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 저럴 때 쓴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내고 싶었다. 많은 당위(當爲)를 내친 자리가 허전했을 수도 있고, 계절에 자꾸 스러지는 나만의 글마당을 찰칵 찍어 담아두려는 욕심이기도 하다. 수필을 썼는데 수필이 아니라고 한들 어떠랴. 시를 썼는데 시가 아니라고 한들 어떠랴. 집을 지었는데 집이 아니라고 사람들이 놀려도 내 집은 그 정도라서 오히려 부담 없이 사는 것처럼.
글쓰기는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그렇다고 검증 없는 글을 써 놓고 시다, 수필이다, 우길 깜냥을 세우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혼자 빙긋이 웃는 것은, 이러한 자기 검열마저도 요새 들어 점점 자기 타협으로 허물어지는데, 마침내, 시도 아닌 수필도 아닌, 시 비스무리 수필 비스무리, 운문과 산문을 잇던 예전의 부(賦)처럼, ‘시필(詩筆. pomesay)’이라 혼자 이름 짓고, 내 나름의 글을 쓰고 만다.
독자들이여, 시필을 너그러이 입양해달라!
2024년 여름, 악양의 사소한가(思消閑家)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