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다시 엄마 감정을 읽다!
CHAPTER 01) 오늘도 ____ 아이에게 미안했다면
- 매일 죄책감에 시달려요
- 아이에게 분노 조절이 되지 않아요·
- 아이가 아프면 신경질부터 나요·
- 자꾸 괴물 엄마로 변해요·
- 나만 아이 마음을 공감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 사랑을 나눠줘야 해서 미안해요·
- 일하고 싶은데 아이에게 미안해요·
01. 엄마 감정 내려놓기 / 엄마만의 고요한 시간을 사수하자!
CHAPTER 02) 오늘도 ____ 아이로 인해 불안했다면
- 아이가 커갈수록 불안해요
- 아이와 떨어져 지내면 불안해요
- 자꾸 마음이 조급해져요
- 완벽하게 아이 키우고 싶은 마음 때문에 긴장돼요
-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할 때마다 걱정돼요
- 아이를 잘 키울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요
02. 엄마 감정 내려놓기 / 양육 효능감을 높이기 위해 공부하자!
CHAPTER 03) 오늘도 ____ 우울하고 외로웠다면
- 아이가 예쁜데도 우울한 날이 지속돼요
- 나만 초라해 보여요
- 힘들어서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지 않아요
- 엄마들 관계 때문에 더 외로워요
- SNS에 중독된 것 같아요
- 엄마가 되고 내 이름이 없어진 것 같아요
03. 엄마 감정 내려놓기 / 엄마, 단순해지고 느려지자
CHAPTER 04) 오늘도 ____ 말 못할 감정으로 힘들었다면
- 아이 키우며 어린 시절 상처가 떠올라요
-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 아이는 잘 키운 것 같은데 삶이 공허해요
- 엄마가 되고 나이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요
- 아이 문제가 모두 내 탓인 것 같아요
- 아이 일로 힘들 때마다 남편한테 화가 나요
- 점점 남편하고 관계가 나빠져서 힘들어요
04. 엄마 감정 내려놓기 / 아빠가 육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
<에필로그> 모든 엄마 감정을 사랑하자
“훌륭한 엄마와 그렇지 않은 엄마의 차이는
실수를 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실수를 어떻게 처리하는 가에 있다”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
엄마란 이름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여받는 특별한 이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자신을 무명으로 만들어버리는 이름이기도 하다. 20~30여 년 동안 불려온 내 이름 대신 아이의 이름 뒤에 ‘엄마’를 붙여서 만들어진 호칭은 지금까지의 내 모습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형성해준다. 자아심리학을 개척한 미국의 심리학자 에릭슨Erikson은 ‘정체성’이란 용어는 ‘자신의 내부에서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과 ‘다른 사람과의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엄마로 살다보면 정체성에 대한 후자의 의미는 강해지지만 전자의 의미는 시나브로 잃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란 이름이 주는 특별하면서도 본능적인 힘으로 최선을 다해 그 역할을 감당한다. 그렇다면 엄마로 사는 것은 과연 행복한가? 이 질문에 대해 별 고민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엄마는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다른 것에서 결코 느낄 수 없었던 큰 기쁨을 주는 점은 분명한데, 행복하다는 대답이 바로 나오기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복잡한 감정들이 뒤죽박죽 엉켜 실타래마냥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과의사라는 직업 덕분에 만났던 엄마들에 대한 나의 시각은 전업 육아 이후 주양육자로 살며 완전히 뒤바뀌었다. 주양육자로서 겪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을 나도 그녀들처럼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로 살고 있는 친구들이 많아 나의 경험을 공유할 기회가 많지만, 그래도 엄마들은 참 외롭다. 그리고 화가 난다. 아이와 함께하다보면 내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할 여유도 없이 그 복잡한 감정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남편의 행동이 전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들지가 않고, 심지어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내 아이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잠시 뿐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며 외롭고 화가 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름대로 답을 찾아보려고 노력해본다.
하지만 답을 찾고 원인을 해소했음에도, 또다시 반복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하며 나는 엄마로서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까지 한다.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 아이에게 화를 내는 자신을 바라보며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하고 회식을 하는 남편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을 때, 평소 별 문제없다고 여기던 나의 인격에 대한 의구심까지 더해지며 내 자신을 더 괴롭게 하기도 한다.
