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ITAGARI NA SHOJO NO JISATSU WO JYAMA SHITE, ASOBI NI TSURETEIKU HANASHI.
by Seika Ryogen
Copyright © 2021 by Seika Ryogen
Original Japanese edition published by Takarajimasha, Inc.
Korean translation rights arranged with Takarajimasha, Inc.
Through JM Contents Agency Co., Korea.
Korean translation rights © 2022 by BY4M STUDIO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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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 본문 괄호 안의 설명은 옮긴이 주입니다.
어떤 소녀의 자살을 방해하고 있다.
그 소녀는 자살하고 싶어 한다.
그 소녀는 언제나 혼자다.
그 소녀는 어딘가 나와 닮아 있다.
분명 나처럼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일 것이다.
방해하지 않는 게 그녀를 위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자살을 포기할 때까지 계속 방해할 것이다.
자살을 방해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자살 현장에 먼저 가 있다가 소녀가 오면
데리고 놀러 가기만 하면 된다.
그날은 너무나 화창했다. 하늘이 놀랄 만큼 푸르렀다. 만약 스스로 죽을 날을 정할 수 있다면 나는 이런 날을 선택하겠다.
4월의 어느 날, 나는 아침부터 역 플랫폼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상행선 전철의 뒤쪽 방향 벤치에 앉아 하품을 하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신주쿠역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역이라 도내라고는 해도 꽤 외진 곳이다. 상행열차와 하행열차를 같은 곳에서 타는 섬식 플랫폼 하나에 개찰구도 한 군데뿐인 역이다. 급행열차는 정차하지 않고 통과하며 타고 내릴 때는 직접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린다.
이런 자그마한 역이지만 출퇴근 시간대에는 도심행 전철을 타려는 회사원과 학생들로 꽤 북적거린다. 눈앞에 있는 중학생 무리가 시끄럽게 굴어 신경에 거슬린다. 그 옆에선 몹시 화려하고 짙게 화장한 여고생들이 귀가 따가울 만큼 큰 소리로 떠들어대고 있다. 게다가 고등학생 커플이 풋풋함을 과시하듯 청춘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둬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에 깔린 인생의 레일을 순조롭게 걷고 있는 그들이 눈부셔 보였다. 젊음이 눈부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들에게 질투가 나서 못 견디겠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고등학교 시절의 나’와 ‘눈앞에 있는 그들’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나의 학창 시절은 비참했다. 여자친구는커녕 친구라고 부를 만한 존재조차 없었다. 딱히 좋아서 혼자 다녔던 건 아니다. 다만 누군가와 친해질 마음이 도통 들지 않았다. 이런 청춘 콤플렉스가 굳이 만들어낸 정도라면 어떻게든 구원의 여지가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회사원들을 봐도 한숨이 나오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 회사원들은 모두 깔끔하고 단정한 머리에 주름 하나 없이 반듯한 네이비 정장을 매끈하게 차려입었다. 그들의 등에서는 사회인 특유의 기품이 느껴졌다. 그에 비해 나는 어떤가. 마구 자라 부스스한 머리, 꾸깃꾸깃한 검은 셔츠에 무릎 언저리가 허옇게 바랜 감색 청바지, 고등학교 입학 때 산 낡아빠진 검정 운동화.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대학에 가지 않았고 취직도 못 했다. 올해로 스무 살이 된 나의 인생은 레일에서 완전히 탈선해 있었다.
— 어떻게 하면 저 사람들처럼 살 수 있을까?
학생 시절부터 수없이 생각했고, 의아했다. 하지만 고개를 갸웃해본들 언제나 똑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 인생을 살 가능성은 애초부터 눈곱만큼도 없었어.’
선택을 잘못한 게 아니라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인생의 레일이 틀어져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선택을 잘하면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건 게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어떤 선택을 하든 비극으로 끝나는 인생도 있고 아예 선택지 자체가 없는 인생도 있다. 나는 그런 인생을 뽑은 것이다. 아무리 애써도 눈앞에 있는 학생들이나 회사원들처럼 될 수 없었다. 게다가 새삼 이런 일로 고민해봐야 이미 늦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몇 번이나 되풀이해도 그녀의 자살을 막을 방법을 모르겠다. 소녀가 사람들이 서 있는 줄에서 벗어나 다른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 어떻게 해야 자살을 포기할까.
플랫폼을 걸어가는 한 소녀를 눈으로 좇으며 생각한다.
왜 저런 곳을 걸어가는 걸까. 그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그녀가 멈춰 선 곳은 플랫폼 맨 끝, 상행열차가 들어오는 방향이다. 선로로 뛰어들어 자살하기에 가장 적당한 위치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제 곧 그녀가 열차가 들어오는 선로로 뛰어들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시선 끝에 담긴 소녀는 자살하려고 그곳에 서 있다.
