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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만 읽어도 이 소설이 얼마나 화려하게 장식되었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좀처럼 만나기 힘든 스타일이다. 긴 호흡 속에 다양한 비유들이 박혀서 복잡한 빛을 뿜고 있다. 2차대전의 포화에 휘말린 소녀와 소년의 삶을 따라가면서 기괴한 전설을 갖고 있는 보석에 얽힌 기구한 운명들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 스토리를 본격적으로 따라가기도 전에 시적 비유로 가득한 문장들과 마주하게 한다. 앤서니 도어의 문장들은 사건을 전달한다기보다는 그 상황들을 소재로 삼아 다른 무언가를, 아름다운 무언가를 탄생시키려는 듯하다.
이처럼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은 문학이 실재하는 세계를 '날것처럼' 묘사한다는 부질없는 환상을 따라가지 않고 문학 자신의 탐미적인 성향에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비극적인 사건들로 가득한 이 소설이 어딘가 꿈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은 자신이 꿈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더욱 깊이 꿈 속으로 파고드는 문학적인 자각몽 같다. 길고 아름다운 꿈이다.
이미 반세기도 넘은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와 한국의 5.18 민주화 운동을 둘러싼 이야기가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 그리고 나를 포함한 독자들이 계속 읽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인간의 숭고함과 저열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극한의 상황이라는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옳은 것은 어렵지만 단순하다. 우리의 현실에도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존재한다. 미미한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다 똑같다는 냉소가 현실에서 등을 돌리기에 얼마나 편리한 방법인지 되새기며 인간은 원래 나약하다는 핑계로 쓰디쓴 현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법을 알려주는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