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멍거는…
“내가 만난 사람 중 사고의 폭이 가장 넓은 사람이다.
비즈니스 원칙에서 경제 원칙, 기숙사 설계, 쌍동선 설계에 이르기까지 그는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지식을 소유했다.”
-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 약력 〕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
본명은 찰스 토머스 멍거(Charles Thomas Munger)
1924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출생
1941~42 미시간대에서 수학을 전공했지만 졸업은 하지 않음
1943~44 미 육군 항공단에서 기상학 장교로 복무하며 캘리포니아공대에서 공부
1948 하버드대 법학대학원을 졸업해 L. A.에서 변호사 업무 시작
1959 의사 데이비스 가족과의 저녁식사에서 워런 버핏을 처음 만남
1968 버크셔 해서웨이 지주 회사로 전환
1972 멍거와 버핏, 블루칩 스탬프 통해 씨즈캔디 매입
1974 하버드고등학교 이사회 의장 취임
1975 휠러·멍거 & 컴퍼니 대표 사임
1976 블루칩 스탬프 이사회 의장 취임, 멍거투자조합 해산
1978 버크셔 부회장에 공식 취임
1984 웨스코 파이낸셜 이사회 의장 취임
1986 데일리 저널 이사회 의장으로 취임
1987 살로몬 브러더스 이사회 이사 취임
1993 〈포브스〉 선정 미국 400대 부자에 포함, US에어 이사 취임
1997 코스트코 이사회 이사 취임, 스타 퍼니처 인수
2000 미드아메리칸 에너지 지분 76% 인수
2009 벌링턴 노던 산타페(BNSF) 인수
2013 하인즈 인수
2016~2017 애플 주식 약 311억 달러어치 매입
2022 데일리 저널 이사회 의장직 사퇴
* 상세 연혁 : 부록 1
편저자
김재현
중국과 금융 전문가로 현재 〈머니투데이〉에서 국제부 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투자와 행태경제학, 중국 경제가 가장 큰 관심사이며 읽고 배우는 걸 좋아한다.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대학교에서 MBA, 상하이교통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재무 전공)를 받았다. 2003년 칭다오를 시작으로 베이징을 거쳐 상하이까지 중국에서 11년을 지내며 중국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지은 책으로 《찰리 멍거 바이블》(공저) 《중국 도대체 왜 한국을 오해하나》 《중국 경제권력 지도》 《파워 위안화》(공저), 번역한 책으로 《주식투자의 지혜》(공역)가 있다.
이건
투자서 번역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에서 유학했다. 장기신용은행에서 주식 펀드 매니저, 국제 채권 딜러 등을 담당했고 삼성증권과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에서 일했다. 영국 IBJ 인터내셔널에서 국제 채권 딜러 직무 훈련을 받았고 영국에서 국제 증권 딜러 자격을 취득했다. 지은 책으로 《찰리 멍거 바이블》(공저) 《워런 버핏 바이블 2021》(공저) 《대한민국 1%가 되는 투자의 기술》이 있다. 옮긴 책으로 《워런 버핏의 주주 서한》 《월가의 퀀트 투자 바이블》 《다모다란의 투자 전략 바이블》 《워런 버핏 바이블》 《워런 버핏 라이브》 《현명한 투자자》 《증권분석》 (3판, 6판) 《월가의 영웅》 등 50여 권이 있다.
이메일: keonlee@empas.com
블로그: https://blog.naver.com/keonlee0324
채홍디자인
저평가된 투자 대가 찰리 멍거의 책이 나와 기쁘다. 멍거는 《Poor Charlie’s Almanack》에서 자신을 ‘가난한 찰리’로 지칭한다. 3조 원대 자산가가 스스로 ‘가난하다’라고 하는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는 책이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번역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행히 멍거 권위자인 김재현 박사와 이건 번역가가 세심하게 자료를 선별해 《찰리 멍거 바이블》을 집필했다. 이 책이 더욱더 현명한 투자자가 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줄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 김동주(이루다투자일임 대표)
이 책은 특히 주식 투자에서 어떻게 실패에 대비하는지에 대한 통찰이 가득하다. 대박 종목이 따로 있다고 믿고 이를 찾는 데 몰두한 투자자, 투자 의사결정에 늘 자신이 없는 투자자, 고수익을 얻고 싶은 투자자라면 이 책을 통해 ‘현인들이 꼽는 현자’ 멍거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주식시장에서 성공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 김철광(유튜브 김철광TV 운영자)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에게 전수받은 버핏의 투자 스타일은 친구 멍거에게 영감을 받아 완성되었다. 멍거를 버핏의 조력자로만 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멍거는 독립적 사고를 하는 위대한 투자자일 뿐만 아니라 버핏의 ‘멘토’이며, 자본주의에 대한 위대한 사상가, 위트 넘치는 지식인이다.
- 김학균(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돈을 잃게 하는 인간의 심리를 경계하기 위해 버핏은 멍거를 항상 곁에 두었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자의 조언이 필요하다. 최근 자산시장의 총체적인 하락장에서 겸손해진 (나를 포함한) 투자자들에게 《찰리 멍거 바이블》은 위기 극복을 위한 촌철살인의 지혜를 나눠준다.
- 서준식(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98세 나이에도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멍거의 투자와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책이다. 그는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IQ가 아니라 기질이라고 한다. 기질은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인내심과 용기를 발휘하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멍거의 지혜를 고스란히 담은 이 책을 기쁜 마음으로 추천한다.
- 숙향(《이웃집 워런 버핏, 숙향의 주식 투자 이야기》 저자)
시장이 변했다고 한다. 가치의 시대가 아니라고들 한다. 그러나 거의 100년을 살아온 멍거의 직설을 접하면, 유행이나 트렌드 따위는 무시하게 된다. 그저 좋은 기업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뿐이다. 투자 인생의 진솔한 기록이다. 시대를 아우르는 통섭의 투자를 만나보자.
- 윤지호(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멍거의 ‘투자 원칙 체크리스트’만 제대로 숙지해도 이 책은 충분한 값을 한다. 멍거는 9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버핏과 함께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멍거와 버핏은 투자뿐 아니라 삶을 대하는 자세에서도 커다란 울림을 전해준다. 이 책은 주식 투자 실패로 고통받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문제의 핵심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는 점을 말이다. 멍거의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통해 주식시장에서 성공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길 바란다.
