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어스 세팅
보석을 고정하는 물림쇠가 보이지 않게 세팅하는 기술이다. 일반적으로는 백금이나 금으로 된 물림쇠로 보석을 고정했다면 이 기술은 보석의 아름다운 존재감을 돋보이게 하도록 물림쇠가 보이지 않게 만든 고도의 세팅기술이다. ‘반 클리프 앤 아펠 Van Cleef&Arpels’이 개발한 이 기술의 정식 명칭은 ‘미스터리 세팅 Mystery setting’이라고 한다.
알카에다, 핵무기 구매
1998년, 우크라이나에서 아랍권 보도자료
[카이로 지국]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8일 자 아랍어 신문 〈알하얏트 Al-Hayat〉는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국제 테러 조직 알카에다가 1998년에 미국 등에서 사용하기 위해 슈트케이스형 핵무기를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숨겨둔 것으로 보도했다. (중략) 로이터 통신에 의하면 1991년에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소련으로부터 핵무기를 인수하였지만 1994년에 1,900발의 핵탄두를 러시아에 넘겨주기로 합의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승인했다.
_2004년 2월 9일 〈아사히신문〉
슈트케이스형 핵탄두의 현상
1997년 9월, 러시아에서는 슈트케이스형 핵탄두 132발 가운데 48발을 제외한 나머지의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러시아 전안전보장회의 서기 레베드 Lebed가 증언했다. 러시아 정부는 슈트케이스형 핵탄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만 옐친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과학자도 실체를 증언했고 미국도 러시아에는 아직도 소형 핵탄두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근래에는 빈 라덴의 무장 세력에게서 약 20발을 입수했을 것이라는 증언도 있다. 이 핵무기의 크기는 가로 60센티미터, 세로 40센티미터, 높이 20센티미터로 슈트케이스에 휴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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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근처에 사는 친구들과 공원에 자주 놀러 다닌 적이 있었다. 아마 열 살 때쯤이었을 것이다.
그 공원은 미끄럼틀도, 그네도, 정글짐도 없는 공터나 마찬가지였다. 있는 것이라고는 크고 작게 세워진 낡은 비석 따위뿐.
그렇게밖에 달리 표현할 길 없을 정도로 참으로 심심한 공원이었지만 면적만큼은 정말로 넓어서 자리를 잡고 놀 만한 곳이 여기저기에 많았다.
집에서 자전거로 한 시간 이상을 달려야 겨우 다다를 수 있는 먼 곳이었지만 당시에는 모두가 그곳에 가는 것을 좋아해서 자주 모였다. 그곳 이외에는 놀 수 있는 곳이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집은 대여섯 명이 모여서 놀기에는 좁았고, 무엇을 하더라도 어른들이 시끄럽다는 잔소리를 해대는 탓에 집에서 오래 있기에는 무리였다. 모두가 가난해서 돈이 드는 놀이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넓으면서도 마구 떠들어도 괜찮은 장소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깨진 기와 조각만이 굴러다니는 널따란 공원 같은.
공원에 대여섯이 모여 한 일이라고는 할아버지의 말동무가 되어준 것뿐이었다.
처음에는 자전거로 하는 치킨 게임이나 무너진 비석 위를 뛰어다니는 담력 테스트에 열중했지만, 할아버지를 알게 되면서 몸을 쓰는 놀이는 그만두게 되었다. 대신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그 이야기는 꼭 재미있다고 할 수 없었고, 오히려 별것 없는 시시한 이야기들뿐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모두 열심히 귀 기울이게 되었다.
시간 때우기 위해서라면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할아버지의 하찮은 이야기를 싫증도 내지 않고 들었다는 것은 이제와 생각해보더라도 참 신기한 일이다.
우리 모두가 실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분위기에 이끌렸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 공원은 그런 장소였다. 사람을 불러들여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자석 같은 힘이 작용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집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특별할 것도 없는 장소에 아이들이 그렇게 제 발로 찾아들었을 리 만무하다.