엄마들은 그래서 더욱 마음을 붙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친구에게 위로받고 싶지만 아이를 키우는 친구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고, 육아를 경험해보지 않은 친구의 한마디는 솔직히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장 의지하고 사랑하는 남편조차도 내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나를 붙잡아주기는커녕 엄마로서의 나를 이해하는 정도가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다. 베스트 프렌드도 남편도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줄 수 없다니, 그런 면에서 엄마는 외톨이나 다름없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느끼는 외톨이 감정은, 나를 그렇게 만든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다. 이러한 분노를 마음껏 배출하고 싶지만 아이와 함께하다보면 본능적으로 자제하게 된다.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분노는 점점 쌓이고, 분노의 감정은 내리막길을 타고 가기에 가장 만만한 아이에게 표출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뿐인가. 엄마들에게는 과도기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소중한 결혼 준비시기를 ‘스드메’에 허비하느라 정작 중요한 엄마가 될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임신을 하게 된다. 엄마가 될 준비를 할 여유도 없이 태교 전선으로 뛰어들어 태교를 위해 좋다는 것은 닥치는 대로 하고, 그렇게 갑작스레 엄마 역할을 떠맡는다. 리허설은커녕 대본조차 본 적 없이 맞이하는 엄마의 삶은 참 낯설고 불안하기만 하다. 선배 엄마들에게 물어본들 다 그런 것이라고 시간이 약이라는 이야기만 할 뿐, 어느 누구 하나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다. 엄마의 삶을 공감받고 싶어서 SNS를 기웃거리지만 깔끔한 살림은 기본이고 엄마표 음식, 엄마표 놀이까지 매일 업데이트되는 것을 보며 자괴감을 느낀다.
엄마로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단언컨대, 엄마로 산다는 것은 그 어떤 삶보다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타고난 내 아이의 기질을 경험해보지 않은, 나아가 내가 어릴 적 부모에게 받았던 양육 스타일을 경험해보지 않은 그 어느 누구도 겉으로 보이는 엄마된 나의 모습만을 보고 판단할 수 없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다 놔버리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도 그 순간은 더 좋은 엄마로 성장하는 과정일 뿐이지 결코 실패한 엄마는 아니다.
나는 엄마들을 마음을 상담하는 정신과의사이자, 두 아이의 주양육자로서 매일 엄마들을 만난다. 상담을 하면서 늘 깨닫는 게 있다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의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엄마로 사는 동안 점점 복잡해지는 감정을 마주하며 괴로워하는 분들이 ‘나만 이런 건 아니구나’라고 공감하며 위로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개정판을 냈다. 제목과 목차는 물론 내용들도 수정하고 보완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엄마들이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묻어두어야만 했던 여러 가지 감정들을 하나하나 발견하고,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있는 모습 그대로 엄마 된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2020년 4월
정우열
매일매일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들
워킹맘인 승우 엄마는 아이가 백일이 지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죄책감 때문에 매일이 괴롭다. 그녀는 18개월 된 승우가 남들보다 병치레가 잦은 것은 모유수유를 한 달밖에 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같이 느껴졌다. 또 승우가 밥을 잘 먹지 않고 발육이 느린 것 또한 음식 솜씨도 없고 게으르기까지 한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았다. 승우가 예민하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보이는 것 또한 워킹맘인 자신의 잘못인 것 같다.
그뿐이 아니다. 승우가 사달라는 것이나 여러 가지 육아용품 교구 등을 사주지 못하는 것 또한 다른 엄마들처럼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졌다. 요즘 말로 말하면 ‘기승전, 엄마잘못’이다.
이런 식으로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일로 부적절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엄마들이 많다. 이런 엄마들은 무리해서까지 아이의 요구를 들어준다. 무리하다보면 결국 균형이 무너지는 지점에 다다르고, 그때엔 죄책감과는 반대로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반드시 분노를 아이에게 표출한다.
