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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4,500원, 87권 펀딩 / 목표 금액 1,000,000원
<마더후드>로 출간되었습니다. 
  • 2024-12-05에 목표 금액을 달성했습니다.
  • 100자평 작성하면 추가 마일리지 1% 적립

*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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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줄거리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삼십 대 후반에 접어든 서술자가 여성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들’ 하는 결정을 두고 자기 자신과 솔직하고 독창적이며 유머러스한 논쟁을 펼친다. 『마더후드』의 서술자는 어렸을 때부터 한 번도 어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친구들이 아이를 낳고, 삼십 대 후반에 이르른 자기 역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그는 자신이 진심으로 아이를 낳고 싶은지, 주변 사람들과 사회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는 것인지, 진화를 통해 각인된 단순한 생물적 본능인지, 그것도 아니면 인생의 중요한 경험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알아내고자 한다. 캐나다의 최고 문학상 스코샤뱅크 길러상 최종후보에 올랐으며, ≪뉴욕 타임스≫, ≪벌쳐≫,≪시카고 트리뷴≫,≪파이낸셜 타임스≫ 등 다수 매체가 2018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한 『마더후드』는 단순히 어머니가 되느냐 마느냐라는 질문을 넘어 자기만의 독립적인 가치관을 세우고 추구하는 삶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편집자의 말

소설 『마더후드』는 나이 마흔을 앞둔 여성 '나'의 이야기이다. 남들은 다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저만치 앞서가는 듯한데 '나'는 일도 사랑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무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간다. 가임기는 끝나가는데 아이를 가져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내게 아이가 생긴다면 좋을까?', '나는 아이를 진심으로 원하는가?', '원한다면 아이를 왜 원할까?', '소위 정상적인 여자라고 나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은 걸까?', '그렇다면 아이를 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들 시선에 나를 맞추고 싶지 않아서일까?' 이처럼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고민을 늘어놓을 때마다 감정은 큰 폭으로 널뛴다. 소설 속 '나'의 고민에 공감할 독자가 많으리라.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이야기로 들린다. 우리나라에서도 온갖 '불안'이 출산 혹은 육아라는 결정을 주저하게 만든다. 한정된 돈과 시간, 불안한 일자리, 치솟는 집값, 삭막한 교육 환경, 독박 육아 부담, 커리어가 끊긴다는 절망감. 이 사회에서 '연애-결혼-출산'과 같은 전통적 생애주기는 이제 더 이상 당연시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왠지 남들 다 가는 길 따라가지 않아도 될는지 불안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토록 불안한 마음을 나눌 데가 생각보다 없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시원치가 않다. 저마다 다들 자기 경험 안에서 답을 정해두고 조언할 뿐이다(내가 아이를 낳아보니까 말이야). 소설 속 '나'도 오죽 답답하면 힘들 때마다 동전점을 치며 동전에 고민을 털어놓는다. '나'의 고민에 허무맹랑한 대답만 꺼내놓는 동전들이 의외로 좋은 말벗이 되어준다. 동전은 '나'에게 뾰족한 답을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도 동전의 조언을 무조건 따르지도 않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그저 평가하지 않고 묵묵히 말을 들어주며 기다려주는 역할로 충분하다. 동전점을 치며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고, 급기야 더는 동전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마음이 딴딴해지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우리는 어떤 선택 앞에 주체적인 인간으로 서기를 원한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아주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치겠지만, 끝끝내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해내는 인간. 힘들게 내린 결정이 곧 행복을 선사해주리란 보장은 없고, 어쩌면 그 선택이 실패한 결정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직접 부딪쳐 나가고자 한다. 부딪치는 데 지친 여러분에게 이 소설이 작은 위로와 격려가 되었으면 좋겠다. 소설 속 '나'의 분투를 통해, 여러분도 용기를 내주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지금 삶에서 벌이는 씨름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음을 깨닫기를. 여러분이 내린 어떤 선택으로 인해 또 다른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죄책감에 눌리지 마시기를. 어떤 선택을 했든 혹은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와버렸든 당신의 삶이 당신에게 온갖 방향으로 안겨줄 기쁨을 충만히 누리시길. 설령 아픔도 있을지라도 당신이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주어지리라고 믿으시길.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향해 당신의 삶이 깊이깊이 뻗어나가길.

