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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2025
  • 오늘이 내일을 데려올 거야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은이), 고정아 (옮긴이) | 책읽는곰 | 2025년 9월 "가장 중요한 순간, 바로 지금"

    1999년 미국 델라웨어주, 열두 살 마이클은 폭스런 아파트에서 엄마와 단둘이 산다. 겁 많고, 소심해서 친구는 없지만,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엄마, 그리고 이웃집 모슬리 아저씨와 돌보미 누나 기비가 있다. 어느 날, 마이클 앞에 2199년에서 온 최초의 시간 여행자 '리지'가 나타난다. 리지는 1999년의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하고, 마이클과 기비는 그런 리지를 위해 동네 곳곳을 안내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중, 리지가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데…

    곧 닥칠 Y2K와 그 이후의 미래가 두려운 마이클은 엄마를 지키기 위해, 마음의 불안을 떨치기 위해 통조림과 공구를 몰래 훔쳐 대비한다. 그리고 미래에서 온 리지에게 Y2K 이후의 세상에 대해 애타게 묻는다. 하지만 리지는 대답 대신 다정한 조언을 건넨다.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존재의 첫 번째 순간, 지금 여기, '현재'에 집중해."라고 말이다.

    1999년의 마이클과 기비, 2199년의 리지,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온 세 사람이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깊은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 동안, 아슬아슬하고 긴장되는 순간들, 이별이라는 슬픔을 겪어야만 하는 순간들로 다채롭게 채워진다. 좋은 어른 모슬리와, 다정한 또래들의 존재 덕분에 자신을 가로막은 틀을 용기 있게 깨고 나아가는 마이클의 모습이 가슴 벅차게 그려진다. 상당한 분량에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일단 첫 장을 열어 이야기에 몸을 맡기기만 한다면, 여러 주옥같은 문장들과 흡입력 넘치는 전개가 우리를 의미 있는 시간으로 이끌 것이다.

  • 구불구불 빙빙 팡 터지며 전진하는 서사
    제인 앨리슨 (지은이), 서제인 (옮긴이) | 에트르 | 2025년 9월 "우리 삶과 서사를 담는 패턴에 대하여"

    삶과 세상을 자신만의 알레고리로 읽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은 복잡한 방식의 프랙탈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그래서 어떤 주제에 천착하여 골몰하다 눈을 돌리면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도 그것의 확장이나 축소를 느끼게 마련이다. 이 프랙탈들을 집요하게 관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그들이 자신의 깊은 관심사로 만들어낸 안경을 끼고 해석한 세상은 당연히 독창적이고 그 나름의 완결성 있는 논리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제인 앨리슨은 패턴에 집착한다. 그는 자신의 혼란한 삶을 해석해낼 틀을 자연에서 온 패턴들로 삼았다. 패턴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그에게 전통의 문학 수업에서 가르쳐 주는 서사의 기본 구조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은 실제 그가 읽는 책의 서사나 그가 보는 삶의 구조와 맞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는 자연에서 발견해낸 패턴들로 서사를 해석해 내기 시작한다. 파도, 잔물결, 구불구불한 선, 나선, 방사형... 이 책은 그렇게 해석해낸 소설들에 대한 이야기다.

    하나의 굵직한 사건이 시간감과 속도감을 가지고 쭉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맴돌며 반복되거나, 중심 사건 이외의 부수적 사건들에서 화자가 맴돌거나, 시간감은 아예 사라지고 부유하는 문장들로 공간감만이 남아 있는 서사들에 대해 책은 이야기한다. 이 서사들은 남성적이라기보단 여성적이고, 더 자연적이고, 더 실제 삶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간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구조의 해석이 폭력적으로 느껴지거나 현실과의 괴리감이 있다고 여겨온 이라면 왠지 이해받는 느낌이 들 것이다.

    책 속에 나오는 소설들을 읽건 읽지 않았건 책은 매끄럽게 읽힌다. 이 책의 미덕은 참신한 관점뿐 아니라 총명한 설명과 잘 쓰인 문장에도 있기 때문이다. 작법에 대한 이야기이니만큼 작가들은 분명 크고 작은 도움을 발견하겠으나 작가만큼, 혹은 그보다 더 이 책이 필요할 이는 독자들이다. 앨리슨의 패턴들 덕분에 우리는 서사의 구조를 해석해 내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다.

