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NIGHT OF THE EARTH POEMS
by Charles Bukowski
Copyright ⓒ Charles Bukowski 1992
All rights reserved.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Minumsa 2019
Korean translation edition is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HarperCollins Publishers through EYA.
이 책의 한국어 판 저작권은 EYA를 통해 HarperCollins Publishers와 독점 계약한 ㈜민음사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그쪽은 나도 역부족
당신도 역부족
우리에겐
어림없는 일
그러니 그쪽으론 기웃대지 말아요
아예 꿈도 꾸지
말아요
그저 아침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스스로
씻고
면도하고
옷 입고
밖으로 나가
뛰어들 뿐
그 외에
남은 거라곤
자살과
광란
뿐이오
그러니
지나친 기대는
금물
기대는 싹
접으시라
그러니
해야 할 일은
최소한의
기본적
행위
가령 집 밖에
나갔을 때
차가 그 자리에
있으면
기뻐하기
그대로 있는 데다
타이어도 펑크가 나지
않은 걸
기뻐하기
그렇다면 차에
올라타
시동이
걸리면
출발
이제부터
일생일대의
개똥 같은
영화가
상영되고
당신은
그 영화의
출연자
저예산
게다가
평론가만
400만 명
상영 시간은
끝을
모르는
무한대 같은
그런
하루.
공동묘지 잔디밭에 납작 드러누운 묘비들을 보며
웨스턴 애비뉴를 지날 때면 거기 초롱꽃,1) 그 침묵의 하프에
소름이 돋는다. 우리의 무난한 근대성은 목적론으로
우리의 분노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신용카드 수수료는 22퍼센트씩 물린다.
길을 잃지 않은 것 같아 흐뭇한 마음으로
그 거리를 따라 내려간다.
우리에겐 랜드마크가 필요하고(공동묘지 같은) 술과
부채(負債)도 필요하다.
우리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너무 많이 요구한다.
그렇게 남쪽으로 차를 달리는데 이상하게
평면 지구 협회가 생각난다.
세상은 네모나고 네모 중심부의 북극이 모든 것을 가장자리
밖으로 흘러내리지 않게 붙잡고 있으며 끝은 암흑과
얼음의 장벽이라 아무도 혹은 아무것도 그것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모여 토론하는 단체.
우리는 둥근 지구를 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네모난 가장자리를 돌다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거라고.
신호를 기다리고 파란불이 켜지고 전진하며
생각한다. 그래, 어쩌면 우리가 둥글다고 믿는 행성들은
환영일지 몰라, 달도 태양도 실제로는 네모날 수 있어.
그래, 누구도 무엇을 규정할 수 없다.
나는 세상이 둥글다는 쪽이지만 얼마 전까지는
다 같이 세상이 네모라고 믿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신호에 또 걸려 멈추고 기다린다.
그동안 네모 중심부에 위치한 북극은
나를 암흑과 얼음의 끝 너머로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 준다.
신호가 바뀌고 직진, 좌회전, 몇 구역 직진, 우회전
한 구역 직진, 좌회전, 한 구역 직진, 우회전, 다시
좌회전해 내 집 진입로로 들어가 천천히 차고 쪽으로
올라간다.
감귤 나무를 지난다. 감귤은 동그라미
차고 문은 네모. 나는 아직 그 초롱꽃, 그 침묵의 하프가
두렵다.
시동을 끄고
차 밖으로 나가
똑바로 선다.
아직 살아 있다.
진입로를 따라 걷는다.
휴, 다시 살맛이 난다. 풍문에는
북극에 끝없는 분화구들이 있고 거기 땅속 깊은 곳에
외계 생명체가 살고 있다 한다.
거기 아래
신비하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왕국에. 나는 문을 향해
움직이며 문을 열 각오를 한다. 문 저편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 이 기막힌 두려움은
사라지는 법이 없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대개 그렇다. 북극이 나를
둥글든 평평하든 가장자리 너머로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기에
나는 나무 벽을 밀어 열고 들어간다.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지만.
아무렴
언젠가 꼭 보여 줄 테다
플라스틱 헬멧에 긴 양말
이중 렌즈 고글 차림의 나를.
도로용 자전거를 타고
산책로를 달리는 나를.
낯빛은 멜론처럼
상기되고
배낭 안에는
가장 아끼는 책 한 권
간 소시지 샌드위치
빨갛디빨간
사과가
들어 있겠지.
한쪽으로는
바다가
부서질 테고
나는 맹렬히
질주한다.
충실한 삶을 산,
감성을 조금씩
뛰어넘어
살아온 남자.
귓가를 덮은
무성한 머리카락
면도를 게을리한
얼굴.
그때 내 입술은
처녀에게
키스할 수
없겠지.
짠 공기를 들이켤 때
몇 시인지
헷갈리겠지만
거기가
어딘지는
또렷이
알 거야.
아무렴, 나는 듯
달릴 테다
관에 누울
각오로.