깨진 기와 조각뿐인 공터였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나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했다.
주부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거나 데이트를 하는 연인이 그늘에서 쉬는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아저씨들이 장기를 두고 반라 차림의 젊은 남자가 햇볕을 쐬며 잠을 잔다든지, 여학생들이 춤 연습을 하거나 남자아이들이 축구를 하는 풍경은 보통의 공원과 다를 바가 없었으나 그에 비해 장소가 주는 느낌은 너무나 을씨년스러웠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역시 이 공원에 있는 어떤 힘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게 틀림없었다.
*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미 거의 다 잊어버렸다. 지금 떠오르는 건 대부분이 쓸데없는 시시한 이야기였다는 느낌만이 남아있다. 아깝지는 않지만 왠지 안타까운 기분은 든다.
다만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던 날의 기억은 남아있다.
공원은 이상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려서 어떤 사람이 나타난다 해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물건을 팔러 온 장사꾼도, 이상한 주문을 외는 승려도 있고 환경조사를 명목으로 공무원이나 연구원들이 자주 찾기도 하고 이상한 기계를 들고 와서는 알 수 없는 실험을 하는 과학자도, 식물을 재배하는 시민 단체 사람들도 본 적이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으니 할아버지도 사람이 그리워서 공원에 나와 있었는지도 모른다. 집까지 따라가본 적은 없었지만 할아버지는 혼자 사는 사람인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단순히 산책을 하기 위해 공원에 나온 것만은 아니었다.
할아버지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야망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독지가였다. 개인적으로 공원에서 봉사활동을 자주 하는 듯했다. 할아버지가 하는 봉사활동이라는 것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연극’으로, 여러 장의 그림을 이용해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연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할아버지에게 작은 시련을 안겨 주었다. 넓은 공원의 한 귀퉁이에서 그림연극을 해도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그림연극이라고 하는 케케묵은 옛것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고독한 공연을 얼마나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것 같더라도, 노인 혼자서 날이면 날마다 같은 장소에 자리를 잡고 몇 장의 그림을 걸어둔 채 텅 빈 객석을 향해 읊조리는 모습은 공원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 어딘가에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런 매일이 계속되던 어느 날, 우리들 중 하나가 할아버지를 놀려주자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할아버지의 그림연극 극장의 문이 열렸다. 열 살 정도의 녀석들이 모르는 노인과 친해지는 흔한 이유일 것이다.
단지 놀려주려는 심보로 접근했던 녀석들이 언젠가부터 예의바른 관객으로 변한 이유 역시 어떤 끌림에 의한 것이 아닐까.
그림연극이란 사실 손님이 없는 게 당연할 정도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다. 게다가 할아버지에게도 사람을 끌 만한 독특한 매력이나 개성이 없었기 때문에 이상한 힘이 작용했던 게 틀림없었다. 아니면 그런 할아버지였기 때문에 우리가 말동무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들 중 그런 기특한 마음을 가진 녀석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하니 할아버지의 처지를 딱하다고 생각했을 리 없었다. 사실 할아버지를 가엾다고 생각한 적도 전혀 없었다. 그는 쓸쓸한 느낌을 주지 않았다.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공원에서 만나 몇 번 말을 주고받게 되면서 할아버지에 대해 알게 됐다. 할아버지의 직업이 교사라고 하기에 어느 학교에서 가르치느냐 물으니 지금은 정년퇴직해서 다니는 학교는 없다고 말해 주었다.
교단에서는 물러났지만 자신은 아직도 선생님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때문에 이 공원에 매일 나와 그림연극을 연다는 것이다. 그림연극은 할아버지에게 교육활동 중의 하나였다. 학생은 그다지 모이지 않았지만 괘념치 않고 독자적인 공개수업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 할아버지와 만났을 때, 우리들은 선생님과 만나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를 되돌아보면 왠지 그런 기분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결코 우리가 싫어하는 선생님은 아니었다. 이것도 역시 어떤 끌림이 작용했던 것일까.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는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단 하나의 이야기는 정확히 기억한다.
