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庄夢(丁莊夢)
Copyright © 2006 by 閻連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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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2016 by Jaeum & Moeum Publishing Co.
This Korean edition arranged with Yan Lian Ke(閻連科)
through The Institute of Sino-Korean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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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을 다투는 새의 울음
저는 중국에서 항상 논쟁의 와중에 있고, 언제나 ‘환영받지 못하는’ 작가입니다.
저의 글쓰기는 대부분 모종의 메커니즘과 권리, 사상, 의식, 도덕 그리고 모두가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예술 형식에 진입하지 못하고 항상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문학 창작에 대한 저의 추구와 희망은, 자신의 손에 든 펜이 칼이 되거나 총이 되지 않고, 유미주의 중국화의 가느다란 붓이나 색깔이 되지 않으며, 현실과 영혼을 비추는 탐조등이 되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 진정한 인성의 빛을 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중국식 글쓰기에서 ‘별종’ 혹은 ‘이단아’가 된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전에 출판된 저의 작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가 그랬고, 이번에 여러분께 소개하는 이 작품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도 같은 경우였는데,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2005년 중국에서 판금 조치를 당하기 전에도 중국 독자들과 진정한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광저우(廣州)에서 발행되는 『화성(花城)』이라는 잡지에 작품의 일부가 발표되었을 뿐입니다. 책이 되어 세상에 태어난 작품의 생명이 국가의 문건으로 인해 요절당하고 말았던 것이지요.
이에 비하면 『딩씨 마을의 꿈』은 훨씬 나은 운명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출판되자마자 수많은 중국 독자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비록 출판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와 마찬가지로 판금 조치와 함께 발행, 재판, 홍보가 전면 금지되는 운명을 맞긴 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이 작품은 적지 않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조치가 풀려 젊은 독자들이 이 작품을 이해하게 될 날이 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출판되었던 것만으로도 저는 큰 위안과 만족을 느낍니다.
이 작품이 조사를 거쳐 판금 조치를 당했을 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판금 조치를 당했던 이유를 알지 못했던 것처럼 이 책이 똑같은 조치를 당하게 된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단지 중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금기를 범했고’, ‘민감한 사안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판금 조치를 당하게 되면서 저는 다시 한번 출판과 관련하여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딩씨 마을의 꿈』을 출판한 중국 출판사가 이 작품이 ‘국가의 명예에 큰 손상을 입혔고, 자신들에게도 거대한 정치적・경제적 손실을 입혔다’는 이유로 저를 고소한 것입니다.
글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피고가 된 후로 저는 법원의 재판 과정을 통해 저의 글쓰기와 『딩씨 마을의 꿈』이라는 책이 중국에서 ‘어떤 죄를 범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사유 끝에 사실은 작가인 제가 비상을 쟁취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 마리 새라는 것을, 『딩씨 마을의 꿈』과 저의 글쓰기가 사실은 비상을 쟁취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새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딩씨 마을의 꿈』은 현실을 쓴 것인 동시에 꿈을 쓴 것이고, 어둠을 쓴 것인 동시에 빛을 쓴 것이며, 환멸을 쓴 것인 동시에 여명을 쓴 것이었습니다. 제가 쓰고자 한 것은 사랑과 위대한 인성이었고, 생명의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함이었습니다.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둘러싸고 있는 고난을 극복하고 선과 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영혼의 교육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과 내일에 대한 기대와 인성의 가장 후미진 구석에 자리한 욕망의 그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빛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작품이 ‘국가의 명예에 손상을 입혔다’고 한다면 그건 제가 이 글을 쓰기 전에 생각한 바가 아니라, 글이 완성된 후 ‘독자’들의 열독 행위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제 글쓰기에 대한 비평이나 비판이 아니라 문학에 대한 모종의 포폄(褒貶)과 칭송일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이 자리를 빌려 가장 진지한 자세로 한국 독자들께 『딩씨 마을의 꿈』은 한 편의 소설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어떤 몸부림과 그 몸부림으로 인한 울음이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이런 울음은 피를 토하는 날카로운 외침이자 문학의 높은 가지에 엎드려 토해내는 잠꼬대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비상하게 되었을 때의 노랫소리이자 천 리를 날아간 뒤 죽음을 맞게 되었을 때의 재잘거림입니다. 또한 이 울음은 사실을 전하기 위한 몸부림이자, 그 몸부림 속에서 던지는 글쓰기에 대한 질의이며 탐구입니다.
존경하는 한국 독자 여러분, 이 작품을 읽기 전에 먼저 강한 심장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의 몸부림을 느끼고 몸부림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울음과 잠꼬대를 경청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3월, 중국 베이징에서
옌롄커
일러두기
1. 모든 주는 옮긴이의 것이다.
2. 원문의 강조는 고딕체로 처리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
꿈속에서 포도나무를 보았는데, 가지에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다. 내 손에 파라오의 잔이 있기에 내가 포도를 따서 잔에 즙을 짠 다음, 그 잔을 파라오의 손에 들려주었다.
떡 맡은 관원장의 꿈
꿈속에서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 위에 있고, 그 맨 위 광주리에 파라오를 위해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들어 있었다. 새들이 내 머리 위의 광주리로 날아와 그것을 먹었다.
파라오의 꿈
꿈속에서 강가에 서 있는데 아름답고 살진 일곱 마리 암소가 강에서 올라와 갈대밭에서 풀을 뜯어 먹었다. 그 뒤에 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마리 암소가 강에서 올라와 아름답고 살진 일곱 마리 암소를 다 먹어치웠다. 이에 잠에서 깼다. 다시 잠들어 두 번째 꿈을 꾸었다. 꿈에서 한 줄기에 아주 튼실하고 아름다운 이삭 일곱 알이 나더니 얼마 후 또 동풍에 가늘고 약한 이삭이 자라났다. 이 가늘고 약한 이삭들이 튼실하고 아름다운 일곱 이삭을 전부 삼켜버렸다.1
1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
1장
1
황혼으로 물든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노을 사이로 보이는 일몰이 위둥(豫東)의 평원 위에 핏덩어리처럼 뭉쳐 있었다. 하늘과 땅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이 붉은 기운에 잠긴 채 가을이 깊어갔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추위도 더해졌다. 그 추위 때문에 시골의 길가나 마을 어귀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졌다.
개들은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닭들도 닭장으로 들어갔다.
외양간의 소들도 서둘러 자리에 누워 몸을 데웠다.
마을 안의 정적, 그 진한 정적이 모든 소리와 호흡을 끊어버렸다. 딩씨 마을(丁莊)은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너무나 조용하기 때문에, 가을의 끝이기 때문에, 황혼이기 때문에, 마을이 위축되고 사람들도 시들었다. 위축된 상태에서 세월도 따라서 말라버렸다. 마치 땅속에 묻힌 시신 같았다.
세월이 시신 같았다.
평원 위의 풀들도 말라버렸다.
평원 위의 나무도 말라버렸다.
평원 위의 모래흙과 농작물도 피처럼 붉어지더니 이내 시들어버렸다.
딩씨 마을의 사람들도 집 안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할아버지 딩수이양(丁水陽)이 도시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황혼이 평원을 뒤덮고 있었다. 그를 태웠던 장거리 버스는 웨이(潙)현을 출발하여 멀리 둥징(東京)으로 가는 도중에 그를 길가에 떨궈주었다. 가을이 길가에 낙엽을 떨어뜨리고 간 것 같았다.
딩씨 마을로 통하는 길은 십 년 전 딩씨 마을 사람들이 피를 팔아 닦은 시멘트 길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길가에 서서 딩씨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때맞춰 불어오는 바람에 멍했던 머리가 조금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혼란스러웠던 생각들이 조금씩 정리되었다. 날이 밝자마자 차를 타고 신시가지로 가면서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했던 말들이 반나절이나 알쏭달쏭했는데, 이제 딩씨 마을로 통하는 길에 이르게 되자 해가 뜨면 하늘이 밝아지듯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다.
그는 구름이 많으면 비가 내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을이 깊어지면 추위가 몰려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십 년 전 피를 팔았던 사람들은 지금 틀림없이 열병에 걸려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열병에 걸리면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가버릴 것이다.
열병은 핏속에 숨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꿈속에 숨어 있었다.
열병은 피를 사랑했고, 할아버지는 꿈을 사랑했다.
