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Sagesse et la destinée by Mauricoe Polydore-Marie-Bernard Maeterlin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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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제트 르블랑 부인에게
어쩌면 당신의 작품일 수도 있는 이 책을 바칩니다. 세상에는 펜으로 쓰는 것보다 더 고귀하고 진실한 협동 작업이 있습니다. 바로 사상과 모범으로 이루어지는 합작이지요. 저로서는 이상적인 현인의 결의와 행동을 상상할 필요가 없었고, 제 마음속에서 아름답지만 어렴풋한 꿈의 윤리를 길어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저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 족했지요. 인생에서 당신의 행적을 눈으로 더듬으면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지혜 그 자체가 보여주는 움직임, 동작, 습관을 거기서 볼 수 있었으니까요.
모리스 마테를링크
옮긴이 서문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삶과 문학
모리스 마테를링크 Mauricoe Polydore-Marie-Bernard Maeterlinck, 1862~1949는 벨기에 출신으로 유일하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수필가이다.
프랑스어로 글을 쓴 그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주로 『파랑새L’Oiseau bleu』라는 동화 같은 희곡 작품을 통해서이지만, 사실 그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온실 Serres chaudes』(1889)이라는 시집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한 시인이다. 그 후 연이어 발표한 수많은 희곡 작품이 무대 연출과 주제, 테크닉 면에서 당시로선 획기적인 발상들을 선보여, ‘벨기에의 셰익스피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뛰어난 극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작품 활동 후기에는 희곡보다는 수필에 전념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명상록』의 저자)를 연상시키는 인생의 심오한 지혜를 시적인 문체에 담아 주옥같은 작품들을 내놓기도 했다.
벨기에 겐트에서 태어난 그는 예수회 학교의 엄격한 종교 교육과 운하를 둘러싼 신비로운 자연 풍광의 묘한 상충 속에서 감수성 예민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찍이 문학에 뜻을 두었으나 부모의 강권에 못 이겨 법과대학을 다닌 뒤 한동안 변호사 생활을 하던 그에게 인생의 전기가 닥친 것은, 1886년 파리를 여행하던 중 상징주의 문학의 거장인 빌리에 드 릴라당과 스테판 말라르메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오랜 세월 잠재되어 있던 문학적 재능은 그 후 『온실』이라는 우울하고도 감미로운 시집으로 싹을 틔웠고, 곧바로 『말렌 공주 La Princesse Maleine』(1889)라는 희곡을 통해 화려한 꽃을 피우기에 이른다. 당대를 주름잡던 평론가 옥타브 미르보가 이 작품을 두고 《르 피가로》 에 극찬에 가까운 평을 쓰자, 이를 계기로 단번에 프랑스 전체를 아우르는 명성이 마테를링크라는 이름을 에워싼 것이다.
부르주아적인 현실을 다룬 연극이 대세를 이루던 당시 풍토에서 신화나 전설의 오묘한 분위기 속에 영혼의 고통과 이상을 섬세하게 표현한 그의 극작품들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했다.
이후 수많은 걸작 희곡을 발표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Pelléas et Mélisande』(1892)는 1902년 클로드 드뷔시가 오페라로 작곡함으로써 마테를링크라는 이름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마테를링크는 1895년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작가인 모리스 르블랑의 여동생이면서 당대 유명 배우이기도 한 조르제트 르블랑을 만나 운명적인 연인이 되는데, 이때부터 상징주의적 극작품보다는 모랄리스트적인 가치가 돋보이는 산문에 치중한다.
이미 뛰어난 희곡 작품들로 상당한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늘 일개 촌부임을 자처하면서 고독과 은둔을 지향하는 삶의 태도를 견지했다. 이후 말년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산문 작업에는 그의 이러한 태도가 여과 없이 반영되어, 자연과의 친화 속에서 인간과 삶의 근원적인 가치를 탐색하는 과정이 심화되었다.
명료하면서 시적인 묘미가 풍부한 그의 산문은 『지혜와 운명 La Sagesse et la destinée』(1898), 『꿀벌의 삶 La Vie des abeilles』(1901), 『꽃의 지혜L’Intelligence des fleurs』(1907), 『죽음 La Mort』(1913), 『운명의 문 앞에서Avant le grand silence』(1934) 등 이전과는 또 다른 의미의 걸작들로 결실을 맺기에 이른다.
그의 문학 세계에 대한 평가를 일별하는 의미에서, 1911년 노벨문학상 수여 당시 스웨덴 학술원 사무총장의 연설 중 일부를 살펴보자.
올해의 노벨문학상을 모리스 마테를링크 씨에게 수여하면서, 스웨덴 학술원은 먼저 통상적인 문학 형태와는 너무도 다른, 그만의 독창적이고 참신한 작가적 재능에 특히 주목했음을 밝힌다. 그가 지닌 재능의 이상주의적인 특성은 실로 보기 드문 영적인 경지를 드러내고 있으며, 여기서 우러나는 신비스런 힘은 우리 내면의 비밀스러운 심금에 더없이 섬세한 울림을 준다. 아직 쉰 살이 채 되지 않은 이 비범한 인물은 자기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고집하며, 신비스럽고 심오할 뿐 아니라 대중적인 호소력까지 갖춘 경이로운 작가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영적인 경지’, ‘신비스런 힘’, ‘심오함’ 등의 평가는 마테를링크의 대표적인 희곡들은 물론 후기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산문들을 보아도 결코 과장된 수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눈에 보이는 현실을 초월해 존재하는 진실에 대한 신념을 품고 있었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현상들 너머에 또 다른 본질이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신비를 구성하는 주요 요건이다. 그런 믿음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의 상태보다 훨씬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해준다. 심오함이란 여기 이곳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어느 별천지가 아니라 지금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깊이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한다.
