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옹담록≫의 편찬자로 알려진 나엽의 생평에 대해서는 현재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제1권 갑집(甲集)의 표제어 아래에 보이는 ‘여릉 나엽 편(廬陵羅燁編)’이라는 기록을 통해 그가 지금의 장시성(江西省) 지안(吉安) 사람이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이 책에 수록된 내용과 어투를 볼 때, 나엽이 주로 활동했던 시기는 송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취옹’이라는 두 글자는 원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잘 알려진 구양수(歐陽脩)의 호인데, 구양수 또한 북송 시기 여릉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나엽이 책 제목을 정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남송 시기에 중국 전설상의 역사적인 일들로부터 풍속과 지리 등을 논술한 ≪노사(路史)≫ 47권을 편찬했던 나필(羅泌)과 고향이 동일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즉 여릉 지방에는 나씨(羅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데, 나엽은 비록 관직에 오르지 못해 정사(正史)를 비롯한 다른 문헌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집안 분위기와 주위 환경으로 인해 상당한 학식을 갖추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당시 중국의 상층 문인들이 소설을 경시하는 풍조 속에서 나엽처럼 ≪취옹담록≫과 같은 통속적인 내용의 책을 자신의 이름을 걸고 편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서의 서문에 해당하는 <소설인자>와 <소설개벽> 두 편의 글에서는 당시 소설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학식과 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 도드라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