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대학시절 꾸준하게 한의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1992년에 여강출판사에서 발간한 동의수세보원 번역본을 처음 접하고 신선하고 독특한 발상의 책이라고 생각했으나 깊게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병원에 근무하면서 병의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보다 수술이나 대증요법에 치중하는 현대의학의 치료방법에 회의를 느껴 병원을 그만두고 환자들이 생활 속에서 직접 자기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전념했습니다. 체침, 수지침, 추나요법, 향기요법, 식사요법, 명상 등 여러 대체의학 영역을 섭렵했으나 그 어느 방법도 건강과 질병에 관한 근원적인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이미 발생한 증상을 완화하는 것에 그치고 있어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네 체질 중에서 가장 몸이 약한 소음인에 속하는 필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졌는데 양의학으로도 한의학으로도 대체의학으로도 도무지 차도를 볼 수가 없어서 자신의 건강회복을 위해 다시금 사상의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건강할 때는 아무리 읽어도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 같은 문장들이 마음과 몸이 아픈 상태에서는 손에 잡힐 듯이 명료하게 이해가 되는 경험을 하고 나서 동의수세보원은 저자인 이제마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에 치열하게 부딪히고 깨져서 죽을 만큼 아파 본 사람에게 비로소 굳게 닫혀 있던 비밀의 한 자락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동의수세보원이 의학서를 넘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을 아는 것에 대해 논한 책이며, 사람의 체질을 넷으로 구분하는 것 역시 사람을 더 잘 알기 위한 방법론이자 그 결과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의수세보원의 총론 부분이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묘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의수세보원이 출간된 때와 120년이라는 시대의 차이는 있지만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그동안 화두처럼 잡고 있었던 병이 생기는 진짜 원인과 인간의 심리상태가 병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단서와 함께 약물이나 수술에만 의존하지 않는 건강관리 방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동의수세보원은 자기가 겪은 만큼 보이고 아파하고 고민한 만큼 읽히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동의수세보원을 처음으로 접하는 분들도 자신이 이미 겪었거나 고민하고 있는 어떤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읽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저자의 생각과 주파수가 맞는 순간 이 책이 어려운 철학서가 아니라 바로 자기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후에는 타인의 해석 없이도 스스로 자신의 관점에서 동의수세보원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