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대구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2008년 《시사IN》 공채 1기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교육 불평등, 아동 인권, 청년 빈곤, 팬데믹 등의 주제를 주로 다루었다. 실태와 현상을 개인 차원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서 접근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참여를 촉구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한다. ‘아동학대’ 연속 기획으로 2018년 제21회 국제 앰네스티 언론상을, 아동 보행 안전을 다룬 ‘스쿨존 너머’ 연속 기획으로 2021년 제4회 한국 데이터저널리즘 어워드 ‘데이터저널리즘 혁신상’, 제10회 디지털저널리즘 어워드 ‘디지털 스토리 텔링상’,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수상했 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내 아이를 넘어 모든 아이들이 밝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지은 책으로 《청 년 흙밥 보고서》, 《가늘게 길게 애틋하게: 감염병 시대를 살 아내는 법》(공저)가 있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
이 책을 읽는 내내 귓가에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책을 읽기 시작한 주말 아침 88고속도로를 지날 일이 있었다. 길은 꽉 막혀 있고 비까지 내리는데 뒤에서 응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꽉 막힌 도로에서 응급차가 제대로 갈 수 있을까 걱정하는 사이 모든 차들이 거짓말처럼 움직여 길을 내주었다.
이 책에서는 아동・청소년 문제가 응급차의 진행만큼 촉각을 다투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변진경 기자의 글은 응급 상황에 놓인 어린이, 청소년을 위해 울리는 사이렌 소리다.
7년 전쯤이다. 19대 국회에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산정되었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아동보육시설 아동의 한 끼 식사비가 2500원이 채 안 될 때였다. 신문을 보고 분노하는 내 곁에서 보육시설에 살던 중학생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모, 우리는 선거권이 없어서 그렇대요.”
우리나라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은 늘 정치 영역 밖에 있다. 어른들의 생각은 늘 그랬다. 국가가 위기 상황인데 어린이 청소년 문제가 대수냐고, 먹고살기 바쁜데 교육 문제가 대수냐고.
가난한 아이들이건 부유한 아이들이건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충분히 행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들의 행복을 늘 뒷전으로 미룬다. 이 책은 아이들이 현재의 가난과 결핍 때문에 불행하지 않도록, 미래의 성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이 저당 잡히지 않도록 지금 당장 바꿔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아이들은 미래를 위한 존재이니 존중받을 기회도 미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아이들이 맞아 죽고, 굶주려 죽고, 차에 치여 죽는다.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
이 책은 한국 사회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들이 살아가기에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그들의 미래를 어떻게 빼앗는지 보여준다. 세상은 약자의 눈이 아닌 어른들의 눈높이 맞춰 돌아간다. 그러나 눈높이는 아이들 학습지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아이들을 위한 모든 정책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져야만 미래가 아이들의 것이 된다. 내 아이만이라도 행복한 세상은 오지 않는다.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이어야 내 아이도 행복하다. 저자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좋은 사람인가? 아직도?”
나는 어른들이라면 누구나 아이들에게 좋은 사람이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만 우리에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미래가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어린이와 청소년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는 기자의 마음이 읽혀 수시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덕분에 나 또한 다시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 힘이 생겼다.
― 김중미·아동문학가, 《괭이부리말 아이들》 저자
전에는 기사나 뉴스에서 ‘어린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만 해도 반가웠다. 분명히 사회 구성원인데도 어린이와 관련된 소식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긴장하게 된다. ‘노키즈존’이니 ‘민식이법 놀이’니 하는 혐오의 말이 나란히 등장할 때가 많아서다. 아동학대나 아동 성범죄 같은 중대한 범죄도 충격적인 사건이 있을 때만 잠시 주목받을 뿐이다. 늘 마음이 무겁다. 대화 중에 ‘아이들’이라는 말이 등장하면 상대의 기색을 살피기도 한다. 이야기가 불편하게 흘러가면 나는 어떻게 대응할까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린이를 보호하고 존중하자는 당연한 명제가 어쩌다 이렇게 민감한 사안이 되었나, 이것을 왜 ‘설득’해야 하나 싶어 한숨도 나고 화도 난다. 무기력해진다.
변진경 기자는 그런 순간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이 찾아내는 사람이다. 취재하고 기록하고 분석해왔다. 그가 어린이의 사생활, 섭식, 안전 문제를 다루는 기사를 낼 때마다 나는 캄캄한 길에서 손전등을 들고 용감하게 앞장서는 사람을 떠올리곤 했다. 이 책을 읽으니 사실은 그도 두렵고 그만두고 싶고 다른 길로 가고 싶었으리라는 것을 알겠다. 빼곡한 숫자와 도표, 인용 사이에 그의 숨결과 손길이 담겨 있다. 분노와 좌절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번 울었을 것이다. 이 책이 밝혀주는 길 구석구석에서 우리는 울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한다. 많은 사람이 모인다면 이 길이 밝아질 것이다. 아이들도 더는 울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 김소영·작가, 《어린이라는 세계》 저자
나는 가끔 아동을 바라보는 비非아동들을 가만히 관찰하곤 한다. 아주 드물게 낯선 아이에게도 미소로 인사하는 장면을 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심히 지나간다. 변진경 기자는 신기하리만치 꾸준하게 우리 곁의 아이들을 따뜻한 눈으로 관찰하고 열정을 담아 글을 써왔다. 그만의 오랜 관찰과 애정은 단지 아동학대 문제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아동이 겪고 있는 사건들을 통하여 불평등과 안전, 인권과 교육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입체적 삶에 관한 깊은 통찰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의 글은 건조한 뉴스나 흔해빠진 기사로 휘발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삶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켜켜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들이기에 더욱 외면할 수 없는 그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이 문제가 아동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머리에서 마음으로 깨닫게 된다.
모든 사람이 좋은 세상을 원한다고 해서 그 세상이 저절로 오지는 않는다. 아동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애초의 결연했던 당위는, 사진 찍기와 기사 보도로 효용을 다한 후 막상 현장에서 작동해야 하는 ‘일’이 되고 ‘돈’이 들 때, 종종 스리슬쩍 자취를 감추곤 한다. 아동을 지원하는 일을 10여 년간 해오면서 내가 번번이 절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 절망이 사실은 당연한 거라고, 그렇게 계속 절망만 하고 있지 않아도 된다고 손을 내밀며 담담한 위로와 희망을 준다. 아동을 온전한 인격체로서 존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한 사람들, 아이들이 처해 있는 문제가 풀려나가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이 책이 다른 어떤 책보다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 김예원·변호사, 《상처가 될 줄 몰랐다는 말》 저자
일러두기
• 이 책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아동・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오랫동안 취재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온 저자의 기사와 글들을 엮은 것이다. 《시사IN》에서 보도됐던 기사들 대부분은 2022년 현재 기준 최신 통계 자료를 참고하여 저자가 새롭게 수정・보완했다.