- 이건규(르네상스자산운용 대표)
찰리 멍거의 유일한 저서 《Poor Charlie’s Almanack》보다 편집이 더 잘 된 책이다. 멍거의 강연뿐 아니라 그의 사상과 철학, 삶의 지혜까지 집대성한 이 책은 투자를 넘어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멍거의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실천에 옮긴다면, 인생의 많은 부분이 바뀔 것이라 믿는다. 또 하나의 ‘인생책’이 출간되어 기쁜 마음으로 추천한다.
- 정채진(《마이클 모부신 운과 실력의 성공 방정식》 공역)
더 현명한 투자,
더 현명한 인생으로 이끄는 책
가치투자를 공부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세 명의 투자자가 있다. 가치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 그레이엄의 수제자이자 세계 최고의 투자자 워런 버핏, 그리고 버핏의 조언자이자 투자 파트너 찰리 멍거다. 멍거는 그레이엄의 가르침에 따라 가격만 따져 투자하던 버핏이 강력한 해자를 가진 위대한 기업을 찾아 투자하도록 이끈 인물이다. 버핏은 “멍거가 바로잡아 준 덕분에 (그레이엄의) 담배꽁초 투자 방식에서 벗어나 거대 자산으로도 만족스러운 수익을 얻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멍거가 아니었다면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제국은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레이엄이나 버핏과 달리 멍거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접하기는 쉽지 않다. 그레이엄은 《증권분석》과 《현명한 투자자》라는 책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냈고 이 두 권의 책은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투자자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버핏의 사상과 투자관은 그가 매년 작성하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 서한에 담겨 있고 여러 책을 통해 다양하게 편집·가공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그런데 멍거의 생각을 제대로 정리한 책이나 글은 많지 않으며 국내에서는 특히나 찾기 어렵다.
멍거가 여러 곳에서 강연한 내용을 엮고 편집한 《Poor Charlie’s Almanack(가난한 찰리의 연감)》이 그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그가 제작에 직접 관여한 유일한 책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은 멍거 본인이 한국어 번역 출판을 원하지 않아 국내에 출간되지 못하고 있다. 몇몇 사람만이 원서를 구해 힘들게 읽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다행스럽게도 멍거와 버핏의 저작 번역에 대한 최고 권위자인 이건 선생과 김재현 박사가 멍거의 가장 중요한 강의 다섯 편을 선정, 번역하고 해설을 덧붙여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멍거의 사상을 제대로 알기 원하는 많은 독자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책이 될 것이다.
멍거는 ‘문제를 뒤집어 생각할 때 잘 풀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대신 ‘확실히 불행해지는 길’을 피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확실히 불행해지는 길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의 실수와 경험으로부터 절대 배우지 않는 것이라고도 했다. 투자자라면 그레이엄, 버핏, 멍거에게 배우지 않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투자 초기부터 이 세 명의 경험과 지혜를 접하고 배우는 행운을 누렸다. 덕분에 조금 더 현명한 투자자가 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특히 멍거를 통해서 투자뿐 아니라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혔고 나아가 세상과 인간을 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꿀 수 있었다.
멍거의 강연 내용에는 ‘투자’보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많다. 여기 선정된 다섯 편의 강의에도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인간의 심리에 대한 내용이 많다. 당장의 투자 기술을 습득할 목적으로 책을 집어 든 사람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투자는 결국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내가 지난 20년간 투자하면서 얻은 깨달음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세상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선형적으로 사고한다. 잘못된 패턴과 규칙으로 미래를 예측하려 애쓴다. 우리 인간이 편견에 사로잡히고, 스스로를 과신하며, 종종 매우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오판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는다. 투자자의 인식이 이처럼 잘못된 이해에 기초하면 행동(투자) 또한 옳은 방향으로 가기 어렵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는 투자를 현명하게 하는 첫걸음이며 나아가 인생을 현명하게 사는 밑거름이 된다.
멍거는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다학제적 접근과 격자틀 인식 모형을 제시한다. 머릿속에 격자틀을 만들어 훌륭하고 실용적인 지혜가 담긴 다양한 학문 분야의 핵심 원리를 배우고 학습해 채워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나 또한 그의 조언을 따라 격자틀 인식 모형을 구축하기 위해 독서 모임을 만들었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찾아 읽어왔다. 그 과정에서 접하게 된 복잡계 물리학과 사회학, 진화론, 행동경제학과 인지심리학, 뇌과학 책은 투자관을 비롯해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멍거의 격자틀 인식 모형은 시간이 흐를수록 위력을 더해간다. 오랜 기간 습득한 각각의 지식은 내가 가지고 있던 그레이엄과 버핏의 가르침과 함께 머릿속 격자틀에 짜 맞추어지게 되었고 현명한 투자에 대한 인식에 날로 깊이를 더했다. 이 과정에서 도움을 받았던 《현명한 투자자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멍거는 나를 수많은 현자와 그들이 가진 지혜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더 현명한 투자자가 될 수 있도록, 나아가 더 현명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의 글이 내 인생을 이끌어준 것처럼, 이 책이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의 투자와 인생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박성진
이언투자자문 대표
베일에 가려져 있던 찰리 멍거의
사고 체계를 파악하는 최고의 기회
워런 버핏의 조언자 찰리 멍거
찰리 멍거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이다. 워런 버핏은 오래전부터 그를 ‘파트너’로 칭했지만 버핏과 멍거의 관계는 일반적인 ‘파트너’ 관계와는 사뭇 다르다. 멍거가 맡은 부회장이라는 자리는 버핏으로부터 지시를 받거나 그에게 보고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버핏이 하는 모든 의사결정에서 그와 비슷한 수준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다. 멍거와 버핏의 관계는 일반적인 비즈니스 파트너보다는 ‘조언자’ 관계에 가깝다.
버핏은 자신의 의사결정과 사고방식에 ‘오류’가 없는지 파악하기 위해 찰리 멍거에게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한다. 물론 투자 의견을 시시때때로 나누고, 함께 투자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버핏에게 멍거는 ‘사고의 오류를 잡아줄 수 있는 친구’라는 점에서 유일무이하다.