_이경호 편집자


추천사

『마더후드』는 여성의 삶에 장벽을 두르는 생물학적, 사회학적 가설을 깨부순다는 점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떠올리게 한다.
≪글로브 앤드 메일≫

헤티는 우리 시대의 가장 신선하고 재치 있고 독창적인 작가 중 한 명이다.
≪워싱턴 포스트≫

이 철학적인 페미니스트 소설은 뜨거운 반향을 불러 일으킬 주제를 창의적이고 성공적으로 다루었다… 헤티의 글에는 용기와 호기심, 흔히 볼 수 없는 진실이 담겨 있다.
북리스트 (스타 리뷰)

조용히 큰 울림을 일으키는 소설… 어머니가 되기를 거부하는 여자는 ‘여성의 보편적인 서사’에서 배제되며 ‘여성 삶의 주된 활동’에서 소외당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은 양육이 존재의 핵심인 어머니라는 역할에 정체성을 잃는다.『마더후드』에서 헤티는 바로 이러한 여성의 딜레마를 탐구한다. 아이를 낳지 않음으로써 어머니인 사람들보다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될 것인가, 혹은 어머니가 됨으로써 자신의 아이보다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될 것인가.
샐리 루니 (『노멀 피플』 저자)

이 책은 현대 여성과 출산 사이의 도덕적, 사회적, 심리적 관계를 조명하고 이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며, 여성의 지적 권리에 대한 심오한 탐구를 통해 여성성의 새로운 규범에 응답한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본 어떤 책과도 다르다. 실라 헤티는 예술가로서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을 뿐만 아니라 여성을 주제로 한 대화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레이첼 커스크 (『윤곽』 저자)

소설이라는 장르의 정의를 넘어선 이 작품은 몽테뉴의 계보를 잇는 철학적 에세이라고 일컬으면 가장 적절한 것이다. 아이를 낳을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다루며 헤티는 한 인간의 사명과 책임, 정체성,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게 사는 것의 의미라는 심오한 주제들을 명징하고 독창적인 시선으로 탐구한다.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

책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의미를 더한 것을 원하지 않는 마음, 그 마음에는 모종의 슬픔이 배어 있는 법. 좀 더 보편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는 슬픔. 한 삶의 순환에서 다른 삶이 창조되는, 흔히들 말하는 생명의 순환을 거슬렀다는 슬픔. 내 삶에서 다른 삶이 비롯되지 않았다는 감정, 그건 어떤 감정이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는 경이로운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상실감이 든다. 애초에 원한 적도 없는데. (p38)

테레사는 내게 독자적인 가치관을 세우고 추구하라고 했다. 친구들이 세상에서 흔히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나씩 이루며 나아가는 동안 내 삶은 정체되어 있는 듯하더라도, 나의 가치관을 찾고 그것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한다. 세상의 가치 목록에서 몇 가지를 달성했느냐가 아니라 나만의 가치관에 따라 살고 있는지만을 점검하라고 했다. (p45)

여자는 할 일이 필요하므로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한다. 임신 중지 수술을 금지하려는 모든 사람을 생각해보면, 단 한 가지 이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은 새로운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다른 일을 하기보다는 아이를 낳아 키우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 매달리지 않는 여자는 왠지 위협적이다. 그는 예측불허다. 아이를 키우지 않으면 무엇을 하려나? 어떤 문제를 일으키려나? (p49)

아이를 키움으로써 실존적 욕구가 충족되더라도 예술 창조의 충동을 강하게 느낄까? (p53)

