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7일 : 49호
빵칼은 푹
<라스트 젤리 샷>으로 2023년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을 수상, <마음을 치료하는 당신만의 물망초 식당>으로 제1회 K-스토리 공모전에 당선된 청예 작가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건드려봤자 욕밖에 더 먹지 않는 코드는 최대한 배제'(178쪽)하는 대신 '미움 받을 용기'를 낸 작가는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는 설정을 시원시원하게 밀어붙입니다.
주인공 오영아는 주변 사람들의 정의에 스스로를 맞춰넣다 웃음을 잃은 인물입니다. 정의로운 친구 은주가 보내준 구호기금 링크에 기부를 하고, 불륜한 인물을 단죄하고, 망언을 한 아이돌을 비난합니다. '징역 100년 때려버려요, 어쩌고저쩌고'(15쪽)를 반복하면서 숨이 막히는 영아의 모습이 남 일 같지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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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젤리 샷>으로 2023년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을 수상, <마음을 치료하는 당신만의 물망초 식당>으로 제1회 K-스토리 공모전에 당선된 청예 작가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건드려봤자 욕밖에 더 먹지 않는 코드는 최대한 배제'(178쪽)하는 대신 '미움 받을 용기'를 낸 작가는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는 설정을 시원시원하게 밀어붙입니다.
주인공 오영아는 주변 사람들의 정의에 스스로를 맞춰넣다 웃음을 잃은 인물입니다. 정의로운 친구 은주가 보내준 구호기금 링크에 기부를 하고, 불륜한 인물을 단죄하고, 망언을 한 아이돌을 비난합니다. '징역 100년 때려버려요, 어쩌고저쩌고'(15쪽)를 반복하면서 숨이 막히는 영아의 모습이 남 일 같지가 않습니다... ^^;
에스프레소에 휘핑크림을 얹듯, 옳음과 웃음 사이에 적절한 비율을 찾아내 적당히 씁쓸하고 달달한 맛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이 비율을 찾아내는 것에 실패한 저는 대체로 입을 다물고 댓글을 달지 않고 웃음기 없이 길을 오갑니다. 오렌지와 빵칼이 함께 있다면 뭉툭하고 답답하겠지요. 시원시원하게 빌런이 될 용기도 없는 제겐 지금 딱 '빵칼' 만큼의 자유가 필요합니다. 도파민이 쏟아지는 시원한 해방을 경험한 영아가 선택까지 끝까지 내달리는 소설로 자유를 대리 체험하며 오늘도 빵칼을 손에 쥐어봅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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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쪽 : 나는 좋은 사람이다. 나 또한 배려받아 마땅한 인간이라는 뜻이다.
Q :
『오렌지와 빵칼』 속 캐릭터 '은주'를 보고 킬조이(killjoy, 흥을 깨는 사람)라는 표현이 생각났습니다. 옳은 말만 하는 은주의 말을 따르다 '영아'는 웃음을 잃고 맙니다. 이 소설을 읽고 제 삶에도 웃을 일이 별로 없다는 게 비로소 떠올랐는데요... ^^ 그럼에도 요즘 청예 작가를 미소짓게 하는 것이 있을지가 궁금합니다.
A :
이건 비밀입니다만, 전 집에 있을 때 혼자 많이 웃습니다. 포켓몬 중 ‘꼬지모’라는 친구처럼 은은한 미소를 상시 착용하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혼자서 웃긴 영상을 보는 게 취미였어요. 고등학생 땐 야자가 끝나면 집에서 「개그 만화 보기 좋은날」을 몰아서 봤고요, 토요일엔 <무한도전>, 일요일엔 <개그콘서트>를 봤어요.『오렌지와 빵칼』 에 <무한도전>의 흔적이 있는 이유죠. 성인이 되어서는 일본의 만담 코미디나 미국의 쇼트 코미디를 즐겼네요. 웃음에 대한 오래된 갈망이 체화되어 평소에도 디폴트값처럼 미소 짓고 있어요. 다만 외출하는 순간 체통을 지키기 위해 감정이 거세된 현대인의 표정으로 갈아입을 뿐이죠. 사는 건 참 재미없지만 저를 웃게 해주는 것들은 여전히 많답니다(주로 액정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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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오렌지와 빵칼』 속 캐릭터 '은주'를 보고 킬조이(killjoy, 흥을 깨는 사람)라는 표현이 생각났습니다. 옳은 말만 하는 은주의 말을 따르다 '영아'는 웃음을 잃고 맙니다. 이 소설을 읽고 제 삶에도 웃을 일이 별로 없다는 게 비로소 떠올랐는데요... ^^ 그럼에도 요즘 청예 작가를 미소짓게 하는 것이 있을지가 궁금합니다.
