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김상훈
「통 역사」 시리즈 저자이며, 현재 기자로 일하고 있다. 아들로부터 “고려가 세워졌을 때 외국에는 어떤 나라가 세워졌어요?”라는 질문을 받으면서 한국사와 세계사를 따로따로 공부했던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너무나 방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역사 공부에서 손을 떼야 했던 기억. 이참에 동양사와 서양사,한국사를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만들어 보기로 하고 『통세계사』를 기획했고, 시리즈 전체를 집필했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이 역사를 암기 과목으로 생각하고 달달 외우곤 한다. 하지만 맥이 끊긴 역사 공부는 책을 덮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통세계사』는 방대한 역사적 사실을 주제별, 시대별로 엮었다. 또한 동양과 서양, 한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 그 속에서 역사 발전법칙을 찾았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따로따로 외우는 것이 아닌, 통으로 파악할 수 있게 구성한 것이다. 더 나아가 어려운 역사 용어를 쉽게 풀어,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역사 입문서로 자리 매김했다.
또한 『통아프리카사』와 『통아시아사』, 『통유럽사』, 『통아메리카사』는 이러한 『통세계사』가 대륙별 세세한 역사를 담아 내지 못한다는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륙별 통사’이다. 각 대륙의 국가들에서 일어난 사건을 짜임새있게 엮어 그 대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한눈에 파악하게 해 준다.
아프리카가 한 손에 통째로 잡히는
최고의 스토리텔링역사 입문서
인류가 탄생한 곳이자 미래의 원동력이 꿈틀대는 곳, 아프리카!
●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모든 세대를 위한 생생한 아프리카의 역사
● 아프리카를 지역별, 시간순으로 짚어 주는 입체적 구성
● 이야기하듯 술술 풀어내는 스토리텔링식 전개
● 정확한이해를돕는풍부한지도와사진
25만 독자가 선택한 검증된 스테디셀러, 통 역사 시리즈
전 세계가 아프리카를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왜 그럴까? 아프리카가 21세기 들어 전 세계에서 가장 경제 발전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그동안 가져 왔던 편견을 버리고 아프리카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비극적인 현대사에 가려져 있던 찬란한 아프리카 문명의 역사를 새롭게 만나 보자.
제1장 인류 역사의 문을 열다 | 제2장 이집트에서 고대문명 시작하다 | 제3장 중세아프리카의 발전 | 제4장 유럽, 아프리카를 파괴하다 | 제5장 아프리카, 홀로 서다
몇 해 전, 13세기에 번성했던 서아프리카 말리 왕국의 땅 니제르 강변의 옛 도시 젠느를 찾아간 적이 있다. 이곳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진흙으로 만든 거대한 모스크회교사원가 있다. 신비한 건축양식은 나를 먼 과거로 돌려놓았다. 이슬람 문화와 아프리카 반투 문화의 융합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사원 내부로 들어가려 했다. 입장 불가였다. 사연인즉, 어느 유럽 젊은이가 사원 안에서 무례한 행동으로 이맘지도자의 마음을 심히 상하게 한 뒤로 비회교도들의 입장을 금지한 것이란다.
무관심은 무지를 낳고 무지는 편견과 무례를 낳을 수 있으니 편견과 무례는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죄를 짓게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혹시라도 아프리카라는 곳에 대해 무지와 편견을 가진 적은 없는지….
아프리카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오랫동안 무관심의 대상이었고 빈번한 왕래와 교류도 없었던 대륙이었다. 그러나 지구촌 마을이 좁아지고 세계가 하나 되어가려는 과정 속에서 인류는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고 있다. 가까운 이웃이나 먼 이웃이나 우리는 모두와 함께 교류하며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그러한 점에서 《통아프리카사》는 처음 아프리카를 접하게 될 청소년들을 위해 그곳 대륙을 이해하는 귀중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저자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크게 펼쳐진 그림이나 경치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듯한 이야기체 서술 방식으로 쉽고도 재미있게 기술한다. 딱딱한 학술·역사 이론서들이 쉽게 다가가기가 어려운 점을 이 책은 잘 피해가고 있다. 서구적 시각도, 승자의 논리도 아닌 제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서술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돋보인다.
본 저술이 아프리카를 무관심에서 관심과 이해의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며, 또 편견과 오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길 희망하며 인류의 영원한 고향 아프리카의 평화와 번영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김윤진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학부 교수
통아프리카사 개정판을 내며
아프리카는 인류가 탄생한 대륙이야. 그러니 인간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은 바로 이 아프리카에서 시작해야 해. 태초의 인류인 아담과 이브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그 짝꿍의 집은 아프리카 동부의 에티오피아에 있었을 거야. 그곳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발견됐거든.
“아프리카 하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륙?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미개한 종족이 모여 사는 대륙? 종족간의 분쟁과 내전이 끊이지 않는 대륙?”
2010년 5월 『통아프리카사』 초판을 출간했을 때 서문을 통해 이 통박사가 가장 먼저 했던 질문이야. 그로부터 6년이 흘러 개정판을 쓰는 지금, 이 질문을 여러분에게 다시 하고 싶어. 자, 여러분은 아프리카 하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라? 다음은 6년 전에 내가 썼던 글이야.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낮은 대륙이야.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 갈수록 퇴보하는 나라들도 상당히 많아. 글자를 읽지 못하는 문맹인도 그 어느 대륙보다 많아. 굶주려 죽는 사람이 가장 많은 대륙, 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가장 많은 대륙, 아이와 여성에 대한 학대가 가장 심한 대륙….”
여러분도 이렇게 생각해? 하지만 내 생각은 많이 바뀌었어. 왜? 아프리카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야. 아프리카가 어떻게 달라졌냐고? 6년 전만 해도 아프리카는 상당히 혼란스러웠어. 내전과 종족분쟁이 간헐적으로 일어났고,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어. TV나 신문에서도 부정적인 기사들이 더 많이 보도됐지.