그 이야기만큼은 몇 년이 흘러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강하게 남을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이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처음부터 할아버지가 바란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랜 세월이 흘러도 이 이야기만큼은 잊지 말아달라는 소원.
할아버지는 이것이야말로 퇴임 후에도 자신이 선생 노릇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포복절도할 만큼 재밌는 이야기도 아니고 기상천외한 것도, 깔끔하게 끝나는 느낌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조금은 파란만장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누구도 즐겁게 들을 만한 이야기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했던 점이 있다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에 누구나 슬픈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누구나라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이가 대여섯이었으니 그중 적어도 한두 사람은 쓸쓸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문득 쓸쓸한 기분을 안겨주었던 그 이야기를 떠올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들려주고픈 마음이 들었겠지.
할아버지는 학생들이 대여섯 명 모이자, 그림연극 수업을 그만두었다. 우리가 열심히 들어준다면 오히려 그림에 얽매이지 않는 편이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줄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 후로 할아버지는 공원 구석으로 우리를 불러 모으고서는 부드러운 흙바닥에 앉아 울타리에 기대어 강연회를 열었다.
할아버지는 대강 이런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떤 이야기에도 한두 사람의 주인공이 있기 마련인데 물론 이 이야기도 예외는 아니다’라는.
이 이야기 역시 그렇게 시작되었다.
1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시오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하자꾸나.
시오리는 여자아이, 도호쿠 東北지방 출신으로 열아홉이 되는 해에 도쿄에 왔다. 내가 아직 십대였을 무렵,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란다. 시오리라는 사람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인생을 산 것 같다.
운이 좋지 않은 날이 많았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긍정적인 성격이어서 그다지 비관하지 않았다. 게다가 시오리에게는 꿈이 있었다. 작사가가 되려는 희망을 품고 도쿄에 온 것이다.
그래서 시오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주눅 들지 않았다. 몸과 마음에 상처가 생기더라도 내일을 꿈꾸면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고통에 둔감해지지는 않더라도, 작사에 빠져 미래의 자신을 상상하면서 스스로를 마취했다. 지금 당장 멋진 가사가 떠오르는 것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자신의 노래를 불러줄 가수를 만나게 될 빛나는 미래를 꿈꿨다. 그 모습은 어떤 때에든 아주 선명하고 깨끗한 화면으로 떠올랐다.
시오리가 작사가가 되려고 결심한 이유는 자신이 음치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음치였다. 음치였지만 노래를 매우 좋아해서 어떤 기분을 느끼면 바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려야 했다.
어린 시절의 시오리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를 싫어하는 이유가 큰 소리로 부르지 않아서라고 생각했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숙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머니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그럴지도 모르겠네, 라고 답을 들었다. 시오리를 가졌을 때 친정에서 태교로 피아노를 연주했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그렇지만 시오리의 어머니는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없었고 악보를 읽을 줄도 몰라서 근사한 화음을 연주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외가에 있던 피아노도 어머니의 언니가, 즉 시오리의 이모가 쓰던 물건이었다.
시오리는 후에 자신이 음치인 이유로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서툰 솜씨로 피아노를 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원망하며 한 소리는 아니었다.
시오리가 ‘음유시인吟遊詩人’이라는 말을 생각해낸 것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였다.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이고 있는데 음유시인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책을 잘 읽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음유시인’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문자 배열의 시각적인 느낌과 어감에 그녀는 넋을 잃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방에 처박혀 음유시인 노트를 만들고는 시가 아닌 그림을 그려보았다. 몇 장이고 계속해서 음유시인의 모습을 그리다 보니 점점 사람의 모습이 아닌 이상한 형체가 되어갔다. 시오리는 그림도 잘 그리는 편이 아니었다.
