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연 • 동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담화-인지 언어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공동 저서로 《번역학, 무엇을 연구하는가》와 《번역문체론》이 있다.
이상빈 • 한국외대 영어대학 EICC학과 교수.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최우수 연구자로 선정된 바 있고, 한국외대 동원교육상을 수상했다.
제이미 장 • 번역가,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 강사,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강사. 《침이 고인다》《딸에 대하여》《사하맨션》《82년생 김지영》《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등을 영역했다.
로렌 알빈 • 번역가, 영 해리스 칼리지 웨인 롤린스 천문투영관 책임자. 《한 잔의 붉은 거울》(공역),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를 영역했다.
배수현 • 번역가. 저서로 《Truce Country》가 있고, 《한잔의 붉은 거울》(공역), 《라디오 데이즈》《빛그물》을 영역했다.
브루스 풀턴 • 번역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아시아학과 한국문학 및 통번역학과 교수. 《What Is Korean Literature?》(공저)를 썼고, 《The Penguin Book of Korean Short Stories》를 엮었으며, 김숨의 《한 명》 등을 영역했다.
정은귀 • 번역가,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딸기 따러 가자》《바람이 부는 시간》을 썼고, 《밤엔 더 용감하지》《패터슨》《고블린 도깨비 시장》《야생 붓꽃》 등을 한역했으며, 《슬픔이 없는 십오 초》《아, 입이 없는 것들》《바리 연가집》 등을 영역했다.
리지 뷸러 • 번역가. 《밤의 여행자들》《1인용 식탁》《코리안 티처》를 영역했다.
전 미세리 • 번역가. 계간지 《ASIA》에 실린 소설, 비평, 에세이 등을 번역하면서 동 출판사의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및 ‘K-FICTION’ 시리즈의 번역가로 참여했다.
안선재 • 한국 현대 시 번역의 최고 권위자, 영문학자, 떼제 공동체 소속 회원, 서강대 명예교수, 단국대 석좌교수. 한국왕립아시아학회에서 회장직을 역임했고,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한 공로로 문화훈장 옥관장을 받았다.
전승희 • 번역가, 보스턴 칼리지 한국학 부교수. 《오만과 편견》(공역),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설득》《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등을 한역했고, 《랍스터를 먹는 시간》《회복하는 인간》 등을 영역했다.
제이크 레빈 • 번역가,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The Imagined Country》를 썼고, 《히스테리아》(공역), 《아름답고 쓸모없기를》(공역), 《고래와 수증기》《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등을 영역했다.
이형진 • 숙명여대 영문학부 번역학 교수. 고형렬의 시선집 《Grasshoppers’ Eyes》, 김승희의 시선집 《Walking on a Washing Line》, 이강백의 희곡집 《Allegory of Survival》 등을 공동 번역했다.
신지선 •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번역학과 부교수, 이화여대 통번역연구소 소장. 공동 저서로 《통번역학 연구 현황과 향후 전망》《번역학, 무엇을 연구하는가》《국가 번역시스템 구축을 위한 기초 연구》 등이 있다.
한국문학 번역가이며 연구자인
송요인(1932~1989) 교수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차례
프롤로그
1 │ 역작의 탄생
김지영의 일생과 나의 일생-제이미 장
Kim Jiyoung’s Life and My Life
Jamie Chang
우리 나름의 김혜순-로렌 알빈·배수현
Our Own Kim Hyesoon
Lauren Albin and Sue Hyon Bae
모든 번역은 중요하다-브루스 풀턴
Every Translation Matters
Bruce Fulton
2 │ 번역은 반역이다
시 번역과 창조성-정은귀
재활용 행위로서의 번역-리지 뷸러
Translation as an Act of Recycling
Lizzie Buehler
기계 번역이 인간 번역을 대신하게 될까?-전 미세리
Will Machine Translation Replace Human Translation?
Miseli Jeon
3 │ 한국문학 번역의 역사와 과제
번역 속의 한국문학-안선재
Korean Literature in Translation
An Sonjae
한국문학 번역가의 책무-전승희
국내 번역학 연구의 과제-이상빈
4 │ 한국문학과 K 문학
콘텐츠 노동자로서의 K 번역가-제이크 레빈
K-translator as K-contents Worker
Jake Levine
한류를 통해 바라본 한국문학 번역의 미래-이형진
한국문학번역원의 20년을 돌아보며-신지선
에필로그
출처 및 참고 자료
프롤로그
조의연
동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미국 인디애나대(블르밍톤)와 일리노이대(어바나-샴페인)에서 언어학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화용론이며, 한국 담화-인지 언어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추론 화용론에 기반해 언어 및 번역 현상을 연구해왔다. 공동 저서로 《번역학, 무엇을 연구하는가》와 《번역문체론》이 있다.
K 문학, 즉 번역된 한국문학의 국내외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데보라 스미스 역)가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라 불리는 맨 부커상을 수상한 것을 기점으로, 해외 문학상을 수상하거나 최종 후보에 오른 한국문학 번역 작품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천명관의 《고래》(김지영 역), 이영주의 《차가운 사탕들》(김재균 역),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제이미 장 역), 정보라의 《저주토끼》(안톤 허 역) 등이 그것이다. 또한 이러한 해외의 관심이 외려 역수입되어 국내 출판시장에 반향을 일으키곤 하는데, 국내 독자에게 관심받지 못했거나 오래전에 차트에서 밀려난 책이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차트에 오르는 현상 등이 이를 방증한다.
이상빈 교수와 나는, 이젠 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러한 결과를 심도 있게 조명해보는 책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며 이 책을 준비했다. 그리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독자가 한국문학이 어떻게 번역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번역가들이 겪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번역가의 역할과 위상이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함에 따라 번역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관심 또한 높아진 것이다. 이 흐름에 맞추어 우리는 번역가의 목소리를 최대한 담아보기로 했다.
우리는 이 책을 총 4부로 구성했다. 1부에서는 하나의 번역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번역가가 겪는 깊은 고민과 지난한 과정을 담았고, 2부에서는 오역 논란에서 벗어나 창조적 번역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루었으며, 3부에서는 작가와 번역가 그리고 연구자가 당면한 과제를 심도 있게 살폈다. 그리고 마지막 4부에서는 한류 열풍 속 K 문학의 위상과 실체를 드러내고자 했다.
문학 번역 과정과 사회적 의미
번역가가 들려주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는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번역한 제이미 장의 글과 김혜순의 시집 《한 잔의 붉은 거울》을 공동 번역한 로렌 알빈・배수현의 글에서 펼쳐진다. 제이미 장은 원작을 처음,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읽었을 때 느낌이 서로 어떻게 달랐는지 설명하며, 가부장적 사회에서 억압받고 고통받는 주인공 김지영의 목소리를 원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고뇌하는 인지적 과정을 보여준다. 로렌 알빈과 배수현은 시 번역에서 수반되는 탐구와 거듭되는 수정을 구체적 예시와 함께 다루며, 번역가의 배경에서부터 작가와 작품 주제를 파악해 나가는 과정이 문학 번역에서 왜 필요한가를 상세히 기술한다.