지금도 종족분쟁과 내전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야. 에이즈를 비롯한 질병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이기도 해. 그런데도 전 세계가 아프리카를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어. 왜 그럴까? 아프리카가 21세기 들어 전 세계에서 경제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르기 때문이야.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의 선진국이나 어느 정도 발전한 개발도상국들은 기껏해야 연간 3퍼센트 내외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어. 물론 최근 급성장하는 중국은 이보다 훨씬 높지만, 그런 중국도 2016년부터는 성장률이 뚝 떨어졌어. 그런데 아프리카를 보면 연간 5퍼센트, 많게는 10퍼센트 이상 경제성장을 하는 나라들이 상당히 많아. 몇 년 그러다가 말겠지… 이렇게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세계적인 경제전문가들이 “아프리카는 향후 20년간 매년 5퍼센트 정도씩 꾸준히 성장할 것이다”라고 예측하고 있어. 아프리카가 ‘대단한 변신’을 하고 있는 거야.
아프리카에서의 삶은 풍요로움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낡은 생각일뿐더러 더 이상 사실이 아니게 됐어. 물론 아직도 어떤 지역은 지옥이나 다름없어. 여행하기도 쉽지 않아. 깨끗한 물을 구하는 것조차 가능하지 않은 지역도 있지. 그러나 이런 불편은 갈수록 줄어들 것으로 보여.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대도시들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거든.
오늘날의 아프리카 오늘날 아프리카에는 50여 개국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 20세기 후반에야 유럽 열강으로부터 독립한 탓에 아직까지는 저개발 국가들이 많다.
아프리카는 전체 인구에서 20, 30대의 젊은 세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대륙이기도 해. 젊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 소비생활을 하는 경향이 강해. 그런 소비가 늘면 경제가 훨씬 원활하게 돌아가지. 젊은 소비자가 많을수록 그 나라는 젊어지게 되는 거야. 그러니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젊은 대륙이라고 할 수 있어. 세계의 경제전문가들이 아프리카를 가장 희망이 넘치는 대륙으로 평가하는 이유를 알겠지?
아프리카에는 현재 공식적으로 54개의 국가가 있어. 이와 별도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는 않았지만 9개의 나라가 더 있지. 크게 북아프리카8개 나라, 서아프리카16개 나라, 동아프리카10개 나라, 남아프리카12개 나라, 중앙아프리카8개 나라로 나눠.
아프리카는 아주 오랜 시간 주류 세계에서 벗어나 있었어. 유럽에서 로마가 발전하고, 중세 프랑크 왕국이 번영하고, 이슬람 제국이 서아시아에 건설됐을 때도 아프리카는 ‘은둔의 대륙’이었지. 지중해와 인접한 북아프리카만이 주류 세계에 알려졌을 뿐이야. 왜 그랬을까? 바로 사하라 사막 때문이야.
사하라 사막은 아프리카 중북부에 있는 사막으로, 아프리카 동부 홍해에서부터 서부 대서양까지, 횡으로 약 5,600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야. 남북의 길이는 약 1,700킬로미터. 면적만 어림잡아 860만 제곱킬로미터나 돼. 유럽 대륙과 거의 맞먹는 크기지. 사하라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이야.
사막이 워낙 크다 보니 이곳을 넘어 북에서 남으로 가는 게 쉽지 않아. 바로 그 때문에 고대 아시아와 유럽의 강국들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어. 그 아래쪽으로 훨씬 큰 땅이 있다는 걸 짐작도 못했을 거야. 그 곳에 사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외부에서 자기들이 사는 대륙을 아프리카라 부른다는 사실도 몰랐어. 부족 단위로 생활을 하던 아프리카 남쪽의 종족 중에는 20세기가 될 때까지 아프리카라는 이름을 알지 못한 종족이 있었을 정도야.
사하라 사막 아프리카 대륙 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며 연 평균 강수량이 100밀리미터 이하이다. 사하라는 아랍어로 사막을 뜻한다.
사하라 사막은 아프리카의 중요한 경계선 역할을 했어. 오늘날까지도 이 사막을 기준으로 북쪽과 남쪽의 문화, 민족, 종교 등이 많이 달라.
사하라 사막 이북 지역은 예전부터 유럽 및 아시아 국가들과 접촉을 해 왔어. 그래서 아랍 민족도 많이 살고 있고, 이슬람교가 널리 퍼져 있지. 대체로 중동이라 불리는 서아시아 문화와도 많이 비슷해. 반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은 전통 아프리카 문화를 간직한 곳이 많아.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제사의식, 사냥, 부족생활, 전사 등의 이미지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일부 지역에서 아직도 볼 수 있어.
이제 아프리카 대륙을 전체적으로 살펴볼까? 우선 아프리카 대륙의 면적은 유럽의 6배 정도야. 대륙이 워낙 넓다 보니 여러 기후대가 분포돼 있어. 보통은 어떤 식물이 있냐를 기준으로 기후대를 구분해. 빽빽한 숲이 있으면 열대우림,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면 사바나, 나무가 거의 없거나 혹은 아예 모래만 있다면 사막…. 지도를 보면 아프리카 대륙에 열대우림, 사바나, 사막이 모두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아프리카 동남부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가 있어. 영국인이 발견했기 때문에 영국 이름을 갖고 있지. 바로 빅토리아 호야. 호수의 면적만 약 7만 제곱킬로미터 정도가 돼. 대한민국의 면적이 10만 제곱킬로미터 정도니까, 남한의 일부 지역을 빼면 나머지가 모두 풍덩 빠지겠지? 이 정도면 호수가 아니라 바다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
아프리카 내부의 문화 차이 사하라 사막 이북에 위치한 이집트의 거리 풍경(왼쪽)과 사하라 사막 이남에 위치한 탄자니아의 마을 풍경(오른쪽). 아프리카의 문화는 사하라 사막을 경계로 크게 다르다.
