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낡은 앨범에 나오는 아내를 비롯한 나의 가족들은 이웃에 함께 사는 여러분 모두의 가족이며,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단순히 내 가족의 개인사가 아니라 여러분 모두의 가족사家族史일 것이다. (중략) 열 권을 채운 후 이 교향곡을 끝내게 될지 아니면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게 될지는 오로지 신만이 알고 있는 몫이겠지만 400회의 인생행로人生行路를 통해서 만났고 스쳐갔던 사람들, 함께 걷고 있는 수많은 이웃들, 앞으로도 만나게 될 나그네들 모두가 한 가족임을 깨달은 요즘 나는 그 모든 소중한 인연들과 삼라森羅와 만상萬象을 향해 고맙다는 사랑의 말을 전하고 싶다. ('<가족 앞모습> 책머리에' 중에서)
'가족'을 400회 연재하는 35년여 동안 내 곁에 가족으로 함께 머물러 있어 주었던 아내와 다혜, 도단이. 우리 집의 바닷가로 소리치며 달려온 사위 민석이와 며느리 세실이. 조가비를 줍고 있는 손녀 정원이와 윤정이. 재미있게 함께 놀다 배를 타고 가없는 수평선 너머로 떠나가 버린 내 엄마와 큰누이, 그리고 작은누이. 이 모든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함께 뛰놀던 천둥벌거숭이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 벌거숭이들은 부모가 태어나기 전 창세기 때부터 하느님이 직접 진흙으로 빚어 만들고 입김을 불어넣은 인간들이며,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 낙원의 동산에서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몰랐던 지아비와 지어미들인 것이니. 이 신성한 가족이여, 신비한 인생이여. ('<가족 뒷모습> 책머리에' 중에서)
이 낡은 앨범에 나오는 아내를 비롯한 나의 가족들은 이웃에 함께 사는 여러분 모두의 가족이며,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단순히 내 가족의 개인사가 아니라 여러분 모두의 가족사家族史일 것이다. (중략) 열 권을 채운 후 이 교향곡을 끝내게 될지 아니면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게 될지는 오로지 신만이 알고 있는 몫이겠지만 400회의 인생행로人生行路를 통해서 만났고 스쳐갔던 사람들, 함께 걷고 있는 수많은 이웃들, 앞으로도 만나게 될 나그네들 모두가 한 가족임을 깨달은 요즘 나는 그 모든 소중한 인연들과 삼라森羅와 만상萬象을 향해 고맙다는 사랑의 말을 전하고 싶다. ('<가족 앞모습> 책머리에' 중에서)
'가족'을 400회 연재하는 35년여 동안 내 곁에 가족으로 함께 머물러 있어 주었던 아내와 다혜, 도단이. 우리 집의 바닷가로 소리치며 달려온 사위 민석이와 며느리 세실이. 조가비를 줍고 있는 손녀 정원이와 윤정이. 재미있게 함께 놀다 배를 타고 가없는 수평선 너머로 떠나가 버린 내 엄마와 큰누이, 그리고 작은누이. 이 모든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함께 뛰놀던 천둥벌거숭이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 벌거숭이들은 부모가 태어나기 전 창세기 때부터 하느님이 직접 진흙으로 빚어 만들고 입김을 불어넣은 인간들이며,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 낙원의 동산에서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몰랐던 지아비와 지어미들인 것이니. 이 신성한 가족이여, 신비한 인생이여. ('<가족 뒷모습> 책머리에' 중에서)
저를 낳기 위해서 제 아버지가 있었으며, 또 그 아버지는 아버지가 낳았습니다. 그 아버지는 그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낳았으며, 그리하여 한 처음에는 아버지가 태어나기 전의 영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다운 너는 부모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 온 영원이며, 또한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는 나 또한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 천지창조에서부터 있어왔던 영원의 존재인 것입니다. (...) 저는 신이 주신 저의 가족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깊고 푸른 밤>은 내게 있어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1980년대 초 나는 어느 날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났었다. 미국에서 반 년 가까이 낭인생활을 하던 나는 그 곳에서 절망 속에 신음하며 망명객처럼 은둔하고 있었다. ... 그렇게 낭인생활을 보내고 돌아온 후에도 나는 역시 거의 반 년 동안 글을 멀리하고 있었다. 한밤중에도 알 수 없는 불안에 빠져 형광등을 수술실처럼 환히 밝히고 잠자는 두려움 속에서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그 열정이 빚어낸 첫 작품이 바로 <깊고 푸른 밤>이다.