독자적인 삶을 살아갈 하나의 생명체를 내 몸을 통해 내보내는 일이야말로 어머니라는 존재의 핵심 역할인 듯하다. 아이는 당신과 당신의 파트너를 섞은 집합체가 아니라 자기 혼자만으로 이루어진 현실이다. 개별적이고 독보적인,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의식이다. (p63)

출산에 깃든 자만은 식민지 개척에 깃든 자만과 유사하다. 둘 다 세상에 자신을 새겨 넣고 자신의 가치와 이미지로 덧칠하고자 하는 바람을 품고 있다. (p113)

삼십 대가 되어 이제야 어느 정도 지각이 생기고 기술과 경험을 쌓은 여자들이 쓸모 있는 일을 하지 못하게 발목을 붙잡는 음모. 아이를 낳지 않으면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시시각각 닥치는 두려움에 정신력을 쏟으면서 다른 일에 집중하기가 쉽지는 않다. (p119)

그의 차 뒷좌석에서 나는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은 예술적 맥락을 창조하는 일과 비슷하고, 아이를 낳는 선택은 상품을 만드는 일과 조금 더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상품을 만드는 예술가에게 판매금이라는 형태로 보상이 주어지듯이 아이를 낳으면 확실한 보상을 받는다. 자기 아이라는, 존재와 가치가 명백한 보상에서 부모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아이가 있는 사람들의 미래는 선명하다. 자식 있는 삶은 한복판에 산이 우뚝 솟은 마을에 사는 것과 비슷하다. 마을 사람들 모두 산을 볼 수 있다. 모두 산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마을은 산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아이가 부모 삶에 의미를 주듯이 산은 마을의 진정한 가치를 드러낸다.
그러나 자식 없는 삶의 의미는 남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쉽게 보이지 않으므로 과연 있기나 할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삶의 중심에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나를 공항에 데려다준 젊은 프랑스인의 친구들이 창조하는 예술적 맥락처럼, 아이 없는 삶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일이란 얼마나 근사한지. 가장 중요한 것이 보일락 말락 한 그 길을. (p125)

갑작스레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당연해진 성적 본능처럼 언젠가는 모성도 자연스러운 나의 일부가 될까? 성적 본능에 눈을 떴을 때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모성에 저항하겠지만, 돌이켜보면 성적 본능은 결국 나를 붙잡았다. 내가 선택해서 간 길이 아니다. 삶이, 자연이 우리를 끌어당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절을 후회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 본능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왔는가? 더 흥미로운 곳으로 데려와 삶을 더 흥미롭게 해주지 않았나. 그때와 마찬가지로 몸이 우리를 어머니가 되는 길로 끌어당기고 있을까? (p135)