한국 소설 번역의 거장인 브루스 풀턴은 역사적 고통과 사회적 갈등 그리고 치유의 관점에서 한국 현대소설을 바라본다. 그가 주찬 풀턴과 함께 번역한 조정래의 《오 하느님》, 김사과의 《미나》, 천운영의 《생강》, 김숨의 《한 명》, 공지영의 《도가니》, 정용준의 《프롬 토니오》, 홍석중의 《황진이》와 같은 작품이 왜 중요한가를 설명하며, 문학 작품을 번역한다는 것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공감과 통찰력을 확대해가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창조적 번역
번역가에게 창조적 글쓰기는 금기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번역은 원문을 그대로 옮기는 기계적 작업이고, 이러한 관념적 틀을 벗어나는 글쓰기는 일종의 배신 행위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완벽한 치환이나 대치는 불가능하다. 특히 문학 번역에서 메시지 단위의 일대일 대응이 어려운 것은 문화나 언어의 본질적 차이뿐만 아니라 원작자의 독특한 문체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들로 창조성을 빼고 문학 번역을 논할 수 없다.
정은귀는 번역에서 창조성과 충실성은 서로 배타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보적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번역가는 반복적인 원작 읽기를 통해 원전 텍스트의 맥락을 정확하게 해석하려는 충실성을 가지며, 동시에 작품을 재해석하고 이를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재구성하는 창조성도 지닌다는 것이다.
리지 뷸러는 번역본이 비록 원본으로부터 파생된 것이지만, 번역본이 원본에 대해 종속적 관계에 있지 않으며, 번역이 원작의 ‘두 번째 삶’을 만드는 ‘재활용 행위’라고 해석한다. 나아가 그는 재활용 행위로서의 번역을, 새로운 상품을 무한히 창출하도록 압박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 행위’로 본다.
전 미세리는 현재 신경망 기반의 기계 번역이 문학 작품에서 흔히 등장하는 은유와 암시는 물론, 문장 단위 너머 존재하는 의미관계도 제대로 번역해내지 못함을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무엇보다도 기계 번역은 번역가가 경험하는 창조적 의식 과정을 거칠 수 없으며, 이것이 기계 번역과 인간 번역의 본질적 차이를 드러낸다고 강조한다.
번역가, 작가, 그리고 연구자의 과제
한국문학 번역의 또 다른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안선재는 지난 120년간의 한국문학 번역사를 간결하면서도 매우 흥미롭게 들려준다. 그는 세계 독자에게 호소력 있는 한국문학이 되기 위해서 작가들은 “즐길 거리가 되고 상상력 풍부하며 때로 머리카락이 쭈뼛 설만큼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써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전승희는 번역의 창조성을 강조하면서도 책임 있는 번역가의 자세 또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좋은 번역을 만들어내기 위해 번역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는 조력자들과 협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를 그는 번역가의 ‘겸손함’이라고 부른다.
이상빈은 한국문학 번역에 대한 담론 및 연구가 현재까지 활발히 진행되지 않은 점을 안타까워하며, 과도한 오역 논쟁 및 수상작 중심으로 편중된 연구, 다른 학문과의 교류 부재, 작가・번역가・독자에 초점을 맞춘 연구 부족 등을 지적하며, 한국문학 번역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한류로서의 K 문학과 지원 기관
K 문학은 한류의 하나로서 조명되기도 한다. 제이크 레빈은 지난 20여 년간 한국문학번역원의 막대한 지원으로 브랜드화된 K 문학이 K 문화 콘텐츠의 하나로 축소되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그러면서 그는 K 문학 번역가는 K 콘텐츠를 생산하는 임금 노동자이지만, 동시에 번역가로서 창의성을 지닌 예술가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형진은 한국문학 번역의 생산과 소비를 문화자본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시장주의 관점에서 밀도 높게 논의한다. K 문학이 세계 시장에서 더 많이 읽히기 위해서는 그간의 ‘국수주의적인 번역’을 지양하고 K 팝의 문화 마케팅 전략을 참조할 것을 제안한다.
신지선은 한국문학번역원이 K 문학을 브랜드화하고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이라는 목표를 실행하기 위해 지난 20여 년에 걸쳐 진행한 사업들을 ‘평가 시스템’과 ‘지원 도서 선정 방식’을 중심으로 재조명한다.
문학 번역, 번역가, 그리고 K 문학
문학 번역가는 원작을 수차례에 걸쳐 치밀하게 읽어가며 작가와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재해석하고, 대상 독자의 인지적 의미망에 비추어 자기만의 고유한 번역 텍스트를 생산한다. 이 책은 문학 번역이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창조적 과정을 거친 번역 행위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한국문학 번역 비평은 그간 원본중심주의에 치우쳐 번역가의 창조성을 간과해왔다. 이제라도 한국문학 번역 담론은 원작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만드는 번역가의 창조적 과정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유튜브, 틱톡 등의 개인 영상 플랫폼과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와 같은 OTT 서비스가 범람하는 요즘 세상에서, 문학 번역은 들이는 정성과 노력에 비해 돈이 안 되는 고된 노동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 결과물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번역가는 원작자의 그늘에 가려져 빛을 보기 쉽지 않으며, 간혹 오역이라도 있으면 번역가는 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이러한 현실에도 번역가는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 원로 번역가는 번역은 “겸손한 봉사”라고 했고, 또 다른 번역가는 “모든 번역이 의미가 있다”라고 말하며 번역가의 사명을 다시 한번 일깨운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한국문학 번역가들의 숨은 노고로 지금의 ‘K 문학’•이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 이 명칭은 초기에 정부 기관의 주도로 사용되었다. 이 책의 제목에 쓰인 ‘K 문학’은 ‘번역된 한국문학’의 대체어로 쓰였다. 언어 사용자의 목적과 맥락에 따라 이 용어의 의미 차이는 발생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용어를 시기적으로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발생한 한국문학 번역 작품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했다.
한국문학 번역이 지금 ‘K 문학’이라는 브랜드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한국문학이 지금보다 더 흥미로운 초국가적 이야기를 생산하고 번역가의 목소리가 지금처럼 확대되어 나아가는 한, 이러한 성장은 지속될 것이다. 결국 머지않은 미래에 ‘K 문학’이 아닌 ‘한국문학’으로서 영미, 유럽, 일본 문학처럼 세계문학 안에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러두기
1. 영어로 기고된 글의 경우, 영어 원본과 한국어 번역본을 함께 수록했다. 번역가 이상원 교수가 번역했으며, 출판사의 편집을 거쳤음을 밝힌다.
2. 독자의 편의를 위해 영어로 기고된 글은 번역된 글 뒤에 배치했다. 보충 설명을 한 각주는 원본과 번역본에서 모두 살리되(역주 제외), 출처 표기를 한 미주는 번역본에만 넣고 원문에서는 생략했다.
번역은 누군가 만들어놓은 세상으로 들어가 인물들이 나를 통해 말하도록 하는 느낌을 준다. 인물들의 생각과 감정은 한국어로 내 머릿속에 들어오고, 최대한 편견 없이 처리되고 경험된 후 영어로 나온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거나 분명히 볼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몇 번이고 텍스트를 읽으며 고민한다.