아이의 사소한 잘못된 행동을 견디지 못해 소리 지르고, 밤에는 조용히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소리 지른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서 눈물을 흘린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이 미안하다 잘못했다는 말을 쏟아내며 내일부턴 절대로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미안한 생각이 들면서도 다시 분노의 감정이 일고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죄책감
나는 가벼운 감기 증상만으로는 아이를 바로 소아과에 데려가지 않는다. 다행히 애들도 튼튼하게 자라서 병원에 갈 일도 별로 없었다. 언젠가 둘째가 일주일 정도 기침을 계속했지만 다른 건 문제없고 기침도 점점 나아지는 추세여서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동안 둘째를 돌보던 부모님께서 기침이 심하다며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신 것이다. 진찰을 마친 의사는 폐렴으로 넘어갈 뻔했다고 겁을 잔뜩 줬다고 한다. 같은 의사 입장에서 어떤 취지로 한 말인지는 알지만, 발달 시기적으로 한창 예민하고 떼쓰는 첫째 때문에 둘째를 등한시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날 일을 마치고 둘째를 데리러 가서 보니 우려와는 달리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마침 부모님이 첫째를 많이 보고 싶어 하셔서 둘째를 데려오고 첫째를 다시 맡겼다. 그런데 밤에 어머니로부터 문자가 왔다. 첫째가 저녁에 설사 두 번, 구토도 한 번 했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설사 한 번 안 한 첫째였는데, 구토까지 동반되는 걸 보니 장염이 아닌가 싶었다. 소아과의사인 동생에게 전화했더니 여태 장염 한 번 앓지 않은 게 용하다고 했다. 하지만 둘째 문제로 죄책감이 든 날이라 그런지 죄책감은 배로 느껴졌다.
죄책감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혹시나 첫째가 다른 아이들에게 장염을 옮기진 않았나 하는 생각에 어린이집 엄마들 카톡창에 아픈 아이가 없는지 물어봤다. 한 엄마가 자기 아이가 이틀 전부터 설사를 했는데 옮긴 것 같다며 미안해했다. 미안해하는 엄마에게 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마 그 친구에게 옮은 것은 아닐 거라고 말하는데 마침 어젯밤 일이 생각났다. 더워하는 것 같아서 첫째를 홀딱 벗겨서 기저귀만 입힌 채 에어컨을 틀고 잤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하필 첫째가 잠들어 있던 위치는 에어컨 바람이 그대로 떨어지는 자리였다.
‘결국 나 때문에 아이가 아픈 거구나.’
다른 엄마의 미안함을 덜어주려고 다른 원인을 생각하다보니, 인과관계가 불분명해도 이런 식으로 죄책감은 더 심해졌다.
도덕적인 엄마일수록 죄책감이 크다
엄마가 죄책감을 가지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자학 행동이다. 엄마들은 ‘우리 아이는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지나친 자기 과대적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왜 나 같은 엄마를 만나서…’라는 죄책감도 같이 갖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마음은 어릴 적 경험한 엄마에 대한 마음과도 비슷하다. ‘우리 엄마는 참 좋은 엄마야’ ‘우리 엄마는 나쁜 엄마야’라는 양가감정이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을 때, 후자의 경우 엄마를 평가절하하고 증오했다는 죄책감을 가진다. 그러한 죄책감을 씻기 위해 소소한 일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의 삶을 사는 식으로 자학적 행위를 하는 것이다.
엄마가 죄책감을 가지는 것은 사실 엄마로서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다. 무의식적으로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엄마의 역할을 함으로써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고, 그만큼 자기가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갈등 해결 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기를 희생하면서 엄마 역할을 하다보면 엄마도 사람이기에 그만큼 분노가 쌓이고, 결국은 아이에게 그 분노는 돌아간다.
엄마로 살다보면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분명 아이를 돌보는 건 행복한 일이면서 동시에 힘들고 짜증이 나는 일이다. 2010년 서울대학교 아동가족학과에서 만 5세 이하 자녀를 둔 엄마 3,070명을 대상로 시행한 ‘대한민국 엄마 파이팅’ 연구 결과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엄마들이 일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자녀를 돌볼 때’였고, 가장 우울하고 피곤하다고 느낄 때 역시 ‘자녀를 돌볼 때’였다. 아이를 돌보며 생각과 감정이 복잡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생각과 감정이 복잡해지다보면 객관성을 잃고, 개연성 없는 일을 개연성 있게 받아들인 나머지 죄책감을 가지기 쉬운 마음 상태가 된다. 부적절한 죄책감은 엄마로서의 능력 자체에도 지장을 주고, 아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불필요하다.