그녀의 이름은 이치노세 쓰키미. 내가 항상 자살을 방해하고 있는, 죽고 싶어 하는 소녀다. 중학교 3학년생인 그녀는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카락을 등까지 늘어뜨리고 있고, 또래 여학생들에 비해 키가 크다. 하지만 가냘픈 몸매와 투명해 보이는 하얀 피부는 손대면 부서질 듯 위태로움이 느껴진다. 반듯한 얼굴은 언뜻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군데군데 아이 같은 모습이 남아 있다. 외모만 보자면 그림을 그린 듯이 예쁜 소녀로 반에서도 인기가 많을 것 같다. 한마디로 ‘자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다. 그렇게 자살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녀가 오늘 이 자리에서 자살한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방해하기 위해 아침부터 이곳에 와 있다. 이치노세는 언제나 사복 차림이다. 교복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흰색 카디건에 민소매 티셔츠와 옅은 핑크빛 롱스커트. 마음에 드는 옷차림인지 자살할 때 늘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덕분에 그녀를 찾아내기가 무척 쉽다.
이치노세를 지켜보고 있는데 곧 급행열차가 통과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7시 15분. 이거다. 그녀는 이제 들어오는 열차 앞으로 뛰어들어 자살한다.
역 내 전광판에 “열차가 통과합니다. 주의하십시오”라는 안내 문구가 뜨는 걸 보고 벤치에서 일어섰다. 이치노세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며 등 뒤로 다가갔다. 그녀는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를 바라보느라 내가 다가가는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다.
나와 이치노세를 제외하고 플랫폼 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조금 전 흘러나온 안내 방송을 귀 기울여 들은 사람은 우리뿐일지도 모른다.
열차가 플랫폼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선로 쪽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기회는 단 한 번,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걸음을 재촉해 그녀와의 거리를 좁혀갔다. 열차가 홈으로 들어오기 직전, 이치노세가 노란색 선을 넘었다.
그 순간 커다란 경적 소리가 울렸다. 반사적으로 귀를 막고 싶었다. 경적 소리에 사람들의 대화가 끊기며 전철 외에는 시간이 멈춘 듯했다. 전철이 굉음을 울리며 맹렬한 속도로 눈앞을 지나갔다. 그 바람의 힘에 이치노세의 긴 머리카락이 허공으로 흩날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열차가 지나가고 굉음 또한 멀어져 갔다.
이치노세는 천천히 뒤돌아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손을 더듬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내 얼굴을 확인한 이치노세의 표정이 무척 못마땅해 보였다. 굉음이 멀어져 가자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듯 플랫폼 위에서 사람들의 대화가 살아났다.
“나 너무 놀랐어”, “뭘 그리 쫄고 그러냐?” 웅성거리는 중학생 무리, “뭐야? 뭐야? 자살?”이라며 호들갑스럽게 떠드는 여고생들의 대화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와 시선을 무시하고 “진짜 위험했어”라고 나무라듯 말했다. 내게 팔을 잡힌 채로 이치노세가 입을 열었다.
“곧 죽을 수 있었는데.”
이치노세는 팔을 붙잡힌 채 삐친 듯이 말했다. 아니, 분명 삐쳐 있다. 그녀가 또렷하고 커다란 눈동자로 노려보았지만 무섭기는커녕, 나를 올려다보는 눈이 오히려 귀엽기만 하다.
“이제 그만 자살을 포기할 생각은 안 드나?”
내 말에 이치노세는 질린다는 표정이다. 외모는 어른스럽지만 양 볼을 볼록하게 부풀리거나 아이처럼 토라지기도 잘한다. 나처럼 대화에 서툰 사람이 아니어도 상대하기 꽤나 버거울 듯하다.
그녀가 자살을 시도한 건 이번이 열두 번째다. 최근 4개월 동안 열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고 그때마다 내가 방해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살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렇게 나를 애먹이고 있다.
“이걸로 널 구한 횟수가 열두 번이야. 계속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 만도 한데.”
“구한 횟수가 아니라 방해한 횟수죠.”
이치노세는 고개를 돌리며 작은 목소리로 “구해주지 않아도 된다는데 그러네”라고 덧붙였다.
매번 이런 식이다. 기껏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왔는데 그녀는 자살을 방해받았다고만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 자신조차 방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데다, 그 덕에 방해할 때마다 미움을 사고 있다.
“아무리 방해해도 소용없어요.”
이치노세는 힘주어 말하고는 잡고 있는 내 손을 뿌리치더니 도망치듯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봐, 기다려!” 외치며 쫓아갔지만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또 한 번 팔을 붙잡아 멈춰 세울까도 생각했으나 자칫 거칠게 다뤘다가는 그녀의 가느다란 팔이 부러질 것만 같다. 뻗으려던 손을 거두고 지금까지처럼 무의미한 설득을 계속했다.
“자살을 그만두겠다고 할 때까지 계속 방해할 거니까.”
“이제 대놓고 방해하려고요?”
“어, 단념할 때까지 몇 번이고 방해해줄게.”
한숨에 가까운 그녀의 반응에 웃으며 대답했지만 싸한 분위기는 풀리지 않았다.
“언제까지 계속할 순 없을걸요. 오늘만 해도 방해하는 타이밍이 늦었잖아요.”
“딱히 아슬아슬했던 건 아냐. 전철이 들어오기 전부터 보고 있었는걸.”
평소에는 이치노세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말을 걸었지만 오늘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는 척하지 않았다. 눈앞을 통과하는 열차를 보고 마음을 바꿔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결과는 신통찮았다. 게다가 아무리 그녀의 행동을 파악하고 있다 해도 이렇게 심장이 쪼그라드는 일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보고 있었다면 더 빨리 말을 걸지.”