A :
이건 비밀입니다만, 전 집에 있을 때 혼자 많이 웃습니다. 포켓몬 중 ‘꼬지모’라는 친구처럼 은은한 미소를 상시 착용하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혼자서 웃긴 영상을 보는 게 취미였어요. 고등학생 땐 야자가 끝나면 집에서 「개그 만화 보기 좋은날」을 몰아서 봤고요, 토요일엔 <무한도전>, 일요일엔 <개그콘서트>를 봤어요.『오렌지와 빵칼』 에 <무한도전>의 흔적이 있는 이유죠. 성인이 되어서는 일본의 만담 코미디나 미국의 쇼트 코미디를 즐겼네요. 웃음에 대한 오래된 갈망이 체화되어 평소에도 디폴트값처럼 미소 짓고 있어요. 다만 외출하는 순간 체통을 지키기 위해 감정이 거세된 현대인의 표정으로 갈아입을 뿐이죠. 사는 건 참 재미없지만 저를 웃게 해주는 것들은 여전히 많답니다(주로 액정 속에….)
Q :
영아는 '서향의학연구센터'에서 '정서 조절' 시술을 받은 후 '천박한 쾌감'을 되찾습니다. 우리가 '길티 플레저'라고 하는 것인데요, 작가에게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길티 플레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
어렵네요. 저는 사실 길티함을 거의 느끼지 않습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어떻게 유죄란 말인가? 웃게 만들면 무죄다!’ 이런 왜곡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서요. 하지만 굳이 찾자면…. 여드름 압출 영상이나 편도 결석 제거 영상이 있겠습니다. 친구가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길래 조금이나마 통쾌해지라고 그 영상들을 보내줬다가 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쓰고 보니까 길티 맞네요, 이거.
Q :
장마철엔 습도가 높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불쾌합니다. 누구에게나 '빵칼'이 필요한 이 계절, 이 소설을 다 읽은 후 영아처럼 자유로워지고 싶은 독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
“자유로운 우리를 봐, 자유로워.” 자유는 언제나 가까이에 있어 마음만 먹으면 쟁취할 수 있습니다만 외곽선을 잘 살펴보세요. 테두리를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방종입니다. 그 테두리를 우리는 ‘도의적 책임’라 부르지요. 타인과 집단을 이루며 사는 현대인에게 무한한 자유는 실존하지 않습니다. 그건 오히려 허상에 가깝죠. 『오렌지와 빵칼』 역시 그 부분을 지적합니다. 그러니 자유를 갈망하는 당신은 지극히 ‘정상적’이며 ‘평범’합니다. ‘안심’하세요! (이 글에서 숨어있는 힌트를 부디 발견하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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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길에서 헤매고 집에 들어가면 너무나 시원하고 쾌적하여 마냥 눕고 싶어집니다. 집 지키던 책들이 집에는 먼저 누워 있습니다. 채 못 읽고 머리맡에 놓아둔 종이더미 옆에 누워 궁금하지 않은 (포인트는 진짜로 별로 안 궁금해서 소리에 집중되지 않아야 합니다) 교양 지식을 유튜브로 들으며 잠듭니다. 시의 행과 행 사이에 누워 있는 흰 물줄기는 그제야 비로소 활동을 시작할 것입니다. 읽지 않은 책에 무엇이 숨어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제목이 심금을 울리는 이 책은 <무구함과 소보로> 임지은의 세 번째 시집입니다. 누워 있고만 싶은 장마철에 실없이 골똘히 생각해보기 좋은 질문을 툭툭 던집니다. 예를 들면 아래 같은 질문인데요, 입속에서 웅얼거리다보면 그러게? 하고 누워 있는 나 스스로를 합리화하게 됩니다.
뭐든 중간이라도 가려면 가만히 있어야 하고
가만히 있기엔 누워 있는 것이 제격이니까
<눕기의 왕> 부분
습기도 집에 누워 떠나지 않는 이 계절엔 역시 누워있는 게 좋겠습니다. 몸을 일으킬 날을 기다리며 오늘은 일찍 누워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SF 전문을 표방하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김썬썬 디자이너에게는 오래 품어온 작은 불씨가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꼭…. B급 영화 클리셰를 차용한 콘셉트로 작업해 보고 싶어!”
어느 날 갑자기, 이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만든 원고가 메일함으로 슝 날아옵니다.
