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코르테스Edouard Cortès
작가, 여행자, 양치기.
마흔 살을 앞두고 아내와 아이들을 껴안고,
소셜 미디어를 삭제한 뒤 페리고르 숲으로 들어가 자신이 직접 만든 오두막에서 절제되지 않은
우리 시대를 조망했다. 열 권의 여행서를 썼고,
공동 저자로 참여한 『2CV로 파리-사이공
일주Paris-Saigon en 2CV』로 프랑스지리학회로부터 ‘탐험가상’을 수상했다. 실패를 겪은 작가가 자신을 재건하기 위해 세상과 떨어져 있었던 시간은
이곳에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옮긴이_ 변진경
프랑스 리옹 2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했다.
옮긴 책으로 『악한 사람들』 『작별: 로물루스,
나의 아버지』 『부서지기 쉬운 삶』 『철학자의 개』
『사랑의 급진성』 『죽음에 대하여』 『잔혹함에 대하여』 『자살에 대하여』 등이 있다.
디자인 신혜정 | 표지 그림 동렬
Par la force des arbres by Edouard Cortès
Copyright © Editions des Equateurs/Humensis, Par la force des arbres, 2020.
All rights reserved.
Korean translation rights © 2022 Booknomad Inc.
This Korean translation is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Humensis through Greenbook Literary Agency.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과 판권은 그린북저작권에이전시를 통한 저작권자와의 독점 계약으로 (주)북노마드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 전송, 배포 등을 금합니다.
마틸드에게
내 아이들을 위해
“사랑은 한 그루 나무와도 같아서 스스로 자라나 우리의 온 존재 속에 깊이 뿌리를 뻗고 황폐해진 마음 위에서도 계속 푸르러진다.”
- 빅토르 위고, 『파리의 노트르담』
일러두기
1. 이 책은 『Par la force des arbres』를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2. 옮긴이 주는 후주로 넣었으며, 편집자가 보충한 부분은 본문에 ‘편집자’로 표기했습니다.
3. 외래어는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을 준수하되, 일부는 일상에서 널리 쓰이는 표기를 따랐습니다.
4. 본문의 인용문은 지은이에 의한 것으로 인용할 때 적당하게 문장을 수정했습니다.
삶이 우리에게 부딪쳐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상처가 쓰라리더라도 반격해야 한다. 수중에 있는 온갖 수단으로 이 엄청난 힘에 대응해야 한다.
나는 참나무의 수액과 크고 작은 나뭇가지를 통해 반격하기로 했다. 돋아나는 새 잎과 지의류 가운데서 새롭게 숨 쉬고자 했다. 나무를 통해 삶에 숨구멍을 내고자 했다.
인간의 운명을 참나무의 길로 시도해보기. 별과 친근하게 지내고 사랑하는 이들을 가지로 감싸 안으며 헤매지 않도록 땅에 뿌리를 내리기.
말하자면, 인간-나무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6미터 높이의 참나무 가지 위에서 나는 혼자 산다. 봄이다. 바닥 문을 밀어 열었더니 숲의 나라가 펼쳐진다. 마룻바닥에서 잘라낸 두툼한 원형 출입문은 닫아버리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나는 한동안 침묵 속에서 지내기 위해 오두막에 들어왔다. 나무 위에 살면서 나무와 더불어 다시 태어나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이 은신처에서 지내리라. 네 개의 나뭇가지 사이에 자리 잡고 있으며 나무와 유리로 만들어진 이 피난처는 시선과 소음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준다. 이 보기 드문 장소는 내 처지로서는 기대 이상의 공간이다.
나는 아래 세상과 나 자신에 지쳐서 이 위로 올라왔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내게 지쳤을 것이다. 숲의 비호 아래 나는 탈바꿈을 시도한다. 나는 나무의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3월 21일 아침,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포옹하고 장화를 신었다. 소셜 미디어 계정도 삭제했다. 실제로 존재하는지 믿기지 않는 1500명의 친구들을 포기하고 네다섯 명의 진짜 친구만 남겼다. 전자메일에는 부재중 응답을 설정해놓았다. 스마트폰은 집에 남겨두고 등산용 칼을 들고 숲으로 떠났다.
