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으로 사역지를 옮겼다. 원심력에서 이탈한 두려움은 낯선 것들에 대해
‘격차의 섭리’를 깨닫게 해주었다.
대전을 관통하는 내(川)가 흐른다.
유등천(柳等川).
‘버드나무 무리가 있는 내’다. 버드내 길을 걸으며 ‘황혼의 노래’를 불렀다. 버드내는 한동안 나의 명분을 불편하게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의식의 전환, 정감의 발성, 관성의 보행에 유연한 대응을 주었다.
곡선의 나무와 순리의 물길은 분실한 품목들을 자꾸 떠올리게 했다. 성찰은 늘 기회였다. 유등천에서 나의 언어는 정체를 조금씩 드러냈다.
낯선 게 감사할 때가 있는데 지금이 그렇다.그렇다고 전 존재의 외등(外燈)이 아님을 안다.
그러나 낯선 대면에 감사하며 곡선의 이치를 따르려고 한다.
획리무애(獲利無涯).
‘이로운 것을 얻으니 기쁨이 끝이 없다’ 이 말은 ‘곡선의 섭리’를 얻은 나에게 주는 메시지다.
뒤늦은 자책이 언제나 삶의 뒤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번에도 뒤늦게 시집을 낸다. 자책하면서도 섭리의 손길에 맡긴다. 나는 ‘섭리의 언어’가 시라고 믿는 믿음에 변함이 없다.
출판을 서둘러주신 도서출판 한글 심혁창 대표께 고마움을 전한다. 이탈 음을 내는 내 노래를 그래도 함께 불러주는 분들이 있어 나는 하늘을 보며 행복하게 섭리를 노래한다.
- 가을의 유등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