태양이
노란 장갑처럼
나를 움켜쥘 때
나는
청년들이 탄
컨버터블을
지나가지.
“어이쿠야.” 하는
소리가 들려. “방금
그거
뭐였어?”
뭐였어?
뭐였어?
어허, 요 쪼그만
방귀쟁이 뿡뿡이들!
요 똥글똥글한
토깽이
응가들!
나는 높이높이
도약해
언덕 위
안개구름을
향해
날아오르지.
내 다리는
펌프질을
하고
바다는
부서져.
손님이 스툴에 앉아 신문을 펴면 웨이트리스는
자바 커피를 내온다. 손님이 베이컨을 주문한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죄다 늙고 고부라진 가난뱅이.
우주 최강의 가난뱅이들이 아침을
먹고 있다.
카페 안쪽은 장갑 안처럼 컴컴하다.
단골 몇몇이 이야기를 나눈다.
끊어지고 갈라지는 목소리로 간단하게
말한다.
하도 간단해
농담을 하나 싶지만
그저 음식 위로 느릿느릿 움직인다
웃지 않고…….
“카시미르가 죽었어, 초록색 신발을 신고 있었대……”
“그렇군.”
거긴 묘한 곳이다, 슬픔도 없고 증오도 없고 머리 위
선풍기는 느릿느릿 돌아가고 날개 하나는 약간 휘었다.
날개가 망에 스치는 소리가 “으-틱, 으-틱, 으-틱.”
나는데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내 음식이 나왔다. 따끈하고 정갈하다. 하지만 커피는
딴판이다.(최악) 발자국이 찍힌 흙탕물을
마시는 것 같다.
늙은 웨이트리스는 사랑스럽다. 빛바랜 분홍색 옷차림으로
잘 걷지 못하는데 눈치가
백단이다.
“정말 나 사랑해?” 그녀는 젊은 멕시칸 프라이쿡에게
묻는다. “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는 뒤집개로 해시 브라운2)
여러 개를 척척 뒤집으며
대답한다.
나는 먹고 신문을 정독한다. 대충 드는 생각은
당장은 세상이 끝장날 것 같지 않지만 불경기가
빛바랜 테니스화를 신고 스멀스멀
기어오고
있다는 것.
어떤 영감이 문간에 서 있다. 모든 면에서 큼직큼직해
안으로 빛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다.
“이봐, 누구 베른 본 사람 있나?”
아무도 대꾸하지 않고 영감은
가만 기다리다 족히 1분하고도 30초 후
뿍 하고 방귀를 뀐다.
내가 들었으니 다들 들었다. 응
봤어.
영감은 손을 올려 왼쪽 귀를 긁적거리다
문간에서 물러나
가 버린다.
“양아치 새끼.” 누군가 지껄인다. “어린 로라의 지참금을
꿀꺽했다는군.”
나는 마지막 토스트를 삼키고는 입가를 닦고
팁을 남긴 뒤 값을 치르려
일어난다.
금전 등록기는 구닥다리, 버튼을 탁
치면 서랍이 툭
튀어나오는.
나는 식사하려고 앉은 마지막 사람이자 밖으로 나가는
첫 번째 사람이다. 나머지는 그대로 앉아
음식을 깨작깨작 커피를
홀짝거린다.
나는 차에 도착해 시동을 걸고 생각한다.
멋진 곳이군, 사랑은 사고처럼
온다더니, 또 가야겠어
한 번이나
두 번쯤.
나는 차를 빼서 한 바퀴 돈 다음
현실 세상으로
복귀한다.
아침에 경마장에 가려는데
마누라가 묻는다.
“자기야, 수건 꽉
짰어?”
“응.”
“자기는 꽉 안 짜더라.” 그녀는 말한다.
“수건 꽉 짜는 거
중요하단
말이야.”
나는 내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는
진입로로 나간다.
물론 마누라 말이 옳다, 중요하고
말고.
그런데 말이지
나는 수건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입씨름하고 싶지
않다.
마누라가 손을 흔든다.
나는 손을 흔들어 주고는
왼쪽으로 꺾어
언덕을 내려간다.
햇살이 좋은
화창한 날인데
역사의
지평선
저편에는
엄청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백미러에는 카르타고가
있고
나는 시간 속으로
섞여 들어간다.
오늘도 고요하고 후끈한 여름밤
작은 벌레들이 와인 잔과 와인 병을
맴돈다.
라디오의 브람스 교향곡이 끝나고
나는 또다시 내 죽음을
생각한다.
오늘은 경마가 없었지만(여긴
그랬다) 지구 여기저기 곳곳에서
총질, 살인, 폭격이
빈발했다.
이런 종류의 경쟁은 늘
가까이 있기
마련이다.
세월은 느릿느릿
세월은 번개처럼
그렇게 흘러간다.
노장 헨리 밀러3)가
살아 있었던 게
얼마 전 일 같다.