마흔 살을 앞두고 그동안 내가 지녀온 확신에 의문이 들었다. 꿈에 대한 확신도 거의 없는 상태였다.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상태로 나를 숨 막히게 하는 모든 덩굴을 뽑아버리겠다고 결심했다. 죽음이 다가오더라도 두려움 없이 답할 수 있기를 바랐다.
— 나는 운명을 따르는 데 충분히 대담했나?
트롱세 숲에 있는 내 참나무는 거목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불타버린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이른바 포레forêt1라는 골조에는 멋진 들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강한 나무는 수령과 높이로 페리고르 삼림지대의 다른 나무들 위에 군림한다. 양팔을 뻗어도 나무 전체를 껴안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굵은 가지 하나는 15미터 높이까지 자랐다. 거의 기사와 같은 풍모의 매력 때문에 나는 본능적으로 이 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무는 조용하고 호리호리하며 곧게 뻗어 있다.
옆에 있는 다른 모든 나무를 압도하고 있는 이 나무는 할아버지 나무로 보인다. 중앙 산지의 마지막 지맥에서 자라난 나무는 120살에서 140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나무가 가진 지혜를 말해준다. 석회질 고원에 단단히 뿌리내린 최고 연장자. 파스퇴르가 백신을 발명한 시대에 가냘픈 새싹으로 생애를 시작해 에펠탑이 세워졌을 때는 새순이었고, 베르됭에서 히로시마까지 대소동이 일어났을 때는 가지를 뻗었다. 인터넷과 빅데이터의 시대에는 성체가 되어 가벼움과 정착의 거장으로 성장했다.
나무의 힘과 조화는 나를 안심시킨다. 빽빽한 가지로 뒤덮여 있는 나무는 280미터 높이의 언덕 가장 높은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나무의 자연법칙을 따르고, 나무는 내게 자신의 왕국을 열어준다.
검정색은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 중 하나를 나타내는 색이다. 이전에 백작령이었던 페리고르 누아르Périgord noir의 색은 나무에서 유래했다. 밤의 빛을 띠는 참나무는 한낮에 즐거워하는 어두운 겨울 숲을 형성한다. 이 지방 지붕의 석회암 판석도 이 색깔이다. 크로마뇽인, 라스코 동굴, 도르도뉴 성의 고장이자 라 보에티, 몽테뉴, 사를라데즈 감자, 몽바지악의 고장에서, 지상의 진미에서 멀리 떨어진 채 나무 꼭대기에서 은둔해 산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경제 위기의 시기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때에도 사람들이 송로버섯과 푸아그라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지 망설이는 곳은 세계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모든 문명은 케르시2 참나무의 부식토에서 태어났다. 참나무 뿌리에는 내가 개와 함께 파내기 좋아하는 검은 송로버섯이 숨겨져 있다. 프랑스의 이 발상지에서 팔루엘 성의 중세 지하도, 로카마두르의 검은 성모, 경기병 푸르니에의 결투, 파타고니아의 투낭 왕, 라리고디의 탐험……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호두나무와 송로버섯이 자라는 나무의 발상지에서 모든 문명이 태어났다.
목신과 숲의 수호신은 나를 『자발적 복종De la servitude volontaire』의 고장에 붙들어 맸다. 이 정착이 나에게 어떤 자유를 부여했을까? 복종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한 용기를 강조한 에티엔 드 라 보에티La Boétie의 책을 읽으며 나는 녹음 속에 빠졌다. 속박chaînes이 아니라 참나무chêne에.
나는 6미터 높이의 참나무 가지 위에서 혼자 산다.
한동안 침묵 속에서 지내기 위해 오두막에 들어왔다.
나무 위에 살면서 나무와 더불어
다시 태어나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세상과 나 자신에 지쳐서 이곳으로 올라왔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내게 지쳤을 것이다.
나는 나무의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나는 이 지역의 이름페리고르 누아르, Périgord noir만큼이나 어두운 두 해를 보냈다. 양치기와 양 사육자로 7년을 보냈지만, 양떼를 처분하는 데는 단 하루만으로 충분했다. 스스로 그렇게 무능한 양치기는 아니었다고 생각했건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농부로서의 모험은 도피로 막을 내렸다. 이제 나무 위에서 미소를 띠고 이 사태沙汰를 돌이켜본다. 상환하기 어려운 빚이 쌓였고, 땅 문제로 가족과 사이가 틀어졌다. 프랑스에서 양과 소를 기르는 사육자들을 질식시키기에 충분한 보조금 서류와 각종 쓸데없는 서류에 파묻혔다. 허리가 끊어질 듯 일했지만 녹초가 되어버렸다.
