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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손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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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문화과학 120호 - 2024.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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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프트

팔루디는 미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고개 숙인 남자’ ‘남성성의 위기’ 판타지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6년간 전국을 순회하며 신자유주의 아래 미국—모든 견고한 것이 자본주의 매트릭스 안으로 녹아들어 가고, 모든 것이 이미지 상품으로 전환돼 버리는 영토—을 살아가는 남자들이 느낀 환멸과 방향감각 상실을 조사한다. 그리하여 밝혀진 사실은, 1990년대 미국 남성들이 경험한 혼란이 결국 제2차세계대전 이후 풍요의 시대에 만들어진 남성성 신화와 그 좌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을 배신한 것은 다름 아닌 전후 미국 사회의 가부장주의적 자본주의였다. 이 책 제목이기도 한 ‘스티프트(stiffed)’, 즉 배신당한 남자들이라는 말은 여기서 비롯했다. (…) 미국에서 브로플레이크(broflake, 자신과 다른 의견을 만났을 때 쉽게 화가 나는 청년 남성들)가 등장하고 트럼피즘이 극성을 부리던 시기와 맞물려 한국에서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보수당 당대표와 대통령 후보가 등장했다. 안티페미니즘 백래시를 의제로 삼은 정치인들이 그 목소리를 정치 세력화하면 언론에서 그것이야말로 대의라며 떠들어 대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우리가 똑똑히 보게 된 것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성을 ‘숏컷이니까 페미니스트’라며 폭행하는 남성의 등장이었다. 물론 이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2023년 한국에서 이른바 ‘인셀 범죄’에 해당하는 칼부림 사건이 가시화됐다는 점은 확실히 주목할 만하다. 미국에서 인셀이 등장하는 데 바탕이 되었던 것, 즉 “틀에 박힌 남성성을 구현한, 완전히 전능한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라는 관념”과 그로부터 탈각됐다는 불안 및 자포자기의 정서는 탈역사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스티프트』라는 미국 현대 남성성의 원초경을 따라가면서 『파이트 클럽』의 ‘무명씨’가 어떻게 2014년의 엘리엇 로저(미국 인셀 범죄의 상징적인 인물)가 되고, 엘리엇 로저는 어떻게 2023년 대한민국 신림동에서 벌어진 칼부림 사건과 만나게 되는지, 그 이해의 폭을 연장하고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수치심

수치심은 그저 자연적이고 사적이기만 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과 권력관계를 구성하는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감정이다. 수치심을 둘러싼 복잡한 맥락과 역학을 해부해보아야 하는 이유다. 『여성의 수치심』의 관심사는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수치심의 젠더적 양상을 추적하고, 이 감정이 어떻게 그처럼 강력하게 개인을 강제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여자들이 무시해서” 같은 말 사이에 놓인 젠더화된 수치심의 문화정치와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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