할아버지는 매일 꿈을 꾸었다. 사흘 내내 할아버지는 똑같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전에 가본 적이 있는 웨이현 현성과 둥징성 지하에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파이프를 보았는데, 파이프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제대로 접합되지 않은 파이프 연결 부위와 파이프가 꺾어지는 지점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허공을 향해 뿌려지고 있었다. 붉은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진한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할아버지는 평원의 우물과 강물 모두 새빨갛고 비린내가 진하게 풍기는 피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다. 도시와 시골의 모든 의사들이 열병 때문에 목을 놓아 슬프게 울고 있었다. 어떤 의사들은 매일 딩씨 마을의 거리에 나와 웃고 있었다. 햇빛은 노란 황금빛이었고, 딩씨 마을 안은 조용하고 평안하기만 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 문을 굳게 닫아걸고 서로를 피했지만 한 중년 의사는 눈처럼 흰 가운을 걸치고 자신의 약상자를 발밑에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 그는 마을 길가의 오래된 홰나무 아래서 웃었다. 홰나무 아래 놓인 바위에 앉아 웃었다. 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주 큰 소리로 웃었다. 웃음소리는 금빛으로 찬란했고, 맑고 낭랑했다. 마을의 누런 낙엽들이 우수수 흩날려 떨어졌다. 가을바람이 끊임없이 마을 안으로 불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꿈을 꾸고 난 며칠 후, 상부에서 할아버지를 불러 현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게 했다. 딩씨 마을에는 촌장이 없었기 때문에 촌장 대신 할아버지를 회의에 참석하게 한 것이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할아버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첫째, 이 열병이 사실은 열병으로 불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열병의 정확한 학명은 에이즈였다. 둘째, 올해 피를 판 적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피를 팔고 난 후 열흘에서 보름 사이에 몸에 열이 있었던 사람들은 지금 틀림없이 에이즈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셋째, 에이즈에 감염되면 나타나는 첫 증상은, 팔 년 혹은 십 년 전과 마찬가지로 감기에 걸려 열이 나는 것과 흡사해서 해열제를 먹으면 열이 물러가고 이내 원래의 몸 상태를 회복하게 되지만, 반년 혹은 서너 달이 지나면 다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온몸에 힘이 없어지고, 몸에 부스럼이 생기거나 혀끝에 궤양이 나타나며, 수분이 전혀 없는 것처럼 세월이 말라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세월을 견디면서 석 달 내지 반년쯤 지낼 수도 있고, 잘하면 여덟 달도 버틸 수 있지만, 일 년을 꼬박 채우기는 어렵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그다음에는 죽고 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죽고 마는 것이다.
등불이 꺼지면 사람은 더 이상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게 된다.
할아버지가 깨달은 네 번째 사실은 두 해가 채 지나지 않아 딩씨 마을에서 매달 사람이 죽어나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집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연이어 마흔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마을 어귀에 무덤들이 마치 밭에 빼곡하게 누워 있는 보릿단 같았다. 병에 걸린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는 간염에 걸렸다고 생각했고, 어떤 이는 폐에 그림자가 비친다고 말했다. 또 어떤 이는 간과 폐에는 이상이 없다고 하면서도 밥을 한 술도 뜨지 못했다. 보름쯤 지나 이 사람은 굶어서 몸이 불쏘시개처럼 말라버렸고, 하루가 멀다 하고 피를 토했다. 어떤 때는 반 대야나 되는 피를 쏟더니 기어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죽고 말았다. 등불이 꺼진 것처럼 더 이상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사람들은 위에 병이 났다고 말하기도 했고, 간에 병이 났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폐에 병이 났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모두 열병이었다. 모두 에이즈였다. 할아버지가 깨달은 다섯 번째 사실은 열병이 원래는 전부 외국인들의 병이고, 도시 사람들의 병이며, 심성이 바르지 못한 사람들만 걸리는 병이었는데 이제는 중국에도 이런 병이 생겼고, 시골에도 이런 병이 생겼으며, 병에 걸린 사람들 모두가 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병은 생기자마자 순식간에 퍼져나가 마치 누리 떼가 논밭을 뒤덮듯이 엄청난 지역을 휩쓸고 지나갔다. 할아버지가 깨달은 여섯 번째 사실은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이다. 이 병은 이 세상에 나타난 또 하나의 죽을병이라 아무리 많은 돈을 쓴다고 해도 치료가 불가능했다. 할아버지가 깨달은 일곱 번째 사실은 이 병은 이제 막 시작이라 대규모 창궐은 내년이나 후년쯤에야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마치 참새나 나방, 개미 떼처럼 무더기로 죽어나가게 될 것이다. 지금은 사람이 죽는 것이 개가 죽는 것과 같았다. 개는 나방이나 참새보다는 훨씬 귀중한 존재인 것이다. 할아버지가 깨달은 여덟 번째 사실은 할아버지네 집 뒤 담벼락 밑에 묻혀 있는 내가 겨우 열두 살이라는 것이다. 학교를 오 년밖에 다니지 못하고 나는 죽고 말았다. 나는 토마토를 먹고 죽었다. 마을 어귀에서 토마토를 하나 집어 먹고 곧장 죽고 말았다. 중독사였다. 반년 전에는 우리 집 닭이 사람들이 뿌려놓은 독약을 먹고 죽었다. 또 한 달 뒤에는 우리 엄마가 키우던 돼지가 마을 길가에서 누군가가 던져놓은 무를 먹고 죽었다. 그리고 다시 몇 달 뒤, 내가 마을 어귀에서 토마토를 하나 집어 먹고 죽었다. 그 토마토는 내가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가 바위 위에 누군가가 놓아둔 독이 묻은 토마토였다. 나는 토마토를 먹자마자 배 속의 창자를 가위로 잘라내는 것처럼 아파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마을 길가에 쓰러졌다. 달려온 아버지가 나를 안아 집으로 데려가서는 침상 위에 눕혔지만 나는 눕자마자 흰 거품을 토하면서 죽고 말았다.
나는 죽었지만 열병이나 에이즈에 걸려 죽은 것이 아니었다. 십 년 전, 우리 아버지가 딩씨 마을에서 대대적으로 피를 매집했기 때문에 죽었다. 피를 사고팔았던 일 때문에 죽은 것이다. 아버지가 딩씨 마을과 류씨 마을(柳莊), 황수이(黃水), 리얼 마을(李二莊) 등 열여덟 개 마을에서 가장 많은 피를 사고팔았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아버지는 피의 왕이었다. 내가 죽던 날, 아버지는 울지 않았다. 대신 내 옆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그러고는 아버지는 날카로운 쇠가래를, 둘째삼촌은 번쩍이는 큰 칼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두 사람은 딩씨 마을 한가운데 있는 사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고함을 외치고 욕을 해댔다.
삼촌이 외쳤다.
“어떤 종자인지 썩 나와! 안 보이는 곳에 숨어서 독약이나 풀지 말고 어서 나와서, 이 딩량(丁亮)이 칼로 네놈을 작살내는 것을 보란 말이다!”
아버지는 끝이 뾰족한 쇠가래를 들고서 욕을 해댔다.
“나 딩후이(丁輝)가 돈도 많고 병에 걸리지도 않은 게 배가 아파서 그런 거지? 셈이 나서 그런 거지, 그렇지? 내가 네놈들의 조상 팔 대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네놈들이 우리 집 닭을 독살하고 우리 집 돼지를 독살하더니 결국에는 우리 귀한 아들한테까지 독약을 먹였겠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욕을 해댔다. 점심때쯤 시작한 욕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이어졌지만 밖에 나와 우리 아버지의 말을 받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삼촌의 말을 받아주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결국 나를 땅에 묻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땅에 묻히고 말았다.
나는 아직 열두 살밖에 되지 않았고 성년이 아니었기 때문에 규례에 따라 선조들의 묘지에 묻힐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할아버지는 나의 작은 몸을 잘 싸서 당신이 묵고 있는 딩씨 마을 초등학교 건물 뒤쪽에 묻었다. 아주 작고 좁은 백목 관에 교과서와 숙제장 그리고 숙제할 때 쓰던 연필을 함께 넣어 묻어주었다.
할아버지는 글깨나 읽은 사람이었지만 학교에서는 종 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온몸에서 글 읽은 티가 나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딩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또한 할아버지는 내 관 속에 이런저런 책들도 함께 넣어주었는데, 이야기 선집과 신화와 전설이 실려 있는 책 몇 권, 그리고 사전도 넣어주었다.
그런 다음에는 무엇을 했을까? 더 할 일이 없었던 할아버지는 내 무덤 앞에 서서 마음속으로, 앞으로도 마을 사람들이 딩씨 집안 사람들에게 독약을 먹일까, 손녀인 잉즈(英子)에게도 독약을 먹일까, 아직 살아 있는 손녀들과 삼촌네 샤오쥔(小軍)에게도 독약을 먹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어서 아버지와 삼촌에게 딩씨 마을의 모든 집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개두(磕頭)1의 예를 갖추면서 제발 딩씨 집안 사람들에게 독약을 먹이지 말아달라고, 딩씨 집안에 대가 끊기지 않게 해달라고 애원하도록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무는 사이에 둘째삼촌도 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둘째삼촌이 열병에 걸린 것은 인과응보로, 우리 아버지가 피를 사고팔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삼촌에게는 집집마다 다니면서 개두를 하라고 시키지 않고, 우리 아버지에게만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개두를 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깨달은 아홉 번째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한두 해가 지나지 않아 우리가 사는 평원 위에 열병이 대폭발하리라는 것이다. 딩씨 마을과 류씨 마을, 황수이 마을, 리얼 마을에 홍수처럼 대폭발이 일어나 황허(黃河)의 제방이 무너진 것처럼 수많은 마을과 가구들을 집어삼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때가 되면 죽어나가는 사람이 개미 떼와 같을 것이고,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과 같을 것이다. 등불이 꺼지면 사람은 더 이상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고,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리듯 죽어나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딩씨 마을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죽을 것이다. 이때부터 딩씨 마을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딩씨 마을 사람들은 오래된 나무의 잎새처럼 누렇게 말라비틀어지다가 결국에는 전부 부스스 떨어져버릴 것이다.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나뭇잎과 딩씨 마을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딩씨 마을은 나뭇잎처럼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할아버지가 깨달은 열 번째 사실도 있었다. 상부에서는 피를 팔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열병이 전염될 것을 우려하여, 병에 걸린 모든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거주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릴 예정이라는 것이다. 상부에서는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딩 선생님, 그해에 피를 사고팔 때 댁의 큰아드님이 피의 왕이었으니 이번에도 힘을 좀 써주시지요. 선생님이 앞에 나서서 딩씨 마을의 환자들이 전부 학교에 모여 집단 거주할 수 있게 해주셔야겠습니다.”
