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협회 소속이던 시절의 일이다.
차오라는 남자와 알고 지낸 적이 있었다. 차오는 처음 인사를 나누는 사람이 이름에 대해 뭐라고 말을 꺼내기 전에 고울 차(瑳) 자에 깨달을 오(悟) 자를 쓴다고 선수를 치곤 했다. 나이는 삼십대 후반 내지는 사십대 초반이었고 체구는 날씬했다. 넓은 미간에서 까맣고 동그란 눈이 반짝였으며, 아웃렛에서 산 감색 양복을 새로 장만한 피부라도 된 듯 항상 입고 다녔다.
당시 차오는 그리 유명한 사업가는 아니었다. 그는 버스 종점에서 한 정거장 전, 자동차 정비센터와 상추를 키우는 텃밭 사이에 위치한 3층 건물의 1층에 1인 돈까스 전문점 체인 본부를 차려놓고 가맹점을 유치하고자 분투하고 있었다. 차오의 설명에 따르면 1인 돈까스 전문점이란 말 그대로 혼자서 조리와 접객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작은 가게로, 손님도 세 명 이상은 받을 수 없었으며, 건물과 공간의 빈틈을 공략하는 혁신적인 아이템이었다.
차오가 가맹점을 확장하기 위해 정확히 어떤 노력을 하는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그는 목이 마르면 가끔 2층에 있는 내 사무실로 찾아왔고, 우리는 화장품 판매점 간판을 떼지 않은 대폿집에서 술을 마셨다. 간혹 ‘중요한 투자자’나 ‘비전을 제시해주는 사람’ 내지는 ‘천금처럼 믿을 수 있는 형님’을 데려오기도 했는데, 한 번 본 얼굴과 다시 마주친 기억은 없었다. 차오는 말주변이 좋았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금세 친구처럼 어울렸다. 흥이 오르면 대폿집에 있는 손님들의 술값을 전부 계산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진짜로 성공한 사업가처럼 보였다. 나도 기분이 좋아지면 차오에게 내가 맡았던 일들을 슬쩍 흘리곤 했다.
“그러니까, 상수도 공사장에 나타나서 현장소장을 납치한 드래곤을 잡으러 다녔다?”
“요약하면 그런 거지. 요약하면.”
차오가 당연히 더 사연이 있는 거 아니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물론 더 있었지만 그 사연은 그가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는 이야기와는 꽤 다를 터였다. 상수도 공사장에 진짜로 드래곤이 출현한 것도 아니었고, 관리자 또한 그저 우연히 거기 있었다는 이유로 애꿎게 끌려간 게 아니었다. 하지만 협회는 비밀 유지에 대해서는 엄격했다.
“말하기 싫으면 말 안 해도 되는데, 무슨 판타지 소설 같네. 그런 소설이나 영화 많지 않아? 나는 책도 안 읽고 영화도 잘 안 봐서 모르지만.”
나는 적극적으로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담당했던 일들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범한 사연이었다. 다만 그걸 타인에게 말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간추리다 보면 몇몇 사건이 다소 뜬금없게 들리는 경우가 생길 뿐이었다. 벽에 얼굴이 나타난다든가, 푸들이 홍수를 예언한다든가, 떨어져 살던 세쌍둥이가 한날한시에 앓아누웠다가 동시에 사망한다든가. 하지만 실제 밝혀지는 진상은 소설처럼 정교하지도, 경천동지하게 상식을 일탈하지도 않았다. 내가 일하는 세계에서 이상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 바깥의 세계가 훨씬 기묘하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모든 회사가 경력직을 채용하길 원하는 현상이 그랬다. 모두가 경력직을 원한다면 신입은 언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걸까?
“듣다 보니 생각이 나는데, 나도 어릴 때 이상한 일을 겪은 적이 있어.” 차오가 말했다. 대폿집 미닫이문이 열리면서 이미 다른 곳에서 한잔 걸치고 온 사람들이 서늘한 바람을 몰고 들어와서는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처음 하는 얘긴데. 음, 지금도 사실 반은 꿈이라고 생각하긴 해.”