버핏은 멍거 덕분에 벤저민 그레이엄 스타일의 투자법의 한계를 파악하고, ‘훌륭한 기업’을 찾아내어 장기간 동행하는 스타일의 투자법을 확립했다. 1964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대한 투자가 그 첫걸음이었고, 1972년 씨즈캔디에 대한 투자는 현재의 ‘버크셔 제국’을 만드는 초석이 되었다.
격자틀 모형
찰리 멍거의 독특한 사고 체계를 ‘격자틀 인식 모형(latticework of mental models)’이라고 부른다. 그는 시장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를 “물리학, 생물학, 사회학, 수학, 철학, 심리학을 포함하는 더 커다란 지식 체계의 일부”로 바라보았다. 그는 수학을 전공했고, 전쟁 때는 기상학 장교로 복무했다. 버핏이 숫자를 잘 다루고 기억력이 뛰어난 천재이기는 해도, 경제경영을 전공한 그가 멍거처럼 고차원적인 미적분을 풀거나 물리학, 생물학을 깊이 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격자틀 인식 모형은 다양한 학문에서 분석 도구와 방법론을 빌려와 하나로 꿰맨 사고의 틀이다. 소위 ‘통섭’을 실제 의사결정에 활용해 성공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멍거는 ‘행동경제학’이 부상하기 전부터 인간의 심리가 경제적인 의사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했다.
멍거는 당대의 심리학을 깊이 이해하고 더 앞서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심리학에서 유명한 실험인 ‘스탠리 밀그램 실험’은 단순히 인간이 얼마나 권위에 복종하기 쉬운가를 밝히는 실험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실험에 그 이상의 여러 요인이 개입되어 있음을 멍거는 진작에 간파하고 있었다.
또한 ‘문제를 뒤집어서 생각하는 방법’은 후대의 나심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가 제안한 ‘Via Negativa’ 기법과 이어진다. ‘Via Negativa’ 기법은 신의 존재를 추론하는 방법론 중 하나이며, 칼 포퍼(Karl Raimund Popper)로부터 이어지는 사고 기법이기도 하다. 벤저민 프랭클린을 추종한 멍거가 얼마나 진지하게 각종 학문을 연구해 의사결정에 활용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판의 심리학
인간의 의사결정 방식을 깊게 공부하는 것은 투자자에게 어떤 우위를 줄까? 인간의 의사결정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사고방식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멍거는 다학제(multidisciplinary) 관점에서 각종 학문을 공부했다. 그는 경제학에서 가르치는 여러 이론이 다른 학문들과 괴리되어 있거나, (물리학 흉내를 내면서) 지나치게 엄밀함을 추구한다고 보았다. 경제학이 현시대 투자 ‘이론’의 토대를 이루고 있기에, 그 한계점을 파악한 투자자는 판단력에서 우위를 지닌다.
멍거는 ‘통계적 우위를 안겨주는 통찰’이 중요하며, 심리학이 그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그레이엄의 핵심 사고 체계 중 하나인 ‘안전마진’과도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그레이엄은 (널리 알려진 바와는 달리) “가치는 하나의 값으로 제시할 수 없으며 범위로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안전마진이란 단순히 가치보다 싸게 사는 것을 넘어서서, ‘유리한 확률분포에서 베팅’하며, 아무리 유리하더라도 실패할 수 있으니 ‘분산해서 베팅’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기업의 펀더멘털을 공부하는 것은 투자의 첫걸음이다. 우리가 좀 더 확실하게 ‘유리한 확률’에 있다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른 투자자들이 어떤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지, 내 사고방식에는 실수가 없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투자의 초과수익은 내가 실수를 적게 하면서 타인의 실수를 활용할 때 얻을 수 있다. 멍거가 말한 ‘오판의 심리학’은 내 사고 체계의 오류를 점검하고 타인의 사고 체계의 오류를 파악함으로써 투자자가 더욱 유리한 고지에 서게 해준다. 그러므로 ‘그릇된 판단’에 정통하면서 또한 ‘성공한 투자자’인 멍거는 버핏에게 있어서 축복과도 같은 존재다.
평범한 사람이 성공하는 방법, 학습 기계
버핏과 멍거는 ‘학습 기계’ 개념을 강조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결국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 더 많이 배우려고 노력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가졌던 자원을 평범한 사람이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한 방식은 우리도 배워서 따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단지 태생적으로 가진 똑똑함, 인적 자원, 재산 등을 활용해서 성공하려 했다면 그들은 왜 그리 열심히 책을 읽었을까? 우리는 책을 통해서 역사상 가장 현명했던 사람을 친구로 둘 수 있고, 역사상 가장 똑똑했던 사람의 실패담을 엿볼 수 있다. 이런 경험은 평범한 사람 누구라도 할 수 있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준다.
버핏의 성공은 ‘모두 학습 덕분’인 듯하다고 멍거는 말했다. “인류가 발명 기법을 발명하고 나서 비로소 문명이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듯, 투자자는 ‘학습 기법을 학습’해야만 발전할 수 있다. 우리는 워런 버핏이 세계 최고의 투자자가 되게 한 그 ‘학습 기법’을 멍거로부터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찰리 멍거의 사고 체계를 접하기란 쉽지 않다. 그가 직접 쓴 책이 없고 그의 연설을 모은 《가난한 찰리의 연감》은 아쉽게도 국내 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가 직접 하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버크셔 해서웨이를 비롯한 웨스코, 데일리 저널의 주주총회를 보아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멍거의 전반적인 사고 체계를 살피기는 어렵다.
《찰리 멍거 바이블》은 그의 주요 강연과 주주총회 질의응답의 핵심을 훌륭한 두 저자분이 엮고 해설한 책이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찰리 멍거의 사고 체계를 파악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이 책을 읽어볼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행운이었고 여러분에게도 그럴 것이다.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
100년의 지혜를 가진
현자의 답변
2018년 찰리 멍거의 《가난한 찰리의 연감》을 읽으면서 정말 독특한 책이라고 느꼈다. 컬러로 인쇄된 데다가 500쪽이 넘는 양장본이라 무게가 2.5킬로그램에 달했다. 책을 들 때마다 손목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용은 더 독특해서,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읽을수록 빠져드는 맛이 있었다.
