 냉정한 논리나 객관성보다는 감정의 빛깔을 잃지 않도록 산문성을 살리고자 했다. 나는 시를 읽은 것이 아니라 여행했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시에 대한 열망이 빚어낸 내면일기이다.
강물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것처럼, 벗이여, 저 일렁이는 불빛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것처럼, 나는 이제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다만, 사람들을 만나 상처주고 상처받는 동안 나는 저녁의 무늬로 새겨지고 싶은 소망을 가지게 되었을 뿐이다. 나무를 잘라야 나이테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당신 생각으로 바스러져 저녁 강물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안간힘으로 불빛의 끈을 붙들고서, 당신을 기다렴 모아둔 한숨을 부끄럽게 당신 앞에 내밀 생각을 한다.
나는 시를 하나의 생체 리듬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심장 소리나 다를 것이 뭐가 있을까 싶다. 의식하면 들리지만 의식하지 않을 땐 들을 수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각자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무언가에 놀라거나 혹은 슬플 때 우리는 심장이 멈출 것 같은 슬픔 혹은 기쁨이라는 소리를 한다. 내게는 그러한 충격적인 사실 앞에서 우리가 우리의 심장 소리를 의식하는 것보다는 망연자실한 어떤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혹은 그때 뛰는 심장 소리를 듣는 그 순간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시에 나오는 이야기가 그 시인의 실제 사건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표면의 시에 나타난 샘물과도 같은 반영들 속에서, 자연 풍경으로 뒤덮인 그 흔들리는 실체들 속에서 그 시인의 무의식을 짚어 나가다 보면 나와는 아주 별개의, 아주 동떨어진 사건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기억처럼 나와 결부되면서 시인의 시와 나의 삶이 분간이 안 되는 순간이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시인들의 이미지의 숲이나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그만의 가장 은밀한 샘물이나 밤의 창을 만날 때 그 이미지들의 깊이가 내 삶의 깊이로 가라앉는 순간을 기록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