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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을 겪지 못한 세대가 어느덧 불혹을 코앞에 둔 오늘,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큰 그림은 선명하지만, 근대화를 시도하고 적용하고 살아내며 생긴 갖가지 빛깔과 소리는 여전히 흐릿하다. 독재-민주라는 대립항으로는 1970년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며, 문화와 문학, 역사와 정치학의 사유로, 가장 높은 곳에서 근대화를 지휘한 박정희부터 가장 낮은 곳에서 근대화에 부대낀 민초까지 시야를 넓혀 당대를 재구성하는 시도는, 묘하게도 그때를 이해하는 동시에 오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기획에 참여한 권보드래, 김성환, 김원, 천정환, 황병주 다섯 학자는 유신의 그림자가 오늘에도 깊게 드리우기에, 오늘의 꼬인 문제를 풀어갈 실마리를 1970년대에서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물론 실마리가 쉽게 보일 리 없고, 이것인가 싶어 당겨보아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인지 유신의 주체, 신화가 된 박정희, 국민 만들기, 공포정치와 포퓰리즘, 금기를 넘어선 청년문화, 노동자 전태일과 시인 김남주까지, 발견과 접속이 가능한 최대한을 모아 책으로 묶었다. 이 책이 독재-민주 대립항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선을 당장 전하는 건 아니지만, 왜 새로운 시선이 필요한지 확인하고, 가능성을 폭넓게 조망했다는 점에서 이전보다 한 걸음 나아갔다 하겠다. 이를 발판으로 다음 한 걸음도 곧 내디딜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