엄마로 살다보면 마음과는 다르게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할 때가 자주 생긴다. 평소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마음을 잘 추스르며 견디다가도, 엄마의 마음 상태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엔 소리를 지르고 손찌검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평상심을 회복한 후에는 아이가 상처 받았을까 봐, 또 정서적 발달에 지장을 줄까 봐 전전긍긍한다.
다행인 것은 아이가 한 번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해서, 성장한 후에 그 상처 때문에 반드시 고통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모두 상처투성이로 지내야 할 것이다. 아이에게는 회복 탄력성이 있기 때문에 대략 75퍼센트 정도는 스스로 이겨낼 수 있고, 25퍼센트 정도는 상처로 남아 성인이 된 후에도 그 상처에 대해 취약할 수 있기는 하다. 마음의 상처가 뇌 호르몬과 구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 자체보다도 그 행동이 가끔 하는 행동인지 꾸준히 반복하는 행동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에 상처를 주는 패턴이 반복되면 스트레스 처리 뇌 회로가 적절하게 발달하지 못해 스트레스에 취약한 뇌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엄마가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르더라도 자주 반복되지 않으면 아이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적당히 좋은 엄마가 되면 된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보다 그로 인해 엄마 스스로가 상처를 받는 것이 아이를 키울 때는 더 좋지 않다. 다른 말로 하면 양육 죄책감이라고 한다. 양육 죄책감은 현재 엄마로서의 양육 행동이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양육 행동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 유발되고, 긴장이나 후회, 양심의 가책 등을 일으킨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아이에 대한 과잉보호나 회피 및 공격적 양육이라는 상반된 형태로도 나타난다.
과잉보호를 받은 아이는 의존적이거나 소극적이고 원만한 상호작용을 친구들과 맺지 못해 사회 적응을 어려워한다. 반대로 회피적이거나 공격적인 양육을 받은 아이는 적대적, 퇴행적, 수동적이 되기도 한다.
엄마라면 그저 아이를 바라보기만 해도 갑자기 눈물이 나며 동시에 이유 없이 죄책감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적당히 좋은 엄마가 되면 된다. 100점 엄마가 아닌 80점 엄마를 목표로 하면 된다.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은 안정적인 애착 형성을 위해 필요한 엄마를 ‘충분히 좋은 엄마Good-enough mother’라고 일컬었다. 여기에서 충분하다는 말은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다. 흔히 ‘그 정도면 충분하다’라는 말을 언제 쓰는지 생각해보면 ‘그 정도면 된다’, 즉 웬만큼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전반적으로 좋은 엄마가 되면 된다. 마가렛 말러Margaret Mahler에 따르면 아이는 만 3살이 지나면 ‘어떨 땐 실망스럽지만 우리 엄마는 전체적으로 좋은 사람이야’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한다.
나 역시도 첫째에게 부모로서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한번은 아이가 물통으로 물을 먹으며 안아달라고 해서 안아줬는데 물을 내 등 뒤로 계속 흘렸다. 물을 쏟는 재미 때문에 아빠 옷을 홀딱 적시는 줄 알고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계속하기에 ‘하지 말라고!’라며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첫째를 내려놓고 표정을 보니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듯 멍한 표정이었다. 혹시나 해서 물통을 살펴보니 뚜껑이 제대로 잠겨 있지 않았다. 내가 물통을 잘못 잠그고는 아이가 물을 쏟는다고 오해한 것이다. 아이에게 아빠가 물통을 잘못 잠가서 정말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말하자, 쿨한 우리 첫째는 ‘괜찮아!’라고 말했다. 100프로 내 잘못이었기에 곧바로 사과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죄책감을 함께 털어버릴 수 있었다.
위니콧은 ‘훌륭한 엄마와 그렇지 않은 엄마의 차이는 실수를 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실수를 어떻게 처리하는 가에 있다’라고 말했다. 아이에게 실수로 잘못을 했다면 바로 사과하면 된다. 아이는 엄마를 잘 용서해준다. 전반적으로 당신은 충분히 좋은 엄마이기 때문이다.