시오리는 앞으로 음유시인으로 살아갈 결심을 했다. 진로지도 시간에 자신은 음유시인이 되기 위해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선생님에게 말했다. 즉시 집으로 연락이 가서 어머니가 학교에 불려갔지만 큰 사건은 아니었다. 어머니 역시 시오리가 생각한 바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크게 혼나고 고등학교에는 진학하게 되었다.
음유시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종종 박해를 받는 일이었다.
중학생 때는 마녀사냥의 희생자 중 하나가 되기도 해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으며 이 파도가 그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고등학생이 되자 그런 취급은 받지 않았지만 노래에는 대단히 두려운 면이 있다는 것을 몇 번이고 깨달았다.
그 가운데에 정점을 찍은 사건은 시오리가 학교에서 몰래 노래를 불렀던 다음 날 학생들이 계속해서 죽어간 일이었다. 한 학생은 교통사고로, 다른 학생은 자살로, 그리고 마지막 학생은 다른 학교 남학생의 칼에 찔려 죽었다. 모두가 여학생이었다.
시오리의 노래 때문에 사건이 일어났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두려움에 떨며 죄의식에 사로잡혀 사람들 앞에서는 점차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되었다.
시오리는 그런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마녀사냥을 당한 경험에서 배운 것이 있어서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로는 음유시인이라는 것을 숨기고 살았다. 음악 시간이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어도 되도록 사양했고 그럴 수 없는 경우에는 구석에 처박혀 부끄러운 척 아주 작은 목소리로 얼버무렸다.
그렇지만 몇 번은 그만 분위기에 취해 자연스레 목소리가 터져 나와 음유시인인 것이 발각되었다. 그러자 친한 친구도, 그곳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가 아연해져서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시오리는 그런 반응을 보면서 중학교 시절 선생님의 말을 떠올렸다.
선생님은 ‘시인이란 누구든 외톨이’라고 말했다.
시오리는 시인이 따돌림을 당하는 존재라는 것이 매우 슬펐지만 그래서 계속 노래만 부르게 되는 거구나, 하고 납득했다.
*
물론 시오리가 아무리 긍정적인 성격이라도 상처를 받긴 했다. 상처 받을 일에도 괴로워하지 않게 된 것은 작사가가 되려고 결심하면서부터였다. 그 이전에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어대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괴로울 바엔 음유시인 같은 건 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후회했던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노래와 함께하는 운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펫 숍 덕분이었다. 시오리의 집에서는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우는 중이어서 전부터 그 가게를 이용해왔다.
처음에는 고양이를 위한 용품을 사기 위해 하굣길에 펫 숍에 들렀을 뿐이었다.
고양이 배변을 위한 모래나 장난감, 사료 등을 너무 많이 사서 혼자 들고 올 수 없을 때에는 배달을 부탁하기도 했다. 고양이를 너무 아끼는 나머지 가끔은 쓸데없는 물건까지 구입해서 아버지에게 크게 혼이 난 적도 있었다.
시오리의 어머니 역시 시오리와 비슷한 성향이어서 시간만 나면 차를 가지고 펫 숍으로 가서 고양이 용품을 사들이다가 남편에게 잔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시오리의 집에는 고양이 용품이 다시 내다 팔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쌓여 있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반성의 기미도 없었기 때문에 시오리도 그대로 보고 배워, 어느덧 정신을 차리면 펫 숍에 들러서 신상품을 고르고 있었다.
시오리는 이런 사람들을 보고 고양이의 노예라고 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며 펫 숍에 계속 들락거렸다. 그러는 사이, 노예는 마침내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주인은 그 가게에 있었다. 화려한 날개를 달고 사랑스런 목소리로 지저귀며 새장 안에서 사는 잉꼬였다. 태어나서 처음 잉꼬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잉꼬란 존재가 시오리에게는 살아 숨 쉬는 생물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비춰졌다.
시오리가 몇 마리의 잉꼬와 인사를 나누게 된 계기는 역시 노래였다.