오늘날 아프리카 대륙에는 50개가 넘는 국가가 있어. 그러나 민족과 인종은 그보다 수십, 수백 배 더 많아. 너무 많아서 정확하게 집계할 수 없다는 말이 맞을 거야. 아프리카 안에서 현재 쓰이고 있는 언어의 종류만 천 개가 넘는다고 하니 종족과 인종도 수천 종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아. 어떤 학자는 아프리카에 사는 종족과 부족을 나누고 또 나누면 그 수가 약 1만이 될 거라고 주장하기도 해. 오늘날 아프리카의 인구는 약 10억 명 정도로 추정돼. 만약 이 학자의 추정이 사실이라면 한 종족당 인구는 평균 10만 명에 불과해. 얼마나 많은 종족과 인종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살고 있는지 알 수 있겠지?
아프리카의 기후 아프리카에서는 사막, 사바나, 열대우림, 지중해성 기후 등 매우 다양한 기후를 볼 수 있다. 사막 가운데에는 생물이 전혀 살지 않는 곳도 분포해 있다.
유럽의 열강들은 19세기 이후 아프리카에서 식민지 경쟁을 벌였어. 바로 그때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 나라들의 국경선을 제멋대로 정했어. 오늘날 아프리카 대륙을 보면 나라의 국경선이 유럽처럼 비뚤비뚤하지 않고 반듯반듯한 게 바로 그 때문이야.
하지만 이런 식으로 국경선을 정하면서 종족과 인종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 그러니 당연히 혼란이 나타날 수밖에 없어. 생각해 봐. 어느 날 갑자기 동쪽과 서쪽에 흩어져 살고 있던 같은 종족의 사이에 국경선을 그어 버렸어. 바로 그 순간부터 동쪽에 있던 종족과 서쪽에 있던 종족은 졸지에 다른 나라의 국민이 됐지. 열강들은 종족 간에 갈등을 부추기기도 했어. 그러다 보니 아프리카에서 종족 간 유혈사태가 많이 터졌지.
이 책은 아프리카의 여러 종족을 다룰 거야. 하지만 아프리카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토착 원주민에 대해 모두 살펴볼 수는 없어. 아프리카에서 오래전부터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종족에 대해서는 지금 간략하게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우선 북아프리카부터! 이 지역의 대표적인 토착 종족은 베르베르족이야. 베르베르족은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 기원전 9세기 무렵부터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았고, 그 후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지. 다음에는 아랍인들이, 그다음에는 오스만 투르크인들이 이곳을 차지했어. 그러나 베르베르족의 생명력은 아주 강해. 오늘날에도 이집트, 리비아,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베르베르족을 볼 수 있어. 모로코의 경우 전체 국민 중 3분의 1이 베르베르족이란다.
베르베르족에서 갈라져 나온 종족 중 무어족이 있어. 이 종족은 북아프리카와 북서아프리카에 주로 살고 있어. 모로코, 알제리, 모리타니, 말리, 세네갈 등지에 해당돼. 베르베르족의 친척 종족은 서아프리카에도 살았는데, 바로 투아레그족이야. 무어족과 투아레그족 모두 유목을 주업으로 삼았어. 사막을 횡단하며 장사를 하다 보면 다른 부족들과 싸울 일이 많았을 거야. 그래서였을까? 이 두 종족 모두 호전적인 전사가 많았어.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 볼까? 서아프리카의 내륙 지역에는 요루바족과 아샨티족이 살고 있어. 주로 사바나 기후대인 나이지리아, 토고, 베냉이 있는 곳이야. 그러니 이 종족들은 베르베르족처럼 유목을 할 필요가 없었겠지? 주로 농사를 짓거나 목축 활동을 더 많이 했단다.
중앙아프리카로 가볼까?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 카메룬, 가봉 등지에는 피그미족이 살고 있어. 이 종족은 성인이 돼도 키가 15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아. 베르베르족은 유목, 아샨티족은 농사를 지었다고 했지? 이 피그미족은 원시 시대처럼 야생에 널려 있는 열매를 먹거나 사냥을 한단다. 전쟁을 싫어하는 온순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어. 오늘날까지도 약 15만 명의 피그미족이 남아 있지.
동아프리카에는 마사이족이 있어. 케냐와 탄자니아 근방에 약 35만 명이 살고 있지. 마사이족을 포함해 동아프리카의 종족들은 대부분 소와 양을 키웠어. 케냐와 탄자니아에는 초원 지대가 많지? 이들 종족은 예전에는 비가 오지 않는 건기가 되면 동물과 함께 물이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며 살았어. 즉, 유목민이었단 얘기야. 이 때문에 마사이 전사들은 매우 용맹했지. 마사이족과 함께 키쿠유족도 동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부족 중 하나야.
남아프리카에 있는 종족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건 산족이야.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남서부의 칼라하리 사막 근처에 많이 살고 있어. 유럽인들은 산족을 부시맨이라 불렀어. 이 종족도 피그미족처럼 매우 작아. 피부 빛도 약간 갈색을 띠고 있어. 그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산족이 몽골 계통이라고 주장한단다. 이 종족은 아직까지도 원시 시대의 삶을 고수하고 있어. 주로 수렵과 채집 활동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 그런가 하면 오늘날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종족은 줄루족이란다.
역사는 문명이 탄생하면서 시작됐어. 인류가 거친 자연과 오랜 시간을 싸운 후에 얻은 게 바로 문명이란 열매지. 서구적 시각에서 문명은 일반적으로 문자를 사용했는지가 기준이야. 쉽게 말해 기록이 남아 있는 역사만 역사로 본다는 얘기지. 역사 이전의 시기를 선사 시대라고 불러. 인류의 탄생 시점부터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까지가 여기에 해당돼. 아프리카는 다른 대륙과 달리 선사 시대의 역사가 아주 중요해.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땅이 아프리카이고, 가장 먼저 사람이 나타난 땅도 아프리카이기 때문이야. 따라서 아직 역사가 시작되기 전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지구가 탄생했으며 초기 인류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선사 시대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아.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 인류가 퍼져 나가는 모습도 살펴볼게. 다만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보지 않을 거야. 이 부분이 좀 더 궁금하다면 『통세계사』 1권을 참고해.