• 글 속에 등장하는 활동가, 전문가, 연구자, 공직자 등을 제외한 취재원(학부모, 일부 교사) 및 어린이들의 이름은 대부분 가명이다. 단,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고 그 이름이 법이 된 아이들의 이름은 실명이다.
• 국립국어원의 한글 맞춤법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했으나, 일부 관용적으로 쓰이는 말이나 취재원 특유의 표현에는 예외를 두었다.
• 단행본・학술지・신문은 겹화살괄호《 》, 논문・기사・보고서・영화・노래는 홑화살괄호〈 〉를 사용했다.
우리가 가닿지 못하는 곳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
이 책을 쓰면서 어릴 적 동무들을 자주 생각했다.
진영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눈꼬리가 위로 올라가도록 머리카락을 높고 단단히 묶고 다니는 새침데기 친구였다. 집에 놀러 가면 아무도 없었다. 진영이의 엄마는 싱글맘이었다. 작은 주택 옆에 딸린 방 한 칸 부엌 한 칸이 진영이네 집의 전부였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마음씨가 좋아 셋방살이 아이와 그 친구가 마당에서 고무줄놀이 소꿉놀이를 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진영이 엄마는 늘 사또밥, 자갈치, ABC초콜릿 같은 과자를 한 보따리 사놓고 출근을 했다. 진영이와 친했지만 한 번도 진영이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 “너희 엄마 언제 와?” 물으면 진영이는 “몰라.”라고 말했다. 저녁 어스름이 깔릴 무렵 엄마가 기다리겠다 싶어 집을 나서면 진영이는 내 옷자락을 잡았다. “더 놀다 가면 안 돼? 나 무서운데…….” 나는 남의 집에서 어두운 저녁을 맞기가 싫어 진영이를 외면하고 내 집으로 달렸다.
도현이는 아픈 동무였다. 늘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인 채로 다녔고 입가에 흐르는 침을 잘 닦지 않았다. 나쁜 친구들이 돌멩이를 던져도 느릿느릿 고개를 돌려 히죽 웃기만 했다. 더 어릴 때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크게 다쳤다고 했다. 어떤 친구들은 “쟤 머리에 개 뇌가 들었대.”라고 수군거렸다.
도현이는 할머니와 둘이 살았다. 도현이의 할머니는 도현이보다 허리가 더 굽었다. 도현이의 실내화 주머니를 대신 들고 있으면 땅에 주머니 바닥이 닿았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교실까지 도현이를 데려다주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학교 주변을 서성였다. 나쁜 친구들은 할머니에게도 돌멩이를 던지며 욕했다. “야, 개 뇌! 개 뇌!” 할머니와 도현이는 그저 땅바닥을 보며 추적추적 걸었다. 나는 멀찍이서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수민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다. 몸이 바싹 말랐고 늘 지저분한 옷을 입고 다녔다. 말이 없어서 선생님이 발표를 시켜도 입을 닫고 끝끝내 그냥 서 있기만 했다. 친구들 말에 따르면 2학년 때까지는 그럭저럭 말도 하고 웃기도 했던 모양인데 엄마가 집을 나간 뒤부터 달라졌다고 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갔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엄마가 올 때까지 집 주변을 서성이던 중에 수민이를 만났다. “같이 놀래……?” 그날 처음 수민이와 놀았다. 말이 없던 수민이는 알고 보니 엄청 재미있는 친구였다. 공터에서 잘 부서지는 돌멩이를 찾아서 함께 가루를 빻으며 놀았다. 슈퍼에서 사이다 한 병을 사서 한입씩 나눠 마시고 일부러 트림 소리를 냈다. “예쁜 데 있는데 같이 가볼래?” 수민이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읍내와 점점 멀어지고 야트막한 구릉이 나타났다.
봄이었던 모양이다. 키가 작은 나무에 연분홍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복숭아나무밭이었다. 바람이 살짝 불 때마다 꽃잎들이 얼굴에 와 닿았다. 수민이는 여기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예전에 엄마랑 같이 살았던 집이 나온다고 했다. 제일 좋아하는 장소라고 했다. “나도 여기 진짜 좋다. 우리 이번 소풍 장소 여기로 투표하자. 내가 여기 추천할게!” 곧 다가올 어린이 학급회의 안건은 ‘소풍 장소’였다. 학급 부회장이던 나는 수줍음 많은 수민이 대신 ‘수민이의 예전 집 앞 복숭아나무밭’을 우리 반 소풍 장소로 추천하겠노라 약속했다. 수민이는 활짝 웃었다.
진영이, 도현이, 수민이 같은 친구들은 내 주변에서 점점 사라졌다. 경북 의성 시골에서 살다가 대구로, 서울로 갈수록 새 친구들이 사는 삶은 점점 더 매끈하고 단정해졌다. 이제 어릴 적 그 친구들 같은 아이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세상이 좋아진 것일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기자가 되어 구석진 곳을 일로써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내 일은 남들보다 조금 더 가까이 타인에게 다가가는 일이다. 표피로 드러난 사건과 숫자 따위들을 단서로 수면 아래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게 내 일이고 그걸 늘 잘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필요했다. 첫째, 가설을 잘 세워야 했고 둘째, 가설을 입증시킬 만한 증거들을 충분히 모아야 했다.
취재를 해서 하나의 수면 아래 이야기를 쓰면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다음 취재로 이어진다. 취재마다 유독 마음에 남는 장면, 사람, 단어들이 있다. 사회부, 문화부, 경제부 등에서 잡다하게 취재하고 기사를 써오는 동안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차곡차곡 마음 쓰이는 질문들이 쌓였다. 주로 아이들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때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경우 남겨진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피해자)가 아이가 아니었다면 사회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이런 일이 만약 가난하고 취약한 아이에게 생긴다면?’
그저 가만히 있으면 수면 아래 이야기들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찾아 나서야 했다. 가설을 세우고 증거들을 모았다.
• 아동학대로 아이가 죽기 전, 가정은 SOS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 지금도 결식아동이 많을 것이다. 다만 결식의 형태가 다를 뿐.
• 길 위 아이들 눈에 블랙박스가 있다면, 거기에 비친 진짜 ‘갑툭튀’는 아이가 아닌 자동차일 것이다.