전등갓의 먼지를 떨고 모델을 서 주고 맛난 밥상을
차려 줄 여자들을 계속 갈아 치우는 것
같더니만.
그 양반 여자들에게 인기 참 좋았지, 열 여자 마다하지
않았어.
어쨌거나 우리 집 고양이 다섯 놈은 더위라면 질색이라
밖의 시원한 노간주나무 그늘에 앉아
내 타자 소리를
듣고 있다.
가끔은 내게 선물도 가져온다.
새나 쥐.
그런데 우리 사이에는 작은 오해가
있다.
놈들은 좀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는데
그 눈빛이 이렇게 말한다. 저 인간 제정신이 아니야
이게 세상 이치라는 걸 모르는
모양이야.
다시 맞은 후끈한 여름밤
나는 여기 앉아 또
작가 놀이를 한다.
물론
최악은
우리 중 누구에게도
말은 진정한 돌파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밤에
타자기에서 종이를 빼 내
담배 라이터 위로 들어 올려
불을 붙이고
그걸 지켜보곤
한다.
“행크, 또 뭐 태우는 거야?”
마누라가 묻는다.
라디오에서 다른 곡이
흐른다.
그의 음색으로는 이만하면
용하다.
그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다.
낡은 먼지투성이
스피커로
그가 내게
말을 건다.
그가 저 안에 숨어 있는 것 같다.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거참 안됐구려, 딱한 양반
하지만 창작이란 게
한계가 있는 법이오.”
또다시 맞은 후끈한 여름밤
이 기계 안의 또 다른 종이
더 많은 벌레, 더 널린 꽁초
이곳, 이 순간, 만세 만세
지긋지긋한 세월 속에 길을 잃었네.
라디오 스피커가 부르르 진동하며
작곡자가 내게 고함을 친다.
저 개새끼, 쓸 만하군
한계는 있어도 용맹해.
고양이들은 노간주나무 아래서
기다리고 나는 와인을 더 따른다, 더 많이
더 많이.
책상 위에 자리한 부처님을 닦아야겠다.
온몸이 특히 가슴과 배가
먼지와 때투성이다.
아, 함께 지샌 숱한 밤들. 우린
크고 작은 파고를 함께 견뎠고
꼴불견인 시절에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만하면 이 양반
촉촉한 물수건 서비스쯤
받을 자격이
있다.
있고말고.
진저리 나는 밤도 있었지만
부처님은 선량하고 조용한 동행이었다.
내게 눈길을 주지는 않지만
마냥 껄껄 웃을 것만 같다.
지금은
대책없이 망가진 이 개똥 같은 세상을 향해
껄껄 웃고 있다.
“왜 날 닦나?” 그가 묻는다. “어차피 또 더러워질
텐데.”
“정신이 말똥한 척하려고.” 나는 대답한다.
“와인을 좀 더 마시게.” 그가 대꾸한다. “자네가 잘하는 걸
하라고.”
“그러는 자네는.” 내가 묻는다. “무얼
잘하나?”
그는 대답한다. “자네를 바라보는 걸
잘하지.”
그러고는 입을 다문다.
그는 수술이 달린 염주를
쥐고 있다.
이 양반, 어떻게 여기
들어왔을까?
사람들이
인터뷰하자고 찾아오면
딱히 할 말이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좀 쑥스럽지만
그들과
술판을
벌이는 게
상책이다.
가끔은 카메라맨도 있고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도
있어서
술병들이 즐비한
파티가
벌어지기도
한다.
내 생각엔 그들도
문학 어쩌고 하는 헛소리에는
관심이 없다.
이게 나름
잘 먹히는지
나중에 편지가
온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혹은 “그렇게 즐거운 시간은
난생처음이었어요.”
그날 밤에 대해 기억나는 건
문간에서 잘 가라 인사하며
한 말뿐이라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건 놔두고 가지
마요.
다시 오지
않게.”
바 끄트머리 쪽 여자가 자꾸 나를 쳐다본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외면하고 담뱃불을 붙이고
다시 흘끔거리고, 여자는 계속 나를 빤히 쳐다본다.
세련된 옷차림에, 뭐, 자칭 미녀라 해도
무방할 여자.
여자의 눈과 내 눈이 얽히고
나는 우쭐하고 초조해진다.
그녀가 일어나 여자 화장실에 간다.
엉덩이 한번 끝내주네!
끝내주게 우아해!
한 마리 사슴이야!
나는 바 거울 속 내 얼굴을 흘끔 보고는
고개를 돌린다.
여자가 돌아왔고 바텐더가 다가온다. “저쪽 끝
여자 분이 한 잔 사겠답니다.”
나는 그녀에게 고갯짓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술잔을 들고 미소를 짓고 한 모금 마신다.
여자가 또 쳐다보고 있다. 참 묘하고 유쾌한
경험이다.
나는 기대감에 젖어 내 손등을 뜯어본다. 그리
엉망은 아니다, 적어도 손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저 여자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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