마테를링크는 굳이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더라도 시간과 공간에 속한 모든 존재는 ‘꿈으로 짜인 일종의 베일’을 걸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들은 그 베일 너머에 존재의 진실이 감춰져 있음을 암시하는 가운데, 언젠가 베일이 걷히는 날 우리의 참모습과 하나 되리라는 희망을 갖게 해준다.
마테를링크의 깊은 사유로 길어올린 산문들
마테를링크의 산문들은 자연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인생에 대한 신비주의적 시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경지를 보여준다. 특정 사상이나 종교, 학설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직관의 언어를 통해 영혼의 불멸성, 삶과 죽음의 문제,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지혜의 가치를 풀어낸다는 점에서 그의 산문은 파스칼을 연상시킨다. 평론가들은 또한 마테를링크의 산문 한편한편이 곧 시와 다를 바 없다는 말로 그 문학적 감수성과 통찰의 매력을 요약해왔다. 그에게 언어란 분명 시적인 언어를 의미했다. ‘감춰진 사물의 비밀(res occultae)’을 찾고자 평생을 바친 그는 자신이 구사하는 시적 언어를,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의식을 이끄는 유력한 경로로 삼았다. 체계적인 논리를 초극한 직관적 깨달음을 담아냈기에, 그는 한 편의 글에서도 모순된 언술을 피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런 점에 대한 평단의 지적을 두고, 그는 모순되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오히려 “새로운 나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현상의 이면과 존재의 내면에 대한 성찰이지 논리의 구축이나 체계화된 교설이 아니라고 보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마테를링크의 대표적인 산문 작품들을 통해 장황하지 않은 문맥의 흐름에 잠시나마 고단한 영혼을 기댈 수 있다면, 때로는 묵직한 두드림으로 때로는 은은한 암시로 삶의 발견을 건네는 마테를링크의 지혜에 어느새 마음을 열게 될 것이다.
행복을 생각하고 행복을 행동하다
『지혜와 운명』은 소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삶에 용기와 위로를 준다. 우리는 인생을 보다 깊은 시각에서 바라볼수록 우리 자신은 물론 모든 생명체에 깃든 영혼을 확인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 곧 지혜가 열린다.
지혜는 의식(지각)보다 깊은 차원에 존재하며, 그 안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내포한다. 지혜는 운명에 대한 체념을 뛰어넘는 저항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는 성자나 위인과 같은 특별한 존재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며 평범한 사람의 행복을 통해서도 충분히 터득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해, 행복 자체가 누구나 배우고 훈련받아 습득할 수 있는 무엇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비범한 인간들의 삶에서 발견되는 특별한 재능이나 미덕이 오히려 소박한 범인들의 지혜에 견주어보면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인간의 삶에서 아름답고 고귀하며 심오한 모든 것은 ‘가장 단순하고 평범한 삶’을 통해 얼마든지 추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2017년 봄, 성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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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지혜, 숙명, 정의, 행복,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할 것입니다. 지금처럼 불행이 만연한 세상에서 보기 드문 행복을 이야기하고, 불의가 판치는 가운데 정의의 이상을 거론하는 것, 무관심과 증오가 난무하는 가운데 감도 잘 오지 않는 사랑을 역설하는 것 자체가 다소 뜬금없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내면의 행복과 치유에 관심을 기울이기는커녕 삶의 고뇌와 비참함을 감내할 여유조차 박탈당한 대다수 사람들을 대변해 목소리를 높여도 시원찮을 판에 인간의 깊은 마음속을 헤집고 다닌다며 평화와 신뢰, 사랑의 동기와 감사의 이유를 찾는 것은 지극히 한가한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삶의 지혜를 논하는 철학자들에게 이따금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것은 그런 사정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비난에는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듯 그런 비난 역시 마찬가지로 타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로 양심의 가장 다급한 부름에 응할 용기가 있다면, 자기 주변의 고통부터 돌아보고 최대한 위로의 반경을 넓혀가는 것만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실험실에 틀어박힌 학자처럼 자연의 비밀을 캐내기에 골몰하기보다는, 땀 흘려 일할 공장을 하나라도 더 세운다든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아픈 이를 보살피는 일에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견 쓸모없어 보이는 몇 안 되는 사람들 덕분에 실용성으로 무장한 다수의 사람들이 무난하게 살아가는 것 또한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삶의 가장 빛나는 풍요는 무엇보다 내면의 성찰과 사색을 위해 눈앞의 요청을 우회해간 사람들의 정신으로부터 움텄습니다. 그들은 가시적인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만의 책무를 용기 있게 짊어졌지요. 세상에는 그렇게 다가올 시대의 과제를 생각하면서 지금 현재의 소명에 충실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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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이 인간의 고뇌이듯 고뇌는 인간의 질병입니다. 질병에 의사가 필요한 것처럼 고뇌에도 의사가 필요합니다. 해부학이 기형과 결함만을 식별하기 위한 학문이 아니듯 철학은 불안과 번민만을 파고드는 사유가 아닙니다. 건강한 인체를 들여다보는 해부학자처럼 철학자는 행복한 영혼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설혹 불의가 가득한 세상 한복판에 살고 있을지라도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