• 코로나19로 인한 1년의 교육 공백은 100년의 빚으로 돌아올 것이다, 특히 가난하고 힘든 아이일수록 그 빚의 크기가 클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바로 그 가설과 증거들이다. 취재하면서 자주 화가 나고 슬퍼졌다. 그럴 때마다 더 집요하게 ‘팩트’들을 수집했다. 가설이 사실로 증명되는 과정은 내게도 괴롭고 불편했다. 하지만 알리고 싶었다. 한국 사회는 아이들에게 유독 가혹한 세계라는 사실을. 아이라서 봐주기는커녕 아이라서 더 냉정한 세상 속에서 어린이들은 매우 불리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상대를 믿는데 상대는 나를 믿지 않는 게임. 많은 비극들이 거기에서 발생했다.
한번 약해진 곳은 목소리를 들어주는 이가 없어져서 점점 더 약해진다. 취재하면서 절실히 느꼈다. 혹시 독자들은 줌zoom과 같은 화상 회의 프로그램으로 원격수업이나 재택회의를 하면서 ‘강제 음소거’를 당해본 일이 있는가. 내가 만난 아이들은 대부분 그런 상태였다. 사회는 그들을 일원으로 대해주는 척하지만 사실은 철저히 소외시키고 있었다. 말해봤자 들어주는 이가 없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스스로 제 목소리를 음소거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뒤늦게 다가가서 마이크를 켜달라고 요청하면 아이들은 그 방법을 모르거나 의도를 경계했다. 저출생 시대 아동 인구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어린이 집단의 목소리 자체가 쪼그라드는 상황이다. 그 속에서 부유하고 여유로운 보호자를 두지 못한 가난하고 약한 아이들은 더욱더 목소리를 잃어갔다.
아무리 가닿으려 해도 결국 닿지 못한 사각지대들이 있다. 취재할 때마다 학교, 동사무소, 지역아동센터, 시민단체 등을 뒤졌다. 가장 어둡고 그늘진 곳에 놓인 아이들의 목소리까지 ‘음소거 해제’를 요청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닿을 수 있었던 곳은 세상과 끈이 연결된 곳까지였다. 이미 어느 정도 도움의 손길이 가닿았던 곳만이 내게도 닿았다. 이 책에도 어쩌면 그런 이야기들만 담겨 있을지 모른다. 진짜 끈이 닿아야 할 곳, 정말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목소리는 끝끝내 담아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그곳은 존재한다. 그곳의 이야기들은 비극이 되어야만 세상에 전달된다. 아동학대로 사망하거나, 홀로 있던 집에 불이 나 죽거나 다쳐서, 또래 간 폭력 사건의 피해자나 가해자의 모습으로 등등,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만.
그래서 이 책은 우리가 가닿지 못하는 곳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상상하기 위한 밑천 정도가 될 것이다. ‘설마’를 경계하고 ‘혹시’를 옆구리에 낀 채 주변을 살피기 위한 지침서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것을 상상해도 그보다 더 나쁘고 불행한 일들이 우리 주변의 가난하고 취약한 아이들에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데에 이 책이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수민이와의 약속을 나는 지키지 못했다. 학급회의날 ‘수민이네 예전 집 앞 복숭아나무밭’을 봄 소풍 장소로 추천하기로 했으나 나는 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문소루’나 ‘베틀바위’ 같은 무난하고 익숙한 소풍 장소들을 추천하는데 아무도 모르는 ‘수민이네 옛날 집 앞 복숭아나무밭’을 손 들어 추천하기가 민망스러웠다. 사실은 좀 부끄러웠다. 옷도 꾀죄죄하고 말문도 열지 않아 반 아이들이 ‘이상한 애’로 생각하는 수민이랑 같이 놀고 어떤 약속을 했다는 사실을 굳이 알리고 싶지가 않았다. 그날 이후 수민이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아니, 쳐다보지 못했다.
다 잊은 줄만 알았던 어린 시절 부끄러운 기억들이 이 책을 쓰면서 자꾸 마음속을 덮었다. 다시 그 동무들에게 다가가는 상상을 한다. 같이 놀아줄걸. 위로해줄걸. 외면하지 말걸. 다가가서 동무의 눈물을 닦아줄걸.
하는 수 없이 다 커서 이제 그런 아이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기어코 닿아보려고, 말을 건네보려고, 눈물을 닦아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뒤늦었지만 그렇게 다시 동무가 되고 싶었다.
2022년 4월
변진경
몇 번 있었을까?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면,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
영화 〈스포트라이트〉(2015)에서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추적하는 《보스턴 글로브》 기자에게 피해자들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아동학대 가해자는 소수의 악마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주연’이라면 그와 아이를 둘러싼 사회와 정부는 적어도 ‘조연’이다.
2020년 한 해 동안 3만 905명에 이르는 아이가 학대를 당했다. 그 가운데 43명은 학대받다가 숨졌다(전국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통해 접수된 사례만이다. 접수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수치는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가해자는 주로 부모였다. 전체 아동학대의 82.1%,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 사건의 86.3%를 친부모, 계부모, 양부모가 저질렀다.1
어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은 오늘 일어난 더 끔찍한 사건으로 덮여 대중의 기억 속에서 멀어질 정도로 사건은 점점 더 잦고 참혹해지고 있다. 도대체 왜 부모들은 자기 아이를 학대하다가 급기야 죽이기까지 하는 걸까. 아이들이 더 이상 자기 집에서 자기 부모 손에 죽어나가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이를 죽인 ‘악마’만 처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아이가 왜 죽었을까’를 찾는 것은, ‘만약 무엇이 달랐다면 그 아이가 살 수 있었을까’를 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발견되는 ‘빈틈’을 채우는 방법도 함께 찾아보고자 했다. 이미 많은 아이들을 잃었지만, 앞으로 다시 반복될 게 분명한 이 비극을 단 한 건이라도 막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리틀맘’의 하소연
2017년 11월 김주미 씨(33)는 ‘중고나라’ 사기를 당했다. 인터넷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아이 분유를 사기로 하고 판매자에게 9만 원을 입금했는데 물건이 오지 않았다. 판매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환불을 미뤘다. 알고 보니 비슷한 피해자가 여럿 있었다. 주미 씨가 독촉 문자를 계속 보내자 판매자는 자기가 애가 셋인데 애가 아프고 남편이 다리 한쪽이 ‘아작 나’ 병원에 입원해 있어 정신이 없어서 그랬다고 말했다. 주미 씨가 믿어주지 않자 그 판매자는 다섯 식구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주민등록등본과 세 아이 사진을 전송해주기도 했다.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던 판매자는 스스로를 ‘리틀맘’이라고 불렀다. 열여덟 살에 첫아이를 갖고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고, 그런데 남편이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라고, 철없는 엄마 아빠 밑에서 건강하게 커주는 아가들이 고마울 뿐이라고도 말했다. 긴급생계비 신청을 해뒀으니 그 돈이 들어오면 바로 환불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얼마 뒤 주미 씨 통장에 정말로 9만 원이 들어왔다. ‘리틀맘’은 남편 의료비 등을 제외하고 5인 가족 생계비로 난방비 포함 99만 원을 받았다며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새해 첫날 주미 씨는 끔찍한 뉴스를 들었다. 하루 전날 새벽 광주광역시 두암동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세 아이가 죽었다는 뉴스였다. 다섯 살, 세 살, 두 살 세 남매였다.
