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le Blossom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 작곡을 전공하고, 피아노로 배움의 즐거움을 가르치는 “블라썸 피아노” 대표.
나를 더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여행지에서 기록한 일기를 모아 글쓰기에 도전했습니다.
과거의 나보다 지금의 나에게 더 집중하며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
낯선 곳에서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경험들을 쌓아가며 여행을 즐기는 사람.
더불어 기록하는 것을 좋아해서 인생 사진을 건질 줄 아는 사람.
삶이 우당탕탕 거릴때도 있지만, 지금의 행복을 선물해주고 싶은 사람.
It’s me.
지금의 경험이 행복의 밑거름이 되어,
누구보다 예쁘게 피어날 당신께.
프롤로그
어릴 적부터 우리 가족은 여행을 즐겨 다녔다. 바다면 바다, 산이면 산, 계곡이면 계곡. 차로 갈 수 있고, 자연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로든 다녔다. 여행이 좋았다.
캐리어에 좋아하는 애착 토끼 인형을 꼭 넣어 다녔고, 부모님이 사진을 좋아하셔서 필름 여러 통과 필름 카메라도 필수로 챙겼다. 어렸을 때부터 기록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 것이다. 사진과 오래된 캠코더에 담아둔 여행의 기록들이 있기에 그때의 나, 그리고 부모님을 볼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했다. 물론 남은 짐을 챙기는 것은 고스란히 부모님의 몫이었다. 먼 길을 떠나야 하니, 아직은 어린 우리 형제들을 위해 차 안에서 먹을 과자 몇 봉지와 주전부리들을 챙기는 걸 잊지 않으셨다.
아빠의 차 안 뒷좌석은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나가며 가족들과의 여행을 시작하곤 했다. 폭신폭신한 차 시트에 누워서 시시각각 바뀌는 창문 밖의 풍경들을 보며 목적지까지 가는 길. 창밖으로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보이기라도 하면 너무 좋아서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어린아이가 바라보는 그 풍경은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수만 가지의 구름의 모양을 보면서 좋아하는 동물들의 모습들을 그려보기도 하고, 자유롭게 나만의 세상을 꿈꾸면서 달려갔다. 창문을 살짝 내려, 손가락 사이사이 스며 들어오는 바람의 간지러운 느낌을 즐기기도 했다. 물론 어른이 된 지금도 하늘을 보는 것을 너무 사랑하고, 예쁜 하늘을 보면 좋은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그 시절, 여행 가는 길에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었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막히는 고속도로 사이사이로 뻥튀기와 옥수수, 주황색 그물망에 담겨 있는 달콤한 귤, 심지어 달달한 믹스커피까지. 차 안에서 먹을 수 있는 다양한 간식거리를 파는 상인들이 있었다. 그분들의 호객행위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운전석 창문을 내려 뻥튀기와 옥수수, 귤과 믹스커피를 사서 야금야금 간식을 먹었다. 그러다가 휴게소에 도착하면 핫바와 통감자, 핫도그를 한가득 사서 다시 여행길에 오른다. 뒷자리에서의 간식들은 정말이지 꿀맛이었다. 역시 여행은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또 차 안에서 들었던 음악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유행하던 90년대 음악들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부모님이 틀어주면, 나도 모르게 가사들을 다 외워서 부르곤 했다. 가사지를 따로 안 봐도, 가사를 빨리 외울 수 있었던 것은 기억력을 높이는 아날로그의 장점 때문이다. 디지털화가 된 지금은 가족들의 핸드폰 번호조차 외우는 게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는데, 좋아하는 노래 가사와 전화번호를 척척 외우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여행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 차 안에서 먹는 간식들, 일상과는 다르게 새로운 풍경들, 색다른 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설렘으로 가득 찬 경험, 웃음을 그리는 추억이 된다. 그렇게 여행의 경험들이 쌓이고 쌓인다.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길을 알려주지만, 그 시절엔 전국 구석구석이 그려진 지도책이 있었다. 아빠는 그 지도책을 펼쳐서 길을 찾기도 했고, 워낙 길눈이 밝으셔서인지 목적지까지 가는 지름길도 척척 찾아내셨다. 우리의 발길이 닿는 길 위에 존재하는 것은 또 다른 신선한 경험이 된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귀한 보물을 발견하듯, 새로운 길에 가는 것이 좋았다. 그 길에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목적지까지 조금 돌아가도 괜찮아, 라는 마음을 갖게 한다. 덕분에 나는 비록 어리지만,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든지, 충분한 여유를 누리는 것이나 즐거움을 위해 현실의 불편함을 인내하는 것, 낭만 앞에서 비어져 나오는 용기로 당당해지는 것 등을 배우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혼자서도 척척 여행길에 오르게 되는, 지금의 나를 만든다. 여행의 경험들은 상상치 못한 신비를 만들어낸다. 이것들이 내 안에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의 나를 그때의 나보다 훨씬 더 성장시킨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더 넓어지게 해준다.
