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부자가족이되기위해
나부터바뀌기로했다
‘이대로만 살면 되지!’
10여 년 전, 큰딸이 4살 무렵, 지방에 첫 집을 마련했다. 둘째를 품어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마음 깊이 감사와 행복이 넘쳤다. 가족 모두 건강하고 집까지 마련했으니, 남편이 벌어오는 돈이 많진 않아도 아껴 살기만 하면 될 터였다. 특별한 꿈이나 미래를 그린 청사진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지금처럼,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면 저절로 잘살게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대로만 살면 되지’라는 욕심 없고 소박한 꿈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 집에 대한 감사함이 시들고 나니 남들 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에게 좋다는 사교육은 죄다 시키면서도 여유롭게 브런치와 쇼핑을 즐기는 동네 엄마, 주말마다 여행을 다니고, 1년에 몇 번씩 해외여행을 떠나는 주변 가족들을 보면서 상대적인 열등감에 시달렸다.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아야 저렇게 살 수 있지?’
정해진 한 달 생활비로는 남들이 다 가는 여행은커녕, 나를 위한 커피 한 잔도 사 마시지 못하고 살던 나는 벌이와 씀씀이가 큰 집과 우리 집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젖어 들었다. 경제적 비교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다른 이들보다 가난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내 자존감이 낮아질수록, 두 딸의 공부에 집착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성공이 내 인생의 성공인 마냥, 강제적으로 책상에 앉혀 두고 공부를 강요했고, 내 생각처럼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화를 내곤 했다. 성공하는 아이로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백여 권에 달하는 육아서를 읽었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외려 내가 아이를 망치고 있는 모습이 드러나 불안감에 떨었다.
무엇보다, 외로웠다.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로 살면서 나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어떤 목표도, 계획도 없이 사는 나의 삶은 목적지 없이 항해하는 배와 같았다. 이런 무방비 상태에서 태풍이라도 만나면 배가 뒤집히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 분명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새로운 기회를 찾아 지방에 있는 집을 팔고 서울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 그동안 지방의 부동산도 가격이 오르긴 했지만, 지방 30평대 아파트 매매금액으로는 서울의 빌라 한 채 사기도 어려워 상가건물에 전세를 얻었다. 2년에 한 번 오르는 전세보증금을 대기도 힘겨웠기에 집을 사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4년 후엔 커 가는 아이들을 위해 좀 더 거주 환경이 나은 곳을 찾아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곳, 중·고등학교 학군도 나름 괜찮은 곳, 나와 남편의 직장에서 멀지 않은 곳을 발품을 팔며 고르고 골랐다. 당시 무리를 해서라도 매매할까 했었으나, 빚이라면 질색이었던 내 성격 때문에 그냥 최소한의 대출을 내고 모은 돈에 맞춰 전세를 얻었다.
그리고 다시 2년의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갈 무렵, 집주인은 전세보증금을 올리고 반전세로 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그 집의 매매가가 2년 새 1억이 올랐고, 덩달아 주변 전세 시세도 1억 가까이 올랐기 때문에 집주인으로선 당연한 요구였다. 이것이 바로 서울살이였다.
집이 없는 설움에 가슴이 답답해 오면서도 아이들이 학교에 잘 다니고 있는데 더 싼 전세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기도 어려웠다.
‘내가 더 열심히 일하면 되지’ 애써 먹먹한 가슴을 달래며 대출을 내어 보증금을 올려 주고, 매월 일정 금액을 월세로 내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6년 전 매매하고 온 지방 아파트 역시 1억이나 올랐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의 욕심으로 남편을 설득하여 처음 장만했던 집을 팔고 서울로 이사를 했는데, 결국 전세보증금을 올려 주기 위해 대출을 내어 은행 이자를 내면서 동시에 집주인에게는 월세를 내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 당시 지방 아파트의 전세가가 매매가의 90%였는데, 집을 팔지 않고 전세로 주고 왔었더라면? 2년 전, 전세로 집을 얻지 않고 무리한 대출을 내서라도 집을 샀었더라면?’