무려 5개월 동안 이 책을 읽으면서 멍거에게 몰입하게 되었고 그를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다른 일이 생겨 계속 미루어왔다. 그러다 지난해 말 국내 투자서 번역의 대가인 이건 선생에게 멍거에 대한 책을 수년째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의기투합했다.
찰리 멍거와 워런 버핏은 전 세계 투자자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다. 지난 2월 데일리 저널 주주 총회에서 멍거가 두 시간 넘게 참석자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을 유튜브로 지켜볼 때도 감회가 깊었다. 100년의 지혜를 가진 현자(賢者)가 수많은 사람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이라니. 얼마나 소중하고 감동적인 순간인가!
지난 100년간 미국 투자 역사에서 가장 광범위한 영향을 남긴 멍거와 버핏이 미국 중부의 작은 도시 오마하에서 이웃으로 태어난 것은 대단한 우연이다. 심지어 어린 시절 이들은 버핏의 할아버지인 어니스트 버핏이 운영하던 식료품 가게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언제나 곁에 있을 것만 같은 멍거와 버핏이 어느 날 세상을 떠난다면 우리는 얼마나 아쉬워하게 될까? 2022년 올해 멍거는 98세, 버핏은 92세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들이 건강하기를 바라지만 둘의 목소리를 언제까지 들을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멍거와 버핏의 말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은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 지혜,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 지혜 재고(再考), 경제학: 다학제 관점에서 본 강점과 약점, 오판의 심리학’ 등 멍거의 대표적인 연설을 중심으로 그의 주요 사상을 설명했다. ‘패리 뮤추얼, 가격이 잘못 매겨진 베팅, 격자틀 인식 모형, 능력범위, 롤라팔루자’ 등 그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도 세상사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한 그의 관심사가 얼마나 광범위한지, 왜 그가 다학제와 심리학을 그토록 중시하는지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인도의 유명한 가치투자자 모니시 파브라이는 2022년 6월 인터뷰에서 “멍거와 버핏은 사람에 대한 판단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정확하다”라며 이들의 경영자 평가 능력을 언급했다. 기업을 경영하는 주체도, 상품을 사는 주체도 사람이기에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들은 일찍부터 간파했다.
멍거의 목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때는 매년 2월 L. A.에서 개최되는 데일리 저널 주주총회다. 책에서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동안 데일리 저널 주주총회 질의응답의 주요 내용을 소개했다. 멍거의 유머도 인상적이다. 그는 2019년 “두 사람이 그렇게 오래 동업했는데 왜 버핏이 당신보다 훨씬 부자인가요?”라는 질문에 “워런이 투자를 먼저 시작했습니다. 그가 나보다 조금 더 똑똑한 것도 거의 확실합니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요. 이유는 많지 않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왜 나보다 가난했을까요?”라고 답했다. 올해 주주총회에서는 자신과 버핏이 의도치 않게 구루가 된 배경도 이야기했다. ‘주주총회에서 1년에 한 번 주주를 만나기 때문에 주주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주주의 특이한 질문에도 답하다 보니 지금처럼 되었다’는 설명이다. ‘여전히 불편하지만 이제 익숙해졌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멍거는 자산 3조 원이 넘는 부자지만 코스트코에서 7달러에 산 빨간색 플란넬 셔츠를 여전히 즐겨 입을 만큼 부의 과시에는 관심이 없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세상사가 돌아가는 이치를 파악하는 것뿐이다.
100년 가까운 시간을 살아온 현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김재현
‘가난한 찰리’의 투자 철학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전 세계 투자자의 우상이다. 모두가 그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버핏이 항상 의견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이다. 멍거는 버핏의 친구이자 변호사, 조언가이며 동시에 ‘데블스 애드버킷(Devil’s Advocate,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맡고 있다. 버핏은 멍거를 ‘가공할 노맨(abominable no-man)’이라고 장난스럽게 호칭한 바 있다.
1965년 버핏이 직물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했고 10여 년 뒤 멍거가 합류했으며, 이후 2022년까지 버크셔 해서웨이 시가총액은 6만 4,000배 넘게 상승했다. 1965년 1,000만 달러에 불과하던 시가총액이 무려 6,4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성장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버핏뿐 아니라 그의 동반자인 멍거가 어떤 인물인지도 알아야 한다.
벤저민 프랭클린과 햄스터 키우기에 빠진 멍거
멍거는 여동생 메리, 캐럴과 함께 던디초등학교에 다녔는데 당시 그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전통적인 지혜에 도전하기를 즐겼다. 그 배경이 된 것은 왕성한 독서를 통해 끊임없이 늘어난 지식이었다. 특히 그는 박학다식한 괴짜 정치인이자 발명가인 벤저민 프랭클린의 격언을 좋아했다. 멍거의 부모인 앨프리드 멍거와 플로렌스 멍거는 자녀에게 독서를 권장했으며 크리스마스에는 책을 몇 권씩 선물하기도 했다.
멍거의 집 부근에는 남편과 아내가 모두 의사인 데이비스 부부가 살았다. 멍거는 아버지의 친한 친구이자 가족 주치의인 데이비스 부부의 집에 자주 가서 의학 저널 등을 읽었는데, 평생에 걸친 과학에 대한 관심은 이때 형성되었다. 나중에 버핏을 알게 된 것도 데이비스 부부를 통해서였을 만큼 이 부부는 멍거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멍거는 평범한 소년의 모습도 보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햄스터 키우기였다. 그는 취미 삼아 햄스터를 길렀으며 종종 친구들과 햄스터를 거래하기도 했다. 이때도 그는 뛰어난 협상 기술을 보이며, 가지고 있던 햄스터를 더 큰 햄스터나 털 색깔이 희귀한 햄스터와 교환했다고 한다. 키우던 햄스터가 35마리까지 늘어나자 그의 햄스터 키우기는 막을 내렸다. 그동안 지하실 햄스터 농장에서 풍기는 악취를 참아오던 어머니가 햄스터 키우기를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멍거는 공립학교인 센트럴하이스쿨에 진학했으며, 논리적이고 왕성한 호기심으로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1941년 센트럴하이스쿨을 졸업한 17세의 멍거는 미시간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오마하를 떠난다. 당시 수치적인 논리에 매혹된 그는 수학을 전공으로 선택했으며 물리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43년 멍거는 미 육군 항공단에 입대했으며 항공단 소속으로 캘리포니아공대(Caltech)에서 9개월 동안 기상학을 공부했다. 그는 학사 학위가 없었지만 소위로 임관했고 기상 장교로 복무하다가 1946년에 제대했다. 이후 그는 학비와 주거비를 지원하는 제대 군인 원호법을 활용해 하버드대 법학대학원에 입학 신청 서류를 접수했다. 학사 학위가 없어서 떨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가족의 친구인 로스코 파운드 전 하버드 법학대학원 학장의 도움으로 무사히 입학에 성공했다. 입학은 간신히 했어도 성적은 출중했다. 1948년 24세의 멍거는 전체 인원 335명 중 12명만 받은 영예인 ‘마그나 쿰 라우데(Magna cum laude, 우등)’로 졸업했다.