차오가 한 지방도시의 이름을 대면서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처음 듣는 곳이라고 했다.
“고향이 거기야.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거기서 살았어.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고. 그러다 이사를 가게 됐어. 부모님은 반 친구들에게 어디로 이사 가는지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지. 근데 그럼 뻔한 거잖아. 애들이 더 잘 알지, 그런 건. 우리 집은 망했던 거야. 야반도주를 해야 했던 거지.
하지만 애들은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해. 그러니까 애지. 어른도 그렇긴 하지만. 반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는데, 어떻게든 그 친구한테는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이사 전날 밤 만나기로 했지. 집에 뭐라고 뻥을 쳤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빠져나왔어. 그 친구도 나왔고. 지금도 가끔 생각하는 게, 그때 내가 주소를 그 친구에게 알려주지만 않았어도 빚쟁이들이 우릴 그렇게 빨리 찾지는 못했을 거야. 진짜로 무서운 사람들이라서 잡히는 건 시간문제긴 했지만.
오래전이라 기억이 많진 않아. 봄치고는 쌀쌀했고, 보름은 아닌데 달이 밝았어. 친구가 집에 돌아간 뒤에 하천가에 철버덕 앉아서 이제 여기도 다시 못 보는구나, 뭐 그랬어. 동네 한가운데를 흐르던 복개 하천이 있었는데, 하천 건너편에는 조그만 숲이 있었고, 그 숲에 난 길을 따라가면 야트막한 산이 나왔어. 연립주택 단지에서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던 것도 생각나네. 왠지 그런 불빛을 보면 이유도 없이 서럽지. 내가 앉은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복개공사를 할 때 같이 세운 다리가 있었는데 공사가 다 마무리되지 않아서 아직 난간이 서 있지 않았어.
난간이 있었으면 그 광경을 못 봤겠지.
더 늦었다가는 혼나겠다 싶어서 일어서는데 다리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였어. 처음에는 그림자만 보였지. 잘 보니 사람이랑 동물이었어. 동물은 고양이치고는 너무 크고, 개라고 생각해봐도 너무 컸어. 게다가 그렇게 등의 곡선이 부드럽고, 꼬리가 굵고 긴 개는 없지.
순간 머릿속에서 동물 이름 하나가 맴도는데 입 밖으로는 안 나오는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보던 광경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네. 동네 다리를 표범이 건너고 있고, 그 표범을 사람이 데리고 간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차오가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방금 도착한 손님들은 정치 토론을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 역시 자기 얘기를 하느라 바빠 아무도 우리 대화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주인이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왔고, 우리는 한 잔씩 나눠 마셨다.
차오가 계속 말했다.
“나는 얼이 빠져서 그걸 빤히 보고 있었어. 소리 같은 건 칠 생각도 못 했지. 표범 옆에 있는 사람은 그냥 걷고 있었어. 목줄도 안 잡고. 둘 다 천천히, 산책하듯, 어슬렁어슬렁, 달빛을 받으면서 걸었지. 꼭 제집 마당이나 정원이나, 그런 데를 돌아다니는 것처럼.
그림자가 다리 끝으로 왔을 때 가로등 불빛 아래 동물의 몸 전체가 보였어. 표범이 맞았어. 다리가 생각보다 훨씬 짧고 뭉툭해서 놀랐어. 머릿속에서 표범과 치타를 혼동하고 있던 거였겠지. 배가 하얬고, 몸에 난 털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게 멀리서도 손에 잡힐 듯 보였어. 표범 옆에 서 있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았어. 가로등 불빛 바깥에 서 있었거든. 여자일 거라는 생각은 들었는데, 아마 몸매가 여자 같았거나 걸음걸이가 그랬거나, 둘 중 하나 때문이었을 거야.