그제야 내가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회는 아무 소용없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상해한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도, 하늘에서 내 집 장만할 돈이 뚝 하고 내려오는 것도 아니었다.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던 그 날 이후 바로 돈 공부를 시작했다. 재테크 관련 책을 수십 권 읽고, 여기저기 부동산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경제 신문을 구독하여 읽기 시작했다. ‘나는 돈이 붙는 자석이다’라고 매일 쓰고 외치면서 부자 마인드를 키워 나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니, 시간을 내어 호재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지역의 부동산에 들러 집을 보러 다녔다. 몇 개월 동안 서른 군데 이상의 동네를 보러 다니다 보니, 조금씩 돈이 될 만한 집이 보이기 시작했고, 매일 주가를 읽다 보니 저평가된 기업의 주식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돈 공부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3,400만 원의 종잣돈으로 1억 이상의 시세 차익을 올렸고, 내 아파트를 분양받았으며, 주식에서도 200%의 수익을 올렸다.
누군가에게 1억이란 그다지 큰돈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대출이란 꿈도 못 꾸고, 남편이 버는 돈에서 아껴 생활하며, 전세 인상금과 월세, 대출 이자를 대느라 허덕이며 아등바등 살던 나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큰돈이었다.
가족의 행복과 성공은 누구나 바라는 꿈이다. 사랑하는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고 싶은 것은 어느 부모나 같은 마음일 것이다. 부모인 내가 늙어 경제활동이 힘들어질 때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것도 모두가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가족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서는 돈의 여유가 꼭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장의 급여 외에 다른 돈벌이 수단이 없다면? 부부가 함께 일해 당장 수입을 늘려야 하고, 투자를 통해 가진 돈을 불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단기간 돈 공부를 통해 상대적으로 큰 이익을 거두기까지에는 10년간의 전업주부 생활을 정리하고 맞벌이를 하며 종잣돈을 모으고, 동시에 낮아질 대로 낮아진 내 자존감을 높이는 노력과 엄마인 나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이 밑받침되었다. 이러한 노력이 내면의 힘이 되어 단시간에 금전적인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부자 가족이 되는 토석을 마련할 수 있었다.
가족이 바로 서고 제대로 된 부자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엄마인 나의 꿈을 찾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과거의 삶에 얽매이고 현재의 삶에 불만을 가져서는 아무런 발전이 없다.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신뢰’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믿음과 사랑이 굳건해야 정확하고 자신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떠한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좋은 습관을 지니면, 물려받은 재산보다 더 값어치 있는 자산이 되어 계속 부를 쌓아나갈 수 있다.
《엄마의 부자 습관》은 크게 7장으로 나누어 1, 2장은 부자가 될 수 있는 마인드를 갖추는 방법을 설명하였으며, 3장부터 6장까지는 부자의 행동 습관을 크게 4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그리고 7장과 부록에서는 구체적으로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부자가 되는 생활 습관과 소액 부동산 & 주식 투자 요령에 대해 다루고 있다.
부디 나의 경험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행복한 부자 가족이 되는 데 마중물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17년 첫눈 오는 날에
저자 노정화
Prologue현명한 부자 가족이 되기 위해 나부터 바뀌기로 했다
Chapter01부자 마인드를 장착하라
1 | 부자 가족이 되어야 하는 절실한 이유를 찾아라
2 | 100세 시대, 노후를 준비하라
3 | 부자가 되려면 생각의 뿌리부터 바꿔라
4 | 부자의 행동 습관을 익혀라
5 | 부자 가족의 기준을 설정하라
6 |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라
Chapter 02 부자 마인드를 다져라
1 | 엄마의 자존감은 부자 가족의 우선 조건이다
2 | 계속하여 다음 목표를 세워라
3 | 당신의 꿈을 구체화하라
4 | 명품가방보다 경험을 사라
5 |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라
Chapter03 부자의 행동 습관 1 :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라
1 |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라
2 | 하루를 계획하는 습관을 들여라
3 | 나만의 2시간을 남겨 놓아라
Chapter04 부자의 행동 습관 2 :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즐겨라
1 | 행복을 부르는 감사 일기를 써라
2 | 자존감을 키우는 칭찬 일기를 써라
3 | 꿈을 찾을 수 있는 미래 일기를 써라
4 | 글쓰기로 자신을 성장시켜라
Chapter05부자의 행동 습관 3 : 책 읽기를 즐겨라
1 | 독서로 나를 깨우쳐라
2 | 독서를 생활화하는 습관을 길러라
: :추천 독서 리스트
Chapter06 부자의 행동 습관 4 : 가족을 최우선으로 하라
1 | 아이에게 꿈꾸는 모습을 보여 주어라
2 | 가족 모두의 꿈을 시각화하라
: :꿈의 보물 지도 만들기
3 | 현명하게 비교하라
4 | 긍정의 말 습관을 길러라
5 | 가족 간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라