경찰에 따르면 불이 났을 때 스물세 살 아빠는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고 스물두 살 엄마는 술에 취해 있었다. 베란다에서 홀로 구조된 엄마는 밖에서 술을 먹고 들어와 가스 불에 라면 물을 올린 걸 깜빡 잊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담배를 피우던 중 막내가 울어 급히 끄다가 불이 난 것 같다고 진술을 바꿨다.
뉴스 속 새까맣게 그을린 세 남매 집 거실 사진을 보고 주미 씨는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한 달여 전 중고나라 판매자가 보내준 세 남매 사진 속 배경이 거기 있었다. 꽃무늬 벽지, 이불 무늬, 흰색 3단 기저귀함 위치까지 똑같았다. 사진 속에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V자를 그리던 세 남매는 작은 방 안 이불 속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됐다. “철없는 엄마 아빠 밑에서 건강하게 커주는 아가들이 고마울 뿐”이라던 세 남매 엄마는 아이들이 화장장 불 속에 들어가던 날 경찰 손에 이끌려 현장 검증에 나섰다. 경찰은 중과실치사·중실화 혐의로 엄마 정미애 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벼랑 끝 세 남매 가정에 벌어진 비극
“아이들 데리러 온 엄마는 ‘오늘 고기반찬 먹자.’ 하면서 밝게 손 흔들었어요. 아마…… 실수였을 거예요. 아이들이 어디라도 아프면 눈물 글썽이며 울먹였던 사람이에요.”
광주 세 남매 승리, 승진, 솔이가 다녔던 어린이집 원장은 “애들 엄마는 그럴(방화나 학대를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빠도 막내딸 보면 눈에 하트가 뿅뿅한 ‘딸바보’였고……. 나이도 어린데 아기자기하게 살아가는 거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승리가 다니던 유치원의 담임교사도 엄마 미애 씨에 대해 “준비물도 빠트리지 않고 학부모 관련 참석할 일에도 열심이었다.”라고 말했다. 근처에서 장사를 하는 요구르트 판매원은 “선하고 착하게 생긴, 가끔씩 요구르트 한 봉지씩을 사 간, 외상을 진 적이 있지만 이내 갚은” 세 남매네 부부를 기억했다.
하지만 적어도 1년 전부터 세 남매의 가정은 서서히 벼랑 끝으로 다다르고 있었다. 광주광역시 두암동 주민센터 직원에 따르면 1년 전 미애 씨의 시아버지가 찾아와 “아들네 사정이 궁핍한 것 같다.”라며 대신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요청했다. 증명 자료를 요구하자 세 남매의 아빠 김정훈 씨가 다음 날 각종 체납 통지서들을 갖고 왔다. 부양가족 수가 많아서 기대했지만 미애 씨의 친정 부모가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 신청에서 최종 탈락했다.
세 남매의 부모는 일정한 직업이 없었다. 정훈 씨는 PC방이나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한 달 전 (중고나라 분유 구매자가 들은 것처럼) 실제로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했고, 사건 발생 당시 실직 상태였다. 미애 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콜센터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세 아이의 육아와 오래 병행할 수 없었다. 전에 살던 집 월세도 밀렸고 새로 이사 간 임대아파트 관리비를 한 번도 못 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전기도 끊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말했다.
1년 내내 다섯 식구는 긴급생계비로 버텼다. 2017년에는 2월부터 7월까지 5인 가족 앞으로 137만 원씩 여섯 차례 지급됐다. 아빠 정훈 씨가 다리를 다친 뒤 추가로 한 번 더 지급된 긴급생계비 125만 원을 받아 가면서 엄마 미애 씨는 동사무소 직원에게 연방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긴급생계비 외에 확인된 이 가정의 소득이라곤 중고나라에서 분유 허위 판매로 얻어낸 ‘사기 수익’ 정도다. 미애 씨는 분유 사기로 돈을 벌고 피해자들에게 다시 돈을 입금해주기를 반복했다. 분윳값으로 6만 원을 입금한 피해자에게 그녀는 “애들 아빠가 가정에 책임을 안 져서 그랬다.”라며 9일에 걸쳐 하루 5000원이나 1만 원씩 나눠 갚았다. 아이들이 숨지기 나흘 전 부부는 협의 이혼했다. 주변 사람들과 경찰의 말을 종합해보면 아이들을 보육원에 보내는 문제를 두고 갈등이 심했다고 한다. 엄마 미애 씨가 세 남매의 양육을 맡고 아빠 정훈 씨는 매달 양육비 9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혼했지만 아직 가족과 함께 살던 정훈 씨는 사건 당시 아이들이 잠들자 밤 9시 44분쯤 친구들과 게임을 하러 PC방에 갔다. 저녁 7시 40분쯤 외출한 엄마 정씨는 친구와 술을 마시고 코인 노래방에서 4000원어치 노래를 부른 다음 편의점에 들렀다. 첫째 아이의 헐렁한 옷을 고정하기 위한 옷핀을 사서 새벽 1시 50분쯤 집에 들어갔다. 이날 밤 그녀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남편 정훈 씨에게 “죽고 싶다.” “나 이 세상에서 사라질 거야. 죽을 거야.” 등의 카카오톡을 보내고 수차례 전화를 걸었다. 작은방에서 세 아이들과 잠들었다가 방 앞에서 불이 난 것을 깨달은 그녀는 방 안에서 10분여간 남편과 남편의 친구, 112에 전화해 구조를 요청했다. 몸에 2도 화상을 입은 채 베란다에서 손을 흔들던 그녀는 홀로 구조됐다.