다리를 건너면 길이 두 갈래로 갈라졌어. 하나는 주택가로, 다른 하나는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었지. 표범 주인은, 표범을 데리고 다니니 주인이겠지, 아무튼 어느 길로 갈지 고민하는 것 같았어. 그러니까 다리 끝에 잠깐 서 있었겠지. 그때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 사람이 날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묻기라도 하는 것처럼. 별안간 정신이 번쩍 들었어. 뒤도 안 돌아보고 전속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지. 집에 도착했을 때는 땀범벅이었어. 부모님께는 말 못 했어. 애초에 부모님을 속이고 나간 거니까. 우리 가족은 다음 날 새벽에 떠났어. 나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지.
그 뒤는 뭐…… 그 일은 잊고 살았어. 아버지는 재기하기 위해 노력하셨지만 결국 잘되지 않았고, 세상을 원망하면서 돌아가셨어.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남는 것 말고는 다른 걸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한 명이 누워도 좁은 방에 두 명이 같이 살았지. 그때 처음으로 틈새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나는 세상의 틈새에 있다. 여기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래서 안전하다. 여기서 나는 세상으로 다시 나갈 준비를 하는 거다. 1인 돈까스라는 게 나한테는 그런 의미도 있는 거야. 세상의 풍랑에서 안전하다는 느낌. 자기 세계를 가질 수 있다는 느낌.”
차오가 말을 마쳤다. 우리는 각자 한 잔씩 더 마셨다. 정치 토론을 하던 테이블에서 한 남자가 국민이 깨어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내가 말했다. “체인 가입은 안 해.”
“눈치가 빠른데. 빨라.” 차오가 웃었다. “아무튼 이게 전부야.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을 때는 엄청 별난 경험 같았는데 입 밖에 내고 나니 그렇게 희한한 일은 또 아닌 것 같네. 아무리 이상해도 상수도에 나타난 드래곤을 당하겠어?”
“디오니소스가 표범을 타고 다녔어.”
“그게 누구야?”
“이걸 만드신 분이지.” 나는 소주병을 가리켰다. “오래전에, 디오니소스를 믿는 사람들은 축제 때마다 가면을 쓰고 술에 취해서는 사람이나 짐승을 산 채로 잡아먹었어.”
“오.” 차오가 말했다. “그 표범도 누구를 산 채로 먹으러 가던 길이었던 건가?”
“그럴지도. 그나저나 그 친구 말이야.”
“무슨 친구?”
“주소를 줬다는 친구. 남자였어, 여자였어?”
“이 사람 보게. 그렇게 안 봤는데, 예리하네? 여자였어, 여자. 하지만 걔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결혼을 안 한 건 아냐. 일단 사업이 성공을 해야지.”
“그런 다음 첫사랑을 찾아가시겠다?”
“야, 당신 진짜 그런 말 하는 사람으로 안 봤는데.”
차오가 웃었다.
몇 달 뒤 차오는 갑자기 체인 본부를 닫고 사라졌다. 억만금처럼 믿을 수 있는 형님을 만났다고 떠들고 다닌 지 얼마 안 돼 일어난 일이었다. 본부가 있던 자리에는 휴대폰 대리점이 들어섰다. 차오는 나를 포함하여 주변 누구에게도 자기가 떠난다는 걸 알리지 않았다. 조금 서운한 건 사실이었지만 누구에게나 나름의 사정은 있게 마련이다. 도시의 사람들은 도시의 혈관을 따라 흐른다. 한자리에 오래 머무는 일은 드물다.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사랑하고, 싸우고, 길게 소진되거나 빨리 낭비된다. 그러니 무슨 이유로 어디로 가든, 그래서 행복할 수만 있다면 인사 정도 빠뜨리는 거야 상관없지 않겠는가.
