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눈이 시력을 잃어도 음화(淫畵)는 번성하고, 모든 혀가 맛을 잃어도 밥집은 문 닫지 않는다. 어느 독재자는 모든 양식이 쓰임을 잃어도 사라지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했다. 끝까지 제 양식이 쓰임이 있음을 강변하다니! 눈을 잃고 음화를 응시하고, 귀를 잃고 새들의 노래를 들을 것이나, 나의 양식은 쓰임이 없을 것이다. 오래 묵혀 토해낸 것들조차 잃은 것들과의 대화였다.
하루하루는 서사성과 비서사성을 동시에 품고 있다. 스펙터클과 무미건조를 동시에 품은 하루하루를 이어 생을 만든다. 인간은 서사와 비서사를 동시에 품은 존재다. 탄생과 죽음까지를 서사와 비서사로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비서사를 택하겠다. 할 수만 있다면 역사에서 아득하게 먼 비서사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