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러시아 모스끄바 남부의 오룔에서 태어났다. 빌리뉴스와 오데싸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1916년 뻬뜨로그라드 대학 역사, 문학부에서 수학했다고 알려졌으나 공식적인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혁명 후에는 비뗍스끄에서 바흐친 써클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1919년 최초의 글 '예술과 책임'을 발표했으며, 1929년 바흐친의 이름으로 첫 저서 <도스토예프스키 창작의 제 문제>가 출판되었다. 그해 종교 문제로 인해 소비에트 당국에 체포되었으며, 1930년 카자흐스탄으로 유배되었다. 1934년 유형이 종료되었으나 1938년 골수염 악화로 다리를 절단했다.
1945년 모르도바 교육대학 조교수가 되었으며, 1950년대 말 젋은 학자들에 의해 그의 저서가 재발견되어, 1960년대에 그의 주요 저작이 출판되면서 차츰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1963년 <도스토예프스키 시학의 제 문제>를 출판하였고, 이를 계기로 바흐친에 대한 문학사적 재평가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의 소설론, 카니발론, 대화론 등은 현재 어문학, 미학, 철학은 물론 문화학, 민속학 등 거의 모든 인문학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1965년 방대한 분량의 <프랑수아 라블레의 창작과 중세와 르네상스의 민중문화>를 출판하였으며, 1975년 작고했다. 한편 1992년 바흐친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대화, 카니발, 흐로노토프>가 창간되어 이후 러시아 내에서 지속적인 바흐친 연구의 기틀이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