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뒤에 숨은 그들은 말합니다.
“아무런 이유가 없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냥 했다.”
그리고는 누군가의 주검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한 게 아니야.”
모르는 척을 하는 걸까요? 숨기고 싶은 걸까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있던 걸까요?
그들은 잔인하고 슬픈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가면을 쓰고 익명 뒤에 숨은 겁니다.
분명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게’ 아닙니다.
저는 아침마다 집안을 음악 소리로 가득 채우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스피커 옆에 있는 유리병을 잠시 쳐다보죠.
그 유리병은 아이들과 함께 바닷가에 놀러 갈 때마다 주워 온 조개껍데기를 모아놓은 병입니다.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서 건너편 세상으로 여행을 하던 기억,
파도 속에 발을 담그면 모래 알갱이들이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던 기억,
한참을 걷다가 뒤를 돌아봤을 때 ‘내가 언제 여기까지 왔지?’ 하던 기억,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먹던 기억.
시간은 흘러 아이들은 커지고 저는 점점 늙어가고 있지만 추억은 그대로라고 유리병이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 “The Girl from Ipanema” 음악과 함께 즐거웠던 그 바닷가로 풍덩 빠져보면 어떨까 합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그때로 말입니다.
사실 이 책은 너무나 슬픈 책입니다. 아이들에게 일어난 안 좋은 사건들을 접하면서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만들어진 책이기도 하고요. 우리들은 대체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나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했던 걸까요? 혹시 넘어질 듯 최선을 다해 뛰어오는 아이들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크게 넘어져 상처가 나고 서럽게 울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넘어질 듯 다시 뛰어오는 아이들을 말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던 걸까요? 그리고 무엇을 남기고 있는 걸까요? 넘어질 듯이 최선을 다해 뛰어왔을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만들었습니다.
날 점점 닮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아이와 함께 대화하다 보면 문뜩, 나의 그때가 생각나고 많이 변해버린 절 발견하게 됩니다.
시간이 흘렀다는 말로는 부족한 아련함이 그 안에 있죠.
언젠가 시끄럽게 떠들고 있던 제 아들에게 조용히 해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절 보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행복하니까 떠드는 거야.”
그때 느꼈던 그 감정으로 엉뚱함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순수성과 합리성의 모호한 경계 위에 서서 만든 책이 바로 엉뚱한 수리점입니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서요.
여러분들도 이 책을 통해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가 보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