차오를 다시 만난 건 은행에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은행에 공과금을 내러 갔을 때 본 TV에서였다. 차오는 경제 전문 케이블 방송에 나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양복을 입고 머리는 뒤로 깨끗이 넘긴 채 앉아 사회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다. 볼륨을 낮게 조정해놓아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화면 밑에 ‘1인 식당의 신화, 돈까스에 이어 우동으로?’라는 자막이 붙어 있었다.
나는 인터넷으로 차오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차오의 사업체가 어디어디의 투자를 받아 여기저기에 진출하고 있다는 기사들을 읽던 중 차오가 여성 잡지와 가진 인터뷰를 발견했다. 인터뷰 사진 속에서 차오는 베이지색 니트 위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회색 캐시미어 코트를 걸치고 있었고, 방금 막 강을 헤엄쳐 온 사람처럼 몸 전체에서 피로와 열정과 성취감을 동시에 내뿜고 있었다.
인터뷰에서 차오는 1인 식당의 의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핵심은 틈새입니다. 작고 아늑한, 자기 몸 하나만은 확실히 반길 것 같은 공간. 자기 틈새를 찾으면 아무리 험한 세상에서도 숨을 곳이 있는 겁니다. 개념으로서의 틈새가 아니라 실제적인 틈새요. 창업 비용을 최소화하고 임대료와 인건비 역시 최소한으로 지출하는 동시에 안정적인 이윤을 낼 수 있는 방식을 찾는 거죠. 그렇다고 완제품을 데워서 손님들께 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음식이 만들어지는 곳은 주방이어야 하니까요. 그런 점들을 감안해서 찾아낸 최적의 공간이 그 넓이인 겁니다. 1인 식당은 혼자서 조용히 돈까스와 우동을 먹는 곳일 뿐 아니라 혼자서 가게를 책임질 수 있는 곳이라는 뜻도 있는 겁니다.”
그 대목을 제외하면 인터뷰의 비중은 젊고 매력적인 사업가가 어째서 지금까지 독신으로 지내고 있는가에 대폭 할애되어 있었지만, 어쨌거나 나는 꼼꼼히 그 인터뷰를 읽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는 협회의 신조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시는 그 외에 정신을 집중할 만한 일이 달리 없어서였다. 몸이 파랗게 빛나는 사이비교단 교주 건을 해결한 뒤로는 일이 들어오질 않았고, 교단 사람들도 내게 단단히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잠시 숨죽여 지낼 필요도 있었다. 얼마 뒤 나는 피리를 불어서 아파트 단지의 쥐 떼를 처리해준다는 빨간 구두의 사내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차오에 대한 생각은 자연스레 저편으로 밀려났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하던 어느 겨울밤에 처음 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만이야.”
차오가 말했다. 차오의 목소리 뒤로 누가 마이크에 대고 연설을 하듯 웅웅대는 말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나는 TV에서 차오를 본 적 있다고 말했고, 차오는 갑자기 연락도 없이 떠나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고, 그런 다음 우리는 잠시 어색하게 침묵했다.
“저기.” 차오가 말했다. “네 이야기 들었어. 투자자 중 한 분이 널 알더라. 예전에 네가 자기 일을 좀 도와준 적 있다고. 뭐랬더라…… 노래 부르는 곰이 덫에 걸려 있는 걸 빼줬다던가 그러던데, 그것도 역시 요약이겠지?”
“요약이지.”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수화기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저기, 만약에, 내가 너한테 이상한 일을 들고 가서 상담을 하면…… 예전에 했던 그 표범 얘기 기억해?”
“그럼.”
“요즘 가끔 그 꿈을 꿔. 표범과 여자가 다리 위에 서 있는 꿈인데, 여자가 나한테 묻거든. 자기가 어느 길로 가야 하냐고. 그런데 표범은 숲을 좋아하고, 인간은 집을 좋아할 거잖아. 뭐라고 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꿈에서 깨는데, 음…… 그러니까, 꿈이 나한테 넘어온다고 해야 하나. 아, 잠깐.”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마치 손으로 송화기 부분을 막은 것처럼. 그제야 나는 차오가 눈치를 보면서 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시 뒤 차오가 손을 떼고 말했다.