마침내 만나게 된 멍거와 버핏
멍거와 버핏이 서로를 알게 된 과정도 재미있다. 2021년 6월 둘이 함께한 미국 경제 방송 CNBC 인터뷰에서 버핏은 멍거를 알게 된 과정을 이렇게 소개했다.
오마하에 매우 유명한 의사 부부가 있었는데, 에디 데이비스와 도로시 데이비스였습니다. 나를 부른 사람은 부인이었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자금을 운용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도 알고 싶고요.” 그래서 나는 부부에게 말했습니다. 자신감이 넘쳤던 나는 당시 주식에 관한 이야기를 빗발치듯 빠르게 퍼부었습니다. 매우 현명한 데이비스 부인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남편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야기를 모두 마치자, 부인이 남편을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버핏에게 10만 달러를 맡기려고요.” 당시 내가 운용하던 자금은 약 50만 달러였으므로 10만 달러는 거금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남편분은 내 이야기에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10만 달러나 맡기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물론 실제 표현 방식은 이보다 훨씬 더 신중했습니다. 남편이 나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을 보니 찰리 멍거가 떠올라서요.” 나는 말했습니다. “찰리 멍거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드는군요.”
1959년 부친상으로 오마하에 잠깐 들른 멍거를 데이비스 부부가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그 자리에는 버핏도 있었다. 멍거와 버핏은 만나자마자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를 만난 듯 의기투합했다. 시가총액이 6만 4,000배 이상 상승한 버크셔 해서웨이의 역사도 이날 시작되었다.
멍거는 1978년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이 되었다. 이후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버핏과 멍거는 파트너로서 버크셔 해서웨이를 함께 키워나갔다. 버핏이 멍거라는 훌륭한 조력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버크셔 해서웨이는 지금처럼 성장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버핏이 공식 석상에서 멍거를 자주 비즈니스 파트너로 추켜세우는 이유다.
가난한 찰리의 연감
버핏에 관한 책은 많지만 버핏이 직접 쓴 책은 한 권도 없다. 그런데 멍거는 《Poor Charlie’s Almanack(가난한 찰리의 연감, 벤저민 프랭클린의 저서 제목 ‘Poor Richard’s Almanack’을 모방한 것)》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의 오랜 친구인 피터 코프먼이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편집까지 했다. 2005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실수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버핏이 답변하면서 이 책을 언급한 적이 있다.
버핏 첫 단계는 함정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찰리가 저서 《Poor Charlie’s Almanack》에서 다양한 함정을 소개하고 있으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런 함정에 좀처럼 빠지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보다 덜 빠진다는 말이지, 아예 안 빠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멍거 큰 부자가 되기 위해 완벽한 지혜를 갖출 필요는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평균보다 조금만 더 나으면 됩니다.
버핏 곰에게 쫓겨 달아나던 두 사내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한 사내가 다른 사내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곰보다 더 빨리 달릴 필요는 없어. 자네보다 빠르기만 하면 돼!”
멍거 피터 코프먼이 편집한 책입니다. 그가 출간 아이디어를 제시하자 워런이 열광했습니다. 책 제목이 우스꽝스럽지요. 이 간단한 책에 나오는 내용을 모두 이해하면 게임에서 훨씬 앞서갈 수 있습니다.
버핏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책입니다. 인생에 대해 많이 배우고 돈도 벌 겁니다.
《가난한 찰리의 연감》은 3조 원이 넘는 재산을 가진 부자가 쓴 책치고는 제목부터 역설적이다. 멍거는 살 만큼 살았고 돈도 많아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이 책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다. 그러면서도 군데군데 보석 같은 투자와 삶의 지혜를 담고 있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멍거는 버핏에게 답변할 기회를 넘기면서 항상 “나는 추가할 내용이 없습니다(I have nothing to add)”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는 할 말이 많다. 이 책은 멍거가 투자자, 더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다. 이 책 속에는 100년 가까이 살아온 현자의 지혜가 넘친다. 10여 년 후 성인이 되는 자녀에게 책 한 권을 추천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선택할 것이다. 20년 전 멍거가 한 강연이 여전히 유용한 것처럼 10여 년 후에도 그의 투자 지혜는 빛이 바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패리 뮤추얼’
찰리 멍거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마와 주식 투자의 성공 비결이 똑같다”고 말한다. 주식 투자가 도박으로도 인식되는 경마와 똑같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지만, 알고 보면 멍거가 맞다.
대다수 국가에서 경마는 1867년 프랑스의 요셉 올러(Joseph Oller)가 창안한 패리 뮤추얼(pari mutuel, 영어로는 mutual betting)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즉 이긴 말에 베팅한 전체 금액 중 하우스 몫인 비용과 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배당률에 따라서 나누어주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경마, 그레이하운드 경주, 하이 알라이(Jai alai, 스페인 스쿼시) 등 비교적 짧은 시간에 순위가 결정되는 스포츠 게임에서 채택되었으며 약간 수정되어 일부 복권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패리 뮤추얼은 말 그대로 상호(mutual) 간의 내기(betting)다. 다른 사람의 베팅에 따라 배당률이 달라지기 때문에, 우승 확률이 높으면 배당률은 낮아지고 그 반대면 배당률이 높아진다. 한국 마사회에서 발간한 〈경마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을 위한 교안서〉에서도 경마가 “총 베팅 금액에서 시행체에 수수료를 공제하고 그 잔액을 경기 결과를 맞힌 사람들이 나누는 방식, 즉 패리 뮤추얼 제도로서 주식시장과 비슷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베팅마다 27%를 공제(단식과 연식은 20%)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패리 뮤추얼은 베팅이 종료되기 전까지 배당률이 결정되지 않기에, 배당률이 미리 정해진 고정 배당률(fixed odds) 게임과 다르다. 경마가 정태적(static) 패리 뮤추얼 방식이라면 주식시장은 동태적(dynamic) 패리 뮤추얼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마권 판매 마감 이후 배당률이 결정되는 경마와 달리 주식시장은 마감이 없기 때문에 배당률이 끊임없이 바뀐다.