“혹시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나?”
농담을 섞어 말하자 이치노세는 고개를 떨구며 시선을 돌렸다. 틀림없이 ‘그럴 리가요!’ 하고 발끈할 줄 알았는데 약간 의외였다. 반발하는 것도 우습다고 생각한 걸까.
“그보다도, 대체 내 행동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화제를 돌리듯이 화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녀가 항상 정해진 시각, 같은 장소에서 자살을 시도한 게 아니다. 오늘만 해도 예전과 다른 시간대에 자살을 감행하려 했다. 그런데도 자살하려 할 때마다 내가 앞질러 와 있으니 그녀로서는 의아할 만하다.
“또 그 질문이군. 하긴 이제는 알려줘야겠지?”
손을 턱에 대고 진지한 시선을 보내자, 눈을 맞추려고도 하지 않던 그녀가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자살을 포기하면 알려줄게”라면서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인지 이번 대답은 예상 밖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거드름을 피우며 “그건 말이지” 하고 입을 열었다. 그녀는 ‘그건?’ 하고 솔깃한 표정으로 뚫어져라 쳐다봤다. 평소에는 쌀쌀맞게 굴던 이치노세가 이렇게까지 관심을 보이는 일은 흔치 않다. 그녀의 동그란 눈동자에서 순수하면서도 측은한 느낌이 전해져 왔지만 내 대답은 오늘도 같았다.
“역시 자살을 포기하면 그때 알려주지.”
이 말을 내뱉은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서 느껴지던 순수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싸늘한 표정으로 “아, 이제 됐어요. 갈게요” 하고 내뱉더니 다시 도망치듯이 걸어갔다. 조금은 갈등하는 척이라도 해줘.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그러니까, 자살을 그만두면 말해준다잖아.”
계속 설득해도 걸음만 빨라질 뿐 아무 대답이 없다. 그녀를 놓치지 않으려고 바짝 뒤쫓아가며 주머니에서 은빛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그건 그렇고, 가고 싶은 곳은 생각해봤어?”
그녀의 등 뒤에 대고 묻자 “그런 데가 있을 리 없잖아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번에 만날 때는 가고 싶은 곳을 생각해 오겠다고 약속했잖아.”
“약속한 적 없고요, 이제 곧 죽을 사람이 가고 싶은 데가 있겠냐고요!”
“무슨. 어딘가 있을 거 아냐. 적어도 마지막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라든가.”
새침하게 쏘아붙이는 그녀의 태도에 어이없어하는데, 오히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떡할 건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데려가 주려고.”
기분 전환은 될 거라고 예전부터 제안했지만 그녀가 대답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치노세가 내 쪽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저세상으로 가고 싶은데요. 데리고 가주시죠.”
미소가 섞인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그러자 그녀가 제 나이에 걸맞은 천진한 여자아이로 보였다. 하지만 허를 찔려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내게 “가고 싶은 곳을 말했으니까 뭐라고 좀 해봐요”라고 투덜거리며 여느 때의 언짢은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그녀는 비겁하게 가끔 이런 표정을 지어 보인다. 누구는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자살을 방해하고 있는데도 그걸 무시하고 단념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럴 때마다 내가 무의미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회의가 든다. 하지만 이런 천진한 표정을 지어 보일 때면 언젠가 자살을 포기해주지 않을까, 하고 또 희망을 품고 만다.
“나를 살인범으로 만들 생각이야?”
“저세상으로 갈 수 없다면 이만 가볼게요.”
쌩한 태도로 과장스럽게 토라지는 모습이 역시 아이 같다.
하지만 이대로 혼자 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녀에겐 비밀로 하고 있지만, 행여 지금 바로 다시 자살을 시도하면 내가 대처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한번 자살을 방해하고 나면 어딘가 데리고 놀러 가야 한다.
“두 시간은 나와 같이 있어 줘야겠어. 안 그럼 곤란하거든.”
“저기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통 모르겠거든요.”
이치노세가 의아해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만 그녀에게 사정을 이야기해봐야 더 혼란스러워할 게 분명하다. 나는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 말을 이어나갔다.
“어차피 너 집에 가고 싶지도 않잖아?”
정곡을 찔렸는지 이치노세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다. 그녀가 집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건 지금까지 그녀의 행동을 보고 알아차렸다.
이치노세와 처음 만났을 때는 워낙 경계가 심해서 내 말을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냥 뒤를 따라갔는데 그녀는 집에 돌아가려 하지 않고, 공원 그네에 앉아 있거나 강을 바라보며 무료한 듯 시간을 보냈다. 돈도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자동판매기 앞에 서서 동전을 세는 모습을 몇 번인가 목격했다. 공원 수도꼭지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그녀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캔 주스를 사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후 패밀리 레스토랑에도 가끔 가게 되면서 지금은 자살을 방해한 후 어딘가 데리고 가곤 한다. 다만 자살을 방해받은 직후에는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아서 매번 설득하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오늘은 어디 가고 싶어?”
“……가고 싶은 데, 그런 거 없다니까요.”