이런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반나절이나 말이 없더니 지금까지도 뭔가 마음 가득한 말을 내뱉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손자인 내가 죽었고, 아버지가 피의 왕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기만 하면, 할아버지는 지금이라도 아버지에게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개두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개두가 끝나면 죽어버리라고 말하고 싶었다. 우물에 몸을 던져도 좋고, 독약을 먹어도 좋고, 목을 매도 좋았다.
당장 죽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눈앞에서 죽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마을의 모든 사람들 앞에서 개두를 하고 죽으라고 말할 것을 생각하자 할아버지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할아버지는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우리 집을 향해 걸어갔다.
정말로 우리 집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개두를 한 다음 죽어버리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2
딩씨 마을에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인구가 다 합쳐서 팔백 명도 안 되고, 전체 가구가 이백 호도 안 되는 작은 마을에서 이 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마흔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나간 것이다. 계산해보니 이 기간 동안 딩씨 마을에서는 열흘 내지 보름 간격으로 한 사람씩 죽어나간 셈이었다. 게다가 사람이 죽어나가는 계절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고, 내년이 되면 죽어나가는 사람이 가을날의 양곡처럼 많아질 것이다. 무덤이 여름날의 보릿단처럼 많아질 것이다. 죽은 사람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쉰이 넘었고, 가장 어린 사람은 겨우 서너 살이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발병하기 전에 열흘이나 보름 동안 열이 났다. 때문에 이 병은 열병이라 불리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열병은 이미 딩씨 마을의 목을 조여왔다. 딩씨 마을에서는 죽어나가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고, 곡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마을에서 관을 짜는 목공들은 톱과 도끼를 미리 서너 개나 갈아야 했다.
죽음은 마치 캄캄한 밤처럼 딩씨 마을을 철저하게 뒤덮고 있었고, 주위의 다른 마을들도 뒤덮고 있었다. 매일 마을의 거리를 오가는 이야기는 전부가 검은 소식들뿐이었다. 어느 집 누구의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는 소식, 아니면 어느 집 누가 어젯밤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어느 집 사내가 세상을 떠나 그 집 며느리가 곧 개가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아주 먼 곳, 아주 먼 산속으로 개가하여 열병이 만연한 이 평원의 귀신 붙은 땅을 떠나려 한다는 것이었다.
견디기 힘든 세월이었다. 죽음은 매일 모든 집의 문 앞을 서성거렸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모기처럼 어느 집 앞에서 방향을 틀기만 하면 그 집은 영락없이 열병에 감염되었고, 다시 석 달 남짓한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 침상 위에서 죽어나갔다.
죽는 사람은 너무나 많았다. 동쪽 집에서 하루 또는 반나절을 통곡하다가 애써 큰돈을 들여 흑목으로 된 관을 사서 죽은 사람을 땅에 묻고 나면, 서쪽 집에서는 통곡도 못 하고 시신을 둘러싸고 반나절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긴 탄식과 함께 시신을 땅에 묻었다.
관을 짤 수 있는 오동나무 목재는 이미 다 소진되어 마을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관을 짜다 보니 세 명의 나이 든 목수 가운데 두 명은 허리 통증이 도지고 말았다. 종이를 말아 꽃을 만들고, 이를 엮어 화환을 만드는 재주를 지닌 왕(王)씨는 가위와 칼을 가지고 너무 많은 꽃을 만들다 보니 처음에는 손에 열 개가 넘는 물집이 생기더니 나중에는 물집이 전부 터져 상한 피부가 말라붙으면서 손에 열 개가 넘게 누런 굳은살이 박였다.
살아 있는 사람들도 이미 넋이 나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죽음이 문 앞을 지키고 있어 어느 집에서도 더 이상 밖에 나가 농사지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밖에 나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열병이 문틈으로 들어올까 봐 모든 문을 꼭 닫고 대문도 굳게 걸어 잠갔다. 사실은 열병이 쳐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병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 문 앞을 지켰다. 어떤 사람은 정부가 열병이 발생한 집에 곧장 군용 트럭을 보내 환자를 간쑤(甘肅)의 사막으로 끌고 가 산 채로 묻어버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옛날에 역병이 돌 때 사람들을 산 채로 묻었던 것과 같은 방법이다. 사람들은 이런 소문이 모두 유언비어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이 소문을 믿고 있었다. 이렇게 집 안에서 기다리다가, 문을 꼭꼭 닫아걸고 기다리다가, 열병이 닥쳐오면 사람들은 곧 죽고 마는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다 보니 마을도 따라서 죽어버렸다.
땅이 황폐해져도, 아무도 땅을 갈러 나가지 않았다.
밭이 말라버려도, 아무도 물을 주러 나가지 않았다.
어떤 집에서는 사람이 죽었는데도 매끼마다 밥은 꼭 챙겨 먹었지만 더 이상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 한 끼를 먹고 나서 다음 끼니를 준비할 때도 설거지를 하지 않은 솥에 그대로 밥을 했고, 설거지를 하지 않은 밥그릇과 수저를 그대로 사용해 밥을 먹었다.
어떤 사람이 있었다.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되어도 마을 거리에서 그의 모습을 본 사람이 없었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묻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들 마음속으로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역시 자신이 죽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누군가 물을 길러 우물가에 갔다가 역시 물을 길러 나온 그와 마주쳤다. 두 사람 모두 몹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한참을 서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두 사람 가운데 하나가 먼저 물었다.
“맙소사! 자네 아직 살아 있었군?”
또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며칠 동안 머리가 좀 아프기에 열병인 줄 알았지. 그런데 아니더군.”
두 사람 모두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웃었다. 한 사람은 물이 찬 물통을 물지게에 지고, 다른 한 사람은 빈 나무통에 물을 채워 어깨를 스치며 우물가를 떠났다.
이것이 바로 딩씨 마을의 모습이었다.
이것이 바로 딩씨 마을이 가슴 졸이며 애타게 기다리는 열병과 세월이었다.
큰길에서 걸음을 옮겨 마을로 향하던 할아버지는 마을 입구에 이르러 한평생 추자희(墜子戱)2를 좋아했고, 지금은 열병에 걸려 있는 마샹린(馬香林)을 만나게 되었다. 마샹린은 자기 집 처마 밑에 앉아 지는 해의 햇살 속에서 몇 해 동안 사용하지 않아 칠이 다 벗겨진 추호아(墜胡兒)3를 매만지고 있었다.
그의 붉은 벽돌 기와집 세 칸은 그가 피를 팔아서 지은 것이었다. 그는 지금 그 집 처마 밑에 앉아 추호아를 잘 갈무리해두고서 나무껍질 같은 목소리로 창(唱)을 하고 있었다.
해는 동해에서 떠올라 서산으로 지네. 시름이 많아도 하루, 즐거워도 하루일 뿐이네.
양식을 팔아 푼돈을 버네. 많이 벌어도 하루, 적게 벌어도 하루일 뿐이네.
그의 행색은 전혀 병에 걸린 사람 같지 않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의 얼굴에서 죽음의 빛을 보았다. 푸른빛이 한 겹 한 겹 그의 마른 얼굴에 번지고 있었다. 게다가 알알이 말라붙은 썩은 종기의 진한 고름이 햇볕에 말리려고 널어놓은 완두콩처럼 검붉은 빛으로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할아버지를 발견한 그는 추호아를 갈무리해 집어넣으며 누런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눈에는 몹시 굶주려 뭔가 먹으려고 덤비는 기색이 역력했고, 목소리에는 아직 한 가닥 창의 곡조가 남아 있었다.
“딩 선생님, 상부에 회의하러 가시나요?”
할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
“샹린아, 어쩌다 이렇게 마른 거야?”
그가 얼른 대답했다.
“안 말랐어요. 한 끼에 만터우를 두 개나 먹을 수 있다고요. 한데 상부에서는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던가요?”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그럼, 치료할 수 있고말고. 곧 신약이 도착할 거라고 하더군. 신약이 도착하는 대로 주사 한 대만 맞으면 곧 나을 거래.”
그의 얼굴에 약간 윤기가 돌았다.
“신약은 언제 도착한대요?”
“얼마 안 지나서 곧 도착한다더구나.”
“얼마 안 지나서가 도대체 얼마나 걸리는 건데요?”
“얼마 안 지난다니까 며칠 안 걸린다는 말이지.”
“도대체 며칠이 걸린다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말했다.
“며칠 있다가 내가 다시 상부에 가서 물어보고 오마.”