  • 클래식을 읽는 시간
    김지현 (지은이) | 더퀘스트 | 2025년 10월 "클래식이 내 아침을 두드렸다"

    많은 사람이 하루의 시작을 라디오와 함께 한다. 밤사이 업데이트 되었을 정치 시사 라디오, 졸음을 깨워주기 위한 신나는 노래와 사연 라디오, 그리고 KBS 클래식 [출발 FM과 함께]. 이 책은 [출발 FM과 함께] 속 '3분 백과' 코너에서 2년 넘게 소개되었던 내용들을 묶었다.

    이 책은 이제 막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본 교양을 폭넓게 알려준다. 음악의 기초부터 악기와 노래의 세계, 명곡과 거장의 이야기까지 간단하게 접할 수 있다. 교향곡 전곡을 쭉 듣듯이 긴 호흡으로 책을 읽어도 좋고 흥미로운 장르, 궁금한 용어부터 펼쳐봐도 상관없다. 그저 클래식 음악을 즐겁게 즐길 수 있으면 된다.

  • 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은이) | 문학동네 | 2025년 9월 "<딸에 대하여> 김혜진의 문학, 편집, 삶, 사랑"

    <딸에 대하여> 김혜진 소설.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노인의 몸과 접촉하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 <딸에 대하여>,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버티는 삶에 관한 소설 <9번의 일> 등을 통해 먹고 사는 삶을 피하지 않고 마주한 작가가 교정교열자로 일을 시작해 문학출판사의 편집주간이 된 '홍석주'의 삶을 옮겨 적었다. 작가 스스로 '그동안 내가 읽어온 책들에 대한 독후기'라고 설명하는 것처럼 소설은 과장과 미화 없이 이 삶에 복무한 한 인간의 삶을 존중을 담아 고요히 바라본다.

    석주가 책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책이 그녀를 선택하는 것에 가까웠다. (15쪽)

    어떤 책 덕분에 나는 살 수 있었다. 그 책들이 나를 선택한 것이다. '삶이 내주는 과제들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방식으로, 기꺼이 감당하는 방식으로 삶에 순종'(29쪽)하는 성정의 인물 홍석주는 책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묵묵히 사무실을 지킨다. 그는 '더디게 요령을, 비결을 선사하는 방식'(43쪽)으로 곁을 주는 책의 방식에 길들여진다. 교정교열이라는 업무가 사라지고 서점 MD와의 미팅이(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1999년 서비스를 개시했다.) 일의 일부로 편입되는 긴 시간 동안 홍석주는 일과 삶이 뒤섞여 하나의 반죽이 되고 만 자기 삶의 모양새를 변명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좋든 싫든 그 삶은 오직 그녀의 것이다.

    내게도 일과 삶은 분리되지 않은 채 범벅이다. 영면한 동료, 절판된 책, 문을 닫은 출판사, 결국 떠내려간 것들, 뜻밖의 발견, 독자의 상기된 얼굴 등이 단단한 문장과 함께 지나갔다. 일로 알게된 문학 편집자들, 귀한 것을 귀하게 대하는 그들을 나는 문학만큼 사랑하게 되었다. 그 얼굴들의 품위가 떠오르는 소설을 노벨문학상의 계절에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나는 기쁘다.

10.142025
  •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천선란 (지은이) | 허블 | 2025년 10월 "'구하는 이야기'의 작가 천선란의 좀비 아포칼립스"

    천선란 연작소설. '좀비'가 등장하는 세 편의 이야기가 느슨하게 연결된다. 약한 이가 부서진 이에게 손을 내밀어 서로를 붙잡는 방식으로 이야기로 독자에게 손을 내밀던 천선란의 소설이 '좀비 아포칼립스'를 만나면 이런 이야기가 된다. 벽을 오르는 수억의 좀비 떼를 내려다보는 항공샷 대신 천선란의 소설은 인간이었던 한 존재와 그 존재의 손을 놓지 않는 다른 한 존재를 클로즈업한다.

    1부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의 이주선의 탑승자 옥주는 묵호가 자신을 구했듯 묵호를 구하고 싶어 다른 궤도를 꿈꾼다.
    2부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의 제비는 다른 행성으로 떠나는 대신 좀비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지구에서 가족과 함께 살기를 택한다.
    3부 <우리를 아십니까>의 주인공은 좀비가 된 아내를 카트에 태우고 바다를 보러 간다.