지르퉁한 말투였지만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정말 가고 싶지 않으면 단호하게 거절하거나 무시하기 일쑤였으니까. 그건 지금까지의 실랑이를 통해 이미 다 파악했다. 순순히 내 말에 따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나를 따라오면 뭔가를 먹을 수 있어 진짜로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침은 먹었어?”
“안 먹었어요.”
“그럼 뭐 좀 먹으러 갈까.”
말만 해서는 따라오지 않을 게 분명해서 여전히 고개를 떨구고 있는 그녀의 손을 아프지 않게 가만히 잡았다. 나와 비교하면 작고 여린 손이지만 무척 따뜻하다. 만약 아까 자살을 방해하지 못했더라면 이 손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자, 가자고.”
그렇게 말하고 그녀의 손을 이끌자 고개를 끄덕이며 내 뒤를 따라왔다.
이런 식으로 나는 언제나 이치노세의 자살을 방해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방해해도 그녀는 자살을 포기하지 않는다. 몇 주 후, 빠를 때는 며칠 후에 다시 자살을 시도했다.
그녀가 자살을 그만둘 때까지 몇 번이든 계속 방해할 생각이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불치병에 걸린 건 아니다. 어떤 시계를 손에 넣는 대가로, 나는 수명을 포기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진짜다.
나는 수명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를 손에 넣었다.
“아이바 준 씨. 당신의 수명을 제게 넘겨주시겠어요?”
처음 보는 여자에게 수명을 넘겨달라는 말을 들은 것은 재작년 12월 25일, 고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날이었다. 얼어붙을 듯이 추운 날씨였음에도 나는 동네에 있는 다리 위에서 주변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사람의 왕래가 드물고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덕분에 흐르는 강물 소리가 잘 들리고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소리며 새 울음소리를 놓치는 일도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다. 그렇다고 고독을 원한 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을 좋아하지 못해서 고독해진 것뿐이다. 반 친구들도, 길을 걷는 사람들도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내겐 행복해 보이는 일이 그들에게는 당연했고, 내게 하찮은 일은 그들에게 큰 고민거리인 것 같았다. 가치관의 차이다. 그 차이로 생기는 마찰을 나는 견디기 힘들었다. 고독은 쓸쓸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있어 봤자 비참한 생각만 들 뿐이니까. 그래서 그들과 거리를 두고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어느 사이엔가 내 생활에 아주 중요해졌다. 그런 내게 이 다리는 몇 안 되는 휴식처였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에는 이곳에 자주 왔다.
크리스마스인데 혼자 다리에 와 있다니 외로운 녀석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실제로 외로운 놈이니 어쩔 수 없다. 크리스마스의 혼잡한 거리를 걸어 다니고 싶지도 않았고 집에서 보내는 것도 왠지 내키지 않았다. 이런 날이니까 더더욱 이곳에 있고 싶었다.
정오가 지난 뒤부터 저녁 무렵까지 줄곧 다리 위에 있었다. 자동차가 몇 대 지나다닐 뿐, 인적은 보이지 않았다. 주위가 차츰 어두워졌고 추위도 점점 심해졌다.
다리에 늘어선 가로등에 오렌지색 불빛이 들어왔지만 난간에서 바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두워서 밑이 보이지 않는다.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강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해서 끝없이 떨어져 내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리 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어렴풋이 불빛을 밝힌 가로등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서 있는 광경. 나 외의 인간이 모두 사라진 세계와도 같은 이 공간이 마음 편하고 좋다. 하지만 멀리서 달리는 자동차의 불빛이 시야에 들어와 금세 현실로 이끌려 왔다. 겨울인데도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무겁게 하얀 한숨을 내쉬었다.
낯선 여자가 말을 걸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이바 준 씨. 당신의 수명을 제게 넘겨주시겠어요?”
온몸에 검은 옷을 걸친 께름칙한 여자였다. 키가 크고 놀랄 정도로 말랐다. 긴 은발 머리는 이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닌 듯 아름다웠으나 그 감동을 다 덮어버릴 만큼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와 핼러윈을 착각한 듯한 차림새를 한 사람이 말을 걸어와 무척 놀라고 당황했던 것을 기억한다. ‘이 여자는 나를 놀리고 있거나, 단순히 머리가 이상하거나 둘 중 하나다. 어쨌든 정상이 아닌 건 분명해’라고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며 일단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 여자가 내 이름을 또렷이 불렀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애써 진정시켰던 가슴이 다시 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을 차례차례 떠올려 보았지만 그 누구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꾸민 몰래카메라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지만 친구도 연인도 지인도 없는 내게 그런 일을 꾸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애초에 나를 놀라게 하려는 별종이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생각해봐야 시간 낭비입니다. 당신과 나는 지금 처음 만난 거니까요.”
여자는 내 마음속을 훤히 꿰뚫어 보며 비웃듯 말했다. 사람을 조롱하는 듯한 태도가 불쾌했지만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지부터 물었다. 정확하게는 누구에게서 내 이름을 알아냈는지 물어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예상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름만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요.”
게다가 “쉽게 설명하자면,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거든요”라고 말하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었다.
그 말을 듣자 무심코 “뭐?”라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 여자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호호호,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어떻게 안 그러겠어!”
