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광어>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나프탈렌》 《향》 《마담뺑덕》 《아콰마린》,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 《조대리의 트렁크》 《힌트는 도련님》 《사십사四十四》 《같았다》, 짧은 소설 《그리스는 달랐다》 등이 있다.
내가 아테네에 온 것은 두번째이다. 5년 전, 꼭 아테네에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어서 아테네 여행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그것은 어떤 기대감도 없었다는 말이다. 당시에 장편소설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두 달 넘게 숙소에 틀어박혀 미처 마치지 못한 소설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아테네의 어떤 것도 보지 못했다. 그저 장편소설을 마무리할 수 있는 곳, 처박혀서 소설만 쓸 수 있는 곳을 찾았던 것이고, 그곳이 아테네였던 것뿐이다. 한국에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곳,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곳에서 나는 내 고향 근처를 배경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5년 전의 아테네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국가부도사태와 2차 구제금융의 여파가 굉장했다. 시내는 주말마다 파업과 시위로 들끓었고 매캐한 최루가스가 도시를 뒤덮었다. 곳곳에서 일어난 방화로 불에 탄 은행 건물과 정부 건물이 흉물스럽게 방치된 채로 서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받은 아테네에 대한 인상은 굉장히 안정적이고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간이 지녀야 할 어떤 기본적 권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이방인에게 관대했다. 겨울이라 관광객들은 적었고 그마저도 불안정하다는 인식으로 발길이 끊겨 아테네는 휑했다. 그리스 여행은 아침이나 해질녘 아테네의 오래된 거리를 산책하는 게 전부였다. 숙소는 제우스 신전 바로 앞이었는데 아크로폴리스를 향해 걷거나 국립정원을 산책하는 게 하루 일과였다. 나는 그렇게 아주 단출하고 일상적인 두 달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스 여행은 막상 한국에 돌아가고 시작됐다. 지난 5년간 나는 항상 그리스에 마치 뭔가를 두고 온 것처럼 그곳을 그리워했다. 5년 전의 그리스는 나에게 완전히 잊힌 존재였지만 언젠가부터 눈감으면 잠깐씩 스쳐지나가는 스틸 사진처럼 재생되었다. 다시 그곳을 찾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데까지 5년이 걸렸다. 나는 그사이, 데뷔하고 처음 소설을 쓰던 시절로 돌아갔다. 막막하고 막연해졌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데뷔하고 15년 동안의 여정 한가운데 그리스가 놓여 있는 것만 같았다. 한 주에 7개씩 강의를 하던 시간강사직을 그만두고 오로지 소설에게만 절실하겠다, 마음먹었지만 막연함과 불안함은 더 커졌다. 오히려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올여름에 나는 그리스로 돌아왔다. 그리웠던 그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테네는 그 겨울의 모습과는 달랐다. 수많은 관광객과 여름휴가로 들뜬 현지인들로 도시는 들썩였다. 한적함은 덜했지만 흥분과 들뜬 열기가 도시를 가득 채웠다. 경제적인 상황은 그리 나아졌다고 볼 수 없을 테지만 국민들은 현명하고 슬기롭게 현재의 고난을 건너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시는 정비되고 있었고 불안정했던 요소들도 사그라지고 있었다. 넘쳐나던 난민들도 잘 관리되고 있는 듯 보였다. 여행은 아름다운 풍경만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인간에 대한 풍요로움을 발견하는 것이 여행의 더 큰 가치가 맞을 것이다.
숙소는 시내의 근대 올림픽경기장 근처에 얻었다. 맞은편에는 국립정원이 있고 정부 공관과 관료들의 집, 대통령궁이 위치해 있는 곳이다. 하늘 높이 솟은 사이프러스숲을 걸으며 나는 그간 이상한 곳을 헤매다 온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떠나왔지만 돌아왔다, 돌아왔지만 떠날 것이다, 나는 걸으면서 생각하곤 했다. 도심 한가운데의 울창한 숲을 지나면 리카비토스 언덕이 눈에 들어온다. 그 언덕은 고대 귀족들이 살던 동네였다. 수천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부촌으로 언덕 밑에는 명품 숍과 카페, 분위기 좋은 식당이 언덕을 받치며 늘어서 있다. 그 언덕과 아크로폴리스 언덕이 마주보고 서 있다. 언덕과 언덕 사이에 고대의 시간이 놓여 있다. 그 길을 걸으며 느낀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몇천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세상이 바뀌고 바뀌었어도, 그 안의 사람들의 마음이나 본성은 그리 큰 변화가 없는 듯 고대의 시간이 지금도 여전히 흐른다. 가족이 주는 안정감과 평화로움이 고대의 도시에 여전하다.
그리스는 모계 중심의 사회이다. 우리가 아버지 중심의 가부장제에 가깝다면 그리스는 어머니가 삶의 중심이다. 유산 같은 것도 딸에게 물려주는 게 일반적이고, 결혼 후 남자가 여자 집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 또한 많다. 그곳에서 알게 된 한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1층엔 친정어머니가, 2층엔 여동생 가족이, 3층엔 맏이인 딸 가족이 사는 식이다. 이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IMF 구제금융으로 촉발된 경제난으로 급격한 가족의 붕괴를 겪은 것과 달리, 그리스는 우리보다 더 안 좋은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평온한 이유가 그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어떤 고대의 길을 걸으며 우리가 성급히 떨쳐버린 가장 중요한 무엇을 본 느낌이 들었다. 우리보다 가난하지만 그들이 포기하지 않은 그 어떤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것이 내가 걸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