“아무튼 조만간 얘기 좀 하자고. 우리 자주 가던 대폿집에서. 어때?”
대폿집은 한참 전에 사라지고 없었지만 나는 좋다고 했다. 차오는 나중에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창밖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차오에게서는 그 뒤로 연락이 없었다. 내 전화기에 떴던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자 없는 번호라는 안내음성이 나왔다.
나는 차오가 고향을 떠난 것으로 짐작되는 시기에 그 도시에서 표범과 관련된 뉴스가 있는지 검색해보았다. 인터넷으로는 신통한 결과가 나오질 않았고, 결국 도서관에 가서 지역신문을 직접 찾아봐야 했다. 표범이 여자 조련사와 서커스단에서 도망쳤다거나, 동물원을 탈출한 표범이 산에 숨어 살다 민가로 내려온 적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몇 년치 신문을 훑어보았지만 그런 뉴스는 없었다. 그러던 중 일가족과 동반자살을 꾀하던 가장이 집에 불을 질렀는데 그게 산불로 번졌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기사에 따르면 산불은 산의 절반을 태운 다음 진화되었고, 다행히 어머니와 아들은 대피했지만 아버지는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모자의 이름은 실려 있지 않았는데, 워낙 오래전 일이라 이름을 알아내려면 따로 수고를 들여야 할 것 같았지만 꼭 그래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듬해 봄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천천히, 그러다 점점 빨리 사라지기 시작했다.
“조사팀을 꾸릴 예정이야.”
회색 양복을 입은 뚱뚱한 총괄 매니저가 사무실로 찾아와 말
했다.
“내일 아침까지 협회 회의실로 와.”
나는 분명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급한 일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면서 달력을 뒤졌다. 달력은 방금 설거지한 접시처럼 깨끗했다.
“계속 꾸물대고 앉아 있으면 그 달력에 앞으로도 영원히 뭘 적을 일이 없게 해줄 수도 있어.” 총괄 매니저가 말했다.
“또 이런 식으로 재능기부를 하라시면 곤란하죠. 열정페이 모르십니까?” 내가 항의했다. “협회란 게 뭡니까. 회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게 목적 아닙니까. 툭하면 이렇게 사람을 막 불러대는 건 착취란 말입니다. 저도 먹고살아야죠.”
나는 이번에야말로 이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겠다고 마음먹고 매니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매니저가 단춧구멍만 한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이 일이 재능기부나 열정페이가 아니라 공공봉사라고 되뇌면서 협회 본부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겨울에 연탄을 나르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오랜만에 동료들을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각자 담당했던 사건에 대해 눈치볼 것 없이 편하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중절모를 쓴 동료가 사람들을 모아놓고는 토끼 인형이 저지른 연쇄살인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떠들고 있었고, 내 앞에 앉은 친구는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난 신생아를 붙잡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던 사연을 늘어놓았다. 그 친구가 날개를 떼어낼 목적으로 특별 제작한 인두를 마련하던 과정을 한창 얘기하는데 본부장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본부장은 잔뜩 폼을 잡은 채 회의실에 마련된 화이트보드에 이런저런 내용을 적어가며 열변을 토했지만, 사실상 그가 하는 이야기는 나 역시 알고 있는 것, 즉 신문에 짧게 보도된 것과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를 이리저리 엮은 횡설수설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평균 통계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경찰과 협회가 주목하기 시작한 건 약 한 달 전이었다. 그러니 실종 사건은 어쩌면 그 전부터 일어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물론 사람들은 늘 이유 없이, 아니면 지나치게 많은 이유를 품고 사라진다. 하지만 이렇게 연쇄적으로, 그리고 이런 식으로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 적은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 시체도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도 오지 않았으며 장기밀매나 인신매매 조직이 활발히 활동하는 징후도 감지되지 않았다. 그들은 회사에 갔다가, 학교에 갔다가, 일터에 나갔다가,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은행에서 돈을 찾고 돌아오다가 자취를 감췄다.