6 | 4차 산업혁명 시대, 부모가 깨어 있어야 한다
Chapter07 부자 습관을 생활에 적용하라
1 | 취미생활을 재테크로 바꾸자
2 | 부자가 되기 위해 명확한 목표를 세우자
3 | 대입 시험을 보듯 경제 공부를 하라
4 | 아이에게 경제 공부를 시켜라
5 | 돈 관리 습관이 부자를 만든다
6 | 집 안을 미니멀하게 유지하라
7 | 돈 쓰는 법을 바꾸자
부록 : 투자에 도전하라
1 | 실전 부동산 소액 투자 노하우
2 | 돈 되는 분양권, 아는 만큼 기회가 온다
3 | 실전 주식소액 투자 노하우
Epilogue한 번뿐인 인생! 후회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돈이 있어야 하는 이유 : 경제적 여유는 가족의 행복을 불러온다
부자가 되어야만 행복한 인생,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돈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먹고 입고 자는 것이 어느 정도 여유 있었으면 좋겠고, 좋아하는 취미 생활 하나쯤은 즐겼으면 좋겠다. 부모님이 더 늙으시기 전에 함께 모시고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싶고, 노후에는 편안하고 풍족하게 보내고 싶다. 무엇보다 아이의 꿈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해 주고 싶다. 아이의 재능이 보이는데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포기하라고 하고 싶지 않다.
아마도 이것은 아이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바라는 소박한 여유가 있는 삶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엄마들은 벤치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울 때였다. 한 아이의 엄마가 아이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 선생님께서 아이가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며 전공으로 시켜 보길 권했다고 했다. 우리는 아이가 어린 나이에 재능을 찾게 된 것을 축하하며 칭찬과 부러움을 쏟아 냈다. 그러나 정작 아이 엄마는 “우리는 피아노를 전공 시킬 형편이 되지 않으니 공부로 나가게 해야죠.” 하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의 재능이 보이는데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은 부모로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다 살아’, ‘제 밥그릇은 다 타고난다더라’ 하며 초연한 척하더라도 실상 우리가 원하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금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국토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모로부터 돈이나 집을 물려받지 않는 한, 2016년 기준 일반적인 소득의 가족이 서울에서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먹고 쓰는 데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아도 16년이 걸린다고 한다. 기본 생활비에 애한테 들어가는 양육비를 추가한다면 그 기간은 얼마나 어떻게 늘어날지 모른다.
다행히도 현재는 살뜰히 모은 돈으로 집을 마련하고 큰 불편 없이 가족 모두가 잘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돈을 벌어오는 가장이 큰 병이나 사고로 일을 할 수 없다면 순식간에 가족의 생계가 곤란해지기 십상이다. 만약 부모님이 큰 병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 하는 데 도움을 드릴 수 없다면? 전세보증금 5천만 원을 올려줄 돈이 없어 변두리로 이사 가야 한다면? 앞서 아이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녀에게 공부나 예체능에 뚜렷한 소질이 보이는데도 금전적 여유가 없어서 지원해 줄 수 없다면? 과연 우리 가족의기본적인 의·식·주가 충족된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여성 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 라디오 프로그램 중 ‘위기의 부부들’이라는 코너에서는 매주 이혼을 생각하는 부부의 사연들이 소개되고 있다. 사연을 듣다 보면 성격 차이나 외도의 문제로 이혼을 결심한 경우도 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이 문제의 발단이 되어 사이가 나빠진 부부도 많았다. 열심히 노력하긴 했으나 남편의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 어쩔 수 없이 이혼한 부부, 남편이 생활비를 너무 적게 주어 아끼고 아껴도 최소한의 교육비와 식비조차 부족한지라 엄마인 자신은 만 원짜리 옷 한 벌도 살 수 없어 결국 이혼을 결심한 아내, 출산과 육아로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고 전업으로 양육 중인데 돈을 벌어 오지 않는다고 아내를 무시하는 남편 등 부족한 돈으로 인해 행복은커녕 가정 자체가 존속되지 못하는 경우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실제로 노동연구원에서 2014년에 부부 4,004쌍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남편의 근로소득이 낮을수록 이혼 위험이 커지고, 근로소득이 높을수록 이혼 위험이 낮아졌다. 남편의 소득이 전혀 없을 때와 비교했을 때 월 소득이 300만 원인 경우 이혼 위험은 3분의 1로 떨어졌고, 월 소득이 1,000만 원에 이르면 이혼할 위험이 제로 수준이라고 한다. 월 소득이 1,000만 원 이상인 가정이라고 해도 부부간의 성격 문제나 고부갈등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여러 문제와 갈등이 있더라도 먹고사는 기초적인 생계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그만큼 이혼 위험이 낮아진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린스턴 대학의 대니얼 카너먼 Daniel Kahneman 교수가 미국 내 거주자 45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 결과 역시 이를 반증하는데, 연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삶의 만족도와 정서적 웰빙 수준이 높아진다고 한다. 반대로 소득 수준이 낮은 경우 이혼, 질병, 외로움으로 인한 정서적 고통은 배가 된다고 하였다.