    작가의 전작,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의 외로운 뱀파이어, '구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이끼숲>을 나란히 두고 이 이야기를 읽어봐도 좋겠다. 자신의 이야기를 믿는 작가의 한결같은 진심이 이제 이 문장을 필요로 하는 독자를 구할 차례다.

  • 애플 인 차이나
    패트릭 맥기 (지은이), 이준걸 (옮긴이)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9월 "Designed by Apple in Califonia Made in China"

    아이폰이 세상을 바꾼 지 18년, 애플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로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성공의 중심에는 언제나 '중국'이 있었다. 2000년대 초, 애플은 제조 기반을 중국으로 옮기며 '메이드 인 차이나'의 효율성을 가장 극적으로 활용한 기업이 되었다. 수천만 대의 아이폰이 매년 폭스콘 공장에서 생산되고, 그 과정을 통해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기술 강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 상호의존은 시간이 흐를수록 균열을 드러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자 애플은 더 이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기업이 되어버렸다. 한때 혁신의 상징이던 애플은 지금, 정치와 경제의 거대한 힘 앞에서 방향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다.

    <애플 인 차이나>는 바로 이 복잡한 관계의 그늘을 깊이 파고든다. 저자 패트릭 맥기는 오랜 기간 현장에서 취재한 방대한 자료와 내부자 인터뷰, 그리고 애플의 글로벌 전략 변화를 면밀히 분석하며, 한 기업의 영광 뒤에 감춰진 시스템의 민낯을 드러낸다. 애플의 공장 노동자들이 겪는 비인간적인 환경, 국가와 기업의 이해가 맞물려 만들어진 '의존의 구조', 그리고 미중 갈등 속에서 흔들리는 기술 패권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단지 애플의 문제를 넘어서, 세계가 어떻게 효율성과 이윤의 이름으로 도덕을 거래하게 되었는지를 묻는다. 패트릭 맥기의 시선은 차갑지만, 그가 던지는 질문은 뜨겁다. "혁신은 누구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인가?"

    책상 서랍을 열었다. 아이팟 터치 1세대를 손에 넣던 그날의 설렘이 문득 떠올랐다. 반짝이던 뒷면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Designed by Apple in Califonia Made in China"

  • 죽음정치
    아쉴 음벰베 (지은이), 김은주, 강서진 (옮긴이), 김은주 (해제) | 동녘 | 2025년 8월 “권력은 누구를 죽음에 노출시키는가”

    카메룬 출신의 정치철학자이자 역사학자 아쉴 음벰베의 대표작 <죽음정치>는 동시대 비판이론의 최전선에서 근대 이후 정치의 어두운 구조를 해부하는 작업이다. 그는 푸코의 ‘생명정치’를 탈식민적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확장해, 근대 권력이 생명을 ‘인구’로써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 어떻게 죽음을 조직하고 배치하는가를 추적한다. 음벰베에 따르면 주권은 더 이상 단순히 생명을 보호하거나 관리하는 권력이 아니라, 누가 살아야 하고 누가 죽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식민지의 폭력, 인종주의, 분리와 배제의 정치 속에서 주권은 죽음을 관리하는 체계로 변모해 왔으며, 그 흔적은 오늘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등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죽음정치’의 논리를 통해 민주주의의 퇴보, 증오와 혐오의 확산, 배제와 폭력의 근원을 추적한다. 음벰베는 민주주의가 애초부터 배제된 타자를 전제로 작동해 왔음을 드러내며, 근대성의 이면에 자리한 폭력의 구조를 비판한다. 동시에 그는 프란츠 파농과 에두아르 글리상의 사유를 이어받아, 인간의 취약성과 유한성 속에서 관계와 돌봄, 연대를 기반으로 한 ‘통행자의 윤리’를 제시한다. 이 책은 죽음이 정치의 핵심이 되어버린 시대를 진단하는 동시에, 분리와 증오를 넘어선 행성적 공존의 윤리를 모색하는 급진적 사유의 기록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죽음세계의 확산에 맞서 새로운 세계 윤리를 제시한다”고 평했으며, 이러한 학문적 기여를 인정 받아 음벰베는 지난해 인문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홀베르그상을 수상했다.

