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아래 고향으로 돌아온 지도 10년이 넘었다.
산의 품이 예나 지금이나 크고 크다
그 그늘에 깃들여 살면서도 나는
내뿌리가 흙에 놓여 있다는 걸 실감하지 못할 때가 있다
떠나고 나면 그리운 것도 사람이다
너무 가볍고 빠르게 변화하는 어지러움 때문에
사람들의 눈이, 말(言)들이, 점점 버거워가느 세상만큼이나 자꾸 비어간다
그런 오늘, 작은 땀 쏟아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나의 희망이다
고맙게도 그들은 내게, 시도 때도 없이 거울과 채찍을 들이밀어준다
그리고 내게도 잠이 오지 않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 시는 아직도, 나와 함께
길 위에 있다
참 오랜만에 시집을 낸다. 그동안 시를 떠나 산 적이 없고, 사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는데도 유독 내 시집을 내는 일에 게을렀다는 것은, 시와 삶 어느 한쪽 또는 모두가 서툴렀거나 조화를 얻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일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듯이, 사는 일도 시를 쓰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내가 만드는 삶이고 시도 내가 쓰는 것이므로 결국 내가 커지는 것 외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안다. 그걸 믿고 또 한 걸음 디뎌 보는 것이다.
이 작고 느린 시집을 기다려 주고 채찍을 주신 분들, 도반들, 제자들, 스승들께 진 사랑의 빚 크고 깊다. 감사드린다.
2019년 초가을
여기 묶인 시들은 세번째 시집 <백두산 놀러 가자> 이후 지금까지 쓴 시가 대부분이다. 그동안 복직도 되고 고향 부근으로 돌아와 흙을 다시 밟으면서 삼십여년 동안이나 잃고 있었던 것들을 되찾는 기쁨도 있었지만, 여전히 아침저녁으로 대도시와 농촌을 넘나드는 뜬 생활이 내 몸에 흙냄새가 진하게 밸 틈을 주지 않았다. 시 공부도 그렇지만 흙 공부는 내게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