이야기를 마치고 할아버지는 곧장 자리를 떴다.
할아버지는 골목을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 골목 양쪽의 집들 문설주마다 어김없이 하얀 대련(對聯)이 붙어 있었다. 대련은 갓 붙인 것도 있고 붙인 지 오래된 것도 있었지만 하나같이 흰색이라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 앞을 지나가다 보면 마치 눈이 가득 쌓인 하얀 골목을 지나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골목을 따라 걷다가 아직 오복(五服)4을 벗지 않은 같은 가문의 아우네 집 대문에 이르게 되었다. 이 집에서는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아들이 열병에 걸려 죽었기 때문에 대문에 대련을 붙여놓았다. 대련에는 “사람이 떠나니 빈집에 삼 년째 탄식이 이어지고, 해가 지면 등불 대신 석양을 태우네(人走屋空三秋戲, 燈滅日落熬夕陽)”라고 적혀 있었다. 리(李)씨 성을 가진 또 다른 집에서는 맞아들인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며느리가 죽었다. 이 며느리의 열병은 친정에서 가져온 것으로 그녀의 남편에게도 전염되었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아이에게도 전염되었다. 아들과 손자의 열병을 치료하기 위해 대문에 붙인 대련에는 “달이 지고 별빛마저 희미해지니 온 집안이 암흑이네. 바라건대 내일은 빛이 밝게 비치기를(月落星稀一家黑, 但願來日光明照)”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다음 집 대문에는 흰 문련(門聯) 종이만 붙어 있고, 문련 위에 아무런 문구도 쓰여 있지 않았다. 흰 문련 종이만 붙여놓고 글을 쓰지 않은 것을 의아하게 여긴 할아버지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피고 만져보고 나서야 뜻밖에도 문련 종이 밑에 두 겹의 문련이 더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열병으로 죽은 사람이 최소한 세 명이 넘다 보니 문련을 붙이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붙이기는 하면서도 아무런 문구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그 집 문 앞에 멍하니 서 있는데, 등 뒤에서 마샹린이 쫓아오면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딩 선생님, 신약이 곧 도착한다니 우리 축하 잔치를 벌이는 게 어떨까요? 선생님께서 사람들을 전부 학교로 불러 모으시면 제가 그분들을 위해 추자희를 불러드리겠습니다. 제가 창을 좀 하잖아요. 지금 마을 사람들 모두가 집 안에 갇혀 있는 처지라 갑갑해죽을 지경이거든요.”
할아버지가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마샹린이 앞으로 몇 걸음 더 내디디며 말을 이었다.
“학교는 추자희를 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이지요. 선생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르시기만 하면 돼요. 예전에 딩씨 마을에서 피를 팔 때도 선생님 말씀 한마디에 모두들 피를 팔러 갔었잖아요. 다들 선생님 댁 큰아드님인 딩후이에게 피를 팔았지요. 그때 딩후이는 채혈을 하면서 약솜 하나로 세 사람의 팔을 닦았어요. 약솜 하나로 아홉 번을 문지른 셈이지요. 지금 이런 말을 해도 소용없지만요. 솜 하나로 아홉 번이나 문지르는데도 저는 매번 딩후이에게만 피를 팔았어요. 모두들 그에게 피를 팔았지요. 그에게 피를 팔았는데 지금은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저와 이야기하는 걸 꺼려요. 이제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게 되었지만요. 다 지나간 일이에요. 저는 선생님께서 마을 사람들을 학교로 불러주셨으면 하고 바랄 뿐이에요. 마을 사람들에게 창 몇 가락 들려주고 싶거든요.”
그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딩 선생님, 다른 이야기는 안 할게요. 저는 그저 허난 추자희 몇 곡만 부르면 돼요. 추자희를 부르면서 신약을 기다리고 싶거든요. 창을 못 하면 마음이 너무 갑갑하고 허전해요. 창을 못 하면 신약이 내려오기도 전에 죽을 것 같아 두려워요.”
말을 마친 마샹린은 할아버지와의 거리가 몇 걸음밖에 안 되는 위치에 멈춰 섰다. 얼굴 가득 빌어먹고 얻어 마시느라 굶주리고 목마른 빛이 역력했다. 할아버지는 그를 바라보다가 그의 어깨 너머로 눈길을 옮겼다. 그의 등 뒤에 몇몇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열병에 걸린 리싼런(李三仁)과 자오씨우친(趙秀芹), 자오더취안(趙德全)이었다. 그들의 얼굴과 눈에도 뭔가 묻고 싶어 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들 모두가 신약에 대해 묻고 싶어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던 할아버지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신약은 곧 도착할 거야. 샹린아, 창은 언제쯤 하는 것이 좋겠느냐?”
마샹린의 얼굴이 금세 붉어지면서 희색이 돌았다.
“오늘 저녁은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저녁에 하도록 하지요. 마을 사람들이 좋다고만 하면 저는 창을 매일 할 수도 있어요.”
3
할아버지는 마샹린과 약속을 하고 헤어진 후 우리 집을 향해 걸어갔다.
우리 집은 마을 남쪽의 신시가지에 있었다. 신시가지는 역시 신시가지였다. 이 시가지는 딩씨 마을이 부유해진 다음에 새로운 구획에 따라 건설된 거리였다. 집에 돈이 있고 새집을 지을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마을에서 나와 신시가지에 정부의 구획에 따라 이층 건물을 올릴 수 있었다. 땅 한 무(畝)5에 이층집을 짓고 삼면을 담장으로 둘러쌀 수 있었다. 건물에는 온통 흰색 세라믹 타일을 붙이고, 건물을 둘러싼 담장을 전부 기계로 찍은 붉은 벽돌로 쌓을 수 있었다. 세라믹 타일은 일 년 사계절 내내 하얀 맛을 냈고, 기계로 찍어낸 벽돌은 일 년 사계절 내내 붉은 맛을 냈다. 그 맛이 한데 뒤섞여 희고 붉은 맛으로 변하면서 황금빛 유황 맛이 났다.
시가지 전체가 온통 새 벽돌과 새 기와의 유황 맛이었다.
일 년 사계절 내내 새 벽돌과 새 기와의 유황 맛이었다.
세상이 온통 새 벽돌과 새 기와의 유황 맛이었다.
우리 집은 바로 이런 유황 맛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유황 맛은 낮이나 밤이나 코를 자극했고 귀를 때렸으며 눈을 찔렀다.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는 것이다. 마을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유황 맛 속에서 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유황 맛 속에서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모두 피를 팔았다.
그래서 모두 열병에 걸렸다.
신시가지에는 다 합쳐 스무 가구 남짓이 살고 있었다. 이 스무 가구 남짓한 집안의 주인들은 과거에 모두 피를 파는 데 앞장섰던 피 우두머리들이었다. 피 우두머리들은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신시가지에 집을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 신시가지에서 살았다. 그래서 신시가지가 생겨났다. 우리 아버지는 당시 가장 먼저 피 우두머리가 되었다. 피의 왕이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은 신시가지 한가운데 살게 되었고, 이층집이 아닌 삼층집에 살게 되었다. 정부의 건설 규정에 따르면 누구나 이층집밖에 지을 수 없었는데도 우리는 삼층집을 지었다.
남들이 삼층집을 지으려고 하면 정부가 나서서 단속을 했지만 우리가 삼층집을 지을 때에는 아무도 관여하지 않았다.
우리 집도 처음부터 삼층으로 지은 것은 아니었다. 남들이 초가집이나 토담에 기와를 얹은 집에 살고 있을 때, 아버지는 순전히 벽돌과 기와만 사용해 집을 지었다. 남들이 순전히 벽돌과 기와만 사용해 지은 집에 살 때, 아버지는 벽돌과 기와로 된 집을 허물어버리고 새로 이층집을 지었다. 남들이 이층집을 지으려고 하자 아버지는 한 층을 더 올려 삼층집을 지었다. 남들이 한 층을 더 올리려 하거나 삼층집을 지으려고 하면 정부가 즉시 나서서 간섭을 했다. 현에 있는 모범 마을들도 전부 이층집이지 삼층집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은 삼층이었다. 삼층은 이층보다 한 층이 더 높았다.
우리 집 마당이 건물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은 양옥 건물에 어울리지 않게 마당에 돼지우리와 닭장이 있고, 처마 밑에는 비둘기 둥지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집을 지으면서 아버지는 둥징의 양옥 건물들을 완벽하게 모방하여 집 안 바닥에는 흰색과 담홍색 큰 타일을 섞어 깔았고, 마당에는 일 미터에 하나씩 네모난 시멘트 블록을 깔았다. 천년만년 노천에서 쭈그리고 앉아 일을 보던 재래식 화장실도 좌변기가 설치된 실내 화장실로 바꿨지만,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좌변기에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똥이 나오지 않자 다시 건물 밖에 있는 노천에 쭈그리고 앉아 변을 볼 수 있는 구덩이를 팠다.
건물의 화장실에는 세탁기도 한 대 있었지만 어머니는 대야를 마당에 내놓고 손으로 빨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좌변기는 장식물이 되어버렸다.
세탁기 역시 장식물이 되어버렸다.
냉장고도 있었지만 냉장고 역시 장식물이 되어버렸다.