지금 이 순간에―더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바로 결정한다―아이를 갖지 않기로 하면, 내가 자기 삶에 책임이 있는 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맺은 결속과 이 세상을 가장 중요시하며 내 정신을 개선하고 거짓 없이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책임감 있는 남자와 동등하게 책임을 다하는 여자로 살 수 있을까? 내 미래에 아기가 없을 것이라고 확정하고 아이로 인해 느끼는 기쁨과 성취감을 포기하고 나면, 책임감 있는 남자가 자신의 권리 의식과 폭력성과 지배욕을 비우려고 애쓰듯이 나 역시 타인의 삶, 특히나 여성 친구들의 가장 어두운 비밀을 둘러싼 뒤틀린 관심과 타인을 두고 입방아를 찧고 싶은 충동을 떨쳐내고 내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며 살 수 있을까? 새롭게 거듭나자. 지적으로 사고하고 끈기 있게 노력하여, 여성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며 육체가 정신에 속삭이는 거짓말과 속임수로 가득한 구름 속에서 길을 잃지 말고 헤쳐나가자. 내 몸이 속임수를 쓰지 못하게 통제하고 내 입으로 사실이 아닌 말을 내뱉지 않기. 이렇게 나를 새로이 창조하려면 어마어마하게 노력하고, 고통을 견디고, 또 고통을 초래해야 할 것이다. 자학적으로 나 자신을 괴롭히거나 실패한 기억 속에서 허덕이거나 알 수 없는 미래를 걱정하며 괴로워하는 대신, 의지의 힘으로 내가 원하는 미래를 일구어나가야 한다. 배려심에서 비롯되는 여성 특유의 자기 의심을 떨쳐내고, 시간 낭비일 뿐인 후회를 제거하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깊이 사유하며, 이제껏 큰 위로가 되어준 나의 부드러움을 스스로 찢어버려야 할 터이다! 어쩌다 내가 꿈만 꾸느라 삶을 흘려보내는 동화 속의 공주처럼 깊은 잠에 빠져버렸는지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하고 아찔하다. 내가 스스로 깨어나지 않으면 끝내 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정신을 가다듬고 더는 그 누구에게도 거짓말하지 말자. 올곧고 의연하며 자기 행동과 말에 떳떳이 책임지는 사람이 되자. 자꾸만 나를 잠의 안개로 뒤덮으려는 나의 여성성, 이것은 무척 강력하므로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이것은 아이를 키우는 일이 선사하는 소박한 기쁨과 소소한 성취감으로 나를 유혹하여, 내가 양육에 빠져 나 자신을 잃고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기를 바란다.
번식을 포기하고 나쁜 여자의 길을 택하면 어떨까? 생물적인 실패를 일부러 추구한다면? 오직 나만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일까? 실패의 영역뿐이다. 실패의 영역에서만 우리는 온전히 혼자일 수 있다. 실패를 추구할 때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실패자들은 이 시대의 아방가르드다. (p146)

따져보면, 아이를 낳는 일은 오직 내 삶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마일스의 삶과 아이의 삶, 아이가 만나거나 만나지 않을 모든 사람의 삶과 그 만남에서 파생될 인연, 그 인연들이 세상에 불러일으킬 모든 사건에 영향을 끼친다. 내가 대체 무엇이라고 그 모든 일에 시동을 거는가? 마일스나 나의 아버지나 나의 국가가 한 사람의 존재를 두고 왈가왈부할 수 없듯이, 나 역시 이러한 결정에 권리나 의무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세상의 일부이므로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다른 삶에 영향을 끼친다. 내가 미래에 품은 환상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타인들과 연결되어 있으니, 좀 더 느슨히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운명이 다른 사람들의 운명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혀 있는데, 왜 내가 한길을 고집하며 그것만이 진실이 되도록 애쓰겠는가?
내가 해야 할 일은 뻔하다. 다른 삶에 환상을 품는 대신에 진정한 내 모습으로 사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고 현재 삶에 충실하기. 환상의 날개를 실제 삶에서 펼치는 것이다. (p161)

나는 어머니가 되는 것을 상상하며 아이로 인해 얻는 즐거움과 기쁨을 떠올린 적이 없다. 몹시 괴로우리라는 생각만 들었다. 아이를 키우며 겪을 온갖 가슴앓이와 근심 걱정과 애착이 어찌나 두렵던지. (p167)

나는 ‘어머니가 아닌’을 나의 정체성에 포함하고 싶지 않다. 나의 정체성이 누군가가 지닌 긍정적인 정체성의 부정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는 ‘어머니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대신에, 나는 ‘어머니가 아닌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나는 아닌 사람이 아니다. (p202)

나는 늘 내 존재 자체에 가치가 있다고 믿어왔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나 나의 존재 가치가 충분한지 의심하는 불안감은 여성은 자기 존재만으로는 가치가 없는, 남성을 산출하는 수단이라고 역사에 오랫동안 각인되어 있던 생각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단이 되기를 거부하는 여자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시도라도 해야 한다고. 그러나 나는 수단이 되고 싶지 않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당연시하며 내키는 대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남성을 세상에 내보내는 통로 따위는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p203)