주식시장의 패리 뮤추얼, 철도 주식과 IBM
멍거는 주식시장이 경마의 패리 뮤추얼 방식만큼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인기 있는 주식이 장기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 주식에 베팅한 사람이 반드시 수익을 얻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멍거는 미국의 철도 관련 주식과 IBM 주식을 예로 들었다. 철도 관련 주식은 경쟁 기업과 강성 노조로 인해서 주가순자산배수(PBR)가 0.33배에 불과하지만 IBM 주식의 PBR은 전성기 때 6배에 달했다. 누구나 IBM의 사업 전망이 철도 업종의 전망보다 좋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들이 IBM에 베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격을 고려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과연 PBR 6배인 IBM 주식을 매수하면 PBR 0.33배인 철도 관련 주식을 매수하는 것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리게 될까?
멍거가 철도 관련 주식과 IBM 주식을 비교한 것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지만, 2009년 버크셔 해서웨이는 미국 2위 철도회사인 벌링턴 노던 산타페(BNSF)를 약 440억 달러에 인수했다. 당시만 해도 대표적인 굴뚝 산업으로 치부되던 철도회사를 왜 인수하는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BNSF는 버핏이 자랑스러워하는 투자 사례가 되었다.
2022년에 발표한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 서한에서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가치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4대 거인으로 ‘보험 사업, 애플 지분, BNSF,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를 꼽았다. 특히 그는 세 번째 거인인 BNSF가 미국 상업의 대동맥 역할을 하면서 버크셔 해서웨이뿐 아니라 미국에 없어서는 안 될 자산이 되었다면서, 만약 BNSF가 운송하는 물량을 트럭이 운반한다면 미국의 탄소 배출은 급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1년 BNSF의 영업이익과 당기 순이익은 88억 달러와 60억 달러로, 전년 대비 각각 14%, 16% 늘어난 규모였다. 버핏은 2021년 BNSF의 운송 거리와 화물 운송량이 1억 4,300만 마일과 5억 3,500만 톤에 달한다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2019년까지 310억 달러를 이미 배당금으로 회수했으며 BNSF 지분 가치는 2020년 8월 기준 약 1,05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미국 S&P500지수 상승 폭과 영업이익 증가 폭을 고려하면 지금 BNSF의 기업 가치는 훨씬 더 높을 것이다.
한국 경마 역대 최강의 말 배당률은 1배까지 하락
다시 경마로 돌아가 보자. 한국 경마에서 역사상 최강의 말이었던 ‘당대불패’는 전성기였던 2012년 단승식(우승마를 맞히는 방식) 배당률이 1.2배까지 떨어졌다. 1,000원을 걸었을 때 1등을 해도 1,200원밖에 못 받는다는 이야기다. 3등 안에 들어올 말을 맞히는 연승식 배당률은 1배였다. 1,000원을 걸었을 때 1,000원을 받는 경우로, 사람들이 당대불패가 3등 안에 진입할 가능성을 100%로 보았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다. 좋은 기업을 매수한다고 해서 무조건 시장 수익률을 초과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패리 뮤추얼 방식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멍거는 지금까지 패리 뮤추얼 시스템에서 돈을 번 사람의 특징으로 한 가지를 꼽았다. “돈을 번 사람은 자주 베팅하지 않는다(They bet very seldom).” 그들은 주식시장이나 경마를 유심히 관찰하지만 ‘가격이 잘못 매겨진 베팅(mispriced bet)’ 기회를 발견할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1993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멍거와 버핏이 패리 뮤추얼과 경마에 대해 한 말을 살펴보자.
멍거 애널리스트는 현금흐름을 예측하려고 방대한 과거 데이터를 살펴보지만(IQ가 높을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살펴보지만) 시간 낭비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투자는 패리 뮤추얼 베팅에서, 예컨대 확률은 50%인데 배당은 3배인 곳에 돈을 거는 것과 같습니다. 가치투자는 ‘가격이 잘못 매겨진 도박(mispriced gamble)’을 찾아내는 행위입니다.
버핏 우리가 경마장의 말을 모두 평가하려 한다면 아무런 우위도 확보하지 못할 것입니다. 평가 대상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과거 통계나 공식에 의존하면, 실적은 화려하지만 곧 아교 공장에 팔려갈 늙은 말에 돈을 걸기 쉽습니다.
2009년 버핏의 BNSF 투자가 바로 ‘가격이 잘못 매겨진 베팅’ 기회를 포착한 대표 사례다. 다른 투자자가 굴뚝 산업인 철도 관련 회사의 미래를 비관했기 때문에 BNSF 투자의 성공 확률은 50%였지만 배당률은 3배 이상이었다.
주식 투자 방법
찰리 멍거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했다. 대신 끊임없이 공부하고 세상을 열심히 살핀다면 가끔 가격이 잘못 매겨진 베팅 기회를 발견할 수 있으며, 현명한 사람은 이런 기회가 주어졌을 때 크게 베팅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기회가 얼마나 자주 올까? 사실 많은 기회가 필요하지도 않다. 멍거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번 돈의 대부분이 상위 10개의 통찰력에서 비롯되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워런 버핏과 함께 평생을 바쳐서 찾아낸 기회다. 버핏은 크게 베팅했다. 바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코카콜라, 질레트, 애플 등에 대한 투자 이야기다.
평생 20번만 투자할 수 있다면 결과는 어떨까?