  • 내 방에서 당장 나가
    권민지 (지은이) | 찰리북 | 2025년 9월 "누군가가 미울 때, 바로 이 그림책”

    못된 말만 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곰오. 저벅저벅 쿵쿵쿵 우당탕. 마음대로 집으로 쳐들어 와 자리를 차지한 곰오가 너무 밉고 당장 내쫓아버리고 싶은 생쥐. 참아보기도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도 해보지만, 생쥐는 그런 곰오를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생쥐가 곰오를 미워할수록 곰오는 점점 더 거대해진다. 결국 생쥐는 곰오를 피해 집을 버리고 떠난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집으로 돌아온 생쥐는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게 방을 싹 치운다.

    마음대로 선을 넘고,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건 당연시하면서 정작 자신의 불편함은 조금도 참지 못하는 사람들. 아이러니하게도 미움이라는 감정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을 잠식한다. 곰오가 거대해질수록 작아져 가던 생쥐처럼.

    작가는 미움에 사로잡혔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옐로, 블루, 레드 등 강렬한 색감을 활용해 '미움'을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그려낸다. 누군가를 미워해 본 적 있다면, 혹은 지금 그 감정에 머물고 있다면 한 장 한 장 깊이 공감하며 보게 될 것이다.

10.172025
  • 숲의 신
    리즈 무어 (지은이), 소슬기 (옮긴이) | 은행나무 | 2025년 9월 "정유정, 스티븐 킹 추천 스릴러"

    1975년 8월, 유서 깊은 에머슨 캠프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녀 바버라 반라가 사라졌다. 야외 활동을 좋아하는 고루한 올버니의 은행가 집안이자, 그 일대 삼림 보호구역과 캠프를 소유한 반라 가문의 딸 바버라가. 게다가 반라 가문이 자녀를 그 숲에서 잃은 것은 바버라가 처음이 아니다. 사람들은 소녀의 행방을 찾기 위해 숲으로 향한다. 소녀의 오빠가 사라졌던 14년 전의 숲으로. 과거의 용의자와 현재의 용의자, 사라진 두 아이, 남은 가족과 캠프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머무는 그 숲이 간직한 진실은 무엇인가.

    치밀하게 쌓아가는 서사와 탁월한 캐릭터 묘사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화제작. 실제 미제 실종 사건과 연쇄 살인을 모티프로 삼아, 사라진 한 소녀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시작해 일그러진 사회의 민낯을 차갑고도 명징하게 드러낸다. 이야기의 왕 스티븐 킹이 “처음부터 내려놓기 힘들고, 200페이지에 이르면 아예 불가능해진다”라며 극찬하였으며, 작가가 직접 각본가로 참여해 영상화가 진행 중이기도 하다. 서서히 그러나 강력하게 독자를 붙들어두는 ‘슬로번 스릴러’의 묘미를 느끼게 해줄 작품.

  • 아카데미 1 : 첫 번째 터치
    T. Z. 레이튼 (지은이), 윤지원 (옮긴이) | 지양사 | 2025년 9월 "축구 신동 소년의 뜨거운 성장 스토리"

    아마존 리뷰 약 1,800건, 평점 4.8점의 이 책은, 2년 넘게 아마존 아동 스포츠 도서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한 독자로서 이 책의 번역서가 출간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뿐 아니라, 혼자 읽기 아까울 만큼 재밌어서 최대한 많은 독자들에게 가닿도록 이 소설을 소개하고 싶은 열망에 휩싸였다.

    미국의 작은 시골 마을, 축구를 사랑하는 열두 살 레오에게 기적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 유소년 아카데미 스카우트 담당자의 눈에 우연히 띄어 초청받게 된 것이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 첫 외국 생활과 해외 합숙 훈련.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재능 있는 선수들과 부딪히며 레오는 매일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간다.

    필드 위 치열한 경쟁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년들의 이야기가 마치 영화처럼 생동감 넘치게 흐른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경기를 보듯 머릿속에서 장면 하나하나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축구를 잘 몰라도 단숨에 빠져들 만큼,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커커스 리뷰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책"이란 평에 수긍하게 되고, 2권의 출간을 고대하게 될 것이다. 국내 축구 에세이 중, 가장 유쾌하고 잘 쓴 책으로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꼽는다. 책의 저자 김혼비 작가의 추천글처럼, 이 책은 축구 이야기만이 아닌, "무언가를 위해 분투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쓰는 몸으로 살기
    김진해 (지은이)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언어학자의 쓰기 강의"

