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열한살 때 아버지로부터 선물받은 지게, 그 지게가 좋아서 나는 무슨 훈장처럼 지고 다니다가 지금껏 그 지게를 벗지 못한 농부가 되었습니다. 흙냄새 쇠똥냄새 풀냄새 나무냄새의 힘을 믿는 나, 맨땅에 녹색이나 초록이 번지는 힘을 믿는 나, 거기 세상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나요. 그 조용한 아우성은 언제나 내 삶의 노래였습니다.
밭에서 돌을 골라 내어도 뒤돌아보면 돌의 알을 낳는 밭을 보니다. 풀을 뽑아내어도 내 꽁무니 바짝 따라붙는 풀들 봅니다. 삶이 고단하지요. 소의 하루처럼 사는 일이 고단하지요. 하지만 나는 고단하다는 생각이 들 때 내 시업(詩業)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먼지 나는 이 땅에 내 마음의 녹색이나 초록을 심는다는 생각으로요.
아주 느리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앞으로 멀고 먼, 갈 길이 더더욱 두려운 풀밭에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요. 내 나이 열한살 때부터 이제 시업을 다시 부지런히 지고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