번역을 시작한 초기 몇 년 동안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닥치는 대로 일을 맡으면서, 불쾌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종종 만나곤 했다. 이런 인물들이 나를 통해 말하도록 하는 건 ‘역겨웠다’. 번역가로서 나는 최선을 다해 그들의 입장이 되어주었다. 그 입장이 더럽고 추잡스러워도 어쩔 수 없었다. 괴로웠지만 나는 판단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제 학자금 대출이 정리되어 일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작중인물의 입장에 서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새로운 이유가 등장했다. 너무도 내 이야기 같다는 것. 등장인물이 따귀를 맞거나 배우자의 죽음을 맞는 등 고난을 겪을 때, 나도 여느 독자처럼 간접 경험을 한다. 다만 그 강도가 훨씬 높고 상세하다. 인물과 이야기를 경험하면서 인물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공감하려 하는데, 이는 대부분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최근 나는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인물들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 내가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확신했던 억압된 소수자의 고난이 한층 복잡 미묘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는 무언가 핵심적인 것을 빼먹고 번역한 듯한 불편함을 느꼈다. 김지영도 그런 인물 중 하나였다.
처음 《82년생 김지영》 번역을 의뢰받았을 때, 나는 식은 죽 먹기일 거라 생각했다. 나와 김지영은 둘 다 여자고, 한국에서 태어났으며, 나이가 같았다. 나는 김지영과 같은 때 학교에 다녔다. 이보다 쉬운 번역은 없을 듯했다.
첫 번째로 읽었을 때 《82년생 김지영》은 소소한 여성혐오와 폭력을 일상적으로 견디는 모든 여성에 대한, 그리고 이런 폭력이 출산 후 우울증과 정신병을 낳은 극단적 사례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같았다. 두 번째로 읽었을 때는 근면 성실하지만 수동적인 한 개인 김지영이 말하지 못한 생각과 표현하지 못한 분노로 삶을 이어가다가 정신병자가 되는 이야기로 보였다. 번역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 세 번째로 읽었을 때는 1인칭 남자 정신과 전문의가 제3자인 환자에 대해 기록하는 보고서로 여겨졌다. 여자에게 유리한 상황이 결코 전개되지 않는 여성혐오 사회에 존재한다는 그 이유 하나로 정신병을 앓게 된 환자의 진술은, 의사 자신의 여성혐오를 통해 검열당하고 편집되어 있었다.
고백하건대, 세 차례 책을 읽고 겹겹의 이야기를 다 파악한 후에도 나는 어째서 김지영이 정신병을 앓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김지영은 조남주 작가의 통계 조사를 통해 만들어진 우화적・원형적 인물일까? 모든 독자가 여성 인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투사할 수 있도록 제시된 한국인・여성・이성애자・밀레니엄 세대라는 빈 석판일까?
그저 우화적인 가상 존재로 만들어졌다 해도 김지영 이야기에는 특정 사회경제적 범주에 해당하는 세부 사항이 너무도 많았다. 이렇게 범주화할 경우 모든 여자를 포괄하기는 불가능해 보였다(이 책이 폭넓은 인기를 얻은 후 남성뿐 아니라 여성의 비판도 쏟아졌다). 김지영을 한국에서 일어나는 여성 억압의 대표 격으로 보는 경우, 그보다 사회경제적 조건이 낮은 여자들은 김지영의 고통을 그저 투정으로 축소해 무시하게 될 것이고, 반대 상황의 여자들은 김지영의 인생 통제력 부재를 비난하고 나설 것이 뻔했다. 양쪽 모두 김지영이 ‘나약’하다고 몰아세울 판이었다.
조남주의 소설집 《우리가 쓴 것》에 실린 〈오기〉에서, 페미니즘 소설가 강초아는 자기 책의 성공이 명성과 살해 위협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고 말한다. 힘겨운 상황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문학 담당 교사이자 고마운 은사였던 김혜원 선생님이 연락해온다. 대학에서 초청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이었고 과거의 인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락한다. 강연 후 강초아와 김 선생님은 술을 마시면서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이를 계기로 작가는 자기 가족의 기억을 떠올린다. 강초아는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데, 출판 후 김 선생님의 전화를 받는다.
특강 이후 한 번도 서로 연락한 적 없던 김혜원 선생님에게 한밤중 전화가 왔다.
“어떻게 남의 얘기를 고스란히 훔쳐다가 쓸 수가 있어? 나한테 가장 아픈 기억인데, 정말 힘들게 털어놓은 건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네?”
“이번 《릿터》에 실린 소설, 그거 내 얘기잖아!”
“아…, 아닌데요.”
“똑같던데? 완전히 똑같던데?”
선생님은 내가 당신 아버지의 무능한 부분과 폭력적인 부분을 분리해 ‘아버지’와 ‘오빠’라는 두 개의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에서 아버지에게 맞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아버지 사망 후 오빠에게 맞은 것으로 살짝 바꾸었고, 오빠가 가방 검사를 하며 지갑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는 에피소드는 당신 아버지의 행동과 똑같고, 주인공이 폭력을 당하면 순간 그대로 얼어붙는 것도 선생님과 같다고 했다.
“선생님, 세상에는 아버지나 남자 형제의 폭력을 경험한 여자들이 너무 많아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사실은 꽤 흔한 일이잖아요.”
“흔한 일? 참 쉽게 말하네. ‘작가님, 작가님’ 떠받들어주니까 바닥에서 악다구니하는 여자들이 우습지? 대충 끌어다가 보편이니 평범이니 하면서 납작하게 뭉개도 될 것 같지? 네가, 그리고 네 소설을 읽은 사람이 세상 여자들의 삶이 모두 다르다는 걸, 제각각의 고통을 버티고 있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왜 못 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거, 선생님만 할 줄 아는 거 아니에요.”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는 여자들이 많았다. 도서관 강연이 끝난 후에,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서점 사인 행사의 그 짧은 순간에도 답변이나 조언을 원해서가 아니라 쏟아져 나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여기 엄지 끝은 공장에서 일할 때 잘린 거야” “친정엄마한테 아이를 맡겼는데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나 베트남에서 와서 말 잘 몰라” “저는 미투 고발자예요” … 우리는 서로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책 써주셔서 고마워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말해주셔서 고마워요.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끝내 그 소설이 내 이야기였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나도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생각과 감정을 드러낼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항변하는 것 같아 싫었다. 대체 그 자격은 무슨 기준으로 누가 왜 정하는 건데. 나 자신에게도, 선생님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그런 조건을 들이대고 싶지 않았다. 그냥, 너무 지쳤다.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_72~74쪽
보편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사이의 긴장은 개인 경험 간의 차별성을 날카롭게 부각한다. 가정 폭력은 사회문제지만, 술에 취한 아버지의 주먹은 개인적 악몽이다. 트라우마 경험이 한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할 때, 그 고통이 ‘보편적 현상’이라는 표현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누가 더 고통받았나? 누가 더 대표로 나설 만한 자격이 되는가? 한국에서 여자로 사는 것의 고난을 상징하는 존재는 누구여야 하는가? 이런 질문은 여자들에게 갈등의 원인이 되고 서로 적대하게 만든다. 많은 이가 김지영을 보편적 여성으로 밀어내면서 자신의 고통은 그와 다르다고 보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 과정에서 개인 김지영, 남자 정신과 의사의 1인칭 서사에 갇힌 그 존재는 잊혔다.