    써야 할 글을 앞에 두고 몸이 뒤틀리고 불안이 날뛰는 와중, 책을 펴자마자 이런 문장을 만났다. "저처럼 매주 글을 쓰는 사람도 왜 이리 글쓰기가 어려울까요? (중략) 서재에 꽂힌 책을 다 내려 바닥에 탑을 쌓아놓습니다. 몇 평 되지도 않는 집 안을 괜히 휘젓고 다닙니다. 그러누워 천장을 멍하니 쳐다봅니다.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가짜 잠을 잡니다. 안 하던 대청소를 시작합니다. 느닷없이 목욕을 합니다. 배가 부른데도 자꾸 먹을 걸 찾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수시로 신경질을 부립니다. 가관인 거죠." 정갈한 문장으로 글쓰기의 방법론을 알려주는 책 보단 이렇게 괴로움을 토로하는 책에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20년 넘게 언어를 탐구하고 글쓰기를 가르쳐온 김진해 교수는 이 책에서 글쓰기의 태도와 방법에 대해 말한다. 글쓰기의 괴로움으로 책을 시작한 그는 쓰는 사람이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는 곧 쓰기의 기본 원칙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편의 글로 뭔가 획기적이고 남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얘기를 하겠다는 완력은 가짜 힘이고 금방 들통나는 힘입니다." "자기 이야기를 윤리로 치환하지 말기 바랍니다. 윤리는 보편성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쓰기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도, 쓰다가 어느새 슬그머니 원칙을 잊은 이에게도 글 쓰는 방향의 중심을 잡아주는 문장들이다.

    이 책은 글 쓸 때 필요한 기술에 관한 작법서라기보단 글 쓰는 자로 살기 위한 몸과 정신의 안내서에 가깝다. 수월하게 읽히지만 책에서 강조하는 원칙들은 글쓰기의 정수라 말할 만한 것들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무도를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무도를 하는 사람의 삶과 세상에 관한 단단한 태도가 이 책에도 묻어 있다. 그 에너지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쓰는 삶에는 힌트가 될 것 같다.

  • 나무 이발사
    정네모 (지은이) | 창비교육 | 2025년 10월 "나무 이발사와 함께 자라나는 용기"

    바람이 솔솔 부는 가을날, 숲의 이발소 문이 열린다. 나뭇잎을 싹둑 자르고, 엉킨 가지를 쓱쓱 빗으며, 줄기를 다듬는 이발사의 손길은 가을 바람처럼 유쾌하고 보드랍다. 파스텔 톤 수채화로 물든 숲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망설이던 나무들도 이발사 손끝에서 다시 생기를 되찾는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걸 두려워하는 아이처럼, 나무 이발사도 작은 실패 앞에서 잠시 흔들리지만 다시 용기를 내어 가위를 든다.

    <비가 올까 봐>, <소원 배달부 초초>로 작은 존재에게 다정한 말을 건넸던 정네모 작가가 이번엔 나무가 계절을 맞이하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그려 냈다. 작은 이발사가 나무의 마음을 다정히 빗어 주듯, 아이들 마음속에서도 살며시, 두려움을 이겨낼 작은 용기가 자라난다. 새로운 도전을 앞둔 어린이는 물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모든 이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을 전하는 따뜻한 그림책이다.

10.212025
  • 시체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유성호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법의학자가 들려주는 생존 교양 지식"

    건강이 중요한 걸 누가 모르겠나. 여유만 있다면 인체에 대한 다양한 책들을 모두 살펴보고 차분히 읽고 단계별로 건강을 챙기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충혈된 눈으로 매일을 내달리는 바쁜 현대인. 시간은 없고, 몸은 점점 노란색 빨간색 신호들을 켜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마도 '건강의 정석'보단 '위기탈출 넘버원'일 것이다. 일상에서 무심코 반복하는 습관, 몰라서 하는 실수들이 몸에 어떤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오는지 착착 정리해서 떠먹여주는 정보원이 필요하다.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는 수천 건이 넘는 부검을 통해 한국인들이 실제로 어떤 이유로 생을 마감하는지, 어떤 습관이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지를 직접 목격해왔다. 그는 “이들을 죽기 전에 만났더라면 꼭 해주고 싶었던 말들”, 그리고 그들의 몸에 새겨진 진실을 책으로 모았다. 이 책에서 유성호는 자신이 직접 집도한 부검 사례를 소개하며, 그에 얽힌 장기들의 기능과 건강 관리법까지 함께 풀어낸다. 우리에게 필요했던 바로 그 정보다.