나는 교만함에 가까운 감정으로 모험을 감행했다. 그러나 그 과감한 모험이 재난을 완화시키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아내와 아이들을 파멸로 이끌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양치기의 운명이란 미친 짓이다! 세계화된 시장이 쏟아내는 양고기가 슈퍼마켓에 쌓이고, 소비자는 이미 익은 채로 접시에 놓인 양갈비에 들어간 인간의 수고와 실질적인 비용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 프랑스 목축업자의 삶은 모험을 찾아 떠도는 기사 돈키호테만큼 우스꽝스럽다. 한마디로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다. 쇠스랑에서 포크까지, 씨앗에서 빵까지, 목축업에서 유제품까지…… 우리의 관계는 끊어져버렸다. 나는 미셸 우엘벡Michel Houellebecq이 『세로토닌Sérotonine』에서 드러낸 의견에 동조한다.
— 지금 프랑스 농업에 일어나고 있는 일은 거대한 사회 계획이며, 현재 진행 중인 가장 중대한 사회 계획이다. 하지만 은밀하고 보이지 않는 사회 계획으로서 사람들은 BFM3의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 채 각자 구석에서 사라져버린다.
농촌에서 생활하며 나는 세계에 대해 통찰력을 갖게 되었다. 숲과 들판과의 불화는 녹색 혁명과 땅의 여신이라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진 히드라를 낳았다. 생명에 대한 숭배든 혹은 포식이든 양쪽 모두 자연과 인간의 분리에서 생겨난다. 이 포스트모던적 짐승은 나를 두렵게 한다. 그것은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든, 짐승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든 모두 집어삼켜버리고 말 것이다.
농촌에 정착한 첫해로 기억한다. 양떼가 기생충에 감염된 것일까? 양들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검사를 해야 했다. ‘작은 디스토마’로 불리는 바이러스는 살아남기 위해 믿기 힘든 전략을 선보인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미는 나머지 개미 무리에 병을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바이러스는 개미를 미치게 해서 풀잎 끝에 올라가게 한다. 그곳에서 개미는 사무라이처럼 희생을 각오하고 양떼를 기다린다. 양이 개미를 먹어치우면 작은 디스토마는 초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양의 몸 안에서 돌아다닌다. 감염된 어미 양은 젖이 줄어서 새끼 양이 죽는 일이 벌어진다.
나는 걱정스러워 수의사를 불렀고, 그는 공동농업정책 검사관이 도착하기 직전에 떠났다. 오후에는 내가 미리 작성해둔 서류를 확인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주 친절했지만 농업지원금은 받기 힘들 거라고 설명하는 검사관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서류와 양떼 모두 법규에 맞았지만, 전체 양떼 가운데 숫양 한 마리가 왼쪽 귀고리가 빠져 있었다. 오른쪽 귀고리만 달려 있는 것을 본 그가 말했다.
— 기준에 맞지 않네요.
— 칭찬으로 듣죠!
지난여름, 나는 농장을 처분하고 양떼를 팔았다. 그 아픔은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힌다. 그 일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모두 힘들었다. 가축 운반차는 내가 이끌고 보살피고 새끼를 받고 젖병으로 우유를 먹이며 보호해온 양들을 몇 분 만에 삼켜버렸다. 피로가 내려앉았다. 내 삶에, 다른 사람의 삶에, 세상에, 더 이상 의욕이 없었다. 나는 길 잃은 양이 된 목자였다.
관료들과 심리전문가들은 영어 단어에 의지한다. ‘번아웃burn out’이란 인류만큼이나 오래된 병을 가리키기 위한 말이다. 내게는 무감각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이 영혼의 우울함은 거머리처럼 붙어서 희망과 존재의 의미를 비워버린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영혼은 생명을 불어넣는다는데 나는 숨이 차서 허덕거렸다. 인생의 중반에서 나는 이 악마들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살아야 할 이유보다는 죽어야 할 이유를 머릿속에 쌓아가고 있었다. 내 영혼은 내가 가로지른 진흙투성이 숲에서 하르피이아4와 싸우고 있었다.