내게 가장 큰 도전은 정신과 의사의 검열을 뚫고 김지영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무척이나 까다로운 일이었다. 마치 불투명 유리문을 통해 김지영을 바라보는 듯했다. 번역가로서 나는 정신과 의사라는 필터를 통해 김지영을 바라보아야 마땅했다. 그것이 이야기의 서사에, 의사의 객관적이고 의료적이며 자기만족적인 관점에 충실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이자 한 인간으로서 나는 김지영의 목소리가 좀 더 컸으면 싶었고, 그래서 정신과 의사의 편집 너머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 유리문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볼 때 우리가 보는 것은 자기 환상의 투사뿐이다. 내가 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과 관계 맺을 때는 그래도 아무 문제 없다. 가장 가깝고 친밀한 사이라 해도 서로의 ‘진짜’ 모습까지 들어가지는 말고 멈춰서라는 불문율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번역가로서 나는 가상의 인물을 가능한 한 완벽하게 보려고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나는 자신을 너무 많이 투사하지 않고 이 원형적 여성을 더 진짜로 만들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하여 수학적, 더 정확히는 연대기적 방식을 시도했다. 김지영의 삶을 연도별로 정리했다. 같은 해에 출생한 내게는 어렵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리고 김지영과 나의 일생을 나란히 두고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 비교해보았다.
곧바로 내 관심을 끈 것은 김지영이 평생 서울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후,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갔고, 남편과 구한 첫 집도 서울이다. 나와 달리 김지영이라는 물리적 존재는 지리적으로 단일한 소재지에 굳건히 묶여 있었고, 이 때문에 공동체의 중요성도 큰 것 같았다. 김지영의 취미 모임은 대학 때의 등산 모임만 언급되어 있지만, 가족은 평생 중요한 존재였다.
그리고 아마 더욱 중요한 요소로 드러나는 것은 김지영이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직했고, 9년 후 결혼할 때까지 같은 광고회사에서 줄곧 일했다는 점이다. 늘 프리랜서로 일해온 내게는 놀라운 일이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보내기에 9년은 무척이나 긴 세월이다. 나는 같은 직장에서 9년을 보내기는커녕 한 나라에서 9년을 살아본 적조차 없다. 야근과 주말 근무가 잦았던 점을 고려할 때, 김지영은 그 회사에서 9년 동안 매년 50주를 주당 평균 50시간씩 일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3년의 고된 고교 시절을 보내고, 다시 대학에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4년을 힘들게 보낸 뒤, 직장인으로 9년 동안 경력을 쌓았는데,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김지영과 나는 둘 다 열심히 노력해 2014년의 위치에 도달했지만, 엄마가 되었다는 데 대한 벌로 김지영은 경력을 버려야 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번역이 사무실에 출근해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면 어땠을까? 태어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일을 그만두어야만 했다면 어땠을까? 그 아이와 나는 어떤 관계를 맺게 되었을까? 공동체와는 어땠을까? 늘 차별적으로 대해온 사회, 자신을 벌레처럼 여기는 그곳에서 생산성 높은 구성원이 되기 위해 개인이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일까?
9년 세월의 또 다른 요소는 더욱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김지영이 다니던 회사에서 터진 여자 화장실 불법 촬영 사건이다. 10년 넘게 함께 일해온 남자 직원들은 불법 촬영 카메라의 존재를 알면서도 여자 직원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9년 동안 매주 5일을 함께 일하고 먹고 마시고 야근을 이어왔음에도, 여자 직원들의 은밀한 모습이 촬영되고 있다는 점을 말해주지 않는다. 동료에 대한 그토록 크고 모욕적인 배신이 또 있겠는가?
이렇게 김지영의 연대기를 훑고 나자, 불투명 유리문을 열고 김지영과 직접 만나는 실제 경험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나는 김지영을 수동적인 구식 여자로 보게 될까? 김지영은 나를 낯선 ‘외국인’으로 바라볼까? 서로의 고통을 비교하고 견주는 오랜 역사가 지나고 난 후, 여자들이 가부장제로 왜곡된 관점에서 벗어나 상대 여자를 만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아니면 각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움을 벌이게 될까?
조남주 작가의 위대함은 모든 것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두려움 없이 파고든다는 사실에 있다. 《82년생 김지영》 출간 이후 작가는 시대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책을 쓴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1982년에 출생한 평균적인 한국 여자가 어떻게 살아갔는지, 개인의 현실이 얼마나 신속하게 상상하기 어려운 악몽으로 바뀔 수 있는지 후세에 알리기 위해서라고.
몇십 년이 흐른 후 조남주 작가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현재 그의 책을 번역하는 건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집단적 트라우마를 찾아 최근의 한국이라는 전장을 안티고네 뒤에서 누비는 것과 같았다. 내가 매료된 지점은 작가가 사소한 공격이든, 폭력적 억압이든, 나아가 수동적 공격이든,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고통스러운 길을 걸어가 다다른 그 끝에 아름다움이나 희망 따위는 없으리라는 단호함이었다. 억누르고 멈춰 서고 이주해버리는 것을 해결책이라 여겼던 내게 조남주 작품의 번역은 커다란 깨달음과 충격을 주었다.
〈오기〉의 마지막은 강초아가 김 선생님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이다.
나는 ‘김혜원 선생님께’로 시작하는 메일을 쓴다. 죄송하다고, 그렇게 전화를 끊은 나 자신이 부끄럽다고. 소설의 내용은 대부분 내 경험이었고 우리가 비슷한 경험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같은 사람은 아닐 거라고, 우리가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선생님과 밤새 나눴던 대화가 내 기억들을 불러온 것은 맞다고 쓴다. 그러므로 선생님의 항의는 타당했다고 쓴다. 막막하고 피곤하던 고3의 시간들과 무능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과 나까지 대학에 보낼 여유는 없다며 수능 날 아침 미역국을 끓여주던 엄마를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새의 선물》과 선생님 덕분이었다고 쓴다. 선생님이 있어서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고 쓴다. 그때는 내 고통이 너무 커서 이런 고민조차 사치였던 또래들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부끄럽다고 쓴다. 그러나 나는 내 경험과 사유의 영역 밖에도 치열한 삶들이 있음을 안다고, 내 소설의 독자들도 언제나 내가 쓴 것 이상을 읽어주고 있다고 쓴다. 그러므로 이제 이 부끄러움도 그만하고 싶다고, 부끄러워 숙이고 숨고 점점 작게 말려 들어가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고, 그만하고 싶은 이 마음이 다시 부끄럽다고 쓴다. 대체 내가 왜 이렇게까지 부끄러워야 하느냐고 쓴다. 선생님이 원망스럽다고 쓴다. 미안하고 고맙다고 쓴다.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쓴다.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쓴다. 하지만 보고 싶지 않다고 쓴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쓴다. 그래도 보고 싶을 거라고 쓴다. 결국 만나게 될 거라고 쓴다. _79~80쪽
Kim Jiyoung’s Life and My Life
- Jamie Chang -
For me, translating feels as if I am entering a world someone else created and letting the characters speak through me. The characters’ thoughts and feelings enter my head in Korean, gets processed and experienced as fully and without bias as possible, and comes out in English. If there’s something I can’t fully understand or see clearly, I study the text over and over until I get it.
In the early years of my translating career when I was taking all and any work that came my way to pay off my monumental student loans, I sometimes came across unsavory protagonists validated by the narrative. “Revolting” is how I would describe what it felt like to have these characters speak through me. As a translator, I feel I must walk in the shoes of my characters to the best of my ability, even when the shoes are filthy and they take me to some disgusting places. It is not my place to judge, but it’s unpleasant.