그런 의미에서 <깊고 푸른 밤>은 문학에 있어 제2기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그 첫걸음인 것이다. 아마도 아스토리아 호텔에 틀어박혀서 이틀인가, 사흘만에 완성시켰던 것으로 기억된다. 250매에 가까운 중편소설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긴장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했던 기억이 있는데, 끝날 때까지 힘에 부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1년이 넘는 낭인생활을 통해 에너지를 재충전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들의 인생이란 신이 내려준 정원에 심은 찬란한 꽃들이 아니겠는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아도 솔로몬의 영화보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이 꽃들은 우리들에게 플로베르의 '인생은 아름답다고 죽도록 말해주고 싶어요, 하고 말하며 꽃들은 죽어간다'라는 시처럼 아름다운 인생을 말해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렇게 묻곤 했다. 어떻게 가톨릭 신자이면서 불교에 심취하고 있느냐고.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묻곤 했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아빠와 엄마 중 누구를 더 좋아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내 정신의 아버지가 가톨릭이라면 내 영혼의 어머니는 불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불교적 가톨릭 신자'라고 자신을 부르고 싶다.
저를 낳기 위해서 제 아버지가 있었으며, 또 그 아버지는 아버지가 낳았습니다. 그 아버지는 그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낳았으며, 그리하여 한 처음에는 아버지가 태어나기 전의 영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다운 너는 부모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 온 영원이며, 또한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는 나 또한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 천지창조에서부터 있어왔던 영원의 존재인 것입니다. (...) 저는 신이 주신 저의 가족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첫 번째, 한 처음의 추억은 신새벽의 처녀서을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첫날밤, 첫사랑, 첫눈, 첫경험처럼 첫키스의 추억이야말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날카로운 추억 속에 문신처럼 남아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내게 있어 하늘과 땅이 만나는 날카로운 첫키스였습니다. 이 키스는 영혼과 영혼의 부딪침이었습니다.부싯돌처럼 부딪쳐 섬광과같은 불꽃이 일어나듯이 주님과의 키스는 내 심혼의 심지에 불을 붙여 나를 살아 있는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였습니다.
순수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 드리는 책
요즘 들어 오래전 사진첩을 꺼내 보는 취미가 생겼다. 그런데 한 장 한 장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기억이 더 또렷해지는 묘한 경험을 하고 있다. 불과 5년 전 일은 기억이 희미한데, 중고등학교 까까머리 시절의 기억은 오히려 눈앞에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당시에 있었던 일들뿐만 아니라, 그때 가졌던 생각과 감정까지도 오롯이 전해져와 한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고는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날것 그대로 살지 못한 그 이후의 시간들이 부끄러워지고는 한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에게도 학창시절은 가장 찬란했던 시간으로 남아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시간을 지나는 동안에는 그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눈 내리는 날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지고 낙엽 흩날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슬픔에 잠겼던 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떤 성스러운 시간이 일 초 일 초 흘러가고 있음을 무의식중에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의 원고는 내 순수의 끄트머리에서 학창시절의 추억을 평생 남기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속에 새기듯 써내려간 것이다. 이 책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땅의 청소년들과, 그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모든 이에게 드린다.
저를 낳기 위해서 제 아버지가 있었으며, 또 그 아버지는 아버지가 낳았습니다. 그 아버지는 그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낳았으며, 그리하여 한 처음에는 아버지가 태어나기 전의 영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다운 너는 부모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 온 영원이며, 또한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는 나 또한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 천지창조에서부터 있어왔던 영원의 존재인 것입니다. (...) 저는 신이 주신 저의 가족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한때 이 당호를 집에 내걸고 스스로 집 이름을 '해인당'이라고 부르곤 했었다. <길 없는 길>, <상도> 같은 소설들이 이 해인당에서 쓴 작품들이다. 경허의 말씀처럼 속세와 청산을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있는 자리가 어디든 봄볕만 비춘다면 꽃이 필 것이다. 구할 것은 봄볕이지 진자리 마른자리의 처소(處所)는 아닌 것이다.