적응 때문에 화를 주체 못 하는 엄마
재원이 엄마는 출산 후 3년 동안 재원이를 잘 키우기 위해 지극 정성을 다했다. 세 돌까지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혼자서 육아를 담당했고, 주변 엄마들은 그 모습에 존경심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원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하지 못하고 등원을 거부하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들 그런다기에 기다려보았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조바심이 나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것이 촉매가 되었는지 그동안 억압해온 불안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이가 아침마다 떼쓰면서 등원을 거부하면 처음엔 어르고 달래다가 갑자기 화를 주체할 수 없을 때는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정신을 차린 뒤에는 죄책감에 울었다. 재원이 엄마는 왜 화를 주체할 수 없었을까? 근본적인 원인은 억압된 감정 때문이다.
억압된 감정이 분노를 일으키다
재원이 엄마의 부모는 그녀의 오빠가 의과대학에 가기를 바랐다. 부모님의 심리적 압박 때문인지 오빠는 고등학생이 되어 소위 문제아로 변해갔다. 그녀는 오빠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아 늘 마음을 졸였고, 부모님 눈치를 보면서도 피해보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생각에 화가 나곤 했다. 하지만 이런 집안 분위기에서 자신이 불만을 표현한다는 건 스스로도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억압된 감정은 심리적 갈등을 유발했고, 그로 인한 불안은 꽤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혔다. 그리고 재원이의 어린이집 적응 실패를 촉매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부모가 자기 오빠에게 하듯이 재원이를 키우지는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어린이집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친정 오빠에 대한 억압된 감정이 아이에게 표출되고 만 것이다. 그녀는 상담을 통해 분노의 원인을 깨닫고 나서 조금씩 억압된 감정을 이해하고 해소하면서 아이에 대한 분노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녀가 마음을 잡고 전보다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태도를 취하니 아이도 점점 적응하기 시작했다.
감정을 억압할수록 분노는 활개친다
엄마가 아이에게 화를 내면 안 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럼 엄마는 화를 참다가 화병이 나도 괜찮다는 말인가? 아이를 키우며 화 한 번 안 낸 엄마가 과연 있을까? 분노를 포함한 모든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그것 자체를 탓하면 안 된다.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반복할 때에 화를 내고 소리 지르는 부모도 있고, 바로 손이 올라가는 부모도 있다. 두 경우 모두 분노의 감정은 비슷하지만 그 감정의 정도는 다르다. 그 차이는 감정이 억압된 정도의 차이 때문인 경우가 많다.
감정은 그때그때 적절히 표출하지 못하면 쌓인다. 평소 남편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부부싸움을 하면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봐 제대로 표현 한 번 못 하다가, 그 불만을 자기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표출하는 엄마들이 많다. 그리고 그날 밤 바로 자책하고 무기력감에 빠지고, 다음 날 또 반복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분노의 감정이 일어날 때에는 분노의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억압된 감정 때문에 엉뚱하게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실수를 줄일 수 있다. 감정, 생각, 행동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시작은 감정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감정을 이해하고 관찰하는 것이 분노 관리의 핵심이다. 감정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은 감정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제3자 입장에서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자기 감정에 대해 확신이 없는 엄마
1996년 이탈리아 파르마대학교 지아코모 리촐라티 연구팀에 의해 처음 발견된 ‘거울 신경 세포’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처럼 느끼는 데에 작용하는 세포이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에 작용하는 뉴런은 다른 사람의 그 행동만 봐도 똑같이 반응해서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감 능력과 관련이 있다. 많은 엄마들은 아이가 다친 것만 봐도 마음이 아픈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릴 적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은 엄마는 거울 신경 세포가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아이의 표정과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자기가 한 반응이 적절한 것인지 확신도 없어 혼란스러워 한다. 아기였을 때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보고 웃어주거나 달래주지 않은 적절한 반응을 경험하지 못해, 자기 감정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 감정을 인식하는 것도 안 되고 표현하는 것도 어려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것도 확신이 없다. 결국 오해하고 분노하게 된다. 한 예로, 어떤 상황에서 아이가 울면 ‘얘가 대체 왜 울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나 보고 어쩌라고?’ 등의 생각을 하고, 그때마다 다른 엄마들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이 감정이 아닌 엄마 감정 제대로 알기