Now that I’ve paid off my student loans and can afford to choose my projects, stepping into someone else’s shoes can be tough for a whole new reason: the story hits too close to home. A character who is undergoing hardship, whether it’s a slap across the face or the death of a spouse, I feel it secondhand as any reader would, but in much greater detail. Going through the experience with the character and the story, I try to make sense of the emotion and empathize with the character, which is not that difficult with most stories that hit too close to home. But lately, I find myself increasingly confused by characters I thought I knew. The plight of oppressed minorities I believed beyond doubt that I understood completely turned out to be much more nuanced, and left me feeling uneasy, as if I missed and left out something crucial in my translation. Kim Jiyoung was one of those characters.
When I was asked to translate Kim Jiyoung, Born 1982, I thought, what could be easier? We’re both women, we’re both Korean, we’re the same age. I went to school with the Kim Ji-young’s. This is going to be a piece of cake.
When I read Kim Jiyoung, Born 1982 for the first time, it read like an anthropological study of every woman enduring everyday misogynistic micro-aggressions that led to an extreme case of post-partum depression and psychosis. When I read it for the second time, it read like the narrative of a hardworking but passive individual called Kim Jiyoung whose lifetime of unvoiced opinions and unexpressed anger culminates in a mental breakdown. When I read it for the third and final time before I started translating, I saw it as a third person patient report embedded in a first person narrative of a male psychiatrist whose misogynistic projections are censoring and coloring the accounts of a woman suffering from psychosis as a result of simply existing in a misogynistic society, where the odds are never in her favor.
I confess, after reading the book three times and peeling back all the layers, I was still puzzled as to why Kim Jiyoung had developed a psychosis. Was the character Kim Jiyoung meant to be read strictly as an allegory and prototype constructed by Cho Nam-joo’s careful statistical research? A blank slate representing the Korean female heterosexual millennial onto which all readers may project their frustrations regarding women’s rights?
Even if Kim Jiyoung was meant to be just a stand-in, there were enough details in her story that put her in a certain socioeconomic category (Seeing as the category did not include all women, the widespread popularity of the book generated criticism voiced by women as well as men). Seeing Kim Jiyoung held up as the poster woman for female oppression in Korea, I could almost hear the less privileged women minimizing and dismissing Kim Jiyoung’s suffering as whining, and the more empowered women blaming Kim Jiyoung for not taking control of her life. I could imagine both sides accusing her of being “weak.”
In a Cho Namjoo story published in June 2021 called “Misprint,” “오기” in Korean, a feminist novelist Kang Choa discusses the massive success of her book, which brought her fame and death threats alike. When an old high school literature teacher Ms. Kim contacts Choa out of the blue with a lecture invitation at a university, she reluctantly accepts out of gratitude for Ms. Kim’s kind gesture in high school. Kang Choa and Ms. Kim catch up after the lecture. Over drinks, they share a deep, meaningful conversation that brings back memories of family history for the writer. She writes the story, and when it is published, she gets a call from Ms. Kim:
특강 이후 한 번도 서로 연락한 적 없던 김혜원 선생님에게 한밤중 전화가 왔다.
“어떻게 남의 얘기를 고스란히 훔쳐다가 쓸 수가 있어? 나한테 가장 아픈 기억인데, 정말 힘들게 털어놓은 건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네?”
“이번 《릿터》에 실린 소설, 그거 내 얘기잖아!”
“아…, 아닌데요.”
“똑같던데? 완전히 똑같던데?”
선생님은 내가 당신 아버지의 무능한 부분과 폭력적인 부분을 분리해 ‘아버지’와 ‘오빠’라는 두 개의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에서 아버지에게 맞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아버지 사망 후 오빠에게 맞은 것으로 살짝 바꾸었고, 오빠가 가방 검사를 하며 지갑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는 에피소드는 당신 아버지의 행동과 똑같고, 주인공이 폭력을 당하면 순간 그대로 얼어붙는 것도 선생님과 같다고 했다.
“선생님, 세상에는 아버지나 남자 형제의 폭력을 경험한 여자들이 너무 많아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사실은 꽤 흔한 일이잖아요.”
“흔한 일? 참 쉽게 말하네. ‘작가님, 작가님’ 떠받들어주니까 바닥에서 악다구니하는 여자들이 우습지? 대충 끌어다가 보편이니 평범이니 하면서 납작하게 뭉개도 될 것 같지? 네가, 그리고 네 소설을 읽은 사람이 세상 여자들의 삶이 모두 다르다는 걸, 제각각의 고통을 버티고 있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왜 못 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거, 선생님만 할 줄 아는 거 아니에요.”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는 여자들이 많았다. 도서관 강연이 끝난 후에,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서점 사인 행사의 그 짧은 순간에도 답변이나 조언을 원해서가 아니라 쏟아져 나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여기 엄지 끝은 공장에서 일할 때 잘린 거야” “친정엄마한테 아이를 맡겼는데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나 베트남에서 와서 말 잘 몰라” “저는 미투 고발자예요” … 우리는 서로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책 써주셔서 고마워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말해주셔서 고마워요.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끝내 그 소설이 내 이야기였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나도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생각과 감정을 드러낼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항변하는 것 같아 싫었다. 대체 그 자격은 무슨 기준으로 누가 왜 정하는 건데. 나 자신에게도, 선생님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그런 조건을 들이대고 싶지 않았다. 그냥, 너무 지쳤다.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_72~74쪽
The tension between the universal and the individual brings the differences in individual experiences into sharp focus. Domestic abuse is a social problem, but a violent drunk of a father is a personal nightmare. When a traumatic experience shapes one’s identity, it isn’t easy to hear that one’s suffering is “a common occurrence.” Who has suffered more? Who is more deserving of a platform? Who should be the poster woman for the plight of Korean womanhood? These questions become a source of contention among women and turn them against each other.
Many pushed back against Kim Jiyoung as the universal every woman, each measuring their own suffering against hers. And maybe in that process, the individual Kim Jiyoung trapped in the male psychiatrist’s first person narrative, was forgotten.
The greatest challenge for me was trying to hear Kim Jiyoung’s voice through the layer of the psychiatrist’s censorship. This turned out to be an exquisite bane because it was as if I was looking at Kim Jiyoung through a frosted glass door. As a translator I had to try to see Kim Jiyoung through the psychiatrist’s filter in order to be faithful to the narrator of the story, and his objective, clinical, self-congratulatory perspective. But as a reader and person I wanted Kim Jiyoung to speak a little louder and take a step closer to the glass door so I could hear her over the psychiatrist’s deafening editing.
When two people look at each other, all we see is projections of our own fantasies. That’s truly fine by me as a person forming relationships with other people. There’s a sort of unspoken agreement between me and those nearest and dearest to me that, for our collective sanity, we will stop trying to get to “the real” in each other, if that even exists. But as a translator, I still believe that it’s my duty to try to see the fictional character as fully as possible. So I searched for a way to make this every woman prototype more real for me without projecting myself onto her too much.
And this led me to math, or more specifically, time. I went through her biography year by year. This was easy to do because we were both born in the same year. I was able to place our timelines side by side and compare what we had been doing and where.
What immediately caught my attention was the fact that Kim Jiyoung never lived outside Seoul in her life. Born and raised in Seoul, she went to university in Seoul and bought her first home with her husband in Seoul as well. Unlike me, her physical being had strong ties to one geographical location, which probably also meant that her community was important to her as well. There is no mention of other interest groups Kim Jiyoung is involved in besides the hiking club in college, but her family is an important presence in her life.