    '이 책은 제발 살아 있을 때 읽어 두세요.' 섬뜩한 마케팅용 문구 같지만 발언자가 법의학자라면 조금 다르게 읽힌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지만, 죽음에 이르는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선택들은 분명 존재합니다." 속도를 늦추고 싶다면 죽은 몸의 전문가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살아 있어야 바쁜 삶이라도 이어간다. 충혈된 눈을 모니터에서 잠시 떼고 더 늦기 전에 이 필수 생존 교양서를 만나보시길.

  • 친절한 땅콩 호텔
    임고을 (지은이), 김규아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제2회 문학동네초승달문학상 대상 수상작"

    친절하기로 소문난 '땅콩 호텔'의 직원 너츠는 작은 목소리와 내향적인 성격 탓에 종종 불친절하다는 오해를 받는다. 어느 날, 가족이 모두 여행을 떠나고 호텔에 혼자 남게 된 너츠는, 왕땅콩 방에 장기 투숙 중이지만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지 않던 폴짝 씨와 우연히 마주친다. 그리고 폴짝 씨는 너츠에게 땅콩산에 함께 오르자고 제안하는데…

    땅콩섬, 아몬드 선박, 땅콩 호텔, 땅콩호, 땅콩산, 그리고 피스타치오가라 폭포. 온통 귀여운 것 투성이인 장소들을 배경으로, 더 귀여운 캐릭터 너츠와 폴짝 씨의 특별한 모험이 포근하게 펼쳐진다. 혼자가 편한 너츠, 어떤 사연으로 방에서만 머물 수밖에 없었던 폴짝 씨. 서로 다른 두 존재가 함께 산을 오르고 마음을 나누며 움츠러들었던 마음과 몸을 조금씩 펴 나가는 여정이 무척 다정하게 그려진다. 부드러운 터치로 캐릭터의 매력을 한층 살려주는 그림까지, 읽는 내내 미소가 번지는 사랑스러운 동화다.

  • 포즈랑의 투자 이야기
    포즈랑 (지은이) | 에디터 | 2025년 10월 "투자가 아닌 '나'를 공부한 기록"

    주식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이 종목이 오른다더라", "저 섹터가 유망하다더라"는 소문을 듣고 큰 고민 없이 투자에 뛰어든다. 운이 좋아 초반에 쉽게 돈을 벌게 되면 '주식으로 돈 버는 건 참 쉽네'라는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투자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신중한 의사결정 없이 엉뚱한 인과관계만 믿고 큰돈을 넣었다가 어이없게 날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시중의 수많은 투자 서적들마저 종목 추천이나 섹터 분석, 단타 기법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정작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즉 '어떻게 투자자로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찾기 어렵다.

    이 책은 화려한 경력도 전문 지식도 없는 평범한 직장인에서 전업투자자가 된 저자가 13년간 7,000%의 수익을 올리기까지 겪은 무수히 많은 성공과 실패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통찰의 기록이다. 특정 종목을 추천하거나 마법 같은 투자 기법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대신 투자자가 어떻게 옳은 방향을 찾고, 꾸준히 투자 능력을 키워나가며, 무엇보다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투자 과정을 솔직하게 공유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도 자신의 실패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독자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돕는다. 주식 잘하는 동네 형이 옆에서 차근차근 알려주는 느낌이랄까? 읽다 보면, 이 책이 단순한 투자 기록이 아니라 '삶을 배우는 기록'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느끼게 될 것이다.

  • 예수의 아들
    데니스 존슨 (지은이), 박아람 (옮긴이) | 기이프레스 | 2025년 9월 "20세기 미국 단편 문학의 결산"