인간과 가장 흡사한 첫 인류는 약 300만 년 전 출현했어. 인류가 출현한 시기를 400만 년 전으로 보는 학자도 있고, 450만 년 전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어. 어떤 학자는 이 시기를 최대 500만 년 전으로 보기도 해. 채 100년을 살지 못하는 현대인에게는 너무나 먼 옛날이야기지.
굳이 어느 연도가 보다 정확한지를 따질 필요는 없어. 연대를 추정하는 과학기술이 앞으로 더욱 발달하면 이보다 더 앞선 시기에 살았던 인류를 찾아낼 수도 있겠지.
아프리카의 탄생을 알기 위해 지구 탄생의 역사를 인용했듯이, 아프리카인의 탄생을 이해하기 위해 인류 탄생의 역사를 알아두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너무 연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단다.
인류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아프리카의 탄생 과정부터 간단히 살펴볼까? 지구과학을 공부하자는 것은 아니야. 이 책은 역사를 다루는 책이야. 따라서 지금부터 얘기하는 ‘지구 탄생의 역사’는 기초적인 수준이 될 거야. 만약 이 부분이 정말로 궁금하다면 과학 전문서적을 권하고 싶어. 그러면 지식의 깊이가 훨씬 깊어질 거야.
아프리카의 역사에서 지구 탄생의 역사를 굳이 한번 짚어 보려는 것은, 아프리카란 대륙의 특성 때문이야. 아프리카는 가장 먼저 땅이 된 곳이야. 바로 이 점 때문에 얕게나마 지구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보려는 거야.
아주 오래전, 지구에는 땅이란 게 없었어. 사방은 온통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이었지.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구가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으로 탄생한 것은 약 45억 년 전이야. 처음부터 지구가 현재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어. 지구는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 같았어. 사실 지금도 지구는 타오르고 있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만약 땅을 파고 계속 내려갈 수 있다면 지구의 중심부인 핵에 도달하게 돼. 이 핵의 온도가 무려 1만 2천 도나 된단다. 그 온도가 맨틀과 지각 등 바깥쪽으로 나올수록 낮아지는 거야.
오늘날에도 대기 온도가 인간의 정상 체온을 넘어서면 살기가 무척 힘들어. 그렇다면 대기 온도가 수천 도가 넘었던 45억 년 전에는 당연히 생물이 살 수 없었을 거야. 게다가 각종 유해가스가 대기 중에 가득했어. 생물은 존재할 수 없었지.
이런 상태로 오랜 시간이 흘렀어. 용암이 넘쳤다가 식고, 다시 넘쳤다가 식었어. 이 과정에서 용암 속에 숨겨져 있던 바위 덩어리들이 점차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어. 그러나 워낙 용암이 뜨거웠기 때문에 바위들도 오늘날처럼 단단하지 않았어. 다행히 대기 온도가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어. 공기에 노출된 바위가 식으면서 오늘날의 땅과 비슷한 물질이 됐어. 이런 땅이 점점 늘어났어.
원시 대륙 판게아 1915년 베게너가 주장한 가상의 원시 대륙 지도. 고생대까지는 모든 땅덩어리가 하나로 뭉쳐 있었다는 이론이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가 퍼즐처럼 딱 맞는 게 그 증거로 인용됐다.
작은 땅과 작은 땅이 만나 더 큰 땅이 됐어.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이 땅덩어리들이 용암을 뚫고 하늘 높이 치솟기 시작했지. 땅덩어리들은 곧 육지가 됐어. 지구 곳곳에서 이런 육지들이 생겨났지. 가장 먼저 육지가 생긴 곳이 바로 아프리카야. 약 5억 5천만 년 전, 오늘날의 아프리카 땅이 만들어졌어. 그러니까 아프리카의 역사는 5억 년이 넘는 셈이지.
이때의 땅덩어리는 아직 완전히 단단하지 않았어. 생물이 살 만한 여건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지. 지구는 다시 ‘진화’하기 시작했어. 무른 땅은 단단해져 갔고, 대기 온도는 낮아져 갔어. 유해가스의 농도도 떨어지고 부글부글 끓던 용암도 차가워졌어. 용암은 곧 바다로 바뀌기 시작했지. 이 ‘사소한 진화’를 이룩하는 데만도 수백만 년이 걸렸단다.
이제 좀 생물이 살 만해졌나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원시 생물이 등장했어. 일단 물꼬를 틀자 다른 생물들도 우후죽순으로 나타났어. 물속에 처음 자리를 잡았던 생물들이 곧 육지로 올라왔어. 이렇게 해서 이번에는 생물이 진화를 시작했단다.
그러다가 곧 거대한 파충류가 지구를 정복했어. 바로 공룡이야. 그러나 공룡은 계속 지구의 지배자로 남지는 못했어. 멸종해 버린 거야. 공룡이 멸종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어. 많은 운석이 일시에 떨어졌다, 큰불이 났다, 유해가스가 다시 증가했다, 먹이가 떨어졌다…. 어쩌면 이 모든 이유가 다 맞을 수도 있어. 어떤 분석이 정확한지를 떠나, 애초에 공룡의 큰 몸집은 약점이었을 거야. 그 몸집 때문에 많은 먹이를 구하는 것도 부담이 되었고, 운석도 피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어쨌든 공룡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어. 새로 지구의 지배자가 된 생물은 포유류였어. 그 포유류의 중심에 인간이 있었지. 물론 아직 인간이라 부르기에는 미약하지만 말이야.