영혼이 시들어버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이 내면의 겨울과 싸워야 했다. 나의 싸움은 나무들의 싸움과 같이 가능한 한 빨리 빛에 이르는 것이었다. 나는 무기를 선택했다. 인터넷이 안 되는 곳에서 간소하게 살며 여행의 낯설음에 기대지 않고 지내면서 일기를 쓰는 것이다.
나는 세 가지 집념을 갖고 숲에 들어갔다.
— 한동안 세상을 떠나기
— 평화를 얻기
— 지나간 일을 잊고 새로 시작하기
영혼이 시들어버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이 내면의 겨울과 싸워야 했다.
나의 싸움은 나무들의 싸움과 같이
가능한 한 빨리 빛에 이르는 것이었다.
나는 무기를 선택했다.
인터넷이 안 되는 곳에서 간소하게 살며
여행의 낯설음에 기대지 않고 지내면서
일기를 쓰는 것이다.
2월. 한 달 반 전
나무에 대한 생각은 시라노가 내게 불어넣어주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에드몽 로스탕Edmond Rostand의 연극 대본집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Cyrano de Bergerac』비정상적으로 큰 코 때문에 우스꽝스러운 외모를 가진 시라노의 여자 주인공 록산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 편집자를 다시 읽으며 가스코뉴 카데들의 용맹과 어루만짐에 몰두해 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시라노는 죽어간다. 그는 누구도 자신을 부축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울함의 기묘한 메커니즘은 우리가 깊은 나락에 떨어질수록 친구들이 던져주는 줄을 잡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가 유일하게 허용하는 의지 수단은 나무의 몸통이다. 12음절 시구에 힘을 주기 위해 그는 나무껍질에 손을 대면서 마지막 행의 원동력을 찾아낸다.
시라노몸을 떨면서 갑자기 일어난다.
— 아니야! 안 돼! 이 의자에서는 안 돼!
사람들이 그에게 달려가려 한다.
— 날 부축하지 마시오! 아무도!
그는 나무에 등을 기댄다.
이 나무 말고는!
2월 3일
아침에 나는 집에서 1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숲으로 떠났다. 나의 나무를 찾는 게 유일한 목표였다. 나는 습관적으로 나의 원칙에 따라 행동했다. 행동을 생각하고, 생각한 대로 사는 것이다.
길을 잃기에는 나는 이 숲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내 첫 번째 오두막집을 세웠고 올챙이 낚시를 했고 집라인을 만들었으며 처음으로 사슴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활을 깎았고 리아나 잎을 담배처럼 말아 피웠으며 총을 쏘았고 개암나무로 순례 지팡이를 만들었다. 멀리서 여행할 때면 이 숲은 나를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게 만들었다. 나는 농부가 되기 위해 이곳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가족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폐허가 된 농장을 다시 짓기 시작했다.
나는 동물적으로 숲을 좋아했다. 열다섯 살에는 장화를 신고 나침반을 든 채 한 방향으로 혼자 걷기도 했다. 손전등 없이 나아간 이 어스름한 이틀 밤 동안 내 동물적 감각이 생겨난 걸까?
유랑하며 모험하는 동안 나는 숲의 그늘 아래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돌아다녔다. 양치기가 된 후로는 수호해주는 나무 아래에서 양들과 함께 나날을 보냈다. 나는 운 좋게 두 무리의 양떼를 숲-목농주의로 이끌 수 있었다. 솔로뉴의 양들은 루아르 강을 따라 충적토로 형성된 숲 아래에서 자랐다. 코스나르드 양들은 바로 여기 도르도뉴 강 근처 석회질 고원의 참나무 서식지 아래에서 자랐다.
그토록 많은 나무를 예찬하면서 어떻게 한 그루만 선택할 수 있을까? 나무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나에게 찾아온 액운을 쫓아버릴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었다!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를 견디고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지금 나를 지배하는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신선한 공기로 기분을 전환해야 했다. 나무는 산소를 배출한다.
숲은 절대적인 고요함이 존재하는 마지막 장소가 아닐까?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장발의 갈리아’라고 적절히 불렀던 프랑스는 이제 전체 국토의 3분의 1이 나무로 덮여 있다. 현실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사람은 나무나 숲 한 구석을 선택해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나는 야생의 은신처를 찾고자 했다. 인적이 드물고 숲 치료를 할 수 있는 은둔처. 가난하지만 부끄러움이 없는 자족생활을 실천했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자신의 통에 은신하면서 정직한 사람을 찾았다. 이 숲속에서 나는 여전히 이익, 현대성, 안락함에 굴하지 않는 의연한 사람이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를 견디고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지금 나를 지배하는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신선한 공기로 기분을 전환해야 한다.