《가난한 찰리의 연감》에서 멍거는 버핏이 경영대학원에서 한 연설을 인용해서 투자 기회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저는 여러분에게 20개의 슬롯이 있는 티켓을 주는 것으로 여러분의 궁극적인 재정 상태를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20개의 슬롯은 여러분이 평생 가질 수 있는 투자 기회를 뜻합니다. 20개의 슬롯을 다 채우고 나면 여러분은 더 이상 투자할 수 없습니다. 이런 규칙 안에서 여러분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정말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고 정말 신중하게 고려한 투자 기회에 크게 투자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멍거는 버핏의 말이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하지만 미국 경영대학원 수업에서 어느 누구도 이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라며 탄식했다. 전통적인 지혜와 다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멍거는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매우 선택적으로 베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능력범위(circle of competence)’를 명확히 파악하고 그 범위 안에서만 베팅하라는 의미다.
메이저리그 최후의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
2017년 미국 케이블 방송 HBO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워런 버핏이 된다는 것(Becoming Warren Buffett)〉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버핏이 전설적인 타자 테드 윌리엄스(1918~2002)가 쓴 책 《타격의 과학(The Science of Hitting)》을 인용하는 장면이다. 테드 윌리엄스는 메이저리그 최후의 4할 타자다. 1941년 그가 4할대 타율(0.406)을 기록한 이후 더는 4할 타자가 등장하지 않았다.
윌리엄스는 야구 선수로서 최전성기인 24세 때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종전 후 복귀하고 나서도 1947년과 1948년 ‘타격왕’을 차지한 ‘레전드’다. 1952~1953년 한국전쟁에 미 해병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하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1954년 35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복귀하고 나서도 0.345의 타율을 기록하는 등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다.
다큐멘터리 〈워런 버핏이 된다는 것〉에서 버핏은 윌리엄스가 스트라이크 존을 77개로 나눈 후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공만 노렸다고 설명했다. “한가운데(sweet spot)로 들어오는 공을 기다렸다가 때렸기에 4할의 타율이 가능했지, 낮은 쪽 코너로 오는 공을 보고 배트를 휘둘렀다면 타율은 2할 3푼에 불과했을 것”이라는 윌리엄스의 말을 버핏은 인용했다. 윌리엄스는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공만 끈기 있게 기다렸다. 결과는 전설이었다. 그는 19년 동안 2,292개 경기에서 통산 타율 0.344를 기록했고 1966년 93.4%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표 1. 테드 윌리엄스의 타격 기록(1939~1960)
투자는 삼진아웃이 없는 게임, 야구보다 훨씬 유리
〈워런 버핏이 된다는 것〉에서 버핏은 투자가 야구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삼진아웃이 없기 때문이다. 한가운데로 공이 들어올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렸다가 마침내 기회가 왔을 때 방망이를 있는 힘껏 휘두르면 된다. 버핏은 관중이 “휘둘러, 이 멍청아!(Swing, You Bum!)”라고 야유해도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자신이 치고 싶은 공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이다.
버핏은 주식시장의 유동성이 크기 때문에 사람은 기다리지 않고 자꾸만 거래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은 자신의 능력범위를 명확히 알고 그 범위 안에 머물며, 능력범위 밖의 일에 대해 염려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결국 그가 주식 투자에서 높은 타율을 올리는 이유는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인 윌리엄스처럼 한가운데 스트라이크만 노리기 때문이다.
버핏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의 게임을 정의하는 것과 자신의 장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Defining what your game is - where you’re going to have an edge - is enormously important)”. 자신의 능력범위 한가운데에 공(기회)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면, 설령 그런 기회가 평생에 단 20번밖에 없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월등한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한가운데 스트라이크만 노려라.” 버핏이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에게 배운 주식 투자 방법이다.
‘4단계 프로세스’
찰리 멍거는 독서를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가끔씩 공자를 인용한다. 능력범위를 강조할 때도 멍거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곤 한다. 자신이 잘 아는 분야와 잘 모르는 분야가 무엇인지를 알고 잘 아는 분야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능력범위에 집중하는 멍거의 주식 투자 프로세스는 크게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투자 프로세스 1단계: 잘 아는 분야에 집중
“우리는 투자를 위한 세 개의 바구니를 가지고 있다. ‘예스(Yes)’ ‘노(No)’ ‘너무 어려워 이해할 수 없는 경우(too tough to understand)’를 위한 바구니다.”
멍거는 자신의 능력범위 안에 머물기 위해 투자 범위를 간단하고 이해 가능한 투자 대상으로 한정한다. 그는 어떤 시장 환경에서도 지속 가능한, 이해하기 쉬운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업을 찾으려고 한다. 이 기준을 통과하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 투자자가 선호하는 바이오와 IT는 너무 어려워 이해할 수 없기에 ‘노’ 바구니로 보낸다. 금융회사가 적극 홍보하는 투자 기회와 기업 공개(IPO)도 ‘노’ 바구니로 보낸다.
2007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멍거와 버핏이 능력범위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특히 버핏의 유머가 빛난다.
멍거 우리는 모든 기업의 가치를 정확하게 추정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투자를 ‘너무 어려움’ 서류함에 넣어두고 쉬운 투자 몇 건부터 샅샅이 살펴봅니다.
버핏 우리는 2미터 높이 장애물은 피하고 30센티미터 높이 장애물만 골라서 넘습니다.
투자 프로세스 2단계: 정성적·정량적 분석, 경영진 평가
1단계 평가 과정을 통과한 기업은 멍거의 인식 모형에 의해 다시 걸러진다. 이는 적자생존의 ‘다윈주의(Darwinism)’에 기초한 평가 과정이다.
멍거는 중서부 스타일의 회의적 시각으로 기업 분석 보고서와 재무제표를 살핀다. 다만 이 자료들은 내재가치를 적절히 계산하기 위한 출발점에 불과하다. 그가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은 현재와 미래의 규제 환경, 노동 환경, 공급자, 소비자 관계, 기술 변화로 인한 잠재적 영향, 경쟁력과 취약점, 가격 결정력, 확장성, 환경 이슈와 숨겨진 위험 등 끝이 없다. 현금흐름과 재고, 운전자본, 고정 자산 및 과대평가되기 쉬운 영업권 등 무형 자산도 자신의 방식대로 다시 계산한다. 스톡옵션, 퇴직 연금, 퇴직자 의료비 부담도 빼놓을 수 없다.