경찰은 이 사건을 ‘방화’가 아닌 ‘실화’로 판단했다. 하지만 사건 보도 초기부터 많은 이들이 엄마 미애 씨를 단박에 ‘자녀 살해 방화범’으로 의심했다. 경험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특히 벼랑 끝에 선 어리고 궁핍한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고 죽이는 끔찍한 이야기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준비되지 않은 출산, 실업, 가난, 고립, (술·담배·게임) 중독, 철없는 부모, 불균형한 양육 부담……. 여러 자녀 학대·살해 사건에서 공통으로 목격되던 위험 요소들을 미애씨네 가정도 안고 있었다.
경찰과 달리 검찰은 초반부터 정씨가 일부러 불을 낸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미애 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작은 방 바깥에서 담배를 피운 뒤 이불 위에 담배꽁초를 올려둔 채 라이터로 불붙이는 장난을 하다 작은방에서 휴대전화를 하던 중 화재가 발생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자살할 생각에 전화하지 않고 내버려 뒀다.”라고 진술했다.
2018년 7월 13일 광주지방법원은 미애 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미애 씨가 “피해자들 양육 문제와 생활고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피해자들이 잠든 방에 불을 놓기로 마음먹었다.”라고 판단했다. 고의로 이불 등에 불을 붙여 세 남매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미애 씨는 이후 “고의가 아니었다.”라는 취지로 1년 동안 항소와 상고를 거듭했다. 광주고등법원과 대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했다.
‘고립된 어린 아빠’는 보호자가 아니었다
‘고립된 어린 부모’가 저지른 비극의 또 다른 대표적 사례가 2014년 3월 경북 구미시에 사는 스물두 살 아빠 김세호 씨가 26개월 된 지훈이를 죽여 시신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주택가에 버린 사건이다. 사건 당시 가해자가 아이 사체를 담은 쓰레기봉투를 들고 엘리베이터 안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손질하던 모습이 CCTV에 찍히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게임 중독’ 혹은 ‘사이코패스’ 친부의 아들 살해 사건으로 기억한다.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었다. ‘고립’이 부른 범죄였다. 태어난 지 26개월, “엄마”, “아빠”, “고모” 정도의 말을 할 줄 알고 기저귀를 차고 중이염을 자주 앓던 약하고 작은 지훈이는 미성숙하고 경제적·정신적으로 완벽하게 고립된 아빠 손에 홀로 맡겨졌다. 고립된 아빠 밑에서 아이는 2주를 버티지 못했다.
지훈이는 스무 살이 안 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아빠 세호 씨는 고등학교 1학년 중퇴 후 지훈 엄마 민주 씨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 일정한 직업이 없던 세호 씨와 민주 씨는 아이가 태어나자 PC방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렸다. 이들을 안타깝게 여긴 지인이 마련해준 일자리였다. 지인은 지훈이네 가족을 위해 원룸도 얻어줬다. 아빠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엄마는 새벽 2시부터 오전 10시까지 교대로 일하며 아이를 돌봤다. 세호 씨가 출근하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고 퇴근하며 집으로 데려왔다. 1심 재판부 판결문에도 “그 당시 피해자 양육에 관련해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라고 나와 있다.
위태롭게 유지되던 가정은 세호 씨가 그를 도와주던 지인과 다투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부부가 PC방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원룸에서도 나가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부부 싸움도 잦았고 결국 별거에 들어갔다. 민주 씨는 기숙사가 있는 공장에 취직해 짐을 싸서 떠났다. 세호 씨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연락해 지훈이와 함께 (모친의) 집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세호 씨의 어머니가 거절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예전에 살던 집으로 들어갔다. 공과금을 내지 못해 전기와 난방이 끊긴 채 비워둔 집이다. 바로 그 집에서 열하루 뒤 지훈이가 숨졌다.
아이와 단둘이 남게 된 날부터 아빠는 온라인 세계로 도피했다. 인터넷 게임에 빠져든 것이다. 민주 씨와 헤어지고 빈집으로 들어가던 날부터 지훈이가 숨지기까지 약 열흘 동안 세호 씨는 짧게는 8시간, 길게는 49시간 동안 PC방에서 게임을 했다. 이즈음 그를 목격한 지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평소 게임 중독에 이를 정도로 게임에만 몰두하지는 않았는데 혼자 아이를 맡기 시작한 날부터는 평소와 달리 게임에만 빠져 있었다.”
아빠가 PC방에서 게임 레벨을 올리고 있을 동안 26개월 된 지훈이는 난방과 전기가 끊긴 집에서 홀로 견뎠다. 세호 씨는 게임을 하다가 중간중간 음식을 사서 집에 들러 아이를 먹였다고 진술했다. 지훈이가 숨진 2014년 3월 7일, 세호 씨는 전날 저녁부터 당일 새벽까지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집으로 와서 잠을 잔 뒤 분식집에 가서 먹을 것을 샀다.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고 오후 1시쯤 다시 PC방에 가기 위해 아이에게 잠을 자라고 했다. 지훈이가 자지 않고 장난을 치자 손날로 아이의 명치를 3회 내리쳐서 죽게 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아빠가 아이의 입과 코를 막아 죽이려 했다며 “자신의 처지에 대해 비관하고 있던 중 순간 격분하여”라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그날 세호 씨의 휴대전화 인터넷 검색 기록에는 ‘유아살해’, ‘아버지 유아살해’, ‘자살약’, ‘수면제 과다복용’, ‘가장 편하게 죽는 방법’ 등이 남아 있었다. 그는 1심에서 살인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2심 재판부는 ‘전기와 난방이 끊긴 상태에서 아동이 돌연사 등 다른 원인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살인 혐의를 무죄로 보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폭행치사 또는 상해치사 혐의가 인정될 수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파기환송했다. 2016년 3월 징역 8년형이 확정됐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 아이를 놓다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한 젊은 부부도 같은 전철을 밟고 있었다. 어린 딸을 학대하고 방치하다가 죽였다. 2016년 3월 9일, 자신의 집 작은방에서 두개골이 함몰되고 곳곳의 뼈가 부러지고 온몸에 멍이 든 주검으로 발견된 은서는 태어난 지 84일 된 상태였다.
20대 초반의 아이 아빠 박성관 씨와 아이 엄마 이유미 씨는 만난 지 4개월 만에 양가 부모 몰래 혼인 신고를 하고 아기를 가졌다. 계획에 없던 임신이었다. 유미 씨는 아기를 지우려고 했지만 성관 씨가 함께 키우자고 설득했다. 직업이 없던 성관 씨는 2015년 12월 은서가 태어나자 인근의 소규모 가방 공장에 취직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무단결근과 지각 등으로 2016년 1월 해고당했다. 신용카드 대금, 월세, 공과금, 휴대전화 요금, 태아 보험료가 밀리기 시작했다. 대부업체의 고금리 대부금으로 생계비를 충당했다.