아이를 갖지 않는 경험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내고 그것을 무언가의 부재가 아닌 능동적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이처럼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듯한 무력함에 빠지는 대신에 이 경험을 오롯이 끌어안을 수 있을지도.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나는 내 삶을 선택하고 내 선택을 손에 쥔 채로 다른 이들에게 내가 선택한 삶이라고 당당히 보여줄 수 있으리라. (p205)

어떤 부모는 자식이 없는 삶을 상상할 때, 아이를 가졌기에 이제는 이룰 수 없는 자기 모습을 상상하기보다 현재 삶에서 아이가 없으면 어떨지 상상한다. 그러고는 부모가 되지 않았으면 누리지 못했을 경험을 안타까워하며 그 안타까움을 자식을 아예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입한다. 당신이 부모인데, 자식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거든 아이를 향한 당신의 마음을 돌이켜보고, 그 마음이 다른 곳을 향해 있다고 상상해보라. 아이를 가짐으로써 당신이 느낀 희망과 목적의식과 가능성과 사랑이 한 치의 모자람 없이 충만한 다른 삶을 상상해보라. (p207)

유대인 여자들은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네가 아이를 낳지 않으면 나치가 이긴 거야. 나도 이런 기분을 느껴보았다. 그들은 우리의 씨를 말리려고 했어. 그들이 성공하게 두어서는 안 돼. 한 민족이 지구에서 자취를 감추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내가 이기적으로 아이를 안 낳아도 될까?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인류 전체가 멸망한다 해도 상관없다.
더 많은 인간을 세상에 내보내는 대신에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가학적이고 악할 수 있는지 배웠다. 그것에 대한 반발로 우리는 더는 인간을 만들지 않겠다. 앞으로 한 세기간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해진 범죄에 대항하는 의미로 우리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만들지 않을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포궁은 세상에 기여할 것이다. (p208)

사실, 어머니가 되지 않기보다 어려운 일도 없다. 그 누구에게도 어머니가 되어주기를 거부하기. 어머니가 되지 않기란 몹시 어렵다. 한 여자가 아직 어머니가 아님을 눈치채고 그녀를 어머니로 만들어 그렇게 여성의 자유를 덥석 가로채고자 하는 이들은 도처에 있다. 이런저런 남자들, 때로는 그녀의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어떤 젊은 여자나 젊은 남자가 그녀의 눈부신 자유의 길에 끼어들어 그녀의 아이를 자처하며 멋대로 자신의 어머니로 삼는다. 이번에는 누가 그녀를 어머니로 만들까? 누가 그녀의 길을 가로막고 웃으면서 말할까? 안녕, 엄마! 세상에는 절박한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 반쯤 망가진 사람들, 혼란스러운 사람들, 구린내 나는 신발과 퀴퀴하고 해진 양말을 신은 빈곤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며, 이들은 당신이 자신의 비타민을 챙겨주길 바라거나 사사건건 당신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혹은 술을 얻어 마시며 인생사를 늘어놓고, 당신을 유혹해 자기 어머니로 삼으려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닫기도 전에 당신은 그들의 어머니가 되어버렸다. (p218)

나는 시간의 평원에서 가능한 한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내키는 대로 쏘다니고 싶다. 넓디넓은 나만의 공간에서 무위하며 빈둥거릴 테다. 책임 따위는 손에서 놓아버리고 무례하게 타인을 배려하지 않은 채로 그 누구의 명령이나 부탁도 들어주지 않겠으며 호감을 사려고 노력하지도 않겠다. 온순한 하녀처럼 사근사근 행동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배척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남들 비위를 맞춘답시고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을 베풀지 않겠다. 바로 이런 이유로 청소년기가 그립다. 남들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았으니까. 지금 돌이켜보면 어찌나 자유로웠는지. 그래, 무심함이야말로 가장 큰 자유다. 최근에는 어찌나 생각이 많은지 여기서 조금만 더 많아지면 내가 끝장날 것 같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착한 일이겠지. 그러나 착하지 않을 수 있음은 얼마나 굉장한 승리인지. 아이는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착한 선물. 내가 그렇게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나? (p220)