지구과학, 우주과학, 물리 및 화학, 생물학…. 지금까지 다룬 내용을 자세히 알려면 과학의 전 분야를 이해해야 할 거야. 이 모든 내용을 책으로 쓴다면 아마 수백 권은 되겠지. 수십억 년에 걸쳐 있는 역사인데, 분량이 그 정도는 하지 않겠어? 앞에서 언급했던 대로, 이 부분은 다른 전문가에게 넘길게. 아프리카가 어떻게 탄생 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로도 충분히 목적을 이뤘으니까 말이야. 자, 이제 다시 인류의 탄생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192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타웅이란 산골에서 유아의 머리뼈 화석이 발견됐어. 당시에 이 화석을 발견한 인류학자 레이먼드 다트 부부는 이 지역의 이름을 따서 ‘타웅 아이’라고 이름을 지어줬지. 이 타웅 아이의 정식 학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야.
타웅 아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타웅이란 곳에서 발견된 아이의 머리뼈 화석이다. 이 화석이 최초의 인류 중 하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가장 오래된 인류인 원인猿人을 가리키는 이름이야. 타웅 아이는 가장 먼저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화석이지. 발견된 지역이 남아프리카이다 보니 남방원숭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어. 타웅 아이, 즉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는 약 30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돼.
1974년에는 에티오피아에서 또 다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화석이 발견됐어. 이 화석을 분석해 보니 대략 키가 1미터 정도의 여성인 것으로 추정됐어. 그래서 이 화석에는 여자 이름인 ‘루시’가 붙었어. 루시의 학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야. 루시는 약 390만~35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돼. 그러니까 루시가 타웅 아이보다 더 앞선 인류인 거야.
루시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화석으로, 신장 1미터 가량에 20세 전후의 여성이었다. 학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다.
앞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그보다 더 오래된 인류의 유골 화석이 다른 지역에서 또 발견되면 인류 탄생의 역사는 새로 쓰여야겠지. 그러나 지금까지는 가장 오래된 인류의 화석이 발견된 아프리카 동부와 남부를 인류 탄생의 요람으로 보고 있단다. 동아프리카에서 탄생한 인류가 남아프리카로 거주지를 넓힌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가까스로 설 수 있었어. 그러나 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았어. 아직까지는 인간보다 원숭이에 더 가까운 셈이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사는 곳도 원숭이와 다르지 않았어. 그래,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았던 거야. 뇌의 크기도 원숭이와 거의 차이가 없었지.
탄자니아와 케냐에서도 초기 인류의 화석이 발견됐어. 특히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계곡에서는 약간씩 시대가 다른 초기 인류의 화석이 다양하게 발견됐단다. 1959년 리키 박사 부부가 이곳 올두바이 계곡의 지층에서 약 175만 년 전의 인간 조상 두개골을 발굴했어. 학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화석들을 정리했어. 그러다가 조금 다른 모양의 화석을 발견했지. 연구해보니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뇌의 용량이 50퍼센트 정도는 커 보였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고기를 먹지 않았는데, 이 화석인류는 고기를 먹은 것 같았어. 가장 큰 차이점은 손이었어. 새로운 화석인류는 손가락이 발달해 있었어. 손이 땅을 딛는 목적이 아니라, 무엇을 잡는 목적으로 사용됐다는 증거야! 학자들은 이 화석인류를 호모하빌리스라고 불렀어. 도구를 쓰는 인간이란 뜻이지.
화석인류 발굴 지역 올두바이 계곡을 포함해 동남부 아프리카에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하빌리스 등 초기 인류의 화석이 많이 발견됐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을 ‘살아 있는 인류 박물관’이라고도 한다.
호모하빌리스가 등장할 무렵인 180만 년 전, 인류는 새로운 단계로 진화했어. 바로 호모에렉투스야. 직립 인간이란 뜻이지. 호모하빌리스와 호모에렉투스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함께 존재했어. 호모하빌리스가 약간 빨랐던 것 같아.
이 인류들은 오래 서 있을 수 있었어. 그렇다면 손이 어느 정도 자유로웠겠지? 이들은 손으로 도구를 만들었단다. 호모하빌리스가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사실은 이미 말했지? 그러나 아직까지 뇌의 크기는 원숭이보다 조금 클 뿐이었어. 그런 뇌로 만든 도구니까 아주 정교하지는 않았지. 고작 해봐야 뾰족한 돌멩이에 불과했단다. 그래도 손에 뭔가를 잡고 그것으로 어떤 작업이라도 한다는 것은 아주 창의적인 진화라고 할 수 있어. 그렇다면 호모하빌리스와 호모에렉투스는 현대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일까? 아직도 학계에서는 논란이 많아.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들을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보고 있지 않단다.
호모에렉투스를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비교해 볼까? 호모에렉투스의 뇌가 좀 더 컸지만 지적 능력이 확 뛰어난 정도는 아니었어. 다만 호모에렉투스에 이르러 구부정한 등은 꼿꼿하게 펴졌지. 비로소 완전한 직립 보행을 할 수 있었던 거야. 호모에렉투스는 불을 처음 사용한 인류이기도 해. 화석이 발견된 곳에서 불을 피운 부싯돌과 화덕, 타다 남은 짐승의 뼈 흔적을 볼 수 있었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원인猿人이라고 했지? 호모에렉투스는 그다음 단계인 원인原人이라 부른단다.
40만 년 전에 유럽 독일에서 새로운 인류가 등장했어. 이 인류를 호모네안데르탈렌시스라 불렀어. 이 인류의 단계는 구인舊人이야. 이어서 20만 년 전, 새로운 인류가 나타났는데, 바로 호모사피엔스야. 지혜로운 인간이란 뜻이지. 진화 단계로 구분하면 이 인류는 신인新人이야. 호모사피엔스의 뇌 크기는 현대인과 거의 비슷해. 그래, 호모사피엔스가 바로 현대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인 거야!