엄마 유미 씨는 출산 후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3월 들어서는 단 한 번도 은서를 먹이거나 씻기지 않았다. 그녀의 출산을 설득하면서 양육을 전적으로 자청한 성관 씨는 야간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와 은서를 돌봤다. 성관 씨도 음주와 인터넷 게임이 잦았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빚, 밥벌이, 독박 육아의 압박을 술과 게임으로 누르던 성관 씨는 은서가 생후 40일이 되던 날 처음으로 은서를 학대했다. 부부 싸움을 하고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중 옆에 누워서 분유를 먹고 있던 은서의 이마를 긁고 뺨을 때리고 피멍이 들 때까지 눈두덩을 짓눌렀다.
이후 한 달여에 걸쳐 학대는 점점 잦아지고 심해졌다. 부부 싸움을 하다 넘어진 엄마의 몸에 깔려 갈비뼈와 오른팔이 골절된 은서를 부부는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성관 씨는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엉덩이를 꼬집고 분유를 안 먹는다고 얼굴을 할퀴었다. 목욕시키고 물기를 닦아주다가 갑자기 화가 나 팔을 잡아당겨 팔꿈치 관절을 탈구시켰으며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얼굴을 쳤다. 유미 씨도 이런 사실들을 알았지만 방치했다.
급기야 2016년 3월 9일 새벽, 성관 씨는 은서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피를 흘리며 자지러지게 우는 은서 입에 억지로 분유병을 물렸다. 창문이 3분의 1쯤 열려 있어서 3월 초순의 찬바람이 들어오는 작은방에 담요로 둘러싼 은서를 혼자 눕혀두고 안방으로 자러 갔다. 그날 최저 기온은 영하 4도였다. 4시간 뒤 잠에서 깨어난 성관 씨가 작은방을 들여다봤을 때 은서는 바닥에 얼굴을 대고 입 부근에 피를 흘린 채 차갑게 식어 있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스스로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생후 80여 일의 피해자가 온몸에 멍이 들고, 여러 곳의 뼈가 부러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은 오직 부모를 향해 살려달라고 우는 것밖에 없었다. (…) 결국 이 사건은 한 생명을 양육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책임감과 절제심, 부부 사이의 깊은 신뢰와 애정을 갖추지 못했던 어린 부모가 자신들이 만들어낸 소중한 생명의 빛을 스스로 꺼트린 비극적인 사안이다.”라고 규정했다.
몰랐거나 무기력했거나 철없거나
2017년 승리·승진·솔이 사건, 2014년 지훈이 사건, 2016년 은서 사건의 가해자인 엄마 또는 아빠는 모두 벼랑 끝에 서 있는 상태였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정신적으로 피폐하며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었다. 비슷한 상황에서도 아이를 잘 키워낸 상당수 선량하고 장한 어린 부모들과 달리 이들은 장애물을 뛰어넘지 못했다. 이들은 자신이 꾸린 가정 안에서 가장 약자인 아이를 향해 분풀이를 했다.
김희경 전 세이브더칠드런 사업본부장은 2016년 즈음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련의 아동학대 사건들을 조사하면서 일정한 유형을 발견했다. “상당수 가해 부모들이 너무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는 점이 가장 큰 공통점이었다. 이들 가정이 깨지기 직전, 위기 시점에 학대가 시작되거나 심화됐다. 또한 이들은 사회적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고 사회적 지지망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 못지않게 안타까운 경우는, ‘몰라서’ 혹은 ‘무기력하게’ 부모가 아이를 방치하고 죽이는 사건이다. 전국의 아동학대 사건을 맨 처음 접하는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사회복지사들에 의하면, 가해자들은 공통적으로 ‘양육 태도 및 방법 부족’이란 특성을 가장 높게 지니고 있었다.
2016년 10월 인천시에서 생후 2개월 된 둘째 아이 아영이를 영양실조로 죽게 둔 20대 부부가 이에 해당한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스물한 살에 아이를 낳은 서경진 씨는 둘째 아이 생후 한 달쯤 되던 시기, 한 손으로 분유를 타다가 다른 쪽 팔에 안고 있던 아기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엄마 경진 씨는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한두 시간 지나니 괜찮아져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이후 아영이는 잘 먹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았다. 3.06킬로그램으로 태어난 아영이가 1.98킬로그램까지 야위어가는 동안 부부는 한 번도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아영이가 영양실조로 죽기 이틀 전 경진 씨는 그간 미뤄온 신생아 예방접종을 하러 아이를 안고 인근 보건소로 갔지만 운영 시간이 지난 탓에 그냥 집에 돌아왔다. 2016년 10월 11일 아침 아영이가 숨을 헐떡이며 우유병을 물지 않자 부부는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심폐소생술로 아이를 살리려 했다. 제3금융권에 2000만 원 빚을 진 상태에서 생계를 책임지던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그나마 있던 배달 일자리도 잃은 직후였다. 경제적 위기에 더해 부모의 무기력과 무지가 아이를 죽인 것이다.
경제적 궁핍, 사회적 고립, 무지와 무기력에 더해 어린 부모의 비상식적 행동 패턴도 아이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한다. 고의로 방화를 하지 않았다는 변명을 믿는다 하더라도 거실의 이불에 담뱃불을 비벼(혹은 튕겨) 꺼 결과적으로 아이들을 숨지게 한 엄마나, 아무리 아이들이 자고 있다 해도 집을 비우고 PC방에 게임하러 간 아빠들의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어린 부모들에게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들은 범행 당시 스무 살을 넘겼지만 거의 10대에 첫 출산을 경험했다. 출산 당시엔 ‘부모’였지만 동시에 자신의 욕구를 통제하는 법을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한 ‘미성년자’였다. 법적으로 성인이 된 지금도 이들은 정서적으로 미성년자에 더 가깝다.
2017년 5월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20대 초반의 미혼모 최연화 씨는 생후 2개월 된 아기 성호를 재워놓고 8시간 동안 집을 비웠다. 홀로 있던 아기는 질식사했다. 그녀가 아이를 두고 친구와 함께 간 곳은 놀이동산이었다. 신생아 딸이 남편에게 학대당하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기만 한 부천시 은서 사건의 엄마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또래 친구들은 즐겁게 살고 있는데 나는 아기를 낳고 돌보게 되어 아기가 밉게 느껴졌다.”