내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이유 역시 결국 돈 때문이었다. 당시 친언니가 서울에서 아동복 온라인 쇼핑몰을 하고 있었는데 애 셋을 키우면서 작게 시작한 쇼핑몰의 매출이 점차 올라서 수입이 꽤 좋았다. 이미 매출이 안정된 상태였기에, 언니를 도와 쇼핑몰을 함께 꾸리며 규모를 키워 보기로 했다. 드디어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로 살면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벗어나, 경제적인 여유를 얻을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설레는 마음에 남편을 설득하여 서울로 발령 신청을 내도록 했고, 서울 발령이 결정되자마자 큰 꿈을 안고 서울로 이사를 왔다.
지방 아파트를 매매한 돈으로는 서울의 살기 좋은 아파트 전세는 물론이거니와 빌라 한 채 사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가진 돈에 맞춰 서울에서 살게 된 첫 집이 왁자지껄한 먹자골목의 상가건물 5층이었다. 그곳에 짐을 푼 뒤, 우리 집 방 하나를 사무실로 하여 언니와 함께 일을 시작했다. 매일 포장을 직접 하느라 몸은 고되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그런데 불과 몇 달 후 어이없는 일이 생겼다. 언니가 사는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1억이나 올려 달라고 한 것이다. 당시 언니네 가족 다섯은 25평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식구 수가 있으니 전세보증금이 낮은 좁은 평수로 이사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결국, 언니는 쇼핑몰을 팔아 보증금을 올려 주기로 마음을 먹고 내게 동의를 구해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 일을 하며 악화된 허리 통증을 고치느라 몇 달을 보내고 정신을 차려 보니, 언니와 일을 하면서 모아 놓은 돈은 치료를 위해 다 써버렸고, 남편의 월급은 그대로인데, 지방보다 훨씬 비싼 물가 때문에 지출은 많이 늘어난 상황이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기는커녕, 점점 비어 가는 통장을 보며 한숨을 쉬던 나는 결국 본격적으로 내 일을 하기로 했다. 그 외에는 현재의 삶을 더 낫게 할 대책이 없었다.
처음에 생각한 일은 학습지 교사였다. 우리 아이를 가르치는 학습지 선생님의 수업을 보니 나도 저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녁 시간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어린 두 딸을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어렵사리 방과후강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차츰, 그 일에서 남편의 월급 부럽지 않은 소득을 거둘 수 있었다. 그렇게 상가건물에서 4년을 살면서 돈을 모은 끝에, 드디어 커 가는 아이들을 위해 좀 더 거주 환경이 나은 곳을 찾아 이사할 수 있었다. 그토록 원하던 경제적인 여유에 드디어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내게는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가 절실했다. 우리 가족이 편안하고 안전한 집에서 살길 바랐고, 아이들에게 안정된 교육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꿈꾸고 싶었다. 가족의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조건이, 내게는 돈이었다. 개인마다 그 이유는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내겐 왜 부자 가족이 되어야 하는지 이유가 보이는 순간, 경제적 여유에 다가갈 수 있었다. 부자 가족이 되는 첫걸음은, 내가 왜 부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명확히 체득한 것이다.