참 어렵게도 우리의 긴 삶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우연히 일어나며 일주일 만에 내린 결정이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결정을 내리는 자아를 완벽히 통제할 수도 없다. 나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나를 도저히 상상할 수 없으면서 끝내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나를 상상하면 또 묘한 기분이 든다. 아이가 없는 삶은 아이가 있는 삶보다 한 치의 모자람 없이 멋지고 뜻밖이며 특별할 것이다. 두 형태의 삶 모두 기적적이고 끝내줄 것이다. 자연의 요구에 순응하는 삶과 반발하는 삶, 두 삶 모두 자기 나름의 아름다움과 놀라움과 어려움이 깃들어 있다. 자연에 순종하거나 맞서는 일은 똑같이 가치가 있다. 귀한 경험이다. (p234)

책은 그것을 읽은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쉰다. 책은 짓밟아서 끌 수 없다. 할머니는 수용소에서 달아났다. 살고자 달아났다. 나는 할머니가 모든 사람 속에서 살기를 원한다. 내 다리 사이에서 나온 사람 한 명 속에서만이 아니라.
나는 아이를 낳을 여유가 없다. 그럴 시간이 없다. 어머니는 자기 어머니의 삶이 가치 있었음을 증명하려고 살았다. 할머니를 위해서, 할머니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살았다. 내가 아니라 할머니를 바라보며 살았다. 나 역시 아들이나 딸이 아닌 어머니를 보고 있다. 우리는 각자 자기 어머니의 삶에 의미와 아름다움을 더하고자, 삶이라는 것을 이해하고자 우리 사랑의 방향을 과거로 돌렸다.
어머니가 되는 일은 곧 자기 어머니를 기리는 일인지도. 많은 사람이 어머니가 됨으로써 자기 어머니를 기린다. 아이를 낳음으로써 기리고, 자기 어머니가 한 일을 따라 함으로써 기린다. 자기 어머니의 발자취를 더듬고 그 삶을 기림으로써 그들은 어머니가 된다.
나 또한 어머니를 따라 하고 있다. 손주를 안겨줌으로써 자기 어머니를 기리는 사람보다 조금도 뒤지지 않게 나는 나의 방식으로 어머니를 기린다. 내가 어머니를 기리는 방식은 조금도 모자라지 않다. 나는 어머니와 같은 이유로 어머니가 한 일을 한다. 열심히 일해서 어머니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p256)

아픔을 대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그것이 기회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덜 괴로울지도 모른다. 마치 내가 선택해서 집은 것이므로 가지고 놀다 내려놓을 수도 있다는 듯이. 아픔을 사유함으로써 실재가 아닌 관념으로 분류하기. 하지만 아픔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사유가 깊은 사람이나 꾀가 많은 사람이나 매우 현명한 사람들도 아픔을 피할 수 없다. 사는 곳을 떠나도 피할 수 없으며 연달아 다른 연인을 만나도 피할 수 없다. 술을 마셔도 피할 수 없으며 감사 목록을 만들어도 피할 수 없다. 아픔을 피하고자 이런저런 일을 벌이다 멈춘 순간 아픔이 제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하지만 깨달음도 온다. 우리에게는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아픔만 주어진다고. 컵 주둥이에서 찰랑이지만 끝끝내 넘치지 않는 물처럼. (p265)