식당과 식탁도 모두 장식물이 되어버렸다.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왔을 때는 마침 온 가족이 대문을 닫아걸고 마당에 나와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하얗게 찐 만터우와 쌀죽, 가는 당면과 무를 넣고 만든 배추찜을 먹고 있었다. 배추 잎사귀에 흩어져 있는 고추가 마치 갈기갈기 찢어놓은 연화(年畵)6처럼 붉었다. 마당 한가운데 작은 탁자가 하나 놓여 있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낮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온 가족이 이 작은 탁자에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문을 두드렸다. 여동생이 문을 열자 어머니는 할아버지에게 드릴 죽을 내왔다. 의자도 하나 놓아드렸다.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을 때 할아버지는 손에 젓가락을 든 채 아버지를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했다. 마치 낯선 사람을 쌀쌀맞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모르는 사람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침내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식사하세요.”
할아버지가 말했다.
“큰애야, 이리저리 생각해봤지만 너한테는 이 일을 말해줘야 할 것 같구나.”
아버지가 말했다.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식사나 하세요.”
할아버지가 말했다.
“말을 하지 않고는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아. 밤에는 잠도 잘 수 없을 것 같고.”
아버지는 손에 들고 있던 밥그릇을 탁자에 내려놓고 젓가락을 밥그릇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할아버지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말씀해보세요.”
할아버지가 말했다.
“오늘 상부에 가서 회의를 하고 왔단다.”
“열병이 바로 에이즈라는 이야기를 하시려는 거죠? 에이즈가 이 세상에 새로 생긴 불치병이라면서요?”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 식사나 하세요. 그 이야기는 안 하셔도 다 알아요. 마을 사람들 삼 분의 이가 이미 알고 있다고요. 단지 열병에 걸린 사람들만 모르고 있을 뿐이지요. 열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모르는 척하고 있지요.”
아버지는 다시 한번 할아버지를 힐끗 쳐다보더니 아랫사람을 대하듯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학생이 선생님의 손에 들려 있는 자신의 시험 답안지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아버지는 다시 손으로 밥그릇을 받쳐 들고 젓가락을 집더니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식사를 계속했다.
할아버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할아버지가 한평생 학교에서 종을 쳤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올해 환갑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종을 치고 있었다. 때로는 병이 났거나 일이 있어서 학교에 나오지 못한 교사를 대신해서 아이들을 돌보기도 했다. 한번은 반나절 동안 일학년 어문을 가르치면서 칠판에 분필로 ‘상중하, 좌중우’라고 쓴 글씨가 밥그릇만큼이나 컸다.
아버지도 할아버지에게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는 예전에 선생님들을 공경했던 것처럼 할아버지를 공경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아버지 눈에서 그런 불경스러운 태도를 읽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밥그릇을 받쳐 든 채 밥 먹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밥그릇을 탁자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할아버지가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큰애야, 내가 너더러 마을 사람들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죽으라는 말은 못 하겠지만 그래도 마을 사람들 전부를 찾아다니며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개두를 해야 할 것 같구나.”
아버지가 눈을 부라리며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제가 왜요?”
“네가 매혈의 우두머리였으니까.”
“이 신시가지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매혈의 우두머리였다고요.”
“그 사람들은 다 너를 따라 한 거잖아. 그들 중에 피를 팔아서 너만큼 부자가 된 사람은 없어.”
아버지가 또다시 밥그릇을 탁자 위에 거칠게 내려놓자 그릇 안에 있던 국물이 넘쳐흘렀다. 함께 내던져진 젓가락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아버지.”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다시는 제게 딩씨 마을에 가서 개두하라는 말 하지 마세요. 한 번만 더 그런 말씀을 꺼내시면 아버지는 제 아버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제가 아버지를 잘 모실 거라는 기대도 하지 마세요.”
그 자리에 그대로 몸이 굳어버린 할아버지는 젓가락을 손에 쥔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비가 네게 부탁을 해도 안 되겠냐?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 무릎 꿇고 개두하는 것도 못 하겠다는 거냐?”
아버지가 큰 소리로 말을 받았다.
“아버지, 그만 가세요. 한 마디만 더 하시면 아버지는 정말 제 아버지가 아닙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후이야, 그저 개두만 하면 돼. 개두만 하면 모든 일이 다 조용히 지나가게 된다니까.”
아버지가 말했다.
“어서 가세요. 지금 이 순간부터 아버지는 제 아버지가 아니에요. 제 아버지는 아니지만 돌아가시면 제가 무덤까지는 모셔다 드리지요.”
할아버지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젓가락을 천천히 밥그릇 위에 올려놓고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마을에서 죽은 사람이 마흔 명이 넘으니까 네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개두를 하려면 마흔 번 넘게 해야 되겠지. 그게 그렇게 힘들다는 거냐?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냔 말이다!”
이렇게 따져 묻는 할아버지 역시 몹시 지친 모습이었다. 기력이 다했는지 할아버지는 우리 엄마를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잉즈의 얼굴로 눈길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잉즈야, 내년이면 너도 학교에 가겠구나. 이 할아비가 어문을 가르쳐주마. 너희 집에는 다시 오지 않겠지만, 앞으로 이 할아비와 함께 열심히 어문을 공부하자꾸나.”
말을 마친 할아버지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할아버지가 밖으로 나가는데도 아버지는 문밖까지 배웅하지 않았고, 엄마 역시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느릿느릿 걸어 나갔다. 등을 구부리고 머리를 푹 숙인 채 느릿느릿 걸어 나가는 모습이 마치 하루 종일 길을 걸은 늙은 염소 같았다.
1 머리를 땅에 대고 절하는 예법.
2 허난(河南) 지방에서 유행하던 민간 희곡 예술로 추금 반주에 맞춰 창을 하기 때문에 추자희라 불리게 되었다.
3 추자희에 사용되는 현악기의 일종.
4 중국 고대의 상례 제도에서 망자와의 친소에 따라 달리 입는 다섯 가지 상복. 즉 참최(斬衰), 자최(齊衰), 대공(大功), 소공(小功), 시마(緦麻) 등을 말한다.
5 논밭 넓이의 단위로 한 무는 약 삼십 평에 해당한다.
6 새해의 길상(吉祥)을 기원하는 집 안에 붙이는 그림. 주로 붉은 종이 위에 그린다.
2장
1
여기서 딩씨 마을에 관해 몇 마디 해두기로 한다.
딩씨 마을은 둥징에서 웨이현으로 가는 도로 남쪽에 위치해 있고, 마을에는 세 갈래 길이 있다. 동서로 한 갈래, 남북으로 두 갈래 길이 나 있는 것이다. 남북으로 난 두 갈래 길 사이에 새로운 길이 생겼다. 이 새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딩씨 마을의 도로는 딱 ‘열 십(十)’ 자 모양이었으나 새 길이 나면서 ‘흙 토(土)’ 자 모양으로 바뀌게 되었다.
새로 난 길로 걸어온 할아버지는 둘째삼촌 집에 들러 잠시 고민에 빠져 있다가 이내 학교로 돌아왔다.
마을 남쪽으로 한 리 반쯤 되는 곳에 원래 관공묘(關公廟)1가 하나 있었다. 학교는 바로 그 묘당 곁채에 있고, 관공은 본채 안에 모셔져 있었다.
딩씨 마을 사람들은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모두들 묘당 본채에 향을 올렸다. 수십 년 동안 향을 올린 덕분인지 결국 피를 팔아 돈을 벌게 되자 곧바로 묘당을 허물었다. 관공을 믿지 않고 매혈을 믿게 되었다.
매혈을 믿게 되면서 학교 건물을 새로 올리게 되었다.
새 학교 건물이 지어지자 할아버지도 학교에 상주하게 되었다.
평원의 광야 위 열 무 남짓 되는 땅에 붉은 벽돌로 화려하게 담장을 두르고, 동쪽으로 가장 위쪽에 이층짜리 건물을 올린 후 커다란 창문을 달았다. 교실 입구에는 ‘1-1반’ ‘2-1반’ ‘3-1반’ 등의 글자가 새겨진 나무 팻말을 달았다. 학교 운동장에는 농구 골대가 하나 세워졌고, 철로 된 교문 위에는 ‘딩씨 마을 초등학교’라는 나무 팻말을 붙였다. 그리하여 학교가 생기게 된 것이다. 학교에는 우리 할아버지 외에 수학과 문화체육을 가르치는 선생님 두 분이 더 있었다. 둘 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로 아주 젊었지만 딩씨 마을에 열병이 퍼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더 이상 학교에 오지 않았다.
다시는 오지 않았다.
죽어도 오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는 우리 할아버지 한 분만 남아 창문과 유리, 책걸상과 칠판을 지키고 있었다. 딩씨 마을과 평원에 열병이 가득 퍼져가는 괴로운 나날을 지키고 있었다.