여행 가자.
그 한마디가 시간을 넘어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눈이 탁 트이게 하는 장소들, 예상치 못하게 만난 사람들과 작은 동물들, 상상보다 더 넓고 광대한 산과 바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디자인된 풍경, 자연의 냄새와 소리, 지역별로 맛볼 수 있는 전통음식과 제철 음식들, 기록으로 남기고 싶을 때마다 차에서 내려 필름 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눌러대던 추억의 사진들.
이 모든 것을 함께 했던 건 어린 시절 나의 여행 메이트, 가족. 여행을 즐겨 하는 가족이 있었기에 그 소중한 경험이 포근하게 쌓였다. 어린 시절 여행 조각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이었고, 함께하는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게 한 가족의 사랑이었다.
에피소드 1.
“딸, 엄마랑 해외여행 가자.”
“어디로?”
“물놀이도 실컷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잘 쉬다가 올 수 있는 곳으로.”
여행 가자, 라는 말과 동시에 안도하는 마음이 흘러나왔다. 일상으로 꽉 막혔던 숨이 휴, 하고 쉬어지는 기분이랄까. 나는 바빴던 일상과 분주했던 머릿속을 정리하고 올 수 있다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찾아온 또 다른 감정. 엄마랑 가는 해외여행이라니.
K-장녀의 생각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마치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처럼 내 속에서 깊은 신호가 울린다. 여행의 설렘을 온전히 느낄 새도 없이 엄마와 함께 떠나는 해외여행이라 AZ까지 꼼꼼하게 준비해야 해,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것도 국내 여행이 아니라 해외여행이었기에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변수에 대처할 준비가 필요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내 MBTI가 P이지만 이럴 때는 재빨리 J의 모드로 바뀐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J의 철저한 계획성이다. 엄마랑 해외에서 싸우지 않고 즐겁게 여행하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며, 안전한 여행을 하기 위한 여행계획.
잘 다녀올 수 있겠지?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이 많았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인 만큼, 깨끗하고 편안한 숙소와 부모님의 입맛을 고려한 식당을 찾아보는 것. 여행 갈 때 제일 중요한 여권을 챙기는 것. 여행경비와 세부 일정을 세우는 것. 왕복 항공편과 현지 교통편을 알아보는 것. 현지 상황에 맞는 필요한 여행 물건들을 챙기는 것. 여행지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하는 것. 더군다나 시시때때로 바뀌는 환율을 체크 하며 가장 적절한 시기에 맞춰 환전하는 것까지 다 챙겨야 한다. 부산스러워진 나는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부터 하나씩 준비해 나갔다.
이번 여행을 자유여행으로 가볼까 했지만 어쩐지 내 시선은 패키지여행으로 향했다. 패키지여행이 내 부담을 덜어줬기 때문이다. 여행자 보험, 항공편, 숙소, 식사, 세부 일정 등. 여행의 까다로운 일체는 여행사에서 해결해 준다. 그러니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해야 한다면 무조건 패키지여행을 추천한다.
사실 나는 패키지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하는 여행에 익숙한 나에게 지인들은 말했다. 부모님과의 여행은 패키지로 가는 게 편하다고. 짜인 일정대로 움직이고, 때 되면 식사를 챙겨주고,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가이드가 있는 패키지여행. 나도 복잡한 건 내려놓고,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니까. 조금 더 마음 편하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생각한 패키지여행의 고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건 선글라스를 쓴 가이드가 각 팀명과 여행할 장소가 쓰인 깃발을 들고 수십 명이나 되는 관광객들을 인솔해서 여행하는 모습이었다. 많은 인원이 한데 모여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과연 재미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결국 나도 패키지여행을 선택하는 날이 왔다. 친절한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해줄 패키지여행이 이번 모녀 여행에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주길.
다양한 패키지여행 상품 중에서 우리가 원하는 일정과 예상한 경비, 가고 싶은 여행지의 상품을 찾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행 상품들에는 생각보다 더 다양한 옵션들이 있었고, 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도 많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보는 여행 후기들을 보고 있으니까 이미 여행을 시작한 느낌이라 설레고 좋았다. 다양한 여행의 후기들을 보며 텍스트로 적다 보니 마음에 드는 장소들을 발견하기도 했고, 엄마랑 이건 꼭 해봐야지 하는 액티비티들도 있었다. 정보는 점점 쌓이고 있었지만, 다양한 옵션 속에서 마음에 쏙 드는 상품을 선택하는 게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결정장애가 오듯 점차 정신이 혼미해졌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중요한 상황을 결정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남들이 말하는 것에만 귀를 기울이다가 그것에 영향을 받아, 내가 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그 선택을 후회하거나 꼭 해야만 할 경험을 놓치게 되는 일들이 발생한다. 그렇기에 더욱 결정과 선택의 주체는 나여야만 한다는 것을 배운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
타인의 경험보다는 내가 직접 느끼고, 보고, 먹고, 경험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