실종자들은 고등학생, 대학생, 가정주부, 웹디자이너, 뮤지션, 화가, 사회적 기업 경영자, 은퇴한 공무원, 자영업자, 유기농 농부 등으로 직업도 나이도 제각각이었으며, 실종자 사이에 유의미한 연관성도 없었다. 실종신고가 들어온 지역을 지도 위에 모두 점으로 찍어 살펴보았지만 거기서도 별다른 암시나 규칙을 찾아내지 못했다. 수사팀의 누군가가 집 거실에 누워 있다가 세 살짜리 딸이 종이에 낙서하는 모습을 보던 중 번쩍 떠오르는 게 있어 점을 이리저리 연결하고 보니 버섯 모양이 나오긴 했는데 아무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보고 뭘 하라는 겁니까?” 협회원 하나가 말했다.
“담당 지역을 검토하는 게 여러분이 할 일이다.” 본부장이 말했다. “실종 사건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해당 지역 실종자들의 인적사항을 경찰에서 제공해줄 거다. 여러분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해당 지역을 수색하면서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점들을 발견하면 된다.”
“그러니까 뭘 수색하고 뭘 발견하면 되는 거냐니까요?” 다른 협회원이 말했다.
“우리 본부장님께서 그걸 발견하는 게 우리 할 일이라고 하시잖냐. 머리 좀 쓰고 사세요.” 또 다른 협회원이 말했다.
“수맥이라도 찾아올까요?” 중절모를 쓴 협회원이 묻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본부장이 화이트보드를 손바닥으로 팡 쳤다.
“이 자리에서 너희 면허증 다 걷어 갈까?”
우리는 조용해졌고, 잠시 뒤 각자의 사무실이 위치한 지역을 중심으로 담당 구역을 배정받았다. 내 구역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넓지도 좁지도 않았다. 신생아의 날개를 인두로 자른 협회원은 선거구 배정을 잘못 받은 후보자처럼 도대체 혼자서 이 넓은 지역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며 본부장에게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 다들 잘 알겠지만.”
본부장이 말했다.
나는 다음 날부터 담당 구역을 돌아다녔다. 사무실이 밀집한 동네와 주부들이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아파트 단지와 매끄러운 바닥 위에서 카트와 카트가 엇갈리는 마트와 눅눅한 냄새가 나는 지하보도를 걷는 동안 해당 지역 실종자들에 대한 자료를 읽었다. 남중생의 부모는 아이가 특목고 진학 때문에 힘들어하더라고 했지만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까지는 몰랐다. 회사원의 남편은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의심했지만 불륜 상대가 여자인 줄은 몰랐다. 여고생의 급우들은 자기 친구가 교감 선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눈치도 못 채고 있었다. 우유 대리점 점장은 재고를 떠넘기려는 본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준비하던 중 협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대생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주부가 사라지기 전날 시어머니는 또다시 혼수가 신통찮고 사돈댁 집안이 격 떨어진다고 불평했다.
어찌 보면 모두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을 만한 동기로는 충분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 정말 사소한 이유로도 사람들은 자살을 하고 타인을 칼로 찌른다. 하지만 다른 길이 있을 수도 있었다. 남중생의 부모는 만약 자기들에게 말을 했으면 특목고를 강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왕따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을 거라고 했다. 회사원의 남편은 만약 아내가 누구와 사귀는지 솔직히 털어놓았다면 별말 없이 이혼해줬을 거라고 했다. 여고생의 급우들은 자기들이 사정을 알았다면 교감을 쫓아내기 위해 서명운동을 했을 거라고 했다. 여대생을 괴롭히는 데 앞장섰던 커뮤니티 운영자는 자기에게 따로 진심 어린 사과 메시지만 보냈어도 따돌림을 멈췄을 거라며, 처음 쓴 사과문에는 변명과 자기합리화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대리점 점장의 아내는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자기한테 말만 했어도 방송국에 제보하라고 권했을 거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내가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라며 더 이상의 진술을 거부했다. 주부의 남편은 어째서 그동안 그런 얘길 자기에게 하지 않았느냐고 하다가 감정에 북받쳐 울었다.