학교 안에서는 지금까지도 새 벽돌과 새 기와가 내뿜는 유황 냄새가 났다. 이 깊은 가을의 한밤중에 퍼지는 유황 냄새는 마을에 새로 난 도로보다 훨씬 짙었다. 할아버지는 학교 안에 풍기는 새 벽돌과 새 기와의 유황 냄새를 맡으면 마음속 초조함이 차분히 가라앉았는데, 그때 수많은 일들을 생각하곤 했다. 이미 황혼은 졌고, 평원의 고요함과 쉬지 않고 흐르는 물의 고요함이 학교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마치 학교 안에서 안개가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운동장 한가운데 있는 농구대 밑에 앉아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가을밤의 축축한 기운이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배가 고팠다. 웨이현에 갔다 오면서 하루 종일 한 끼밖에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니 마음이 더 다급해졌다. 마음이 다급해지니 가슴을 끈으로 세게 조이는 것만 같았다. 아주 가느다란 줄이 아프게 조여올 때마다 할아버지의 어깨도 덩달아 부르르 떨렸다.
어깨가 떨리면서 할아버지는 또다시 그해 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해 봄에 있었던 일이 마치 푸른 나무에 잎이 피어나듯 할아버지 눈앞에 펼쳐졌다. 아주 분명하고 생생하게, 달빛처럼 환하게 할아버지 눈앞에 펼쳐졌다.
할아버지는 그해 봄에 있었던 일을 겪으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바람이 불어오자 나무의 잎사귀들도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흔들렸다. 이렇게 흔들리면서 그해 봄이 찾아왔다. 봄과 함께 현 교육국장도 찾아왔다. 대대적으로 매혈을 독려하기 위해 현 간부 두 명을 데리고 온 것이다. 중춘(仲春)이 되자 마을에는 봄날의 따스함과 상쾌함이 가득했고, 거리마다 상큼한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교육국장은 이 상큼한 향기 속에서 촌장인 리싼런을 찾아가 상부에서 대대적으로 인민들의 매혈 운동을 전개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전했다.
리싼런은 너무 놀라 입을 크게 벌리며 말했다.
“맙소사! 피를 팔게 한다고요?”
입이 더욱 크게 벌어졌다.
“하느님 맙소사! 인민들에게 피를 팔게 한단 말인가요?”
리싼런은 당장 회의를 열고, 딩씨 마을 사람들을 매혈에 동원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흘 뒤에 교육국장이 또 찾아왔다. 딩씨 마을에서 매혈 운동을 조직하라는 것이었다. 리싼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만 피워댔다.
다시 보름이 지나 교육국장이 또 리싼런을 찾아왔다. 이번에는 딩씨 마을에서 매혈 운동을 조직하는 일 때문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매혈 운동을 서두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를 촌장 자리에서 쫓아내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는 사십 년 동안 맡았던 촌장 자리에서 쫓겨났다.
회의가 열리고 단 한 마디 선언으로 그는 촌장 자리에서 쫓겨났다.
촌장 자리에서 쫓겨난 후 리싼런은 입을 크게 벌린 채 한나절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 회의에서 교육국장은 직접 딩씨 마을의 매혈 운동을 조직했다. 그는 마을 주민회의에서 사람들에게 아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앞뒤 사정을 장황하게 설명한 다음 혈장(血漿) 경제를 발전시켜 이 마을과 나라 전체를 부강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을 사람들을 응시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내 말 잘 알아들으셨겠지요? 딩씨 마을 주민 여러분께 부탁 좀 합시다. 몇 마디만 할게요. 제가 여기서 이렇게 한참을 떠들었는데 설마 여러분들의 귀를 전부 침대에 두고 나온 건 아니겠지요!”
그가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란 닭이 혼비백산하여 꼬꼬댁거리며 회의장을 떠나 멀리 가버렸다. 놀란 개도 주인 옆에 있다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국장을 향해 사납게 짖어댔다. 개의 분노는 또 주인을 깜짝 놀라게 했다. 놀란 주인이 개의 배를 발로 세게 걷어차며 욕을 해댔다.
“짖지 마! 짖지 말라고! 누가 감히 짖으랬어. 누가 짖으랬냐고!”
급기야 개도 깨갱거리며 멀리 달아났다.
급기야 교육국장은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탁자에 팽개치면서 화난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잠시 자리에 앉아 있던 그는 학교로 우리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학교에서 할아버지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할아버지는 선생님인 셈이었다. 가장 나이 많은 선생님이었다. 어렸을 때 그는 『삼자경(三字經)』2을 읽을 수 있었고 『백가성(百家姓)』3을 달달 외웠으며 『만년력(萬年曆)』4에 나오는 생신과 팔자를 계산할 수도 있었다. 해방5 후에는 상부에서 마을마다 문맹 퇴치반을 설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딩씨 마을에서는 마을 남쪽에 있는 관공묘에 초등학교를 설치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이때 할아버지는 이 학교의 선생님이 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에게 『백가성』을 가르치다가 나중에는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삼자경』을 써서 익히게 했다. 그 후에는 상부에서 전문 교사를 파견하여 류씨 마을과 황수이 마을, 리얼 마을의 아이들을 전부 딩씨 마을의 관공묘에 집합시켜 한꺼번에 가르치게 했다. 새로 온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상중하, 좌중우’는 물론 “우리나라는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수도는 베이징(北京)이다”, “커다란 기러기 한 마리가 남쪽으로 날아간다” 같은 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책을 가르칠 수 없게 되면서 할아버지는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 했다. 종을 치거나 사람들이 묘당 안의 물건들을 훔쳐 가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일도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이렇게 할아버지는 수십 년 동안 관공묘를 관리해왔다. 새로 온 선생님의 보수는 현금이었지만 할아버지의 보수는 재래식 화장실에 가득한 똥과 오줌이었다. 그 똥과 오줌은 전부 우리 할아버지가 경작하는 밭에 뿌려졌다. 이렇게 한 해, 또 한 해가 지나갔다. 한 해, 또 한 해 지나다 보니 어느새 수십 년이 흘렀다. 마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 할아버지를 선생님으로 여겼다. 학교에서 월급을 줄 때는 우리 할아버지를 선생님으로 치지 않았지만, 갑자기 결원이 생겨 누군가 대신 수업을 해야 될 때면 우리 할아버지는 다시 선생님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선생님이기도 했다. 상부에서 내려온 교육국장이 우리 할아버지를 찾았을 때, 할아버지는 학교 마당을 청소하고 있다가 국장이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새빨개진 얼굴로 재빨리 손에 들고 있던 빗자루를 내던지고 교문을 향해 황급히 달려갔다. 할아버지가 부랴부랴 달려가 교문 앞에 서 있는 교육국장과 마주쳤을 때는 흥분된 얼굴이 가을날의 풍경과 똑같았다.
우리 할아버지가 말했다.
“국장님, 안으로 들어가 앉으시지요.”
국장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한데 딩 선생, 우리 현에 속한 각 국과 위원회에서 농민들에게 매혈 운동을 조직하라는 지시를 내렸소. 교육국에서는 나에게 쉰 개 마을을 배당했지 뭐요. 그래서 이번에 딩씨 마을에 내려와 매혈 운동을 조직하려 했는데 몇 마디 하기도 전에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구려.”
우리 할아버지가 물었다.
“매혈이라고요?”
“선생께서는 덕망이 높은 데다 마침 이 마을에 간부가 없으니 아무래도 선생께서 나서주셔야 할 것 같소이다.”
할아버지가 말을 받았다.
“맙소사! 저더러 피를 팔게 하라고요?”
“교육국에서는 쉰 개 마을을 혈액 공급촌으로 동원하려 하는데 딩씨 마을의 경우 딩 선생께서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선단 말입니까?”
할아버지가 말했다.
“하느님 맙소사! 사람들을 매혈에 동원하라는 거로군요.”
“딩 선생, 딩 선생은 공부깨나 하신 분이 아니오? 어떻게 몸 안의 피가 샘물과 같아서 팔면 팔수록 더 왕성하게 만들어진다는 원리도 모른단 말이오?”
할아버지는 겨울의 시들어 마른 평원처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교육국장이 말했다.
“딩 선생, 딩 선생은 학교에서 종을 치고 학교를 지키는 일을 맡고 있으니 교사라고 할 수 없을 것이오. 하지만 나는 학교에서 몇 차례에 걸쳐 딩 선생을 모범 교사로 보고할 때마다 매번 통과시켜주었소. 그때마다 딩 선생은 상장에다 상금까지 받았을 것이오. 그런데 지금 이 교육국장이 딩 선생에게 맡기는 아주 작은 임무 하나도 완수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이 교육국장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겠소?”
학교 정문 앞에 서서 우리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해마다 모범 교사를 선정할 때 수학 선생과 어문 선생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던 일을 생각해보았다. 두 사람의 경쟁이 너무 치열하여 학교에서는 차라리 할아버지를 모범 교사로 현에 보고했던 것이다. 현에서 할아버지가 모범 교사가 되는 것을 최종적으로 동의하면 상부에서 상장과 상금이 내려왔다. 액수는 그리 많지 않아 화학비료 몇 포대 사면 그만이었다. 상장은 매우 요염한 붉은색으로 지금 할아버지 방에 얌전히 걸려 있었다. 교육국장이 말했다.
“다른 국에서는 혈액 공급촌을 조직했다 하면 단번에 칠팔십 개 마을이 동원되는데, 우리는 아직 사오십 개도 동원하지 못했소. 이러니 앞으로 내가 어떻게 국장 자리를 보전할 수 있겠소?”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교 학생들이 전부 창가에 기대어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마치 수박 같은 아이들의 머리는 문과 창틀에 흩어져 있었다.