The second and perhaps more crucial observation was that Kim Jiyoung was hired straight out of college and never stopped working at the same advertising firm until she married nine years later. This was astounding to me because I’ve worked freelance all my life, and nine years is a very long time to be working with the same people in the same place. I don’t think I’ve ever lived in the same country for nine years in a row, let alone work at the same company. Assuming there were lots of late nights and weekends as she worked at an advertising firm, let’s say she worked an average of 50 hours per week roughly 50 weeks per year for nine years. Three years of hard work in high school to get into a good university, where she had another four years of hard work to get into a good company, where she put in nine years to build a career, and she had to give it up because she had a child. Kim Jiyoung and I both worked so hard to get where we were in 2014, but as punishment for having a child, Kim Jiyoung was forced to give up her career.
I asked myself, what if translating were an office job? What if I had to throw my career away to raise the child I just had? What kind of relationship would I have with that child? And what about her community? What does it take for a person to keep being a very productive member of a society that continues to discriminate against her? Treats her like a vermin?
The other element of the nine years was even more baffling: a bathroom spycam incident breaks out at Kim Jiyoung’s firm. The male coworkers of over ten years do not warn their female coworker about the spycam. Five days a week for nine years they worked, ate, drank, pulled all-nighters together, and the men did not tell the female coworkers that images of her private parts were out there. How does one process such a profound, insulting betrayal of camaraderie?
After this dive into Kim Jiyoung’s timeline, I wondered, what would be the real-life equivalent of opening that frosted glass door and meeting Kim Jiyoung in person? Would I find her passive and old-fashioned? Would she find me strange and “not Korean”? After such a long history of having our sufferings pitted against each other, is it even possible for women to meet other women without patriarchal bias distorting their perspectives? Or fight for each other’s rights?
Cho’s greatest strength lies in the fact that she looks at things squarely in the face and examines them so fearlessly. In interviews following the publication of Kim Jiyoung, Born 1982, Cho has often said that she wrote these books as a means of preserving a record of the times. To let posterity know how the average Korean woman born in 1982 lived, how quickly a person’s reality could turn inconceivably awful.
I don’t know how Cho will be received by posterity decades from now, but translating Cho in the present is like trailing behind Antigone through the battlefield of recent Korean past in search of collective traumas still waiting for proper burials. Whether it’s micro-aggressions or violent oppression, or even passive aggressions, what I find amazing about Cho is her refusal to look away from the problem. Or deny that there’s any beauty or hope left, despite the tortuous path leading to them. As a big fan of repression, quitting, and emigrating, it’s immensely illuminating and harrowing to be translating Cho Namjoo.
At the end of “Misprint,” Kang Choa writes a letter to Ms. Kim:
나는 ‘김혜원 선생님께’로 시작하는 메일을 쓴다. 죄송하다고, 그렇게 전화를 끊은 나 자신이 부끄럽다고. 소설의 내용은 대부분 내 경험이었고 우리가 비슷한 경험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같은 사람은 아닐 거라고, 우리가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선생님과 밤새 나눴던 대화가 내 기억들을 불러온 것은 맞다고 쓴다. 그러므로 선생님의 항의는 타당했다고 쓴다. 막막하고 피곤하던 고3의 시간들과 무능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과 나까지 대학에 보낼 여유는 없다며 수능 날 아침 미역국을 끓여주던 엄마를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새의 선물》과 선생님 덕분이었다고 쓴다. 선생님이 있어서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고 쓴다. 그때는 내 고통이 너무 커서 이런 고민조차 사치였던 또래들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부끄럽다고 쓴다. 그러나 나는 내 경험과 사유의 영역 밖에도 치열한 삶들이 있음을 안다고, 내 소설의 독자들도 언제나 내가 쓴 것 이상을 읽어주고 있다고 쓴다. 그러므로 이제 이 부끄러움도 그만하고 싶다고, 부끄러워 숙이고 숨고 점점 작게 말려 들어가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고, 그만하고 싶은 이 마음이 다시 부끄럽다고 쓴다. 대체 내가 왜 이렇게까지 부끄러워야 하느냐고 쓴다. 선생님이 원망스럽다고 쓴다. 미안하고 고맙다고 쓴다.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쓴다.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쓴다. 하지만 보고 싶지 않다고 쓴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쓴다. 그래도 보고 싶을 거라고 쓴다. 결국 만나게 될 거라고 쓴다. _79~80쪽
김혜순 시집 《한 잔의 붉은 거울》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2015년 가을 학기 애리조나주립대학교의 번역 세미나 교과목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 시작할 때의 인원은 여덟 명으로, 대학생인 레베카 티그, 다코타 헤일, 케빈 설터, 시에라 하멜, 니콜 린델과 대학원생인 로렌 알빈과 배수현, 그리고 담당 교수인 신지원 교수님이었다. 각자의 능력과 관심을 바탕으로 시집에 실린 시들을 나누었고, 각자 번역한 후 수업 시간에 결과물을 토론했다. 신 교수님은 시집 《불쌍한 사랑 기계》가 한국에서 출판된 1997년에 김혜순 시인과 만났고, 두 사람은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e)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친해진 친구 사이라고 했다. 반면 학생들은 김혜순 시인을 처음 접하는 처지였다.
학생들의 한국어 능력과 시에 관한 관심 수준은 다양했다. 그래서 같은 시를 번역해도 결과물이 무척 달랐다. 대학생 중에서는 한국어 고급 수준인 사람이 둘 뿐이고, 나머지는 초급과 중급 사이에 걸쳐 있었으며, 한 명은 고급 일본어 실력에 기반해 한국어를 이해하는 경우였다. 어린 시절 일부를 서울에서 보냈던 수현과 2년간의 한국어 학습을 거쳤던 로렌만이 시적 감성과 오늘날 미국 시의 경향 등을 고려해서 작업할 수 있었다. 한국 문화, 역사, 문학에 관해 이해가 필요한 부분은 신 교수님이 해결해주었다. 김혜순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특별한 비유, 민속 정보, 비속어 등에 대해서도 늘 신 교수님의 도움을 받았다.
학기가 시작한 뒤 몇 주 동안에는 김혜순 시인과 그의 시 철학을 공부했다. 김소월, 김지하, 이상 등의 작품을 포함해 한국 근현대 시인들의 성향도 함께 배웠다. 번역을 통해 만나게 되는 한국 시인은 대부분 남자였다. 우리는 김혜순 시인의 여성적 그로테스크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 시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어떻게 도입・활용되었고, 삶에 대한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살펴야 했다. 한국 시가 무속적인 이야기 형태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해방과 전쟁 이후 남성 시인들이 바로 그 여성적 목소리를 차용했다는 점도 중요했다.
김혜순은 버려진 공주 바리데기 신화에서 여자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무속적 산문시 형태로 보존된 이 신화에서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진 공주는 최초의 무당이 되어 죽은 영혼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김혜순은 바리데기가 아들 출산 후 이야기에서 사라져 버리는 다른 여자들, 예를 들어 단군의 어머니 웅녀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는 김혜순이 다음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한국 시가 ‘두 층위’를 지닌다는 점도 알아야 했다.