“하긴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렇지요?”
나는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미소 짓는 여자를 계속 노려봤다. 그런 내 태도에 조금도 찔끔하는 기색 없이 “그럼 이건 어떠신가요?”라고 다시 물었다.
여자는 어떤 남자의 성장 과정을 찬찬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던 소년이 현실을 알아가면서 주변 사람들을 질투하다 고독해져 가는 이야기를, 나는 떨리는 손을 꽉 붙잡고 들어야 했다. 누구 이야기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내가 살아온 삶이었다. 여자가 하는 이야기는 내 인생과 똑같았고 남들이 결코 알 수 없는 일까지도 전부 알아맞혔다. 남의 입으로 들으니 내가 얼마나 무의미한 인생을 살아왔는지가 새삼 뼈저리게 느껴졌다. 귀를 틀어막고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더 비참해질 것만 같았다. 상처에 앉은 딱지를 거칠게 잡아 뜯기는 듯한 통증이 끊임없이 느껴졌다.
“얼굴이 새파래졌어요. 괜찮으신가요?”
번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섬뜩한 얼굴이 바로 코앞에서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몇 발짝 뒷걸음질 쳤다.
“대체, 누구야……?”
당황하며 묻자 여자는 몇 초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사신死神, 이라고 해둘까요?”
사신. 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고 보니 사신 같은 모습이기는 했다. 얼굴 생김새가 험악하지는 않았으나 야윈 몸집에 은발, 피부는 피가 제대로 돌고 있는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창백하다. 게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옷차림을 하고 있어 가냘픈 체형과 아파 보일 정도로 새하얀 피부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사신은 마음을 읽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요?”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까지 알아맞히니 달리 부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쏘아보던 눈빛이 한풀 수그러진 나를 보면서 사신은 한층 더 기분 나쁘게 웃었다.
“아이바 씨. 나는 당신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 제안하는 겁니다.”
“힘? 수명을 넘겨달라면서?”
“그렇게 경계하지 마세요. 나는 당신 편입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인생을 걸어온 아이바 씨를 걱정해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요. 당신을 이해하는 건 나뿐입니다.”
사신은 입이 찢어질 듯이 미소 지으며 그 새하얀 손으로 내 뺨을 어루만졌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 반사적으로 사신의 손을 뿌리쳤다.
“사실은 당신도 원하고 있지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라고 되묻자 사신은 씨익 웃었다.
“당신, 죽고 싶어 하잖아요.”
등줄기가 얼어붙었다. 사신의 미소가 섬뜩하리만치 자신감 넘쳤기 때문이다. 심장을 덥석 움켜잡힌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내가 부정할 것이란 가능성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신의 표정에 압도당할 것만 같다. 그것도 당연하다, 사신이 한 말이 다 맞으니까.
— 이런 무의미한 인생, 빨리 끝내고 싶었다.
어릴 적 기억을 되짚어봐도 즐거웠던 일은 고작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오히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훨씬 많다. 그래도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라며 견디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꼬이고 악화될 뿐이었다.
그러다가 고1 여름, 나는 어떤 일을 계기로 자살을 생각했다. 다리에 갈 때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몇 번이나 나 자신에게 ‘뛰어내려!’라고 외쳤다. 하지만 마지막 한 발을 내딛지 못한 채 2년이 지났고, 고등학교 생활도 끝나갔다. 대학에 진학할 마음도, 일할 의욕도 없다. 봄이 되면 더 비참한 기분이 들 게 뻔하다. 그래서 새해가 밝아오기 전에 뛰어내려 편해지고 싶었다. 이 발을 한 발짝만 내디뎠더라면 사신을 자칭하는 여자가 말을 걸어오는 일도 없었을 텐데.
“그동안 쭉 괴로웠지요?”
바싹 야윈 얼굴로 싱긋 웃는 사신은 전혀 나를 동정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단번에 해결해줄게요.”
“해결?”
“네. 수명을 내게 넘겨주는 겁니다.”
물론 공짜로 달라고는 하지 않겠어요, 하고 덧붙이더니 옷소매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우로보로스Uroborus(자신의 꼬리를 물어 원 모양을 한 뱀이나 용을 가리키며 무한대, 영원, 불멸을 상징한다) 은시계라고 해요.”
뚜껑이 달린 평범한 모양의 은색 회중시계였다. 굳이 특징을 꼽는다면 뚜껑에 용으로 보이는 생물이 새겨져 있는 정도였다.
“이 우로보로스 은시계는 보통 시계와 달라요. 이 시계는” 하고 사신이 말을 이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답니다.”
분명히 사신이 그렇게 말했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한번 묻자 “네, 말 그대로예요”라고 대답하고는 내게 은시계를 내밀었다. 그리고 은시계 사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리하면 이러했다.
• 수명을 대가로 지불한 소유자만이 이 우로보로스 은시계를 사용할 수 있다.
• 사용법은 간단하다. 우로보로스 은시계를 손에 들고 되돌아가고 싶은 시각을 간절히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 최대 24시간 전까지 되돌릴 수 있다.
• 한 번 시간을 되돌리면 36시간 동안은 시계를 사용할 수 없다.
