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에게 병病은 몸의 아픔으로 그치지 않고 일생의‘마魔’가 된다. 그런 병마 중에서도 나이가 들면 가장 무서운 것은 노망이다. 속된 말로 ‘벽에 똥칠한다’라는 노망은 암이나 기타 질병보다 잔인하고 저주스럽다. 기억력 감퇴라는 초기 증상이 점차 확산되어 급기야는 살아온 기억이 뒤엉키고 그로 말미암아 가족을 못 알아보고 결국에는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된다. 인격의 상실, 자아의 붕괴 같은 거창한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이 추락할 수 있는 최악의 단계인 자기 부정의 모습은 그를 추억해야 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혼란과 슬픔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일종의 폭행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