물론 말로만 그러는 것일 수도 있었다. 대개 최선의 해결책은 늦게, 보통은 그 해결책이 소용없게 되는 시점이 되어서야 머리에 떠오르는 법이다.
실종자들은 냉장고 바깥에 내놓은 드라이아이스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마치 길을 걷던 중 문득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그대로 자기에게 괄호를 쳐버린 것처럼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 보고서를 읽다가 고개를 들면 내 눈앞에서는 사람들이 바삐 거리를 지나갔고, 공원에서 자전거를 탔고, 개와 산책을 했으며, 맛있는 음식에 기뻐했고, 아이들과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이 사라져도 세상은 그대로였다. 그럴 때는 세상과 인간이 분리되어, 마치 수조에서 헤엄치는 두 마리 커다란 물고기처럼 서로에게 무심한 채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었다. 예전 사건에서 도움을 준 사람들과 접촉했고 밑바닥에서 도는 소문이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아무 성과도 없었다.
사흘 뒤 회의실에서 다시 만난 협회원들은 모두 나처럼 풀이 죽어 있었다.
“애가 사라진 학교에 갔더니,” 중절모를 쓴 협회원이 말했다. “학교에서 서약서를 받더래. 예고 없이 실종되면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진다는 서약서. 그게 말이야 방구야?”
본부장은 실종 사건이 더 일어날 경우 언론을 지금처럼 통제하기가 어렵다면서 그간 새로 신고가 접수된 실종자 자료를 돌린 다음 윗분들 역시 이 상황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했다. 그런 다음 잠깐 머뭇거리다가 수맥 탐사봉이 필요한 사람은 회의가 끝난 뒤 신청하라고 공지하고는 회의실을 나갔다.
나는 새로 추가된 실종자인 72세 할머니가 자주 얼굴을 비추던 노인센터로 갔다. 센터 밖 벤치에 할머니 서넛이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산 요구르트를 나눠주면서 할머니들에게 말을 붙였다. 다들 72세 할머니가 딸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용돈 삼아 폐지를 줍는 줄 알았지 그걸 딸에게 모두 뺏기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그러다가 화제가 자연스럽게 아들딸과 손자 손녀들 얘기로 빠졌고, 나는 차분히 앉아 대화의 흐름이 다시 72세 할머니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
“밥 먹으러 갔다가 안 돌아왔어.” 한 할머니가 말했다. “외식하러 간다고 했어.”
“내가 돈이 어디서 나서 외식이냐고 했지.” 다른 할머니가 말했다.
“종이 주워서 돈 벌었다고, 맛있는 거 먹는다고 했어. 요즘 혼자 먹는 우동집이 인기 있다고. 거기 간다고. 아이고, 이제 보니 그래서 그게 자기 돈이라고 그렇게 강조했나 보다. 맨날 딸이 가져가서. 이를 어째.”
또 다른 할머니가 말했다.
그때 머리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할머니들과 헤어진 뒤 나는 다시 자료를 살펴보았다. 회사원의 직장 동료들은 그녀가 식사를 하러 나간 다음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밀린 업무를 처리한 다음 오후에 혼자 밥을 먹으러 나갔다고 했다. 남중생의 친구들은 남중생이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삼각김밥까지 해치우고도 자긴 아직 배가 덜 찼다며 학원 가기 전에 뭣 좀 더 먹고 오겠다고 말한 뒤 무리와 헤어졌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밥도 안 차려놓고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가놓고 자기는 밥을 먹고 돌아오겠다고 전화를 하는 바람에 짜증이 났다고 했다.