‘분명히 열심히 돈을 벌고 있는데도 남은 돈이 없다, 절약은 하는데 저축액은 늘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면, 내가 왜 돈이 필요한지, 그 이유부터 명확히 하자. 문제를 파악하고 절실함을 가져야 변화가 시작된다.
100세를 넘어 150세 시대 :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아주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스무 살에 만나 젊은 시절 좋은 추억을 함께 나눈 친구들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면서 얼굴을 못 본 지 10년 만에 만났으니 나눌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저녁을 먹고 카페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데, 건너편 테이블에 20대 아가씨 셋이 우리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 친구가 “참 좋을 때다. 우리는 이제 늙었어.”라고 말했다. 친구의 말에 흠칫 놀란 내가 “우리가 뭐가 늙었어?”라고 하자, 또 다른 친구가 “우리 늙었지.” 하며 40대가 늙었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얘기했다. 나는 친구들의 말에 쉽사리 동의하지 못했다.
내게는 2년째 이어가는 모임이 있다. 첫 책《방과후교사 이렇게 성공하라》라온북를 출간한 뒤, 광화문 교보문고의 저자 강연을 앞두고 강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정찬근 선생님의 아카데미 수업을 들으며 시작된 모임이다. 열정이 가득했던 우리는 수업이 끝난 후에도 선생님과 다섯 명의 수강생이 한 달에 한 번씩 만남을 유지하며 서로 따뜻한 조언을 나누고 있다.
우리 다섯의 구성은 다양하다. 그리고 나를 제외하고 네 분은 50대 후반에서 60대다. 20대보다 더 열정적이며 도전적으로 사시는 이분들을 보면 나이가 문제가 되지 않음을 느낀다. 20대라도 꿈이 없고 열정이 없다면 청춘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예순 살, 일흔 살이 넘었더라도 열정과 꿈이 있다면 청춘이다. 이분들을 만나면 항상 도전을 얘기하고 꿈을 얘기하신다. 말에 힘이 있고 늘 에너지가 넘쳐난다. 친구들이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우리의 나이에 이제 늙었다며 인생 다 산 듯 한숨을 내쉬는 것에 내가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은 이처럼 나이와는 상관없이 열정을 다하는 분들의 영향이 크다.
몇 주 전 신문에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본 인류 수명… 110세는 현실 150세도 가능>2017.11.1. 매일경제라는 타이틀이 한 면을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7 노벨 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에 참석한 석학들은 줄기세포, 장내 미생물, 후성유전학, 유전자 치료 등 인간의 장수를 이끄는 과학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인류 수명을 늘릴 것으로 보고, ‘인류의 기대수명이 110세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100세 이후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DNA 연구로 노화 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고 있다며 우리 몸속에 있는 젊은 세포와 늙은 세포의 차이점에 대해 명확히 알게 되면서 노화를 되돌리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다른 면의 기사 타이틀은 <무슨 병에 걸릴지… 100달러면 알 수 있는 시대 온다>2017.11.1. 매일경제였다. 유전자 분석으로 미래에 어떤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지, 어떤 약을 썼을 때 효과적인지 알려 주고, 운동으로 살을 빼는 방법부터, 심지어는 저녁 메뉴와 와인까지도 추천해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스마트폰에 넣고 다니는 세상이 10년 안에 도래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수명을 늘리고 있으며, 이에 따라 나이에 대한 기준 역시 바뀌고 있다. 2015년 UN에서는 새로운 연령 기준을 제시하였다. 인류의 체질과 평균 수명 등을 고려해 생애주기를 5단계로 나눈 것으로 다음과 같다.
· 0세~17세까지는 미성년자
· 18세~65세까지는 청년
· 66세~79세까지는 중년
· 80세~99세까지는 노년
· 100세 이후는 장수 노인
이 연령 기준에 따르면 나와 친구들은 청년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다. 늙었다고 한숨지을 때가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내 인생의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백 년을 살아보니》덴 스토리를 쓴 김형석 교수님은 2018년 현재 100세를 바라보시지만, 인생의 노른자 시기를 65세~75세라고 하시면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60세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셨다. ‘이 나이에야 생각이 깊어지고, 행복이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50대에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80세 이후에도 일관성 있고 보람된 노년의 삶을 살 수 있지만, 막연하게 50대를 보낸 후 70대에 서둘러 노년을 준비하려고 하면 남는 게 없는 삶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셨다.