한국 시는 늘 두 층위로 존재해왔다. 하나는 귀족 남자들이 음절 수를 맞추어 짓는 정형시였고, 다른 하나는 여자들의 노래였다. 귀족의 시는 한문으로 쓰였고, 시를 잘 쓰는 남자는 왕궁이 주관하는 과거 시험을 통해 관료 지위를 얻었다. 반면 여자들은 일상적 삶, 사랑, 시댁 어른들 밑에서 참아내야 하는 슬픔, 빈곤, 노동, 그리고 억압에서 기인한 환상을 중심으로 시를 썼다. 이들 시는 노래로 불리고 구전되었다.1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이라는 시론집에서 김혜순은 무당과 여성 시인의 관계를 길게 설명한다. 중요한 점은 무속 제례에서 여자가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일부 글을 최돈미 시인이 번역해 《Princess Abandoned(버려진 공주)》라는 제목의 소책자로 출간했다. 이 소책자 서문에서 최돈미는 “한국문학 전통에서 무속적 이야기는 여자와 평민에게 할당된 낮은 지위에 늘 머물렀다. 무당은 외부인으로서 가장 낮은 위치였다”2라며 무당과 여성 시인의 전통을 언급한다. 김혜순 시의 그로테스크한 목소리는 무당과 여자의 목소리인데, 이는 전통을 파괴하는 동시에 유지시킨다. 바리데기의 죽음 지평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여자의 경험은 김혜순 시를 읽어가는 독자들이 안내받는 세상, 늘 존재했지만 저급하거나 평범하다고 폄하되던 장소다. 시와 대립된다고 보일 수도 있는 바로 그곳에서 여자의 시가 탄생한다.
우리는 일본 식민 치하 남성 시인들이 나라의 상실을 슬퍼하면서 전근대적 여자의 목소리를 도입했던 한국 근대 시의 경향에 대해서도 배웠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그 예다. 이런 경향이 전쟁 후까지 이어져 김소월 같은 작가들이 버림받은 여자의 모습으로 한반도 분단을 은유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전근대에서 식민지 시대와 해방을 거쳐 ‘휴전 국가’가 되기까지의 한국 역사가 함축하는 거대한 의미도 이해해야 했으며, 한국문학 전통에 대한 김혜순의 의견과 철학, 특히 ‘시 하기’와 단순한 ‘시 쓰기’ 사이의 구별을 파악해야 했다. 시인은, ‘시 하기’는 시를 쓰기보다는 시를 ‘살고’ 시의 안팎에서 ‘수행’하는 여자들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말3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맥락 이해는 언어 능력과 동등한 수준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A Drink of Red Mirror》는 김혜순의 여덟 번째 시집 《한 잔의 붉은 거울》을 완역한 것으로, 2019년 액션북스(Action Books)에서 출간되었다. 신지원 교수님이 책에서 언급했듯, 《A Drink of Red Mirror》는 액션북스가 최돈미 번역으로 먼저 출간했던 김혜순의 시집 두 권 《Poor Love Machine(불쌍한 사랑 기계)》과 《All the Garbage of the World Unite!(전 세계의 쓰레기여 단결하라)》(《당신의 첫》의 영어판)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
수수께끼처럼 보일지 모르나 제목 ‘한 잔의 붉은 거울’에는 시집의 주요 주제와 이미지가 거의 다 포함되어 있다. 붉은색은 시집 전체에서 계속 등장하는데, 붉은 장미 꽃다발, 붉은 포도주 한 잔, 심장, 팥과 같은 물리적 이미지이기도 하고, 피, 출혈, 얼굴 붉힘, 성적 흥분, 월경, 출산 때 배출되는 액체 등을 함축하기도 한다. 시집 속 ‘붉은색’은 단순한 색깔을 넘어서 여자가 소녀 시기부터 어머니를 거쳐 죽음에 이르기까지 겪는 많은 경험을 시인이 본능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이다. ‘거울’ 역시 여성적 현상으로 변모된다. 거울은 비친 세상이나 사람을 반대 방향으로 보여준다. 김혜순 시 속 여자들은 마치 거울처럼 자기 안에 여러 그로테스크한 세상을 지니고 있다. 〈얼굴〉에서는 ‘당신’ 안에 ‘당신’이 있고, ‘나’ 안에 ‘나’가 있다. 자궁처럼 거울은 스스로 창조한 것을 자기 안에 품을 수 있다. 김혜순 시의 화자들은 자기 몸을 대안적 풍경으로 재개념화하는데, 그 풍경은 녹음 스튜디오, 부엌, 냉장고, 호텔 방, 지하철역, 붉은 대양, 구멍, 꿈 등 일상적인 형태다. 이 화자들의 몸은 현실을 반대로 보여주는, 그리하여 익숙한 것이 갑자기 새롭게 되는 낯설게 하기 효과를 만든다. 독자들은 김혜숙의 그로테스크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다시금 바라보아야만 한다.
시집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또 다른 특징은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신화나 민담에 대한 다시 말하기다. 그리하여 낙랑공주, 유화부인, 에우리디케, 매혹적인 여성의 모습을 한 백 년 묵은 여우 구미호가 등장한다. 〈캄보디아〉와 〈그녀의 음악〉에 나오는 시바의 아내, 성경의 요나 이야기를 다시 상상해 고래 배 속에서 출산하는 여자를 보여주는 〈그녀, 요나〉, 언제든 녹아서 사라질 수 있는 상상 속 여자를 그린 〈얼음의 알몸〉도 여기 포함될 수 있다. 〈말씀〉과 〈얼음의 알몸〉 같은 몇몇 시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인체의 특정 부분에 초점을 맞춘 시들인 〈얼굴〉 〈입술〉 〈칼의 입술〉 〈心臟〉은 짧은 연작을 이룬다. 귀는 한 편의 시가 되지 못했지만, 귀의 이미지는 시집의 거의 모든 시에 등장하고, 귀가 아닌 소리, 반향, 메아리, 리듬, 침묵으로 나오기도 한다. 동물 이름이 붙은 시도 있는데, 시의 화자는 제목이 된 동물의 습성을 여자의 독특한 행동으로 차용한다. 그리하여 〈거미〉는 뜨개질하는 늙은 여자, 〈암탉〉은 피가 흐를 정도로 자판을 세게 두드리는 여자, 〈박쥐〉는 두 손목을 연인의 천장에 매달고 피를 말리고 있는 여자가 된다. 마지막으로 계엄 치하에 살았던 경험을 말하는 시들이 있다. 꿰뚫을 듯한 강한 빛을 자술서 쓰게 하는 심문으로 암시하는 시들로, 〈내 꿈속의 문화 혁명〉이 가장 직접적인 사례다.
처음에는 우리의 노력이 출판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 시 한 편을 숙제로 받았다가 토론을 위해 다시 강의실로 가져올 때면 연습이나 실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 조심스럽게 비평해가며 작업을 진행했다. 시작 단계에서는 대학 교과목의 요구 수준을 맞추는 것과 강의실 규칙 따위는 내버리고 창작 자체를 추구하는 것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했다. 그러다가 번역가로서의 창작 충동을 점점 더 많이 느끼면서 우리는 자기 초고에 대한 남들의 의견을 밀어내기 시작했고, 때론 격한 논쟁까지 벌였다. 그저 조금 애쓰는 수준이던 일이 어느새 갑자기 개인적으로 크게 애착을 갖는 일이 되어버렸다.