아프리카에 살던 호모사피엔스는 그 후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어. 이때가 약 10만 년 전으로 추정돼. 호모사피엔스는 먼저 소아시아로 갔어. 그리고 이 가운데 한 무리가 소아시아를 거쳐 유럽 대륙으로 갔어. 또 다른 무리는 동아시아로 이동했지.
네안데르탈인 호모사피엔스와 같은 시대에 유럽에서 살았던 조상이다. 약 3만 년 전쯤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4만 년 전쯤 호모사피엔스가 유럽 대륙에 도착했어. 그들은 자기들과 다른 인류가 이미 그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 바로 네안데르탈인이었어. 호모네안데르탈렌시스라 불리는 인류지. 호모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과 함께 유럽에서 살았어.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은 약 3만 년 전쯤 사라지고 말았어.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고 만 거야. 그렇다면 오늘날 유럽인들의 조상 또한 아프리카로부터 건너온 사람들이었다는 결론이 나와.
아프리카 인류의 이동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호모사피엔스는 소아시아를 거쳐 아시아로 이동했고, 다시 아메리카로 들어갔다. 호모사피엔스는 이후 진화를 거듭해 현대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호모사피엔스는 그 후 아시아를 넘어 아메리카까지 진출했어. 지금은 아시아와 북아메리카가 베링 해협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지? 하지만 당시만 해도 두 대륙은 하나로 연결돼 있었단다. 호모사피엔스는 걸어서 아메리카로 들어갔어. 이때가 대략 1만 5천 년에서 2만 년 전으로 추정돼. 북아메리카로 들어간 호모사피엔스는 또다시 남쪽으로 이동했어. 약 1만 3천 년 전까지는 남아메리카까지 인류가 들어가 정착했어.
각 대륙에서 터전을 잡은 호모사피엔스는 멸종하지 않고 잘 생존했어. 이윽고 진화를 거듭했지. 그 결과 유럽에서 약 4만 년 전 새로운 인류가 등장했어. 그 인류가 현대 인류의 직접적 조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야. 우리말로 옮기자면 ‘매우 지혜로운 인간’이란 뜻이야. 슬기슬기 인간이라고도 하지. 프랑스 크로마뇽 동굴에서 발견된 크로마뇽인이 대표적이야. 이때부터 인류는 동굴에 벽화를 남기기도 했지.
인류가 어떤 도구를 사용했느냐에 따라 화석인류를 다시 분류할 수 있어. 다만 일반적으로는 원인猿人이라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시대를 이 범주에 넣지는 않아. 원인原人인 호모하빌리스와 호모에렉투스가 활동하던 시대는 전기구석기 시대로, 신인 호모사피엔스가 살던 시대는 중기구석기 시대로 분류하지. 현생 인류의 가장 직접적인 조상인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는 후기구석기 시대에 살았어.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인류가 어떻게 전 세계로 퍼졌고, 오늘날 우리의 조상이 되었는지 알겠지? 그들은 그다음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 대륙별로 크게 다르지는 않아. 거의 비슷비슷하지. 후기구석기 시대를 거쳐 신석기 시대로 접어든 거야.
대륙별로 약간씩 시기상 차이가 있지만 대략 기원전 8000년 무렵에 신석기 시대가 시작됐어. 이때부터 사람들은 한곳에 정착해 농사를 지었어. 물론 주변 환경이 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지역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겠지. 대표적인 지역이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고대 4대 문명의 발상지라고 부르는 곳이야. 이집트의 나일 강 주변, 서아시아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초승달 지역인 메소포타미아 평원, 인도의 인더스 강 주변, 중국의 황허강 주변이 여기에 해당돼. 다만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인 사하라 사막이 있는 아프리카 북부와 중부 사이의 지대에서는 농경이 불가능했을 거야. 어쨌든 신석기 시대로 접어든 것을 포함해 이후 역사의 발전 과정은 모든 대륙이 비슷해.
자, 워밍업은 끝났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아프리카라는 대륙에 대해, 그곳에 살았고 오늘날에도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살펴볼 거야. 그래, 아프리카의 역사는 바로 지금부터 시작이란다.
만약 아프리카를 북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로 나눈다면 경계는 어디가 될까? 바로 사하라 사막이야. 사하라 사막이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이라고 했지? 유럽인들은 지중해와 인접해 있는 북아프리카 지역과는 아주 오래전부터 접촉해 왔어. 이슬람 세력이 7세기 무렵 북아프리카에 상륙한 뒤에, 그곳은 순식간에 이슬람권으로 변했지. 그러나 사하라 사막을 경계로 남쪽 지역은 아주 오랫동안 외부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단다. 사하라 사막을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야. 이 때문에 유럽인들은 사하라 사막 남쪽 지역의 문화나 문명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어. 게다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흑인이었지. 그래서 그 지역은 ‘블랙아프리카’라고 불린다.
아프리카 역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이집트 문명이야. 이집트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문명이지. 메소포타미아인보다 이집트인이 먼저 상형문자를 썼기 때문에 이집트 문명이 최초의 문명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아. 물론 이집트 문명은 아프리카 남쪽으로 널리 전파되지도 않았고,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아울렀던 문명도 아니야. 게다가 이집트 일대는 예로부터 서아시아와 함께 오리엔트로 불렸어. 오리엔트 문명은 서양 문명의 근원이야. 결국 이집트 문명은 아프리카 대륙보다 서양 세계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지. 그러나 이집트는 엄연히 아프리카 대륙에 속해 있으니 아프리카 역사를 다룰 때 꼭 살펴보는 게 옳을 거야. 이 때문에 이번 장에서는 이집트 문명을 자세히 설명할게. 동시에, 이집트 문명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아프리카의 다른 고대 문명들도 함께 살펴볼게.