• 시간을 되돌리기 전의 기억은 소유주만 이어갈 수 있다.
• 시간을 되돌릴 때 소유주의 피부에 닿아 있던 사람도 예외적으로 기억을 이어갈 수 있다.
무조건 원하는 만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세세한 규칙이 존재했다.
“3년 이후 당신의 수명과 이 우로보로스 은시계를 맞바꾸시겠어요?”
사신은 이렇게 제시한 뒤 마침 생각났다는 듯 “정확하게는 내일부터 3년 이후의 수명을 넘겨받을 거니까, 시간도 내일부터 되돌릴 수 있습니다” 하고 덧붙였다.
3년의 시한부 인생을 사는 대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가 손에 들어온다.
믿기 어려운 제안이었지만 내가 살아온 과정을 전부 맞혔으니 사신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한 번 사용하면 그때부터 36시간이 지나야 또 사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24시간을 되돌려도 12시간은 미래로 흘러가므로 시간을 계속 되돌려 연명할 수는 없다.
당시의 나는 이런 점까지 모두 이해하고 수명과 시계의 교환을 수락했다. 지금까지 자살하지 못했던 내가 어째서 서슴지 않고 사신의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이렇다 할 이유는 없다.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것보다 편하게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결정적이었을지 모른다. 그날은 감상에 젖어 파멸을 바라는 마음이 강하게 나를 사로잡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사신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유가 어떻든 쌓아 올린 책이 조금씩 기울다 한순간에 쓰러지듯이, 그동안 축적되어온 여러 요인이 내 안의 균형을 무너뜨린 것이리라.
“고맙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지요.”
사신이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손을 내 가슴에 갖다 댔다. 아까부터 추위에 체온을 빼앗긴 상태였지만 옷 위로도 확실히 느껴질 만큼 사신의 손은 차가웠다.
“그럼 이제 수명을 넘겨받겠습니다.”
그 순간 오한이 온몸을 쫙 훑고 지나갔다. 무언가가 빨려나가는 듯한,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 없는 불쾌한 한기였다. 그다음에는 머리가 멍해지면서 하마터면 의식을 잃을 뻔했다. 단 몇 초 사이에 일어난 일 같았지만 무릎이 꺾이지 않도록 의식을 붙잡으려고 죽을힘을 다했다.
“끝났습니다. 이제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질 겁니다.”
사신의 목소리에 퍼뜩 의식이 돌아왔다. 다리가 휘청거려 뒤로 쓰러질 뻔했으나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았다. 오한은 이미 사라졌고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잃은 느낌이랄까, 애매해서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확실히 뭔가가 달라졌다.
“오늘부터 이 시계는 당신 거예요.”
오싹하리만치 야윈 손이 우로보로스 은시계를 건네주었다. 차가운 은시계는 보기보다 묵직했다. 초침 움직이는 소리가 커서 뚜껑을 닫아도 또렷이 들려왔다.
“당신은 3년 후 12월 26일 밤 12시에 숨을 거둘 겁니다.”
사신은 머리를 약간 숙이고 “남은 3년 동안 즐겁게 보내십시오”라고 말하며 미소를 보였다.
그 말을 듣고 ‘3년은 길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더 빨라도 좋은데, 하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헤어질 때 사신이 덧붙인 충고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수명을 내놓은 걸 절대 후회하지 마십시오.”
사신은 헤어질 때 그렇게 충고했다.
다음 날, 우로보로스 은시계를 시험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시간을 되돌린다는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순식간이다. 은시계를 손에 들고 돌아가고 싶은 시각을 머리에 떠올리자 의식이 끊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과거로 시간이 되돌아가 있었다. 텔레비전 채널을 바꾸는 것과 비슷했다.
처음에는 마법진이 나타나거나 시계가 무수히 늘어선 세계로 튕겨 들어가는, 그런 만화 같은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 하고 단단히 대비했다가 너무 싱겁게 끝나서 오히려 맥이 빠졌다.
한 번 시간을 되돌리면 36시간이 지날 때까지는 사용할 수 없다. 시간을 되돌리지 못할 뿐 아니라 마치 건전지가 다 닳은 것처럼 초침이 멈춰 보통 시계로서의 기능도 잃는다. 36시간이 지나면 초침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자동으로 그때의 시각에 맞춰진다. 결국 초침이 움직이는 동안에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실제로 시간을 되돌려보기 전까지는 사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믿은 건 아니었다. 만약 시간이 되돌아가지 않고 사신이 ‘몰래카메라’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나타난다면 은시계를 내동댕이치려고 했다. 반신반의했던 건 은시계뿐만이 아니다. 수명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3년 후에 죽는다는 사실도 시간을 되돌려보고 난 뒤에야 실감할 수 있었다.
‘수명을 내놓은 걸 절대 후회하지 마십시오……, 라니!’
마지막에 사신이 해준 충고를 떠올리고 나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후회하지 않았다. 상쾌할 정도로.
— 3년 후에 죽는다.
그렇게 소리 내어 말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3년이라고 생각하자 매일매일 ‘오늘은 뭘 하며 지낼까?’를 고심하게 되었다. 자살만 생각하던 이전과 비교하면 몹시 긍정적이었다.
