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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유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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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LP로 듣는 클래식>

유재후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외환은행에 입행, 파리지점장, 경영지원그룹장 등을 역임했다. 은퇴 후 클래식음악 관련 글쓰기, 강연 등을 하는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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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LP로 듣는 클래식> - 2020년 12월  더보기

LP와 함께하는 음악여정 LP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용산전자상가나 회현동 지하상가에는 수십만 장의 중고 LP들이 진열되어 있고, 백발의 노인, 중년 신사 그리고 심지어 2~30대 젊은 회사원들도 진열대에 빼곡히 꽂혀있는 LP들을 꺼내 이리저리 훑어보다 몇 장씩 사가는 모습을 자주 본다. 1950~60년대 명반들이 새로운 포장의 멋진 LP로 재생산되고 있고, LP로 제작된 조성진의 2015년 쇼팽콩쿠르 실황 음반은 품절이 돼 구할 수가 없다. 2019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LP가 CD보다 많이 팔렸다는 뉴스도 있었다. 한창 사춘기 시절인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신문사에 다니고 있던 형으로부터 허접한 야외전축portable turntable과 소위 ‘빽판(해적판)’으로 불렸던 LP 2장을 물려받았다. 음악을 접할 수 있는 매개체로는 라디오 밖에 없었던 나에게 턴테이블이 달려있는 그 야외전축은 최고의 장난감이자 사춘기 열정을 달래줄 수 있는 훌륭한 도구였다. 처음으로 내 소유가 된 그 LP 2장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였는데, 얼마나 되풀이해서 많이 들었는지 어느 순간엔 잡음소리가 음악소리보다 커져서 더 이상 듣기가 괴롭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 72년 봄 어느 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중간고사를 마친 후련한 기분에 문득 띠동갑의 출가한 누이가 자주 얘기해주었던 음악감상실이 떠올라 종로1가의 ‘르네상스’를 혼자 찾아갔다. 200원짜리 입장권을 사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감상실에 들어서는 순간 들려왔던, 아니 온몸에 쓰나미처럼 밀려왔던 베토벤 전원교향곡 1악장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그 날 난 점심도 저녁도 굶은 채 르네상스 문 닫는 시각인 밤 10시까지 컴컴한 감상실 한 구석에 종일 앉아 있었다. 그 이후로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그리고 방학 때는 거의 매일, 도서관을 다니듯 수학참고서 하나를 들고 르네상스를 찾았다. 집에서 소형라디오나 야외전축으로 듣는 음악과는 완전 다른 세계, 르네상스 음향공간의 마력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르네상스’ 외에도 명동의 ‘필하모니’나 ‘전원’ 등의 감상실을 전전했다. 음악 속에서 인생 고민도 하고, 클래식음악을 좋아했던 친구들과 함께 음악 논쟁도 하고, 때론 음악을 핑계로 예쁜 여성들과 데이트했던 그 시간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이다. 그 후 직장인이 되고, 결혼을 해 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 된 후에는 감상실을 드나들며 한가롭게 음악 감상할 여건이 되지 않았기에 당시 유행한 ‘워크맨’이라는 휴대용 카세트녹음기를 통해서나 음악적 갈증을 해소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맘 먹고 봉급 한 달 치를 몽땅 투자해 오디오시스템을 장만하면서 다시 음악으로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르네상스’의 음향시설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지만, 그래도 나만의 감상 공간을 만든 후 매주 몇 십장씩 LP를 구입해 듣는 즐거움은 직장생활이나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를 쉽게 해소해 주었다. LP의 탄생과 발전 LP는 ‘Long Playing 레코드’의 약어다. 소리를 저장했다가 나중에 다시 듣는 행위가 지금은 너무 쉽고도 당연한 일이지만, 1877년 에디슨이 처음으로 축음기phonograph를 발명해 제품으로 내놓았을 때 당시 사람들은 그 획기적인 발명품에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에디슨의 축음기에 사용되는 음반은 지금과 같은 납작한 원반형이 아닌 원통형이었고, 음질은 좋았으나 구조상 다량 복제가 어려운 단점이 있었기에 시장성은 없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887년, 베를리너라는 독일 출신 미국이민자가 지금의 모양과 같은 원반disc에 소리를 기록하고 이를 재생하는 ‘그라모폰Gram-mophon’이라는 음향기기를 발명한 이후, 아날로그방식의 레코드는 1982년 디지털 매체인 CD가 등장하기 전까지 무려 10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많은 발전을 거듭하면서 음향적인 완성도를 높여갔다. SP(standard playing)로 통칭되는 초기의 음반은 셸락shellac이라는 천연수지로 만들었는데, 음반 한 면에 수록할 수 있는 시간은 4분여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30여분 가량 소요되는 교향곡이나 협주곡 한 곡을 수록하기 위해서 4장의 음반, 그리고 전곡 감상에 70분이 넘는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을 수록하기 위해서는 음반 7~8장을 담는 사진앨범 같은 두툼한 포장이 필요했다. (요즘에도 새로운 신곡음반을 발표할 때 앨범album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 SP음반들을 앨범이라고 부른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무려 50여년이 지난 후인 1948년, 미국의 콜럼비아사에서 염화비닐PVC로 제작한 LP를 개발하면서 레코드산업은 획기적인 진보를 하게 되었다. 한 면 재생시간이 30분가량으로 늘어나면서 대부분의 클래식 곡을 한 면 또는 한 장에 수록할 수 있게 되었고, 음질도 SP에 비해 크게 향상된 것이다. 그리고 약 10년 후인 1957년에는 스테레오로 녹음하는 기술까지 개발되었고, 이후 3~40년간 LP레코드의 전성기가 지속되었다.

- 저자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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