나무는 산소를 배출한다.
절대적인 고요함이 존재하는 마지막 장소.
나는 야생의 은신처를 찾는다.
양치기 베레모를 쓰고 루스커스5 잡목림을 거침없이 나아가다가 가시덤불 속에서 바지가 찢어진 채로 나는 닷새 동안 자갈투성이 언덕을 달렸다. 평평한 지형의 참나무와 협곡 바닥의 너도밤나무를 관찰했다. 작은 초목이 자라는 곳에서는 라마르틴Lamartine6 시의 도입부를 떠올리며 돌아다녔다.
내 마음은 모든 것에 지쳐, 희망에도 지쳐
더 이상 소망을 품어 운명을 괴롭히지 않으리라
내 어린 시절의 작은 골짜기여
이제 죽음을 기다릴 안식처를 잠시 빌려다오.
나는 멀리서 그것을 알아보았다. 나의 참나무! 목초가 풍부한 초원에 머물던 양떼를 겨울 목축지로 데려갔을 때에도 이 나무는 당당한 풍채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굵고 긴 가지는 유달리 눈에 띄어서, 앞으로 튀어나온 부분에 밧줄을 쉽게 묶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나무는 확실히 주위의 나무들과 달랐다. 다른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무리 지어 붙어 있었다. 수관樹冠7은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고, 가느다란 나무줄기는 그늘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더 오래되고, 빛을 잘 받은 이 나무만 홀로 드러나 있었다.
나무의 큰 가지는 옆에 있는 나무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수평으로 뻗어 있었다. 당연히 경쟁이 일어났으리라. 나뭇가지들은 햇빛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수직으로 솟아올랐다.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린 팔은 승리를 부르짖는 상징과 같다. 수관에서 나팔 모양으로 벌어진 네 개의 가지는 공중에 오두막을 지을 수 있는 이상적인 기반을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이 독특한 안식처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양떼를 먹이기 위해 메마른 황야에 찾아오는 목동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전부터 사람들은 여기에서 나무 그늘을 누렸던 것 같다. 나무 아래에서 송로버섯이라도 나온 걸까? 덕분에 나무가 들보나 큰 통, 관으로 사용되기 위해 베이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나뭇가지에서 프랑스의 역사를 조금 엿볼 수 있었다. 나무는 숲속에서 나무를 태워 숯으로 만들던 사람들에게서 벗어났다. 농촌 이탈이 이루어지면서 숲이 나라를 덮쳤다. 농부의 비극은 적어도 나무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멋이 있었다.
목농주의가 사라진 상태에서 내 참나무 열매에서 싹이 났다. 인간들이 천 년간 풍경을 가꾸어온 야생이 권위를 되찾았다. 숲은 벌거벗은 석회질 고원 위에 섬세하게 녹색 이불을 끌어당겼다.
다음 날 일어난 한 사건 덕분에 ‘내 나무’에 대한 선택은 확고해졌다.(‘내 나무’라고 쓴 것은 애정에서 나온 말일 뿐 나무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 나무는 밤사이 딱딱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담쟁이덩굴 잎과 별모양의 서리가 나무껍질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나무의 크기를 측정하러 참나무로 갔다가 사슴 두 마리가 누워 있는 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들도 황급히 일어났다. 가만히 보니 한 마리는 이미 뿔이 떨어졌고, 다른 한 마리는 크게 여러 갈래로 나뉜 여섯 개의 뿔을 지니고 있었다. 사슴을 보자 내 안에 있던 신석기 시대 사냥꾼의 원시성이 동요했다. 사슴의 위력과 위엄 앞에서 나는 신비한 이상향의 위대함을 느끼며 감탄했다. 사슴은 머리에 가지를 지니고 있다.
나는 사슴이 다니는 길을 따라 그들이 도망간 길을 쫓아갔다. 좁은 발자취에서 몇 개의 사슴 배설물을 찾았다. 더 멀리에는 부러진 나뭇가지에 새김질을 한 이빨 자국이 있었다. 그들은 참나무의 탄닌8에서 그랑 크뤼9를 맛보기를 바라며 나무껍질을 열심히 긁었으리라.