당시에는 이런 심경의 변화에 놀랐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이상한 이야기도 아니다. 자살을 생각하기 시작할 무렵, 안락사에 관해 조사한 적이 있다. 안락사를 인정하는 국가가 몇몇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말기 암처럼 살 가망이 희박한 병을 앓는 환자에게만 허용된다. 국가에 따라 진통제가 전혀 듣지 않을 만큼 견디기 어려운 통증이 아닌 한 허가를 내리지 않는 등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의 국가는 안락사를 고통에서의 해방을 명목으로 한 최후 수단으로 취급했다.
예전에 “말기 암 환자 가운데는 안락사 덕에 임종 때까지 살아갈 의욕을 유지한 사람도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안락사 제도의 장점을 소개하는 기사였는데 “통증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바에는 ‘고통스럽지 않을 때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환자도 있다. 그런 환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의지로 마지막을 결정할 수 있는 안락사야말로 마음 든든한 존재다”라고 쓰여 있었다.
안락사를 미화했다는 인상이 강했지만 기사 내용에는 수긍이 갔다. 고통스러울 게 뻔한 미래를 기다리는 건 두려운 일이다. 눈앞에 어렴풋이 종말이라는 이름의 낭떠러지가 보이는데도 계속해서 걸어갈 사람은 없다.
나 또한 그렇다. 타인을 좋아하지 못하는 내가 계속 살아간다 한들 바늘 위를 걷는 것과 다름없다.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고, 고생고생해서 목표 지점까지 다다를 자신도 없다. 그래서 더 이상 괴롭지 않으려고, 나를 지키기 위해 자살을 생각했다.
3년이라는 목표 지점이 보인다는 사실이 내게는 마음 든든했다. 죽고 싶어져도 ‘어차피 3년 후에는 죽을 텐데’라고 스스로 다독일 수 있고, 꿈도 목표도 없이 되는 대로 살 때보다 훨씬 편안했다. 당연히 우로보로스 은시계도 엄청 큰 영향을 미쳤다. ‘모처럼 신기한 시계를 손에 넣었으니 죽을 때까지 신나게 써주겠어’ 마음먹고 시간을 되돌려 많은 일을 했다.
처음에는 누구나 사용할 법한 방법을 생각했다. 원하는 만큼 돈을 펑펑 쓰고 지갑 속에 있는 돈이 다 떨어지면 또 시간을 되돌리는 거다. 게임 센터에서 몇 시간을 놀든, 영화관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영화를 보든, 좋아하는 음식을 질릴 때까지 먹든, 시간을 되돌리면 돈이 줄어들지 않는다.
원래 나에게 게임 센터나 영화관은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하지만 고등학생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매일 다닐 수 없었다. 돈 걱정 없이 마음껏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다는 건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은 돈이 다 떨어지기 전에 시간을 되돌리게 된다. 기분 전환은 할 수 있지만 시간 때우기는 되지 않았던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실컷 먹는다 해도 배는 다시 고파질 뿐이고, 쇼핑을 해도 물건이 수중에 남아 있지 않았으며, 매번 비슷비슷한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려니 싫증이 났다. 자극적인 일을 추구하며 더욱 큰돈을 쓰고 싶었지만 고등학생이 갖고 있는 금액이라야 뻔해서 한 번에 쓸 수 있는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돈을 불리기로 했다. 24시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면 하루 뒤의 미래를 나만 알게 된다. 그렇다면 도박으로 얼마든지 큰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맨 먼저 복권 당첨 번호를 외운 뒤 시간을 되돌려 당첨 번호가 같은지 시험했다. 이것이 가장 손쉽고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일 거라 기대했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시간을 되돌리기 전과 당첨 번호가 달라졌다. 경마도 시험해봤다. 마찬가지로 시간을 되돌리기 전과 순위가 바뀌어서 돈을 벌 수 있을 만큼 항상 이기기는 어려웠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 ‘시간을 되돌려도 같은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과거의 그 시간을 다시 지나올 뿐이다. 주사위를 여러 번 던져도 같은 눈이 나오지 않는 이치와 같다. 복권은 재추첨이고 경마는 레이스를 다시 펼칠 뿐이지 시간을 되돌리기 전과 같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었다.
유일하게 결과가 별반 달라지지 않는 분야가 주식이었다. 주식도 결과가 여러 번 바뀌긴 하지만 완전히 랜덤인 복권과 달리 사람의 사고가 관여하는 만큼, 다른 분야처럼 아예 뒤집히지는 않았다. 초심자지만 수차례 시뮬레이션한 끝에 항상 이익을 얻을 수 있겠다고 판단해 주식을 대신 구입해줄 협력자를 찾았다. 내가 직접 사고 싶었으나 미성년자는 친권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부모님과는 사이가 좋지 않아서, 동의를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기 전에 부탁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다.