끝내 모범 교사가 되지 못한 두 선생들도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얼굴에는 평소와 다른 야릇한 표정을 지으면서 과거에 국장과 이야기를 주고받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국장은 두 사람을 전혀 알지 못했다.
국장이 말했다.
“딩 선생, 내가 딩 선생에게 다른 일을 해달라는 게 아니잖소. 단지 딩씨 마을 사람들에게 가서 피를 파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기만 하면 된단 말이오. 정말로 피는 샘물과 같아서 팔면 팔수록 더 많아진다고 말해달란 말이오. 이 교육국장을 위해 말 몇 마디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조차 못 해주겠단 거요?”
결국 할아버지는 내키지 않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그럼 한번 해보겠습니다.”
국장이 말했다.
“그래요. 말 몇 마디만 하면 되는 거예요.”
다시 한번 종을 울려 사람들을 전부 마을 한가운데로 불러 모은 다음 교육국장은 우리 할아버지에게 몇 마디 하게 했다. 마을 사람들을 향해 피는 샘물과 같아서 팔면 팔수록 더 많이 솟아난다는 원리를 설명하게 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마을 한가운데 있는 홰나무 아래 서서 새까맣게 모여든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마침내 사람들을 향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모두들 따라와요. 나와 함께 마을 동쪽에 있는 모래사장으로 갑시다.”
마을 사람들은 즉시 할아버지를 따라 마을 동쪽에 있는 메마른 모래사장으로 갔다. 딩씨 마을은 원래 황허의 오랜 수로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번 자리를 잡은 뒤로 수천 년 동안 변화가 없었다. 이 지역의 마을들은 전부 황허의 옛 수로를 따라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수백수천 년 동안 변함이 없었다. 때는 중춘이고 비가 내리긴 했지만, 모래밭이라 무척 푸석푸석했다. 하지만 필경 중춘의 비를 맞은 뒤였다. 할아버지는 가래를 하나 구해 오른손에 들고서 맨 앞에서 걸어갔다. 교육국장과 현 간부들이 할아버지 뒤를 따랐고, 마을 사람들도 그 뒤를 따랐다. 모래사장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물기가 밴 땅을 파서 손에 모래를 움켜쥐고 비벼보더니 모래 밑의 흙을 더 파냈다. 물이 나올 때까지 파냈다. 웅덩이에는 금세 물이 반쯤 차올랐다. 할아버지는 어디선가 주워 온 깨진 사발로 웅덩이의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퍼내고 또 퍼냈다. 한 사발 한 사발 계속 퍼냈다. 웅덩이의 물이 거의 없어지자 잠시 퍼내기를 멈췄다. 그러면 웅덩이에는 금세 물이 차올랐다.
결국 웅덩이의 물을 다 퍼낼 수 없었다. 뜻밖에도 물은 퍼낼수록 더 왕성하게 차올랐다.
할아버지는 사발을 모래밭에 던져버리고 손을 비비면서 딩씨 마을 사람들을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보셨지요?”
할아버지는 목청을 가다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핍니다. 퍼내면 퍼낼수록 더 왕성하게 생성되지요. 퍼내도 마르지 않습니다. 퍼낼수록 더 많아지지요.”
말을 마친 할아버지는 교육국장에게로 눈길을 옮겼다.
“저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종을 쳐야 합니다. 제가 종을 치지 않으면 아이들은 언제 수업이 끝나는지 모르거든요.”
국장은 학생들의 수업이 끝나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그는 우리 할아버지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마을 사람들을 곁눈질하더니 목청을 가다듬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아시겠습니까? 물을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것처럼 피도 역시 아무리 팔아도 없어지지 않아요. 피도 이 샘물과 같단 말입니다. 이게 바로 과학이에요.”
마지막으로 국장은 모래 위에 버려진 사발을 한쪽으로 걷어차면서 말했다.
“가난뱅이로 살 건지 부자로 살 건지는 여러분 스스로 결정할 일입니다. 소강(小康)으로 가는 황금빛 대로를 달릴 것인지, 아니면 알거지가 되는 외나무다리를 달릴 것인지 여러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의 딩씨 마을은 현 전체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입니다. 정말 형편없이 가난하지요. 부자가 될 건지 계속 가난뱅이로 남을 건지 집에 돌아가 잘 생각해보세요.”
국장이 한마디 덧붙였다.
“다른 현들은 일찌감치 미친 듯이 피를 팔아서 마을에 한 채 한 채 건물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의 딩씨 마을은 해방된 지 수십 년이 지났고, 공산당이 지도한 지 수십 년이 지났으며, 사회주의가 실행된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마을 여기저기에는 초가집이 이어져 있을 뿐이지요.”
국장은 말을 마치고 가버렸다.
우리 할아버지도 가버렸다.
딩씨 마을 사람들도 모두 흩어져 가버렸다. 집으로 돌아갔다. 가난하게 살 것인지 부자로 살 것인지는 그들이 결정할 문제였다.
황혼 속에서 황허의 옛 물길이었던 모래밭은 온통 벌판의 황량함으로 채워졌다. 석양빛에 검붉은 색이던 표면의 모래가 빛을 반사하면서 점차 짙은 갈색으로 변했다. 피가 솟구치는 듯한 붉은빛이었다. 저 멀리 펼쳐진 마을 농지와 보리밭에서 진한 풀 내음이 밀려와 파도처럼 모래밭을 쓸고 지나갔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도 무늬처럼 쓸고 지나갔다.
우리 아버지는 가지 않았다. 황허의 옛 물길을 떠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파놓은 웅덩이를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줄곧 웅덩이 옆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허리를 굽혀 손으로 웅덩이 안의 물을 떠서 마시더니 손을 씻었다. 그러고는 빙긋이 웃었다.
아버지가 손을 웅덩이 안으로 집어넣어 파기 시작하자 웅덩이는 살아 있는 샘물이 되었다. 샘물은 퐁퐁 솟아나와 웅덩이 밖으로 넘치더니 서서히 메말라 푸석푸석해진 모래밭으로 흘러갔다.
젓가락처럼 흘러갔다.
버드나무 가지 같은 물줄기가 점점 더 멀리 흘러갔다.
스물세 살의 우리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2
밤이 깊어 할아버지는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피를 파는 일이 밤바람을 타고 할아버지 꿈속으로 밀려왔다. 할아버지는 이내 그 열병의 모든 원인과 전후 관계를 분명히 보게 되었다. 매혈의 모든 자초지종을 전부 알게 되었다. 유복해진 사연을 다 알게 되었다. 봄에 작물을 심고 가을에 거두는 것 같은 무수한 일들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 같은 수많은 일들을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자고 있는 방은 학교 정문 바로 옆에 있었다. 빨간 벽돌로 지은 평평한 지붕의 이 방 안에는 침대와 탁자가 놓여 있고, 방에 붙어 있는 바깥채에는 솥을 얹는 부뚜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의자 하나와 밥그릇, 수저, 쟁반 등이 놓여 있었다. 할아버지가 이미 수없이 반복하여 익숙해진 일이 한 가지 있었다. 다름 아니라 이 두 칸의 방을 가지런하게 정리하는 것이었다. 바깥채에 있는 의자를 잠자기 전에 벽 아래로 옮겨놓고, 밥그릇과 수저를 도마 위에, 그리고 마실 물을 담는 통은 부뚜막 아래 놓아두어야 했다. 안채에는 모아둔 반 갑의 분필 조각을 탁자 오른쪽 모서리에 놓고, 학생들에게 걷은 낡은 책과 숙제장은 탁자 안쪽에 놓아두어야 했다. 갖가지 물건들을 있어야 할 자리에 잘 놓아두기만 하면 두 칸의 방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었다. 할아버지가 한밤중에 꾸는 꿈도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어야 했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밤중에 꾸었던 꿈이 보리는 보리로, 콩은 콩으로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라야 했다. 말 한 마디도 잊어서는 안 되고, 자잘한 내용까지 전부 기억해야 했다.
할아버지는 매일 밤 잠자기 전, 방을 한 차례씩 정리하곤 했다.
그의 꿈은 모범 학생들의 숙제장처럼 분명하고 가지런해야 했다.
할아버지는 꿈속에서 그 한 해 동안 피를 팔았던 일을 아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현의 첫 번째 채혈소가 딩씨 마을 입구에 요란하게 자리를 잡았다. 짙은 녹색의 범포 천막이 햇빛 아래 푸른 무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현 의원 채혈소’라는 크고 붉은 문구가 새겨진 하얀 나무 팻말이 천막 아래 세워졌다. 하지만 하루 종일 기다려도 딩씨 마을에서는 피를 팔러 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다음 날에도 피를 팔러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셋째 날 교육국의 가오(高) 국장이 지프를 타고 와서는 학교 정문에서 또다시 우리 할아버지와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가 말했다.