그렇지만 시오리가 먼저 나서서 노래를 부른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혼자서 펫 숍에 들렀기 때문에 주변에 친구나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그런 엄청난 짓을 할 순 없었다.
잉꼬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은 있지만 가게 안의 음악이나 사람들의 소리에 섞여서 제대로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문득, 잉꼬들이 단순히 울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잉꼬의 울음소리는 사실 노랫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때부터 시오리의 가슴은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잉꼬의 울음소리가 노래였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것은 정말로 우연한 기회에, 전혀 모르는 사람을 통해서였다.
어느 날 시오리가 펫 숍에 들러서 고양이용 방울 소리를 들으며 상처 받은 음유시인의 마음을 치유 중이었다. 순간 작은 새들이 있던 새장의 쪽에서 여자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노래해줘! 조지. 부탁이니 제발! 나를 위해 노래를 들려줘!”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어머니와 동년배로 보이는 여자가 알프스 산악 지방풍의 옷차림새를 하고 새장 안의 잉꼬에게 필사적으로 소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자, 조지. 노래 불러봐! 제발 부탁이니 나를 위해 노래를 더 불러줘!”
여자는 솟아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한 목소리로 잉꼬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여자가 새장을 잡고 흔들려고 하자 계산대의 직원이 급히 달려와 여자를 말리기 시작했다.
“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왜 이러세요!”
알프스 옷차림새의 여자는 직원의 만류에도 고집스럽게 잉꼬를 향해 노래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래, 조지! 나를 위해 계속해서 언제까지고 노래를 불러줘!”
건물 경비원이 달려와 여자의 두 팔을 잡아 가게 밖으로 끌어낼 때까지 여자의 애절한 부탁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 부탁의 목소리는 마치 노랫소리처럼 간절하게 울리며 펫 숍을 콘서트 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시오리는 다른 세계와 단절된 것처럼 혼자 멍하니 서 있었다. 손님과 점원들이 오가고 물건도 넘쳐나는 정신없는 가게 안에서 완전히 진공 상태에 에워싸였다.
순간 작게 잉꼬의 가느다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시오리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져 자신도 모르게 그만 조지! 하고 부르고 말았다.
시오리는 작은 새들이 갇혀 있는 새장으로 다가가 잉꼬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그리고 잉꼬의 노랫소리에 이끌려 함께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가게 안의 사람들은 친구들의 반응처럼 유쾌하지 않은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쇠창살 안의 잉꼬들의 반응은 달랐다.
잉꼬들은 시오리가 자신들의 노래를 따라 부른 것에 신이라도 났는지 그때까지 노래를 부르지 않고 있던 잉꼬들까지도 일제히 소리를 모아 갑자기 아우성치는 것이었다. 잉꼬들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로 시끄럽게 노래를 불러댔다. 시오리는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며 눈치를 보면서도 잉꼬를 살펴보았다. 그들은 모두 시오리에게 뭔가 들려주고 싶은 것처럼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소리 높여 지저귀고 있었다.
시오리는 잉꼬들이 자신을 반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다 함께 소리 맞춰 노래를 불러주는 건 환영의 뜻을 담은 합창이라고 해석했다. 잉꼬들의 소리는 그녀의 귀에 이렇게 들렸다.
“시오리! 한번 더 불러줘. 우리들을 위해 계속 노래를 불러줘!”
시오리는 어쩔 줄을 모를 정도로 기뻤다. 당연했다. 이제까지 자신의 노랫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격렬한 감정에 휩싸여 시오리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리고 말았다.
“미안해. 내 노래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더는 노래를 불러줄 수 없어. 미안해. 그래도 다시 올게. 너희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올 거야. 노래는 불러 줄 수 없지만……. 노래를 부르면 나도 아까 그 여자처럼 끌려 나가 너희들을 만날 수 없게 될 거야. 그렇지만 혹시 주변에 사람들이 없으면 작은 목소리로 노래 부를 수 있을 지도 몰라. 그러니까 오늘은 용서해줘. 그리고 정말 고마워. 칭찬해줘서 굉장히 기뻤어.”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점원이 아무리 VIP 고객이어도 그렇게 떠드는 것은 안 된다는 눈초리를 보내왔다. 시오리는 점원의 시선을 느끼며 잉꼬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이 일이 있은 후로 시오리에게 펫 숍은 고양이 용품을 사기 위한 곳만이 아니게 되었다.