소설 <상도>는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던 소재였다. 내가 이 소설을 처음으로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수많은 기업인을 만났을 때 우리나라에는 본받을 만한 역사적인 상인이 없다는 자조적인 탄식을 듣기 시작하였을 때부터였다. 역사적으로도 '사농공상' 이라 하여 상업을 가장 낮은 가치로 인식해 왔던 우리 민족은 이처럼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을 '가장 떳떳치 못한 천한 일' 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고 있다. 이데올로기도 사라지고 국경도 사라진 21세기, 밀레니엄의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경제의 세기이며 이에 따른 경제에 대한 신철학이 생겨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의 신철학' 그것이 내가 쓰는 상도의 주제였다. 2백여 년 전에 실재하였던 의주 상인 '임상옥' . 우리나라가 낳은 최대의 무역왕이자 거상이었던 임상옥의 발견은 우리나라에도 상업에 도를 이룬 성인이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였으며,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기업인들에게도 자랑할 만한 사표로서 임상옥을 부각시키는 것이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소설 <상도>는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던 소재였다. 내가 이 소설을 처음으로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수많은 기업인을 만났을 때 우리나라에는 본받을 만한 역사적인 상인이 없다는 자조적인 탄식을 듣기 시작하였을 때부터였다. 역사적으로도 '사농공상' 이라 하여 상업을 가장 낮은 가치로 인식해 왔던 우리 민족은 이처럼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을 '가장 떳떳치 못한 천한 일' 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고 있다. 이데올로기도 사라지고 국경도 사라진 21세기, 밀레니엄의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경제의 세기이며 이에 따른 경제에 대한 신철학이 생겨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의 신철학' 그것이 내가 쓰는 상도의 주제였다. 2백여 년 전에 실재하였던 의주 상인 '임상옥' . 우리나라가 낳은 최대의 무역왕이자 거상이었던 임상옥의 발견은 우리나라에도 상업에 도를 이룬 성인이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였으며,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기업인들에게도 자랑할 만한 사표로서 임상옥을 부각시키는 것이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소설 <상도>는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던 소재였다. 내가 이 소설을 처음으로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수많은 기업인을 만났을 때 우리나라에는 본받을 만한 역사적인 상인이 없다는 자조적인 탄식을 듣기 시작하였을 때부터였다. 역사적으로도 '사농공상' 이라 하여 상업을 가장 낮은 가치로 인식해 왔던 우리 민족은 이처럼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을 '가장 떳떳치 못한 천한 일' 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고 있다. 이데올로기도 사라지고 국경도 사라진 21세기, 밀레니엄의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경제의 세기이며 이에 따른 경제에 대한 신철학이 생겨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의 신철학' 그것이 내가 쓰는 상도의 주제였다. 2백여 년 전에 실재하였던 의주 상인 '임상옥' . 우리나라가 낳은 최대의 무역왕이자 거상이었던 임상옥의 발견은 우리나라에도 상업에 도를 이룬 성인이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였으며,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기업인들에게도 자랑할 만한 사표로서 임상옥을 부각시키는 것이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소설 <상도>는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던 소재였다. 내가 이 소설을 처음으로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수많은 기업인을 만났을 때 우리나라에는 본받을 만한 역사적인 상인이 없다는 자조적인 탄식을 듣기 시작하였을 때부터였다. 역사적으로도 '사농공상' 이라 하여 상업을 가장 낮은 가치로 인식해 왔던 우리 민족은 이처럼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을 '가장 떳떳치 못한 천한 일' 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고 있다. 이데올로기도 사라지고 국경도 사라진 21세기, 밀레니엄의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경제의 세기이며 이에 따른 경제에 대한 신철학이 생겨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의 신철학' 그것이 내가 쓰는 상도의 주제였다. 2백여 년 전에 실재하였던 의주 상인 '임상옥' . 우리나라가 낳은 최대의 무역왕이자 거상이었던 임상옥의 발견은 우리나라에도 상업에 도를 이룬 성인이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였으며,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기업인들에게도 자랑할 만한 사표로서 임상옥을 부각시키는 것이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소설 <상도>는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던 소재였다. 내가 이 소설을 처음으로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수많은 기업인을 만났을 때 우리나라에는 본받을 만한 역사적인 상인이 없다는 자조적인 탄식을 듣기 시작하였을 때부터였다. 역사적으로도 '사농공상' 이라 하여 상업을 가장 낮은 가치로 인식해 왔던 우리 민족은 이처럼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을 '가장 떳떳치 못한 천한 일' 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고 있다. 이데올로기도 사라지고 국경도 사라진 21세기, 밀레니엄의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경제의 세기이며 이에 따른 경제에 대한 신철학이 생겨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의 신철학' 그것이 내가 쓰는 상도의 주제였다. 2백여 년 전에 실재하였던 의주 상인 '임상옥' . 우리나라가 낳은 최대의 무역왕이자 거상이었던 임상옥의 발견은 우리나라에도 상업에 도를 이룬 성인이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였으며,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기업인들에게도 자랑할 만한 사표로서 임상옥을 부각시키는 것이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저를 낳기 위해서 제 아버지가 있었으며, 또 그 아버지는 아버지가 낳았습니다. 그 아버지는 그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낳았으며, 그리하여 한 처음에는 아버지가 태어나기 전의 영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다운 너는 부모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 온 영원이며, 또한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는 나 또한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 천지창조에서부터 있어왔던 영원의 존재인 것입니다. (...) 저는 신이 주신 저의 가족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를 낳기 위해서 제 아버지가 있었으며, 또 그 아버지는 아버지가 낳았습니다. 그 아버지는 그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낳았으며, 그리하여 한 처음에는 아버지가 태어나기 전의 영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다운 너는 부모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 온 영원이며, 또한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는 나 또한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 천지창조에서부터 있어왔던 영원의 존재인 것입니다. (...) 저는 신이 주신 저의 가족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