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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심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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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꿀빵 레시피>

꿀빵 레시피

글의 시작은 성찬식에서였어요. 손톱만 한 카스텔라 빵조각이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게 신기했습니다. 놀라운 사랑 안에서는 작은 빵조각도 하늘에 걸린 커다란 꿀빵처럼 보였거든요. 30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청소년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 허기진 아이들이 꿀빵을 먹고 힘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소망으로 글을 썼어요. 글이 책이 되어 나오는 동안 꿀빵을 굽는 것처럼 즐거웠습니다. 청소년들과 맛있는 꿀빵을 함께 나눠 먹는 꿈을 꿨어요. 친구를 의미하는 단어 companion은 라틴어 com(together)과 panis(bread)가 만나 만들어졌다고 해요. ‘함께 빵을 먹는 사이’가 곧 ‘친구’라니, 빵을 굽듯 글을 쓰면 독자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 같아서 행복했습니다. 내 곁에 머물던 ‘꿀빵 장수 이은호 씨의 딸 이노래’는 이제 친구들에게로 떠납니다. 비록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처럼 모습은 초라할지라도 응원받으며 힘있게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부디 ‘이노래’의 노래가 친구들에게 맛있는 꿀빵이 되면 좋겠습니다.

마태수난곡

아름다워 보여도 실상 인간이란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초라한 존재인지를, 초라해 보여도 실상 인간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게슈탈트 그림처럼 양면성을 그대로 끌어안은 인생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기도 한 인생……. 존재의 초라함을 고백할 수 있는 겸손과 존재의 소중함을 감사할 수 있는 소망이 있다면 어떤 인생인들 아름답지 않을까요? 소설 속 마이너리티들과 이야기 나누다가 아주 잠깐이라도 마음이 가난해질 수 있다면, 언뜻 스치는 소망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면, 부족한 필력으로 인생을 그려내기 어려워 주저하고 머뭇거리던 밤이 아깝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바람기억

고통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눈과, 아픔의 화인(火印)을 만지는 하나님의 손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각인된 상처를 애써 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가슴 안에서 녹여 새로운 힘으로 승화하는 소망에 관해 나누고 싶었습니다. 2017년은 87민주항쟁 30주년이 되는 해이자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시간의 매김이 건네는 상징은 깊은 것이어서 마음자리에 내내 울림이 있었습니다. 역사 속의 87민주항쟁과 종교개혁은 고통의 이름이자 새로운 세상을 향한 승화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작년 여름 유라시아 대륙의 끝이자 대서양의 시작점인 ‘까보 다 로카’에 서서, 고통의 이름이자 새로운 세상의 이름이 되었던 청년들을 떠올렸습니다. 고통으로 점철된 가슴을 안고도 온전히 그리스도를 닮고자 소망했던 순결한 청년들의 사랑과 정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책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들이 생명력을 가지고 이제 독자들의 가슴으로 전해져, 눈앞의 현실에만 마음을 둔 어떤 이에게는 처음 사랑을, 순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살고자 애쓰는 어떤 이에게는 위로를, 교회와 신앙이라면 부정적인 관점을 거두지 못하는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시선을 선물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 작품 ‘마태수난곡’을 발견해주시고 작가로서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격려해주신 김호운 선생님과 언제나 인생의 따뜻한 멘토가 돼주시는 이상규 목사님, 박은제 목사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늦깎이 소설가가 된 제게 항상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는 남편 이용환 집사님과 아들 준영이에게도 사랑을 전합니다. 쉼 없이 기도해주시는 가족친지들과 성도들이 계셔서 언제나 힘이 됩니다. 부족한 글을 흔쾌히 출판해주신 킹덤북스(Kingdom Books) 대표 윤상문 목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의미로 가득한 2017년, 가을의 문턱에서 심은신

버블 비너스

그리스 여행 중 코린토스(고린도)를 방문했을 때 고대의 영광은 사라지고 돌무더기만 남은 적막한 도시에 홀로 우뚝 솟은 해발 575m의 아크로코린토스 산을 만났습니다. 두터운 성채로 둘러싸인 산 정상에는 코린토스의 수호여신 아프로디테의 신전 터가 있었습니다. 일찍이 교역과 상업의 발달로 환락의 꽃이 된 도시 속, 높은 신전에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섬기던 천여 명의 여 사제들은 겐그레아 항구와 레카이온 항구를 통해 외국선박이 들어오는 걸 보고는 산에서 내려와 남자들에게 몸을 팔고, 대가로 받은 돈을 다시 자신의 여신에게 헌물로 바쳤다고 합니다. 미의 총화인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무한한 동경의 눈길을 보내며 날마다 온 마음으로 제사했을 고대 여 사제들이 시현처럼 떠올랐습니다. 그녀들에게 아프로디테 여신이란 완벽한 외적 아름다움과 여성적 매력, 부산물인 풍요로움까지 주관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요? 간절히 닿고 싶으나 결국 닿을 수 없는 열망의 별이었을 테지요. 어쩌면 열망 그 자체였을지도 모릅니다. 오랜 시간을 따라 마모되고 풍화돼버린 여신의 신전 터를 응시하는데 그 순간 마음에 차오른 감정은 뜻밖에도 슬픔과 연민이었습니다. 아름다움과 성(性), 그리고 풍요를 숭배하는 세계란 어쩐지 한 몸에 세 개의 상체가 붙어있는 샴쌍둥이처럼 버거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여신의 환상을 떠나 자유로워지기란 무척 어려워 보였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숭배 받고 있는 아프로디테의 화려한 옷자락을 느꼈다면 여행자의 과람한 상상이었을까요. 신화와 과학문명의 꽃이라 불리는 우리 시대 문화의 집약체인 성형수술을 통해 아프로디테 여신이 진화해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 보고 싶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거슬러 오르다 보면 어느 지점에선가 인간이 그토록 닿기 원하는 열망의 비밀에 대해 조금은 알 것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글 쓰는 내내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흘깃 엿본 열망의 입자들이 너무도 비루하고 초라해 물거품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의 원형인가 싶었습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그 열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에 우리 시대 자화상을 보듯 부끄러웠습니다. 열망은 시간을 따라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적 난제라는 걸 다시 깨닫습니다. 우리의 내면을 닮은 가엾은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가진 그대로의 부끄러운 열망을 표현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열망의 초라한 자화상에도 불구하고…… 열망보다 더 아름다운 소망이 우리 곁에 있어서 다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건 여전히 큰 힘이 됩니다. 주후 50년 경,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스로 옮겨와서 열망보다 더 아름다운 참 소망을 외로이 설파했던 한 남자를 기억합니다. 그 아름다운 소망 때문에 부족한 필력의 걸음을 앞으로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이 출간되기까지 도와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자신의 열망이 아닌 타인의 소망을 위해 살아가는 분들이 옆에 계셔서 행복합니다.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2019년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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