나일 강은 아프리카의 적도 지역에서 지중해로 흐르는 6671킬로미터의 긴 강이야. 아마존 강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지. 바로 이 강을 따라 이집트 문명이 태동했어. 매년 범람하는 나일 강 하구의 삼각주 지대에는 비옥한 땅이 만들어졌고, 이 지역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이집트는 나일 강의 선물이다”이라고 말한 바 있어. 나일 강이 문명 발달에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
고대 이집트는 인류 역사상 첫 대형 왕국으로 볼 수 있어. 메소포타미아에도 왕국이 있었지만 이집트처럼 거대하지는 않았어. 이 점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어. 그렇다고 해서 한 왕조가 이집트 일대를 지속적으로 통치하지는 않았어. 여러 가문과 여러 민족이 번갈아 가며 왕의 자리를 차지했지. 그 때문에 이집트의 왕조를 숫자로 구분해 부른단다.
이집트에서는 왕을 파라오라고 칭했어. 파라오는 ‘하늘이 정한 사람’이란 뜻이야. 이집트인들은 왕을 신과 같은 존재로 여겼던 거지. 이 때문에 파라오가 통치하던 고대 이집트 역사를 통틀어서 파라오 왕조 시대라고 부른단다.
기원전 35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집트에는 특출하게 세력이 강한 왕국이 없었어. 고만고만한 도시국가 수준의 나라들이 나일 강을 따라 발전하고 있었지. 이 시기를 이집트 선왕조先王朝 시대라고 부른단다. 아직 왕조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이야.
기원전 3100년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들이 생겨났어. 아직까지 큰 왕국은 없었지만 그래도 슬슬 그런 나라가 만들어질 조짐이 보였어. 이때를 원왕조原王朝 시대라고 부르고, 그다음부터 등장한 왕조를 제1왕조, 제2왕조 하는 식으로 불렀어. 그 때문에 원왕조 시대를 제0왕조 시대라고도 한단다.
원왕조 시대의 이집트를 보면, 나일 강 상류와 하류에 각각 작은 왕국이 있었어. 상류에 있는 왕국을 상이집트, 지중해에 인접한 삼각주 지역의 왕국을 하이집트라고 불렀지. 상이집트의 왕은 흰색 왕관을 썼고, 하이집트의 왕은 붉은색 왕관을 썼어. 또한 이 나라들 말고도 나일 강을 따라 여러 도시가 세워져 있었어.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어. 섬기는 신도 달랐지. 당시 어떤 신들이 있었는지 볼까?
세계를 창조한 신은 아툼이야. 그러나 으뜸신은 따로 있어. 바로 태양신 레야. 레의 후손들 중에 오시리스와 세트, 이시스와 네프티스가 있어. 앞의 두 신은 남자, 뒤의 두 신은 여자야. 오시리스는 이시스와 결혼했고, 세트는 네프티스와 결혼했어. 오시리스는 세트에게 죽임을 당해 저승 세계로 갔고 저승의 신이 됐어. 그리고 오시리스의 아들인 호루스는 땅의 신이 됐지. 호루스가 아버지의 원수인 세트와 겨룬 사건은 이집트 신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야. 이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쪽은 호루스지.
나일 강과 고대 이집트 고대 이집트 왕국은 나일 강을 따라 발달했다.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통일한 나르메르도 나일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정복전쟁을 벌였다.
상이집트는 호루스를, 하이집트는 세트를 섬겼다고 전해지고 있어. 아마도 실제로 그랬다기보다는, 상이집트가 하이집트를 정복했기 때문에 훗날 승지에 유리하게 각색된 게 아닌가 싶어. 어쨌든 두 나라는 서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포함해 여러 이유로 자주 싸웠어.
양쪽을 통일한 사람은 상이집트의 왕인 나르메르야. 그는 나일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나머지 국가들을 정복했어. 기원전 3000년 무렵에는 대부분의 도시국가를 정복했지. 그리고 마침내 하이집트와 운명을 건 대전투를 벌였어. 이 전투에서 상이집트가 승리했지. 나르메르는 하이집트를 정복했다는 표시로, 흰색 왕관 위에 붉은색 왕관을 겹쳐 썼대.
나르메르 팔레트 고대 이집트에서는 안료 등을 조제하기 위해 팔레트를 이용했다. 이 팔레트는 기원전 3000년 경 제작된 것으로, 나르메르를 포함해 사람과 동물의 모습이 앞뒤로 새겨져 있다.
나르메르는 나일 강 하류의 삼각주, 즉 델타 지역에 수도 멤피스를 건설했어. 이로써 나르메르는 사상 처음으로 이집트 전역을 통일하는 위업을 달성했단다. 그 후 나르메르는 남북으로 1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대제국의 왕이 됐어. 이때 통일된 이집트는 이민족의 침략을 받는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어쨌든 2천여 년 동안 단일왕국의 역사를 지속했단다.
나르메르는 자기 왕조를 세웠어. 이게 바로 파라오 제1왕조야. 이때부터 나르메르를 메네스라고 불렀지. 메네스는 사상 첫 파라오인 셈이야.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대로 이집트인들은 파라오를 신과 동일한 존재로 여겼어.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파라오가 태양신 레의 아들이라고 여겼단다. 또한 이집트인들은 파라오가 죽으면 신으로 부활한다고 믿었어. 그러니 파라오가 막강한 권력을 가졌겠지? 이때부터 고왕국 시대까지 말 그대로 파라오의 권력이 하늘을 찔렀단다.
제1왕조와 제2왕조에 대해서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역사를 파악할 수는 없어. 다만 제1왕조가 여덟 명의 파라오를, 제2왕조가 아홉 명의 파라오를 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 분명한 것은, 선왕조와 원왕조를 거쳐 초기 제1왕조와 제2왕조 때 이집트가 제국의 모습을 갖췄다는 거야. 그래, 본격적인 파라오 이집트 제국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어.