고양이 용품은 사실 핑계였고 잉꼬와 속닥속닥 수다를 떠는 일이 시오리의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잉꼬들의 환영 노래는 노래와 함께 살아가고자 했던 그녀에게 커다란 위안이었다. 그렇기에 시오리가 부모에게 잉꼬를 키우자고 졸라대기 시작한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자 난색을 표한 것은 어머니였다. 고양이와 새를 함께 키우는 것은 곤란하다는 의견이었다.
시오리는 자신의 방에서 잉꼬를 키우겠다고 우겼다. 하지만 네가 없을 때는 누가 잉꼬를 보살피겠냐는 어머니의 반격에 시오리는 할 말을 잃었다. 준비 부족의 결과였다.
어머니에게 허락을 받지 못한 것은 타격이 컸다. 아버지 역시 어머니와 같은 이유로 반대했다.
시오리는 어머니의 말대로 고양이에게 언제 공격당할지도 모르는 불안한 환경에서 잉꼬를 키울 바에야 차라리 펫 숍에서 많은 친구들과 살 수 있게 놓아두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오리는 한 번 결정된 결과에 대해서는 납득하고 그 편이 낫다고 여겨버리는 성격이었다.
잉꼬에게도 되도록 오랫동안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좋을 거고, 만일 누군가 잉꼬를 키우려 한다면 그곳에 있던 잉꼬들을 모두 같이 데려오는 것이 잉꼬들에게 좋은 환경이지 않을까 싶었다.
시오리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자신만이 외톨이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자 밥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는 방에 틀어박혀 훌쩍훌쩍 울었다.
2
시오리가 고집 센 성격을 갖게 된 데에는 여동생의 역할이 컸다.
물론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시오리의 마음은 긴 시간을 거쳐 서서히 단련되어, 물러지지 않는 견고함을 갖춰갔다.
재본 적도 없고 다른 사람과 비교한 적도 없으니 시오리의 마음이 얼마나 단단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울지 않은 날이 없었던 초등학생 때에 비하면 고등학생이 된 시오리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고 누구라도 인정할 정도였다. 물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울었지만.
시오리가 어려서부터 매일 울기만 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여동생인 노조미였다.
노조미는 언니에게 양보라는 것이 없었다. 생각한 것을 가차 없이 말하는 신랄하기 그지없는 동생이었다.
한 살 터울의 동생이어서 그런지 노조미가 언니를 윗사람으로 대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오히려 시오리가 동생을 우러러보며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렸을 적부터 늘 그런 관계의 자매였다. 어떤 경우라도 바뀌는 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날도 노조미가 시오리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일은 당연히 없었다.
“왜 갑자기 잉꼬를 키우겠다고 설치는 거야?”
동생이 이렇게 질책하자 시오리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시오리가 아는 사람들 중에 가장 경계하며 할 말을 가렸어야 하는 대상이었음에도 펫 숍에서의 일을 전부 이야기해버렸다. 울다가 지쳐버린 상태여서 그만 깜빡한 것이다.
“어째서 잉꼬가 시오리, 네가 노래하는 걸 환영해준다고 생각한 거야?”
펫 숍에서의 일을 전부 들은 노조미가 이렇게 묻자 시오리는 잉꼬가 일제히 노래를 불러주었다고 답변했다.
“어떻게 울었는데?”
노조미의 질문에 시오리는 잉꼬들의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 꺄꺄, 하고 반가워하던 잉꼬들의 노랫소리를 따라 해보았다.