권태훈 춘천 아동보호 전문기관 팀장은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와서 현장 조사를 나가보면 배 속에 둘째가 있고 품에 첫째 아이를 안은 10대 엄마가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상황을 종종 만난다고 말했다.
“술과 담배는 태아에게 위험하다고 얘기하면 ‘아 진짜요?’라고 되묻는다. 어떻게 이런 걸 모를 수가 있나 싶은데, 그 친구들은 모른다. 어느 열아홉 살 엄마는 아이 기저귀가 무거워서 흘러내릴 정도인데 갈지 않기에 이야기했더니 ‘하루에 두 번만 갈면 되는 거잖아요.’라고 했다.” 권 팀장은 현장에서 ‘학대의 대물림’도 자주 실감한다. “한 어린 엄마는 가정 내 아동학대 가해자로 신고돼 살펴봤더니 10년, 15년 전 학대 피해자로 등록된 적이 있었다. 학대를 받고 자란 아이가 준비되지 못한 출산에 노출됐고 또다시 자신의 아이에게 학대를 가한 것이다.”
아이들이 ‘죽어가던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승리・승진・솔이 세 남매가 불길에 휩싸이기 최소 1년 전부터 그 가정은 경고음을 내고 있었다. 주택가의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안에서 발견된 구미 26개월 지훈이에게도 살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멍이 든 채 눈을 감은 84일 은서, 영양실조로 1.98킬로그램의 몸무게로 숨진 생후 2개월 아영이도 살아생전 그 아이가 속한 가정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보는 사회적 ‘눈’이 있었다면 지금 살아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정말 그 아이들이 죽을 줄 몰랐을까.
계속 살아가게 하려면
친아버지에게 폭행당한 나은이는 뇌병변 1급 장애를 입었다. 생후 4개월이었다. 강원도 동해시에 사는 이수철 씨는 2014년 1월부터 4개월간 젖먹이 딸을 지속적으로 학대했다. 손톱으로 아이 얼굴을 할퀴고 멍이 들 만큼 배를 꼬집고 아이 머리를 벽에 찧다가 급기야 아이를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머리뼈가 골절되고 뇌가 상했다. 혐의를 부인하는 남편을 처벌하고 나은이를 살리기 위해 엄마 이민영 씨는 백방으로 뛰었다. 수철 씨는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아이 엄마 민영 씨는 그 후에도 오랫동안 울어야 했다. 자기 아들의 석방을 위해 탄원서를 써주지 않으면 양육비를 10원도 주지 않을 거라고 볶아대는 시집 식구를 피해 두 아이를 데리고 살던 곳을 떠나야 했다. 나은이는 일주일에 다섯 번 재활치료가 필요한데 치료비와 생활비를 벌 방도가 없었다. 주민센터에 가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니 근로 능력이 있고 남편(이혼 조정 중이었다)도 있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민영 씨는 가해자가 출소하면 자신과 아이에게 해코지할까 봐 매일 전전긍긍하며 거주지가 드러나지 않게 살고 있었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각자도생하는 생존자들
그 많은 아동학대 피해자와 가족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공분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 피해자의 삶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체계가 그 자리를 채웠을까? 나은이 엄마 민영 씨는 가해자인 남편 출소 만기일을 1년 앞둔 해 가을,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서 말했다.
“아동학대 사건에 요새 관심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 이후의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되는 게 없습니다.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제오늘 겪은 일 같고 너무너무 생생하게 이 지옥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말로 창살 없는 감옥이 이런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와 저는 너무너무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아동학대 피해자들은 그야말로 ‘각자도생’하고 있다. 2013년 5월 아이 돌보미에게 수차례 머리를 맞아 뇌손상을 입은 서연이(당시 17개월)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머리뼈를 떼어내 냉동 보관했다가 다시 넣는 대수술을 받으며 사경을 헤매고 있었지만 당시 경찰 조사는 제대로 진행조차 되지 않았다. 엄마 서혜정 씨가 직접 인터넷에 청원 글을 올리고 나서 겨우 공론화되고 수사가 본격화됐다. 당시 가해자 수사를 촉구하는 혜정 씨의 요구에 경찰이 돌려준 말은 “애가 죽은 것도 아니지 않느냐.”였다.
미진한 수사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재판, 아이 치료·재활, 2차 피해 방지 등 이후 이어진 모든 과정에서 혜정 씨는 거의 아무런 법적·경제적·의료적·심리적 지원도 받지 못했다. 아동학대 피해자도 재판 과정에서 국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알음알음 다른 곳에서 정보를 얻었다. 신청하려 하니 경찰·검찰 담당자는 “아, 그거 신청하시게요?”라며 요건이나 필수 서류를 갖춰 오라고 까칠하게 대했다(원래 아동학대 등 범죄 피해자 지원 제도 고지는 안내가 의무화되어 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지역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치료비로 건네준 200만 원이 서연이가 나라에서 받은 지원의 전부였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으니 결국 나서는 사람은 직접 아동학대 피해를 겪은 당사자와 그 가족이다. 혜정 씨는 학대 후유증이 남은 아이 치료·양육과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서 ‘아동학대피해가족협의회’라는 민간단체를 꾸렸다. 자신이 겪은 답답함이 너무 커서 다른 피해자 가족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아동학대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지원도 적지만, 있다 한들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몇 가지 지원 제도를 알려주고 법적 조언을 해줬을 뿐인데 ‘언니를 안 만났으면 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어쩌면 막막해서 다른 마음을 먹었을 수도 있어.’라고 우는 아동학대 피해자 엄마를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여기까지도 그나마 돌봐줄 보호자가 있는 학대 피해 아동들의 이야기다. 엄마와 아빠 모두에게 학대를 받은 아이의 경우, 아이의 상황을 대변해줄 목소리조차 없다. 가해자(부모)와 격리된 아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전국 76곳에 불과한 학대 피해 아동 쉼터 정도다(2020년 12월 기준).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은 해마다 증가하는데 쉼터가 늘어나는 속도는 더뎌 늘 ‘정원 초과’ 상태다.2 피해 아동이 입소해도 2~3개월 이상 머물기가 힘들고 쉼터에서 이들을 돌봐주는 사회복지사 수도 늘 모자란다. 일반 아동보호 시설은 학대 피해 아동을 받기 꺼려해 쉼터를 나온 뒤 갈 곳도 마땅치 않다. 아동학대 사건을 많이 맡아온 한 변호사는 “피해 아동이 하도 갈 곳이 없어서 아동보호 전문기관 직원이 임시로 자기 집에 데리고 있거나 담당 국선 변호사가 입양을 생각하기도 할 정도”라고 말했다.