제3왕조에서 제6왕조가 이집트를 통치한 때를 고왕국 시대기원전 2686년경~기원전 2181년경라고 불러. 메네스 때 시작된 파라오 시대가 이처럼 고왕국 시대 때 절정기를 맞지. 이 고왕국 시대에도 여전히 수도는 멤피스였어. 그 때문에 고왕국 시대를 멤피스 시대라고도 부른단다.
파라오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권력을 누렸어. 뭐, 신으로 여겨졌으니까 그럴 수 있었겠지.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어. 당시 농업 생산량은 전적으로 관개사업에 달려 있었어. 다시 말해, 얼마나 나일 강을 잘 관리하느냐가 국력을 결정하는 요소였지. 파라오는 모든 권력을 장악해 이집트를 중앙집권제 국가로 만들었어. 파라오가 강했으니 관개사업도 강력하게 밀고 나갈 수 있었겠지? 바로 이 점 때문에 종교가 중요한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파라오가 사제보다 더 권력이 컸던 거야.
약 30명의 파라오가 배출된 고왕국 시대의 대표적 유물은 미라와 피라미드야. 이때는 아무나 미라를 만들 수도 없었고, 피라미드에 묻히는 것은 더욱더 불가능했단다. 귀족들? 어림없었어. 만약 그랬다가는 파라오가 가만두지 않았을 거야. 오로지 파라오만이 피라미드 안에 묻힐 수 있었어.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권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던 셈이지. 이 때문에 고왕국 시대를 피라미드 시대라고 부르기도 해.
가장 먼저 피라미드를 만든 인물은 제3왕조의 두 번째 파라오인 조세르야. 그는 건축기사 임호텝을 불러 피라미드를 만들라고 지시했어. 임호텝은 오늘날 카이로 근처에 있는 사카라 지역에 피라미드를 만들었어. 이 피라미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각뿔 모양의 피라미드가 아니야. 계단식으로 돼 있지.
계단식으로 피라미드를 만든 이유는 뭘까? 파라오가 그 계단을 밟고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야. 이집트에서 파라오는 신과 동격이었다고 했지?
파라오 조세르의 피라미드 고대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피라미드다. 규모는 크지만 사각뿔이 아닌 계단식 모양을 하고 있어 후대의 피라미드와 구별된다.
조세르의 피라미드는 처음으로 만들어진 피라미드인데도 그 규모만큼은 어마어마해. 가로 길이가 126미터, 세로 길이가 109미터에 이르고, 높이는 무려 62미터나 된단다.
사각뿔 형태의 피라미드를 처음 만든 인물은 제3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후니였어. 그도 처음에는 계단 형태의 피라미드를 만들었지만, 그 후 홈을 하나씩 하나씩 메웠지. 이런 공정 때문에 아직까지는 완벽한 사각뿔 형태는 아니었단다.
이 두 명의 파라오는 제3왕조를 대표하는 파라오야. 이 둘 말고 다른 파라오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그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를 가늠할 수 있는 기록도 거의 없어. 그 때문에 제3왕조가 얼마나 번영했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힘들어. 다만 초대형 피라미드를 만들기 시작한 걸 보면 상당히 번영했을 거라는 추정은 할 수 있지.
기원전 2613년경 제3왕조가 끝나고 제4왕조가 들어섰어. 왕조가 바뀐 이유는 가문이 바뀌었기 때문이야. 한 가문에서 왕의 자리를 내리 차지했다면 왕조는 바뀌지 않지. 제4왕조를 연 인물은 제3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후니의 사위였어. 사위가 왕위를 계승했기에 가문이 바뀌겠지? 따라서 왕조도 제3왕조에서 제4왕조로 바뀐 거야.
피라미드 건설 붐은 제4왕조 때도 이어졌어. 오히려 제3왕조 때보다 파라오들이 더 경쟁적으로 피라미드를 만들었지. 이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제4왕조를 고왕국 시대의 최고 절정기로 보고 있단다.
오늘날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근교에 기자Giza라는 곳이 있어. 이곳에는 크고 작은 피라미드가 여러 개 남아 있지. 그 가운데 유독 큰 피라미드가 있는데, 바로 쿠푸의 피라미드야. 쿠푸는 제4왕조의 두 번째 파라오였단다. 이 피라미드는 원래 높이가 약 147미터였지만, 윗부분이 파손돼 현재 높이는 137미터가량이라고 알려져 있어. 이 피라미드를 만드는 데 2.5톤이나 되는 돌덩이 230만 개가 필요했다는구나. 밑변의 길이만 230미터나 돼. 약 10만 명이 동원돼 최소 10년, 길게는 20년 가까이 공사를 했어. 그사이에 많은 인부가 죽기도 했지. 실로 엄청난 공사지? 이 거대한 규모 때문에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대大피라미드로 불려. 또한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가운데 유일하게 현존하는 유물이지.
기원전 2500년쯤 제4왕조는 여섯 명의 파라오를 배출한 끝에 막을 내렸어. 그리고 2년이 지났어. 이번에도 마지막 파라오의 사위가 파라오에 올랐어. 다시 왕조가 바뀌었겠지?
파라오의 권력은 제5왕조 때부터 떨어졌어. 왜 그랬을까? 무리하게 피라미드를 세웠기 때문이었어. 피라미드는 원래 파라오들이 자기 권위를 높이려고 만든 초호화판 무덤이야. 파라오들은 피라미드 말고도 여러 곳에 신을 모시는 사원을 세웠어. 이처럼 곳곳에 피라미드와 사원을 만들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했겠지? 그 돈은 나라 곳간에서 나왔어. 결국 재정이 바닥나고 말았단다. 아마 파라오들은 자신의 과시욕이 이런 결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겠지?
파라오 쿠푸의 피라미드 현존하는 이집트 피라미드 중 가장 거대한 피라미드로, 대 피라미드라고 불린다. 처음 만들어질 때의 높이는 147미터인 것으로 전해진다.
중앙정부의 왕, 즉 파라오가 가진 돈이 없으니 지방에 있는 총독들이 파라오를 무시하기 시작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