《기니피그의 뱃살을 함부로 만지지 말라》….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을 보고 1차로 살짝 두근거렸습니다. 그러곤 작품을 읽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소리가 뎅-하고 울렸습니다. “이거다!!!”
《기니피그의 뱃살을 함부로 만지지 말라》는 B급 SF 물을 떠올릴 때 기대할만한 상상력으로 채워진 책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거대한 기니피그들의 음모, 햄버거 가게를 습격한 쓰레기 행성의 외계인, 악마 들린 스케이트보드, 미래 시대의 슬래셔 무비 등. 좀처럼 보기 힘든 황당한 상상력으로 독자들을 충격 속으로 빠트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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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전문을 표방하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김썬썬 디자이너에게는 오래 품어온 작은 불씨가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꼭…. B급 영화 클리셰를 차용한 콘셉트로 작업해 보고 싶어!”
어느 날 갑자기, 이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만든 원고가 메일함으로 슝 날아옵니다.
《기니피그의 뱃살을 함부로 만지지 말라》….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을 보고 1차로 살짝 두근거렸습니다. 그러곤 작품을 읽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소리가 뎅-하고 울렸습니다. “이거다!!!”
《기니피그의 뱃살을 함부로 만지지 말라》는 B급 SF 물을 떠올릴 때 기대할만한 상상력으로 채워진 책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거대한 기니피그들의 음모, 햄버거 가게를 습격한 쓰레기 행성의 외계인, 악마 들린 스케이트보드, 미래 시대의 슬래셔 무비 등. 좀처럼 보기 힘든 황당한 상상력으로 독자들을 충격 속으로 빠트릴 겁니다.
《기니피그의 뱃살을 함부로 만지지 말라》 속 ‘B급 상상력’은 눈에 보이는 특별한 이미지로서만 소비되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상상력이 쓰인 이유를 설득력 있게 풀이한 내용과 마주할 텐데요. 이 상상력은 사회의 불평등한 면면과 구조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규락 작가는 ‘특정 기성의 형식에 대한 반항’하는 것이 B급이라고 하는데요. 슬래셔 무비와 미디어, 외계 침략자들과 소비 사회의 수탈 구조, 미래인들과의 조우에 얽힌 자본주의 시대의 시간 착취, 각종 크리처가 우글거리는 세계에서의 관료주의……비주류적 상상이 부조리를 효과적으로 폭로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자, 그렇다면 이 책의 기니피그들은 무엇을 겪었기에 위험한 무기로 무장했을까요? 본래 귀여운 이미지와 폭력적인 이미지의 결합은 B급 SF물에서 주로 차용되었습니다. 〈크리터스〉나 〈그렘린〉 속 크리처들이 대표적으로 그렇죠. 소설 속 기니피그들 역시, 귀엽지만 외계 침공 영화 속 악당들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합니다. 물론 소설을 죽 읽다 보면, 기니피그들은 더 복잡한 속내를 안고 있단 걸 알게 될 겁니다.
김썬썬 디자이너는 작품을 다 읽고 나서는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편집부가 스타일과 형식에 열려있어 의도한 대로 디자인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고, 그렇게 《기니피그의 뱃살을 함부로 만지지 말라》는 B급 블록버스터 히어로물의 키치한 감성을 입게 되었습니다.
무해한 생김새로 나름대로 위협적으로 보이는 기니피그와 위대한 설치류 연합을 작품 속 텍스트와 비교해 보시고, 이미지에 숨겨둔 작은 디테일을 발견하는 재미도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니피그들은 어쩌면 꽤 근엄하고 진지할지도 모릅니다….)
- 아작 디자이너 김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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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역세권이라는 집 소개는 언제 봐도 위풍당당합니다. 재개발 예정지에 '알박기'를 해 소박하게 돈을 벌고 싶었을 뿐인 봉천동 구멍가게 주인 원동웅 씨는 별안간 지구가 속한 44은하계 환승터미널 구멍가게 사장님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주적 차원의 환승역의 관리자가 된 이 아저씨는 이제 말만 다른 게 아닌, 출신 행성이 다른 손님을 상대로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현이랑의 부동산 스릴러 소설도 같이 읽기 좋습니다. 어느덧 낡은 신도시가 된 초월시의 재건축을 앞둔 구축 아파트에서, '영끌'을 한 가정주부 은주는 집값을 수호하기 위해 귀신 소동, 자살 사건, 동물 학대 등 집값이 떨어질 만한 아파트 단지 내 사건을 직접 해결하러 나섭니다. 갭 투자, 전세 사기 등의 생생하고 현재적인 묘사로 생김새는 나와 같지만 속은 나와 너무도 다른 우리 이웃의 심중을 상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