단 한 줄 언급 없는 ‘예산 확보 방안’
아동학대 예방과 처벌뿐 아니라 피해 아동에 대한 사후 지원도 국가의 의무다. 아동복지법 제22조 4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학대 피해 아동의 보호와 치료 및 피해 아동의 가정에 대한 지원’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각 기초자치단체에 지역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최소 하나씩 두고,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발견하면 아동 보호 전담 공무원에게 그 보호자에 대한 상담·지도를 수행케 하며, 아동학대 등으로 특수한 치료가 필요한 아동은 전문 치료기관에 입원시켜야 한다는 내용도 법에 명시돼 있다.
모두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이다. 2020년 12월 기준 아동복지법상 필요한 아동보호 전문기관 수는 229개인데 실제 설치된 곳은 71개에 불과하다.3 아동보호 전담 공무원도 없는 지자체가 부지기수이고 아동학대 전문 의료기관도 극소수만 존재한다. 아동학대 실태 조사 또한 법에 규정된 국가의 의무이지만 기본적인 사례 건수만 집계할 뿐 국가가 나서서 아동학대 사건의 전말과 그에 따른 제도 개선책을 제대로 조사한 적도 없다. 전 국민을 경악하게 한 울주군 서현이 사건과 대구·포천 입양아 사건에 대해 보고서가 나온 적이 있지만 개별 국회의원과 아동보호 민간단체, 변호사 등 정부 밖에서 진상 조사와 제도개선위원회를 꾸린 결과이다.
왜 아동학대 사후 지원에 관한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까. 예산이 없기 때문이다. 끔찍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잇따르던 2014년과 2016년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아동학대 방지 종합 대책을 내놓았다. 생애 주기별 부모 교육, 정부 합동 발굴 시스템 구축, 현장 대응 인프라 구축, 재학대 방지 사후 관리, 가족 기능 회복 지원 등 동원할 수 있는 대책 수십 가지가 제시되고 전체 대책 추진 일정표까지 발표됐다. 하지만 딱 하나 빠진 것이 있었다. 바로 ‘예산 확보 방안’이다. 어디에서 어떤 예산을 확보해 그 대책을 실행할지에 대한 내용은 단 한 줄도 들어 있지 않았다.
2018년 당시 아동학대 예방과 사후 관리에 배정된 예산액은 254억 원 정도. 이 돈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구성된 일반회계 예산이 아니다. 범죄자들이 낸 벌금으로 조성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복권 판매 사업으로 거둬들인 복권기금이 아동학대 관련 예산 재원의 전부였다. 그해 일반회계에서 배정된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아동학대 인식개선 홍보사업비’ 11억 원뿐이었다. 실질적인 정책 효과를 낼 만한 금액이 아니다. 사실상 아동학대 정책에는 국민 세금을 쓰지 않는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게다가 두 기금은 아동학대 관련해서만 쓰이는 게 아니었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성폭력·가정폭력 등 모든 범죄 피해자와, 복권기금은 한부모 가정, 입양 아동, 소외 청소년 등 여러 취약 계층 복지 사업과 함께 나눠 써야 한다. 경기 상황에 따라 두 기금의 목표액을 채우지 못할 때도 허다하다. 불안정하고 한정된 돈을 놓고 아동학대 피해자들이 어려운 형편의 소외 계층과 다퉈야 하는 꼴이다.
예산 확보가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아동학대 관련 정책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하지만 그것을 실행할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복권기금을 쥐고 있는 곳은 각각 법무부와 기획재정부다. 보건복지부가 아무리 아동학대 예방·관리 정책에 의욕이 높다 하더라도 지갑을 들고 있는 다른 부처에 매번 아쉬운 소리를 해가며 돈을 타내야 하는 처지다.
비정상적 예산 구조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정부는 2021년 6월 아동학대 방지 사업 예산의 지원 창구를 보건복지부 일반회계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전체 예산 규모도 2021년 416억 원 규모로 이전에 비해 비교적 크게 늘렸다.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비극의 증가 속도를 행정 개선의 속도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2015~2020년 아동학대 피해 사례 수는 164% 증가했지만 예산은 18% 증가했다.4
‘살아남은’ 아이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으려면
현장의 수요와 예산 부족 사이 괴리를 온몸으로 견디는 곳은 아동학대 사건 현장의 최전선에 선 각 지역 아동보호 전문기관들이다. 아동복지법상 규정된 최소 필요 수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지역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2020년 12월 기준, 229곳이 필요한데 71곳이 설치됨) 상담원 1명이 76건의 학대 사례를 담당해야 한다. 정부 기준의 2배, 미국의 5배가 넘는다.5 학대 사건이 발생해 가정으로 현장 방문을 가고 있으면 또 다른 현장에서 호출이 온다. 한 사람이 관리해야 하는 지역 면적도 너무 넓어서 아이 한 명을 만나러 한나절 이동해야 할 때도 허다하다.
당연히 아동학대 피해자들에 대한 사후 관리가 미흡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지역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일했던 상담원은 “매번 가정을 방문할 여유가 없으니 그 지역을 순찰하는 경찰에게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사이렌을 한 번씩 울려달라고 부탁해서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식으로나마 사후 관리를 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강원도의 한 아동보호 전문기관 직원은 자신이 10년 전 부모에게 아동학대 피해를 입어 보호시설에 보낸 한 아동이 최근 범죄자가 돼 소년원에 입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가해 부모와 격리시킨 아이들이 보호소 등에서 사후 돌봄을 잘 받지 못해 엇나가는 경우를 보면 ‘차라리 한두 대 맞고 살더라도 부모에게 돌려보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로 직업적 딜레마를 느낀다. 아동학대 사건을 발견하고 처벌하는 것 못지않게 학대 피해 아동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성인이 되도록 국가가 충분히 뒷받침해주는 것이 필요한데 지금은 겨우 생존 정도만 지원해주는 수준이다.”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후보 공약집에는 아동학대 관련 정책이 들어갔다. 제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어린이 안전보장 구축을 위해 정부에 전담 컨트롤타워를 설치하고 지역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아동학대 전문 상담원을 대폭 확대하며 전문성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제20대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는 아동보호 전문기관과 피해 아동 쉼터를 추가 설치하고 AI를 기반으로 한 아동학대 예방 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