가장 중요한 평가 대상은 기업 경영진이다. 멍거는 경영진의 능력, 신뢰성, 주인의식을 평가한다. 특히 경영진이 현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주주를 대신해서 현금을 현명하게 할당하는지, 자신들을 과대 보상하거나 성장을 위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살핀다.
투자 프로세스 3단계: 경쟁우위와 경쟁적 파괴
멍거의 투자 능력은 3단계 평가 과정에서 제일 잘 드러난다. 그는 제품, 시장, 브랜드, 직원, 유통 채널, 사회적 추세 등 모든 분야에서 기업의 경쟁우위를 가늠할 뿐 아니라 지속 가능성까지 평가한다. 그는 기업의 경쟁우위를 ‘해자(moat)’로 정의한다. 해자는 성곽의 주위를 둘러싼 도랑인데 여기서는 경쟁사의 침입을 막는 실질적인 장벽을 뜻한다. 그가 선호하는 투자 대상은 이미 넓은 해자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해자를 확대해 지속적인 보호도 받을 수 있는 기업이다. 1995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멍거는 해자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적이 있다.
이상적인 기업을 성에 비유하면, 넓고 튼튼한 해자로 둘러싸였으며 정직한 영주가 지키는 강력한 성입니다. 여기서 해자는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방어하는 것으로 낮은 생산 원가, 브랜드 파워, 규모의 이점, 기술 우위 등을 가리킵니다. 이는 우리가 코카콜라를 이상적인 기업으로 판단한 기준입니다.
멍거와 버핏은 극도로 해자에 집착한다. 왜냐하면 50년 넘게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자를 진행하면서 극소수 기업만이 여러 세대에 걸쳐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때로는 고통스럽게 배웠기 때문이다.
2013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멍거와 버핏이 경쟁우위에 대해 주고받은 대화에서도 기업에 대한 이들의 관점이 드러난다.
멍거 나는 15년 후 BNSF의 경쟁우위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15년 후 애플의 경쟁우위가 어떻게 될지는 알지 못합니다.
버핏 우리는 BNSF와 가이코의 경쟁우위가 유지된다고 100% 확신합니다.
멍거 정량 분석으로는 경쟁우위를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버핏 내가 정량 분석만 했다면 지금과 같은 실적을 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멍거 (버핏을 바라보며) 지금보다 부진했겠지!
멍거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대부분의 기업이 ‘경쟁적 파괴(competitive destruction)’에 직면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 예로 1911년 〈버펄로 이브닝 뉴스〉의 증권 면에 실린 50개 주요 종목 중 지금까지 독립적으로 남아 있는 대규모 기업은 제너럴 일렉트릭(GE)뿐이라는 사실을 꼽았다. 심지어 2022년 10월 현재 제너럴 일렉트릭 시가총액은 약 700억 달러로 더 이상 훌륭한 기업의 면모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이 바로 ‘경쟁적 파괴’의 힘이다. 투자자가 바라는 모습으로 장기간 생존하는 기업은 찾기 힘들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멍거는 만약 로즈 블럼킨(네브래스카 퍼니처 마트 설립자), 레스 슈왑(레스 슈왑 타이어 설립자), 샘 월턴(월마트 설립자) 같은 광적인 소규모 경쟁 업체가 기존 기업의 시장을 넘본다면 그 시장을 지키기는 정말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때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한 최고의 해자를 만들고 그것을 끊임없이 확장해나가는 일뿐이라고 덧붙였다. 멍거와 버핏은 ‘경쟁적 파괴’의 힘을 극복할 수 있는 기업을 찾기 위해 모든 시간을 바친다.
투자 프로세스 4단계: 내재가치
훌륭한 기업을 찾았다고 해서 멍거가 가격 불문하고 투자하는 것은 아니다. 멍거는 기업의 내재가치를 계산한 후 시장 가격과 비교한다. 이처럼 ‘가치(value, 우리가 얻는 것)’와 ‘가격(price, 우리가 지불하는 것)’을 비교하는 것이 기업 평가의 근본 목적이다. 그는 벤저민 그레이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장주에 집중한다. 그는 “훌륭한 기업을 적당한 가격에 사는 것이 적당한 기업을 훌륭한 가격에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A great business at a fair price is superior to a fair business at a great price)”라고 했다. 여기서 핵심은 ‘훌륭한 기업’이다.
버핏도 멍거 덕분에 이 같은 접근 방식에 눈을 뜨게 되었다며 여러 번 멍거에게 공을 돌린 바 있다. “찰리는 이것을 빨리 이해했지만 나는 느린 학습자였다”라고 버핏은 표현했다. 2004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버핏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건전한 투자의 기본 원칙은 지속적으로 학습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원칙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우량 기업 발굴에 관해서는 찰리와 필립 피셔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기업 경영에 대해 더 많이 배웠습니다. 사고 체계는 대부분 《현명한 투자자》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이후 실제로 사업을 하면서 깊이 생각해보면 사업을 이해하게 됩니다. 여기에 적절한 기질까지 갖추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멍거의 통찰력과 버핏의 학습 능력으로 버크셔 해서웨이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담배꽁초 투자’에서 〈워싱턴 포스트〉, 가이코, 코카콜라, 질레트, 애플 같은 훌륭한 기업에 집중하는 투자로 전환할 수 있었다.
멍거의 연설 |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A Lesson on Elementary Worldly Wisdom
1994년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경영대학원 강연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다소 짓궂은 장난을 하려고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에 대해 논의하면서 주식 선정 기법도 다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는 매우 광범위하고도 중요한 주제이지만 요즘 교육계에서는 충분히 가르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행동주의 심리학자가 말하는 이른바 ‘할머니의 규칙(grandma’s rule)’에 따라 강의를 진행하겠습니다. 아이가 당근을 먹은 뒤에야 디저트를 주는 할머니의 지혜에서 따온 말이지요. 먼저 논의할 당근에 해당하는 주제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현대 교육 이론에 의하면, 전문 교육을 받으려면 먼저 일반 교육을 받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여러분도 주식 선정 기법을 배우기 전에 먼저 일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제 몇 가지 기본 개념을 설명할 텐데, 내가 농담 삼아 ‘교정용 지혜’라고 부르는 개념입니다.
머릿속에 격자 모형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 지혜란 무엇일까요? 첫 번째 원칙은 분리된 사실을 억지로 짜 맞추는 방식으로는 사실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