학기 중에 한국문학번역원, 그리고 액션북스 공동 편집장이자 시인인 조엘 맥스위니(Joyelle McSweeney)와 함께하는 워크숍이 열렸다. 맥스위니와 한국문학번역원 측은 우리의 초고를 꼼꼼히 살폈고, 사소하거나 중대한 수정을 통해 어떻게 번역을 개선할 수 있을지 세 시간 동안 토론했다. 여백에 온갖 메모와 표시가 된 번역 초고를 모든 학생이 돌려받았다. 한국문학번역원 사람들은 한국어를 계속 학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학기가 끝났을 때 시집의 번역 완성본이 나왔다. 물론 수준이 고르지는 않았다. 로렌과 수현, 신 교수님이 함께 번역을 다듬어 일관된 문체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이 원고를 맥스위니가 요하네스 요란손(Johannes Göransson)과 함께 편집해 2019년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각자 개성적 취향과 목소리를 지닌 여러 명이 만들어낸 원고가 결국 일을 더 힘들게 만들었을까? 그런 면도 있겠지만 덕분에 우리는 한 행 한 행, 한 단어 한 단어와 씨름하며 각 번역가의 선택이 정말로 최선이었는지, 아니면 교체되어야 하는지, 교체된다면 누구의 선택을 따라야 하는지 살필 수 있었다. 신 교수님이 말했듯, 우리는 각자 나름의 김혜순을 창조한 것이었다. 일관된 공동 번역으로 다듬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혼자라면 상상하지 못했을 김혜순의 여러 가능성을 보았고, 그 대안들을 조화시키기 위해 마음을 열고 고민했다. 원작이 모호한 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정답은 없었지만, 영어 특히 대명사에서는 모호함을 남겨놓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맹렬하면서도 우호적으로 토론했다. 신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해피아워의 맥주를 마시면서,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우리가 토론을 통해 해결했던 문제들 일부를 살펴보자. 우선 시집 제목을 대체 어떻게 번역해야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대부분의 작업 기간 동안 우리는 시집을 ‘A Cup of Red Mirror’라고 불렀다. 한국어 ‘잔’은 글라스일 수도 컵일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와인 글라스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cup’은 맞지 않았다. 영어권 사람들은 컵에서 포도주를 연상하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glass’로 하자니 이건 너무 모호했다. 결국 액션북스의 편집을 거쳐 ‘Drink’라는 단어로 바뀌었다. 한국에서 ‘마신다’는 것은 컵이나 글라스를 모두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두점 없이도 문장 의미가 전달되는 한국어의 특성 때문에, 시에 구두점이 자주 생략되는 상황을 해결하는 것도 문제였다. 수현은 원문의 구두점을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했다. 구두점이 시의 시각적 형태를 좌우하고, 시는 시각적 측면을 지닌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공동 작업자로서 우리는 수현의 주장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원문에 없던 구두점이 들어가면 번역가는 시 본래의 어조와 화자의 특성을 바꾸게 된다. 원작이 제기하지 않는 의사결정을 번역가가 내리게 되는 위험 지대로 들어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마침표를 넣으면 행의 흐름이 끊어진다. 원문에서는 그렇게 끊으라는 표지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면 번역가가 시에 대한 자기 의견을 바탕으로 어디에 그 거짓 끊음을 끼워 넣을지 결정해야 한다. 원문 자체는 그런 멈춤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말이다. 원문에 없는 구두점을 삽입하면서 생기는 또 다른 문제는 원작자가 의도적으로 추가하고 강조한 다른 구두점이 부각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수현은 여러 시에서 자기 의견을 관철했고 다른 경우에는 타협해야 했다. 구두점 없이는 너무도 혼란스러운 산문시가 특히 그러했는데, 〈판화에 갇힌 에우리디케〉의 경우 빠르게 이어지는 마지막 부분에서 혼란을 줄이기 위해 느낌표가 추가되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에서는 시인 김혜순에게 연락해 질문을 던졌다. 〈판화에 갇힌 에우리디케〉에 나오는 ‘본드 주머니’가 무엇인지 묻자, 아이들이 산에 올라가 본드를 흡입할 때 쓰는 비닐봉지라는 대답이 나왔다. 한 행 안에 이를 간단명료하게 전달할 방법이 없어 우리는 결국 ‘glue-huffing bag’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것이 원문과 비슷하게 모호하다고 판단했다. 또 특정 이미지의 본래 모티브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작가의 도움을 받았다. 예를 들어, 작가는 〈입술〉의 ‘몸속의 산맥들이 줄줄이 넘어지게 된다’가 처음으로 입맞춤하게 된 젊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고, 〈기상특보〉의 ‘팥팥팥’과 ‘팥, 팥, 팥’은 입 맞추는 소리를 뜻한다고 알려주었다.
2016년 여름 서울에 갔던 수현은 김혜순 시인과 만나 우리가 고민하던 부분에 대해 더 많은 답변을 얻어왔다. 예를 들어, 〈얼음의 알몸〉과 〈오래된 냉장고〉에 등장하는 얼음 아씨(얼음 공주)는 시인이 티베트 여행을 가서 공기가 희박하고 삶도 희박하고 위태로우며 모든 것이 위태로운 모습을 본 뒤 떠올린 것이라 했다. 그러니 얼음 아씨는 지금 존재하긴 하지만 곧 녹아버릴 수 있는 위험한 상태인 누군가다. 〈내 꿈속의 문화 혁명〉과 관련해 김혜순 시인은 光子(광자)가 빛 입자인 동시에 한국의 옛날식 여자 이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시의 배경이 된 1980년대, 체포된 사람이 강제로 자술서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는 불빛이 얼마나 공포스러울지 생각했다고 했다. ‘Ms. Photon’은 시인이 제안한 번역이었고, 최종 편집을 거치면서도 유지되었다. 김혜순 시인은 자신의 모든 시집 중에 이 책이 가장 읽기 쉽고 많은 감정을 표현한다면서 번역 또한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리듬도 작가가 크게 신경 쓴 부분이었다. 영어 시는 의미를 보존하는 것보다 시답게 읽히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문학과 역사를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주석이 필요했다. 우리 작업은 애초부터 그런 독자를 염두에 둔 것이기도 했다. 주석은 미주로 해야 할까, 각주로 해야 할까? 번역가, 편집자, 예상 독자 모두를 만족시킬 방법이 무엇일까? 우리 결정은 미주였다. 시와 처음 만나는 독자의 경험이 같은 페이지 아래쪽의 정보에 방해받는 일 없이 온전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권 독자들이 김혜순 시인의 한국을 더 깊이 파악하는 데 필요한 도구는 제공해야 했다. 특히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한 지점은 〈얼음의 알몸〉 첫 두 행이 욥기 38장 22절, 〈깊은 곳〉의 마지막 행이 시편 130장 1절에서 왔다는 것이 원본에서 각주로 처리된 부분이었다. 장고 끝에 우리는 이 역시 미주로 처리했다. 인물에 대한 역사적・민속적 설명을 위해 추가한 미주들도 있는데, 붓대에 목화씨를 숨겨 한국에 처음 들여온 문익점, 태양빛으로 임신한 하백신의 딸 유화부인, 고구려 왕자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인 낙랑국 왕에게 죽임을 당한 낙랑공주 등이 그렇다. 한국어 자료에 접근하지 못하는 영어권 독자들이 파악하기 어려운 비유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상 시인이 〈Mixer & Juicer〉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관심 있는 영어권 독자들이 한국 시에 대해 더 알아보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