그렇다면 나의 어릴 적 애착 형성 여부와 상관없이, 당장 내 아이의 감정을 읽는 데에 도무지 자신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때엔 엄마 자신의 ‘초감정’을 알려고 노력하면 된다. 초감정은 1996년 가족치료 전문가 존 가트맨John Gottman이 정의 내린 개념으로 ‘감정을 해석하는 감정, 감정에 대한 감정, 감정에 대한 생각과 태도’ 등을 말한다. 아이가 우는 건 슬프거나 불편하거나 등의 아이 감정인데, 그걸 본 엄마는 짜증과 분노의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아이에 대한 엄마의 반응은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감정이다. 때문에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공감해주기 위해선 먼저 엄마 자신의 초감정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엄마 자신이 아이에게 하는 감정 표현 중에서 자주 하는 표현, 또는 전혀 하지 않는 표현이 무엇인지 아는 게 도움이 된다. 엄마의 초감정을 알면 ‘아 내가 이럴 때 아이에게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이래서 내가 화를 내는구나, 아이의 감정이 아닌 내 감정 때문에 이러는구나’를 알게 된다. 알고 나면 아이의 감정에 반응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미해결된 감정이 분노를 일으킨다
이러한 초감정은 대부분 성장기 동안 미해결된 감정에서 비롯된다. 어릴 때 해결되지 못한 감정은 초감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자신의 미해결된 감정이 떠오를수록 괴로워 무의식적으로 덮어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덮는다고 덮어질 성격의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짜증을 낼 때 감정을 억압한 엄마는, ‘너가 뭔데 나한테 짜증을 내?’라는 식으로 자기 감정으로 아이의 행동을 본다. 이렇게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닌 엄마 자신이 느끼는 감정으로 아이를 대하면 아이에겐 상처가 될 뿐이다.
미해결된 감정을 해결하려면 어린 시절 자신의 엄마가 언제 화를 냈고, 그때 기분이 어땠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반대로 내가 화낼 때 엄마의 반응은 어땠는지 떠올려봐야 한다. 만약 자신이 어릴 적 울고 있었을 때에 엄마가 야단쳤다면 내 아이가 우는 건 다 받아줘야 할 것 같고, 못 받아주면 미안한 마음이 매우 클 수 있다. 그와는 반대로 내 아이가 우는 꼴을 조금도 견디지 못해 화가 치밀어 오를 수도 있다. 이처럼 초감정을 의식하지 못하면 자신의 감정을 아이의 감정으로 왜곡하고,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주는 것에서 멀어진다.
엄마도 공감받고 위로받고 싶다
엄마로 살다보면 매일 떼쓰는 아이, 날 무시하는 것 같은 남편, 이웃집 엄마와의 자존심 싸움 등 다양한 감정의 홍수를 경험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열등감, 분노, 불안, 수치심 등의 감정을 느낀다. 감정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보통 사람들이 10점 만점에 5점 정도의 분노를 느낀다면, 별일 아닌데 7~8점 정도의 분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남들보다 감정의 홍수에 빠지기 쉽다. 반대로 분노를 2점 정도로 낮게 느끼는 사람은 감정의 홍수에는 잘 빠지지 않을지는 몰라도, 자기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도 무관심할 수 있다.
어떤 심각한 감정이라도 일단 발견하면 벗어날 수 있다. 때문에 자기 감정을 느끼고 관찰함으로써 평소에 자주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감정을 인지하지 않고 살아간다. 이제부터라도 스마트폰 메모장에 오늘 느꼈던 감정들을 쭈욱 써보자. 하루 동안 느낀 감정이 몇 개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감정을 표현하고 정리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감정의 종류를 인지했다면 그 정도를 평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엄마로 살다가 어느 순간 분노의 감정을 느꼈다면, 그 상황에서 느낄 만한 분노인지 파악해보자. 만약 정도를 넘어서는 것 같다면 그 원인을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그 느낌을 충분히 느끼고 어떠한 형태로든 표출하면 된다.
엄마 스스로 억압된 감정을 외면하고 아이 문제라고만 치부하는 것은 그만큼 엄마의 감정이 괴로워 ‘회피’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이 위로받고 공감받고 싶다는 신호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아이로 키우려면 엄마 스스로를 이해하고 정서적으로 건강해져야 한다.
그래도 분노 조절이 힘들다면
하지만 제아무리 엄마 스스로의 감정을 인지하고 수시로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