여기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이유. 내 존재의 가장 단순한 비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고자 한다. 가슴이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글쓰기의 홀로 있음이 나를 다시 찾는다. 홀로 있음의 가벼움과 유쾌함. 삶을 오롯이 느낀다.
내가 지어야 하는 고치가 글을 쓸 때 나를 감싸는 이것인지도. 그렇다면 매일 이 고치로 들어가자. 시간과 공간의 고치 속, 모든 것이 가만하고 나는 곤죽이 되며 무언가 새로운 것이 형성된다. 글을 쓰는 이곳에서 시간과 공간은 형태가 없다. 삶에는 영혼의 흠집이 나 있다.
글을 쓸 때 내가 가장 나답다. 두려움이 없는 나. 이 자아를 곁에 두고 싶다. 이 자아는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더러 다른 어떤 일에도 벌벌 떨지 않는다. 형태가 없으며 구속되지 않았다. 어릴 적에 누가 어떤 동물이 되고 싶느냐고 물으면 나는 거북이라고 답했다. 거북이는 늘 집에 있으니까? 그때도 나는 집에 있기를 좋아했다. 내가 글을 쓰며 평온히 존재할 수 있는 이 고치가 나의 집이라면, 늘 등에 집을 이고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날마다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이 고치 속에서 보내고 싶다. 이 속에서 최대한 오래 머무르며 하루를 보내고 싶다. 세상에 맞서 나를 방어하는 껍데기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이곳에는 나 말고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 이곳에는 눈물이 없다.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무런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p290)

이제부터는 내 가슴을 따르고 진정한 나로 살 테다. 여태 나 자신보다 타인을 더 믿었다. 왜 오랫동안 그래왔을까? 나 자신을 믿을 때마다 잘못된 선택을 했나? 그래, 자주 잘못된 선택을 했다. 하지만 실수할 수 있는 자유야말로 세상의 그 어느 조언보다 더 귀하지 않을까? (p297)

사람들은 이성애자 커플의 경우에만 아이가 없으면 삶이 공허하리라고 추측해. 아니, 사실 남자를 보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그가 무언가를 탈출했다고 부러워하지. 여자는 안쓰럽게 여기면서. 아이가 없는 여자는 직업이 없는 성인 남자와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경멸을 당하고 비난을 받아. 마치 그녀가 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자부심을 품을 자격이 없는 것처럼. (p336)

카드뉴스








작가 소개

지은이_실라 헤티 Sheila Heti
1976년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연기를 했으며 캐나다국립연극학교에서 극작을 공부했으나 일 년 만에 중단하고 토론토대학교에서 철학과 미술을 전공했다. 문예지 ≪빌리버≫에서 인터뷰 편집자로 활동하며 조앤 디디온, 엘레나 페란테, 아녜스 바르다를 포함한 다양한 예술가들의 인터뷰를 전담했다. 2018년에 헤티는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뉴 뱅가드”—21세기에 우리가 소설을 읽고 쓰는 방식을 만들어나가는 여성 작가 열다섯 명에 한강, 레이첼 커스크 등과 더불어 이름을 올렸다. 소설 『마더후드』는 스코샤뱅크 길러상 최종 후보였고 ≪뉴욕≫, ≪파이낸셜 타임스≫ 선정 2018년 최고의 책 목록에 올랐다. ≪뉴욕 타임스≫의 서평가 드와이트 가너는 『마더후드』를 우리 삶과 밀접하면서도 철학적이고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부르며 2018년 최고의 책으로 손꼽았다.



옮긴이_구원
UCLA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독립출판사 코호북스에서 기획을 담당하며 프리랜서 번역가 및 출판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뉴 그럽 스트리트』, 『셔기 베인』, 『어느 날 거울에 광인이 나타났다』 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캐서린 맨스필드 단편선 『차 한 잔』과 『프렐류드』를 엮고 옮겼다. 『셔기 베인』으로 제16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도서 정보



도서명: <마더후드>

- 분류: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기타 국가 소설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문학 > 기타세계문학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여성문학

- 상세 서지정보: 130*205mm / 352쪽
- 출간일: 2024년 12월 16일 (예상)
- 정가: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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