거기에 한술 더해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넘어 110세, 150세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기나긴 노후를 안정되게 보내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기반도 중요하고 가정과 친구도 중요하다. 그리고 인생을 무료하게 지내지 않기 위해서는 평생 현역으로 지낼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
《노후, 돈 걱정 없이 살고 싶다》덴 스토리에서 은퇴연구소장인 백정선 저자는 노후를 위해 ‘자식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은퇴 준비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는 질문에는 ‘은퇴하지 말라’고 답한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주된 직장에서 은퇴하는 평균 연령은 53~54세에 불과한데, 노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은퇴하고 자녀 교육에 몰방하게 되면 부모의 노후는 빈곤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녀를 교육할 때 부모는 자신의 노후보다는 자녀의 성공과 앞날을 먼저 염려하며 가진 자금을 모두 쏟아붓는데, 그 결과 부모가 제대로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하면 자녀의 미래를 옭아매게 된다는 것이다. 대책 없이 교육비를 펑펑 쓰다가 나중에 당연한 것처럼 자녀에게 손을 내미는 부모보다는, 처음부터 노후 대책을 세워놓고 알뜰하게 살아가는 부모가 자녀 입장에서는 더 훌륭한 부모다.
따라서 저자는 행복한 노후를 위해 퇴직 후 현실적인 다섯 가지 계획을 제시한다.
1단계 : 생활비의 규모를 최대한 줄인다
2단계 : 평생 할 일을 찾고, 재취업할 곳을 알아본다
3단계 : 아내에게 도움을 청한다
4단계 : 퇴직금을 금융자산에 묶어 놓는다
5단계 : 묻어 두었던 꿈을 찾고 이룬다
지금의 안락함에 현혹이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닥칠 노후를 생각하여 지금,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부자 가족을 위한 준비를 할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부자를 만든다
예전부터 알던 동생과 통화를 했다. 동생은 안부 인사 몇 마디를 나누자마자 매달 마이너스 생활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은 한정되어 있는데, 아이들이 커 갈수록 사교육비가 늘어서 도무지 감당이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 반 친구들이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을 보고 우리도 가면 안 되냐고 조르는데, 남들은 매해 가는 해외여행 한 번 갈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속상하다고 하소연했다. 비단 그 동생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아내 CEO 가정을 경영하라》 라온북의 최미영 저자는 넉넉지 못한 가정의 장녀였다. 20대에 무일푼이던 남편을 만나 결혼한 그녀는 보증금 350만 원의 지하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하여, 셋째를 출산할 때까지 반지하 전세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철저한 미래 설계를 통해 당시 20만 원에 불과했던 남편 월급의 70%를 저축했다고 했다. 반찬은 주로 늦은 시간 마트에서 떨이로 싸게 파는 식재료를 사서 만들었고, 아이들 장난감과 책은 집 안의 주방기구를 활용하거나 중고로 싸게 사며 생활비를 줄였다. 당장의 여유로움보다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2년이나 3년의 짧은 적금보다는 10년의 장기 적금을 이용했다. 이렇게 10년 동안 모은 종잣돈이 재테크의 씨앗이 되어 지금은 건물주가 되었고, 자녀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낼 정도로 경제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마트 대신 부동산에 간다》한국경제신문사의 김유라 저자도 아들 셋을 가진 전업주부이다. 그녀는 2013년 짠돌이 카페에서 개최한 ‘슈퍼 짠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을 정도로 생활비를 아껴가며 아들 셋을 키웠다. 피나는 절약으로 종잣돈을 마련하고, 고3 수험생보다 더한 경제 공부와 부동산 공부로 결혼 6년 만에 아파트 15채를 보유하게 되었다.
한숨을 쉬고 있는 동생에게 최미영 씨와 김유라 씨의 얘기를 해 주었다. 그녀들의 책을 꼭 읽어 보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으니 일자리를 구해 보라고 조언했다. 나도 10년을 전업주부로 지낸 뒤 다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몹시 두려웠지만 일단 부딪히니 길이 생기더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방과후강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내가 힘껏 도와주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 동생은 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