“딩 선생, 현장이 나를 국장 자리에서 쫓아내려 하고 있습니다. 딩씨 마을의 채혈소를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 말해보세요. 딩 선생을 난처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 트럭 두 대를 보내줄 테니 딩씨 마을 사람들을 태워 차이(蔡)현으로 견학을 가보세요. 차이현은 성 전체에서 가장 부유해진 모범 현입니다. 딩 선생은 나를 대신해서 집집마다 한 사람씩을 차이현에 보내 견학할 수 있도록 조직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가 또 말했다.
“차이현으로 견학을 가는 사람들에겐 매일 일 인당 십 위안씩 지급하고, 가는 길에 성도(省都)에 있는 2・7기념탑을 구경할 수 있게 해준다고 전하세요. 그리고 아시아백화점도 둘러볼 수 있다고 하세요. 미안합니다, 딩 선생. 딩 선생이 견학 참가자 모집을 도와주지 않으면 앞으로 이 학교의 종을 칠 필요가 없어요. 딩씨 마을 초등학교도 더 이상 운영할 필요가 없고요.”
말을 마친 국장은 다시 지프에 올라 다른 마을을 향해 떠났다. 끝없이 넓게 펼쳐진 평원에서 국장의 지프 소리는 트랙터 소리보다 더 부드럽게 들렸다. 우리 할아버지는 학교 정문 앞에 서서 국장의 지프 뒤꽁무니에서 내뿜는 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이 한층 더 하얗게 굳어졌다. 할아버지는 차이현이 또 다른 지구에 속한 극도로 가난한 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차이현이 어떻게 성에서 가장 치부(致富)를 잘한 모범 현이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가오 국장이 바람처럼 사라져버리고 나자 우리 할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한 집 한 집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동원에 나섰다. 내일 아침 일찍 한 집에 한 사람씩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트럭을 타고 차이현으로 견학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전했다.
누군가가 정말로 모든 참가자에게 하루에 십 위안씩 지급하느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가오 국장이 그렇게 말했으니 지급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가 정말로 돌아오는 길에 성도에 들러 구경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가오 국장이 그렇게 말했으니 차가 성도를 지나게 되면 내려서 구경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렇게 사람이 전부 동원되기 시작하면서 딩씨 마을에서 피를 파는 일에 대한 기초가 다져졌다. 봄날에 추수를 위한 기초가 다져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는 꿈속에서 딩씨 마을 사람들이 차이현을 견학하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침대 위에서 긴 탄식과 함께 몸을 뒤척였다. 그의 눈가에 눈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차이현은 웨이현에서 삼백 리 남짓 떨어져 있었다. 딩씨 마을 사람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트럭을 타고 차이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견학하는 곳이 차이현 어느 향(鄕)에 있는 마을인지 알지 못했다. 차가 차이현 경내로 들어서자 마치 천당에 온 것 같았다. 뜻밖에도 도로 양쪽에 있는 마을의 집들은 모두 서양식 주택으로 가득했다. 하나같이 붉은 벽돌에 붉은 기와를 얹은 이층집이었다. 집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모습이 종이 위에 가지런히 그려놓은 그림 같았다. 집집마다 문 앞에는 꽃이 심어져 있고, 정원에는 감탕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큰길은 예외 없이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었다. 대문 앞 벽에는 누런 바탕에 붉은 장식이 된 네모난 팻말이 붙어 있었다. 어떤 팻말에는 빛나는 별이 다섯 개나 붙어 있고, 어떤 팻말에는 네 개가 붙어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별이 다섯 개 붙어 있는 집은 오성급 매혈 가정이고, 네 개가 붙어 있는 집은 사성급 매혈 가정이었다. 별이 세 개 붙어 있는 집은 당연히 보통 수준으로 피를 판 가정이었다.
가오 국장은 딩씨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샹양 마을(上楊村)을 견학하기 시작했다. 일행은 어느 한 집에 들어가 구경하고 나와 또 다른 집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연이어 여러 집을 드나들었다. 뜻밖에도 샹양 마을은 도시와 마찬가지로 마을 골목마다 ‘광명가(光明街)’ ‘대동가(大同街)’ ‘양광가(陽光街)’ ‘행복가(幸福街)’ 등의 듣기 좋은 이름이 붙어 있었고, 집집마다 대문 앞과 정원에 배치되어 있던 진흙 돼지우리와 닭장은 전부 마을 어귀로 옮겨져 있었다. 돼지우리와 닭장에도 빨간 벽돌로 담장이 둘러져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면 하나같이 냉장고를 방문 왼쪽 입구 쪽에, 텔레비전은 소파 맞은편 붉은 선반 위에 배치해놓았다. 세탁기는 부엌과 마주 보고 있는 욕실에 설치되어 있었고, 문과 창문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되어 있었다. 집 안의 모든 상자와 장롱, 다용도 장식장 등은 붉은색 바탕칠 위에 노란 꽃이 그려져 있었다. 집집마다 침대 위에는 주단 이불이 포개져 있었고, 캐시미어 담요가 깔려 있었으며, 집 안 가득 진한 향기가 넘쳐났다.
가오 국장이 맨 앞에 서서 걸었다.
우리 아버지는 가오 국장 바로 뒤에서 따라갔다.
딩씨 마을 사람들은 전부 아버지 바로 뒤에서 따라갔다.
샹양 마을의 몇몇 부녀자들이 마을 저쪽에서 웃고 떠들면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마다 손에 고기 몇 근과 신선한 채소 한 다발씩을 들고 있었다. 그들에게 채소를 사가지고 오는 거냐고 묻자 산 게 아니라 촌위원회에 가서 받아 오는 것이라고 했다. 매일 밥할 때가 되면 집집마다 촌위원회에 가서 채소를 받아 온다는 것이었다. 시금치가 필요하면 시금치 선반에서 시금치를 집으면 되고, 부추가 필요하면 부추 선반에서 부추를 집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돼지고기가 먹고 싶으면 돼지고기를 받아 올 수 있고, 생선이 먹고 싶으면 당장 양어장에 가서 생선을 건져 올 수 있다고 했다.
딩씨 마을 사람들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 마을 부녀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의혹의 얼굴빛이 성벽처럼 두꺼웠다. 우리 아버지는 정말이냐고 묻고는, 그럴 리 없다고 말했다. 샹양 마을 부녀자들은 딩씨 마을 사람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나서 우리 아버지에게도 차가운 눈빛을 던지더니 밥을 짓기 위해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 아버지의 질문이 마치 자신들을 모욕하기라도 한 것처럼 더 이상 우리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지 않았다. 자리를 뜬 부녀자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고개를 돌려 달갑지 않다는 듯이 멀리서 아버지를 훑어보았다.
아버지는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깨끗하고 잘 정리된 샹양 마을의 거리 위에 한참을 서 있다가 또다시 서른 남짓 되어 보이는 여자가 생선과 채소를 들고 걸어오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는 그 생선과 채소가 정말로 촌위원회에서 나눠주는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서른 남짓 되어 보이는 여자는 곧장 몸을 돌려 의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매일 생선과 고기를 나눠준다면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소매를 팔꿈치 위까지 걷어 올리더니 붉은 참깨처럼 팔뚝에 가득한 주사 자국을 드러내 보이며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샹양 마을에 견학하러 왔으면서 왜 자신들의 마을이 현뿐만 아니라 성 전체에서 가장 모범적인 혈액 공급 마을이라는 것을 모르느냐고, 샹양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모두 피를 판다는 걸 모르느냐고 되물었다.
아버지는 그녀의 팔에 가득한 붉은 참깨 같은 주사 자국을 보면서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녀를 걱정하듯 차가운 한숨을 내쉬고는 주사 자국이 아프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빙긋이 웃으면서 비가 오는 날이면 약간 간지러운 정도라고 말했다.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아버지는 이어서 그렇게 매일 피를 팔면 머리가 어지럽지 않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놀란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보다가 어떻게 매일 피를 팔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열흘이나 보름에 한 번 팔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래 피를 팔지 않으면 젖이 충분히 나오는데도 아이에게 젖을 주지 않았을 때처럼 몸이 찌뿌듯하고 불편한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아버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여자는 생선과 채소를 들고 ‘광명가 25호’라는 팻말이 붙은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딩씨 마을 사람들은 다시 흩어져 샹양 마을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거리 양쪽에 있는 어느 이층집 마당에서, 마을 어귀의 돼지우리와 닭장에서, 혹은 마을 앞에 있는 붉은 기와에 맨 꼭대기를 녹색으로 마무리한 유치원에서, 마을 뒤편에 있는 흙먼지조차 보이지 않는 초등학교에서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다 보았고,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다 물어보았다. 그들은 성과 지구, 현 전체에서 혈액을 공급하는 데 모범이 되는 이 마을의 천당과 같은 세월이 바로 피를 팔아서 얻은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지구와 현의 채혈소는 이 마을 한가운데인 사거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병원처럼 입구 지붕에는 붉은색 ‘십자(十字)’가 세워져 있고, 그 안으로 의사들이 연신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들이 매일 하는 일은 사람들의 피를 뽑고 검사한 후 각종 유형의 혈장을 분류한 다음, 이를 모아 열 근 용량의 큰 병에 담아 소독과 밀봉 처리 과정을 거친 후에 다른 곳으로 운반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채혈소를 둘러본 다음 마을 젊은이 몇몇과 함께 마을에서 가장 넓은 강장로(康莊路)라는 대로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