문득 배가 고파졌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노인센터에서 가장 가까운 1인 우동집을 찾았다. 주변에 몇 개의 가게가 표시되었다. 사업이 잘나가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화면 왼쪽 맨 아래 있는 지점이 제일 가까운 것 같았다.
스마트폰 지도를 참고하며 5분 정도 걷자 우동집이 보였다.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이 늘어선 골목에 위치한 4층 건물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철물점과 문방구 사이에 난 작은 공간을 개조했고, 손바닥만 한 간판에 작고 빨간 등을 걸어놓았다. 낮이라서 등은 켜져 있지 않았고, 골목은 조용했으며, 이르게 핀 아카시아 향기가 은은히 났다.
어느 집인가에서 누가 큰 소리로 민요를 부르고 있었다.
포렴을 걷고 우동집으로 들어갔을 때 가게 안에서는 양복을 입은 남자가 우동을 먹고 있었다. 나는 기본 우동을 시킨 다음 가게를 살펴보았다. 딱 한 번 둘러보는 걸로 충분했다. 원목처럼 꾸민 합판으로 인테리어를 했고 벽에는 서너 가지 메뉴와 최우수 프랜차이즈 가맹점으로 뽑혔다는 광고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가게 안쪽 벽에 나무로 틀을 짠 문이 하나 나 있었는데 건물 안으로 통하는 것 같았다. 주인 겸 직원이 우동 면이 든 체를 뜨거운 물에 넣어 위아래로 흔들었다.
양복을 입은 남자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다 먹은 우동 그릇 옆에 놓고는 나무문을 열고 나갔다. 문 너머로 침침한 오렌지 빛 조명과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의 윤곽이 언뜻 보였다.
주인이 내 앞에 우동을 내려놓은 뒤 옆자리의 빈 그릇을 치웠다. 흔한 맛이었고, 가격에 비해서는 비싸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인은 말이 없었고, 나도 말이 없었으며, 가게 안에는 평온함이 감돌았다.
나는 우동을 다 먹은 다음 아까의 손님이 하던 대로 돈을 꺼내 그릇 옆에 놓고 일어선 뒤 나무문 쪽으로 갔다. 가게를 전부 파악하기 위해 들어올 때와는 다른 쪽으로 나가보고 싶었다.
“그건 장식인데요.”
주인이 말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주인이 다시 말했다.
“그 문 장식이라고요. 들어오신 쪽으로 나가시면 돼요.”
나는 문으로 가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손잡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경첩은 접착제로 붙여놓았고 나무라고 생각했던 건 플라스틱 위에 붙인 시트지였다.
“그러네요, 진짜.” 내가 말했다. “이런 거 왜 달아놓으셨어요? 헷갈리게.”
주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계약이 그래요.”
주인이 나를 보았다. 나도 주인을 보았다. 하얀 조리복을 입고 하얀 위생모를 쓴 중년 남자로, 눈은 웃고 있었지만 입 끝은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가게 안은 조용했다. 예의 그 평온함이 흔들리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이곳이야말로 한 사람의 체온과 에너지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장소일 테니.
“가게가 외진 데 있는데,” 내가 말했다. “손님이 많이 오나요?”
“알음알음 오세요.” 주인이 말했다. “손님도 이렇게 찾아오셨잖아요.”
“그렇죠.” 내가 말했다. “매상은 어때요? 실은 저도 이런 장사에 관심이 좀 있어서.”
“이런 장사라 하시면?”
“음.” 나는 헛기침을 했다. “인생의 틈새에 숨어 있는 것 같은 장사랄까요.”
주인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도 주인을 빤히 보았다. 그렇게 시선을 교환하는 동안 나는 주인과 내가 불가지론적 주제를 가지고 침묵 속에서 토론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각자가 반씩만 알고 있는 비밀을 맞춰보려고 만난 사람들처럼.
마침내 주인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사장님이 원하시는 게 어떤 인생이냐에 따라 얘기가 달라지겠죠.”
“어떤 인생을 원하느냐…….” 내가 말했다.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