“그런 소리를? 뭐랄까, 굉장히 듣기 거북했겠어. 모두가 같이 그렇게 울었다고? 시오리, 그건 환영하는 소리가 아닌 거 같은데……. 오히려 반대 아냐? 그만둬, 하고 노래 좀 부르지 말라고 부탁하는 걸로 들려.”
동생이 단호하게 판정을 내리자 시오리는 바로 항변했다. 자신이 흉내 내는 데에 서툴러서 그렇게 들린 것이라고.
그리고 시오리는 다시 잉꼬가 되었다. 꺄꺄, 하고 아까보다 더 큰 소리를 내기도 하고 목소리를 고쳐 소리를 질렀다.
“시오리, 그만. 됐어. 몇 번 듣더라도 똑같아. 귀만 아프지, 듣기 싫은 소리일 뿐이야. 역시 언제나 그랬듯 착각한 거야. 사실은 잉꼬들이 싫어서 그랬던 건데 넌 기뻐서 그렇다고 생각하다니. 시오리, 또 그러는 거야? 좋지 않다고 했잖아.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는 거, 이젠 좀 고칠 때도 됐을 텐데…….”
시오리는 또 울고 싶어졌지만 이번에는 잘 견뎌냈다.
울상을 짓다가 고개 숙인 언니의 모습에 노조미는 웃음을 참고 가늘게 눈을 뜬 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노조미는 양보할 생각으로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은 아니었다. 노조미는 좋은 기회라도 잡은 것처럼 언니를 채근하기 시작했다.
“시오리, 그게 옳다고 생각해? 말 못하는 동물을 상대로 제멋대로 해석을 해버리는 건 정말 최악이야. 게다가 시오리는 잉꼬에 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잖아. 그런 사람이 어떻게 잉꼬의 울음소리를 이해할 수 있단 말이야? 자기가 편할 대로 해석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지. 시오리가 멋대로 판단한 결과니까 본인은 원하는 대로여서 편하겠지만 잉꼬들 입장은 뭐가 돼? 뭐, 난 이제 그 펫 숍에는 못 갈 것 같네. 시오리가 너무나 못된 짓을 저질렀으니까. 잉꼬가 환영한다고 제멋대로 생각해서 말을 걸고 거기에 시오리의 노래까지 들려주다니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아.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다고. 이렇게까지 주변에 피해를 주는 경우도 없을 거야. 동생으로서 창피해 참을 수가 없다고.”
시오리는 젖은 눈으로 동생을 바라보다가, 잉꼬의 행동을 제멋대로 해석한 건 반성해야겠지만 결코 잉꼬에게 뭔가를 강요하지도 않았고 노래를 부른 것도 겨우 세 번밖에 되지 않았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시오리는 잉꼬를 기를 작정이었잖아. 키우기 시작했다면 십중팔구는 뭔가를 무리해서 강요했겠지. 우리 고양이들을 봐도 알 수 있잖아. 매번 쓸데없는 물건을 잔뜩 사들일 테고 그걸 다 새장에 처박아둬서 새들이 엄청 힘들어할걸?”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단지 새들을 매일 보면서 노랫소리를 듣고 마음의 위안을 받고 싶을 뿐이었다. 그것도 안 되느냐고 동생에게 반문했다.
“어떨 것 같아? 시오리. 잘 생각해봐. 잉꼬를 키우고 싶다는 말을 하기 전에 아빠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이건 적잖이 심술궂은 말이었다. 시오리와 노조미의 아버지는 난도호쿠 南東北 지방 일대의 닭꼬치 체인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꼬치 가게를 하는 사람은 새를 키우면 안 되나, 뭐. 시오리는 작아질 대로 작아진 목소리로 가냘프게 반문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처참했다.
“안 될 건 없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시 말해 시오리의 마음보를 말하는 거야. 수천 수백 마리의 닭을 잡아 죽여서 먹고사는 우리가 한쪽에서는 사랑스런 작은 새에게 위안을 받고 싶다니 미친 거 아냐? 제 편할 대로 새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