산은 사슴과 동물에게 겨울 휴양지를 제공한다. 그들도 인간처럼 골짜기에서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11월 초에는 십여 마리의 사슴 떼가 내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숲에 사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나는 붉은 사슴이 출발할 때가 임박했음을 알았다. 어느 곳으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사슴은 봄이면 길을 떠난다. 그리고 변함없이 계절과 출생의 추를 따라 가을이면 돌아온다.
일부 현명한 조상들은 사슴의 이동에 따라 집의 위치를 정했다. 그들은 동물들이 규칙적으로 밤을 즐겨 보내는 곳을 관찰한 뒤 그 자리에 집을 지었다. 땅, 단층, 지하수, 수원, 바람이 장소에 따라 생존에 유리한 강점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믿음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들은 동물에게서 자연의 신비를 깨달았다. 인간은 자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연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었다. 나도 이제 그 작은 길을 따라가려 한다.
사슴들은 내 참나무 밑동을 힘을 겨루는 매트로, 뛰어놀기 위한 침대로 골랐다. 그들은 나무의 뿌리와 줄기가 이어지는 부분을 잠자리로 삼았다. 이제 이곳에 집을 짓겠다는 결론은 분명해졌다.
나는 참나무에 기어올랐다. 나무 위에 작은 오두막을 지을 만한 능력이 있는지 모른 채 네 개의 큰 나뭇가지 사이에 집을 짓겠다는 방책을 세웠다. 나는 대체로 모든 일에 재능이 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어떤 일에도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그걸 폐기장에 버릴 뻔했다니까.
내가 건넨 150유로를 받으며 아주머니가 말했다. 그는 지폐를 꽃무늬 블라우스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아주 좋은데요.
나는 작은 창유리가 있는 참나무 창문 열두 개를 막 구입한 참이었다.
— 남편이 리베락인가의 소목장이한테 만들어 달라고 맡겼어요. 전후의 일인데…… 지금은 나 혼자거든요. 아이들이 자주 오지는 않지만 인터넷을 설치한 이후로는 나한테 사진으로 안부를 보내줘요. 늘 그렇죠.
꽤 비싼 값을 치른 이 창문은 공중 온실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되어줄 것이다. 창문을 판 아주머니는 정부지원금으로 새 이중창틀을 설치하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자녀들도 그녀가 따뜻하게 지내게 됐음을 알고 안심할 것이다.
나는 주장한다. 인터넷처럼 이중창도 모든 집에 설치되어야 한다고. 차단과 연결은 동시에 집에 작용한다. TV를 켜면 광고에서 “선량한 여러분, 차단하세요!”라고 떠벌린다. 사람은 연결될수록 고립된다. 따뜻해질수록 혼자가 된다.
작은 창유리를 가진 창문을 갖게 되어 기뻤다. 개탕대패질이 되어 있고 쐐기를 박았으며 손으로 만든 주철 톱니 궤도가 있다. 잘 보존하면 몇 세기도 갈 수 있을 것이다.
계산을 치르고 나가며 나는 쇠시리나무나 돌의 모서리나 면을 모양지게 깎아 만든 것. 편집자로 장식된 돌 문설주문짝을 끼워 달기 위해 문의 양쪽에 세운 기둥. 편집자 현관을 지나갔다. 거꾸로 된 강철활 모양의 황갈색 상인방이 15세기를 나타내고 있었다. IHS10라고 읽히는 십자가가 위에 있는 거석巨石이었다.
— 이 집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나요?
— 사람들이 옛날에 지어졌을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 맞아요! 그런데 어느 시대죠?
하얀색 고분자 중합체polymer로 이루어진 두툼한 설주가 달려 있는 새 문틀은 견고한 페리고르의 매력에 칼자국을 냈다. 돌을 그라인더로 자르고 PVC를 끼웠다.
2월 말, 나는 오두막집을 짓기 시작했다.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발전기, 직소기나무판자를 자르는 전기 모터 공구. 편집자, 절단기, 연마기, 대패, 드라이버…… 한동안 휴식을 취했던 농업 장비가 새 일거리를 찾았다.
불혹의 나이에 오두막을 짓는 건 마법 같은 일이다. 어린 아이의 꿈을 실현해주는 어른의 능력과 힘이라고 할까. 물론 나는 목공에 재능이 없다. 나무에 대한 애정만 가득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