우선 몇 번이나 시간을 되돌려 미래의 주식 변동 상황을 인터넷 게시판에 계속 올렸다. ‘이 사람의 예측은 항상 적중한다’는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만들어 주목을 끈 후 미래의 변동 예측을 더 이상 게재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주식을 대신 구입해주면 그 대가로 배당금을 나눠주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협력자를 모집하자 금세 찾을 수 있었다. 협력자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꾸준히 예측을 적중시켰고, 이익금은 점점 불어났다. 착실히 일하는 게 어리석게 느껴질 정도로 큰 금액이 매주 계좌로 들어왔다. 3년 동안 다 쓰지도 못할 만큼 돈이 모이자 불리기를 멈추고 앞으로 돈을 어디에 쓸지 궁리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먼저 아파트를 한 채 빌렸다. 이때만은 부모님께 보증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혼자 힘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지, 그런 큰돈이 어디서 났는지 같은, 이런저런 귀찮은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결국은 보증금 명목으로 돈을 건네주고 가까스로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마침 비어 있던 8층짜리 아파트의 최상층 호실을 선택했다. 발코니가 있고 방 세 개에 거실과 부엌, 식당이 있는 구조로 혼자 살기에는 넓었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나 차량 소음이 닿지 않는 높은 층이라는 게 무척 매력적이었다. 고급 타워맨션은 아니더라도,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에게서 한시라도 빨리 독립하고 싶었던 내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조건이었다.
사실 부모님과의 관계는 단순히 ‘사이가 좋지 않다’고 표현하긴 어려웠다. 두 분이 양부모라는 데 원인이 있는데, 입양되었을 때부터 정을 붙이지 못한 채 줄곧 거리를 두고 살아온 결과, 서로 특별한 이유 없이 싫어하게 되었다. 내 어설픈 설득에도 보증인이 되어준 까닭은 나를 빨리 집에서 내보내고 싶어서일지 모른다. 가족다운 추억 같은 건 하나도 없었으며 항상 타인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왔다. 싫어하는 사람과 한집에 사는 건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독립한 것은 매우 큰 변화였다.
3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공공연히 자유의 몸이 되었다. 어차피 3년 후에 죽을 거, 굳이 학교를 졸업할 필요도 없었지만 양부모님이 보증인이 되어줄 테니 고등학교를 반드시 졸업하라는 조건을 달기에 쓸데없는 갈등을 피하고자 졸업할 때까지 참았다.
드디어 이룬 혼자만의 독립생활은 정말이지 이상적이었다. 일하지 않아도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어딘가 돌아다니며 시간을 때우지 않아도 혼자 있을 수 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살 수 있다. 이 시기만큼은 수명을 넘긴 걸 후회하고 더 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불안해질 정도로 들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들뜬 기분도 처음 몇 개월뿐이었다. 아무리 이상적인 생활이라 해도 똑같은 날이 되풀이되자 어느새 매너리즘에 빠졌다. 게임은 싫증 나 오래 계속하지 못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시켜 먹던 피자와 생선 초밥도 이제 질렸다. 기분 전환 삼아 밖에 나가도 사람을 싫어하는 습성이 쉽게 고쳐질 리 없어 금세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새로운 관심거리를 찾았지만 그 어떤 일에도 흥미가 일지 않았다. 꿈같던 생활이 따분하기 이를 데 없는 생활로 바뀌기까지 채 반년도 걸리지 않았다.
수명을 내놓지 않고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았다. 몇십 년을 일한들 지금 같은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안락한 생활은커녕 이미 자살했을 수도 있다. 만약 기적처럼 지금과 같은 생활에 이르렀다 해도, 이 모양이다. 분명 내게는 지금 이 생활이 최선의 삶이다. 수명을 포기한 걸 후회하고 말고 할 형편이 아니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후회를 한단 말인가. 후회할 수 있다면 알려달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 수명을 팔아넘긴 건 정말 잘한 일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렇다 해도 변함없이 지루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날들이 괴로웠다. 하지만 사신과 거래하고 1년 후의 크리스마스. 지루한 일상을 단박에 뒤바꾼 바로 그 일이 일어났다.
그해도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었다. 여느 해와 다른 점은 다리 위가 아니라 내 집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날짜가 바뀔 때쯤, 문득 늦은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언제 그칠지 궁금해져 일기예보를 보려고 텔레비전을 켰다. 일기예보가 시작될 때까지 한밤중 뉴스를 시청했다. 다음 날이면 남은 수명이 2년 이내로 접어드는 내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정보들뿐이었다. 그 가운데 딱 한 가지 신경 쓰이는 뉴스가 있었다.
‘중학생 소녀가 다리 밑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는 보도였다. 시체가 발견된 시각은 그날 저녁이었다. 사건과 자살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 가능성을 두고 수사한다는 내용이었지만 단연 ‘투신자살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뉴스였다.
아무리 살날이 얼마 남지 않고 세상사에 무관심하다고는 하지만, 자살이라는 단어는 귀에 머물기 마련이다. 게다가 신경이 쓰인 점은 따로 있었다.
소녀가 떨어진 다리는 바로 내가 사신과 거래했던 그 다리다. 내가 자주 가던 그 다리가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고 있었다. 같은 다리에서 자살을 꾀한 인간이 나 말고도 또 있으며, 진짜로 행동에 옮겼다. 그렇게 해석한 순간, 놀랍게도 내 내면에서는 환희에 가까운 감정이 복받쳤다. 타인의 자살을 기뻐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건 나도 잘 안다. 그래도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억누를 수 없이 가슴이 뛰었다.
자살한 소녀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마음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