    책을 처음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의미를 알 수 없는 패턴들이었다. 텔레비전이 밥솥처럼 생겼던, 볼 수 있는 채널의 수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던 시절 회전식 다이얼을 돌려가며 방송이 나오는 채널과 채널 사이를 넘나들 때 보곤 했던, 검은색과 흰색 점들이 무수히 점멸하는 화면. 그리고 그 화면의 연속이 끝나는 지점에서 느닷없이 시작되는 이야기. 이름 없는 화자를 통해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된 열한 편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혼란스럽고, 황량하며, 건조하다. 열한 편의 단편과 그 사이사이의 패턴들을 브라운관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리듯 한편 한편 건너온 끝에 남은 것은 기이한 당혹감이었다. 도대체 이 소설집은 무언인가.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는 미국인들이 참고하는 경지 중의 하나로 평가받으며, 동시에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끝없는 감탄과 상찬을 끌어내는 데니스 존슨의 단편집. 2017년, 문학 비평가 케빈 잠브라노는 “출간된 지 25년이 지난 지금, <예수의 아들>이 미국 전역의 글쓰기 워크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의 목소리는 완전히 자유로운 정신,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정신 그 자체다.”고 평했다. 20세기 미국 남부 고딕 소설의 미덕을 집약했다거나, 스타일 면에서 20세기 미국 단편 문학의 결산으로 삼을 만한 작품이라는 상찬은 소설을 깊고 진하게 읽어온 눈 밝은 독자들을 위한 이정표다. 책의 만듦새 또한 눈길을 사로잡을만 한 국내 신생 출판사의 첫 번째 책.

10.242025
  • 달러 이후의 질서
    케네스 로고프 (지은이), 노승영 (옮긴이) | 윌북 | 2025년 10월 "믿음과 의심 사이, 흔들리는 달러"

    2025년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개최되는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집중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나란히 방한하는 가운데, 미중 정상회담을 비롯한 한미, 한중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격화일로를 걷던 미중 무역 갈등이 이번 회담을 통해 극적인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아니면 더욱 깊은 골로 치달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관세 전쟁으로 인해 각국이 탈달러화 움직임을 모색하고, 브릭스를 중심으로 위안화 결제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이번 APEC 정상회의는 단순한 외교 행사를 넘어 향후 국제 금융 질서의 향방을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기적인 타협이나 갈등의 완화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 질서는 이미 변곡점을 지났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세계 GDP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의 축소, 5경 원에 달하는 미국의 국가부채,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부상은 70년간 지속된 달러 패권의 쇠퇴를 예고한다. 향후 10년 안에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이 세계를 휩쓸고 금융 시스템이 분산되면서, 부채 위기와 환율 위기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달러의 절대적 안정성이라는 신화가 무너지는 시대, 각국은 다극화된 통화 질서 속에서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번 APEC 정상회의가 그러한 전환기적 순간을 상징하는 역사적 장면으로 기억되지는 않을까? 과연 달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 어쩔수가없다 각본
    박찬욱, 이경미, 돈 맥켈러, 이자혜 (지은이) | 을유문화사 | 2025년 10월 "박찬욱 신작 영화를 각본집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본 영화를 여러 번 본다. N차 관람은 유행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리고 영화를 음미하는 또 다른 방법으론 각본집을 읽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어쩔수가없다>도 각본으로 만나보자.

    박찬욱 감독이 구상부터 개봉에 이르기까지 17년 동안 담아두었던 영화인 <어쩔수가없다>는 해고당한 뒤 재취업에 목을 맨 노동자가 자신의 경쟁 상대로 평가받는 사람들을 살해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본주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우화인 이 이야기는 박찬욱 감독이 제일 잘 소화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색과 질감이 다른 이중 띠지, 섬세하게 인쇄된 표지의 블랙박은 제지 회사에 다녔던 주인공을 떠올리게 하며 소장하는 가치를 더해준다. 삭제 장면과 섬세한 지문, 인물의 내면을 담은 상세한 지문까지……. 영화의 감동을 언제고 꺼내볼 수 있다.

  • 노 피플 존
    정이현 (지은이)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선을 넘고 다리를 건너 마주칠 세계"

    <달콤한 나의 도시>, <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이 9년 만에 신작소설을 엮었다. 사회초년생의 위치에서 세계를 감각하던 그 여자들도 이제 자기 계급에 맞는 2020년대적인 고민을 겪는다. 1970년대에 태어나 반포 '아파트 키즈'로 90년대를 경험한 여성들은 2020년대에 기숙사형 자사고에 다니는 아들 등교를 도우며 계급과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한다. 아들 혁을 둔 여성인 안희는 딥페이크 성범죄를 주의하라는 학교의 훈육 지침이라는 선을 두고 주춤거린다. 같은 학교에 딸을 보내는 같은 단지 친구 미령과도, 세상이 너무 과민하다는 남편과도 의견이 다르다. 수록작 <빛의 한가운데>의 안희가 겪고 있는 사건. 엄마로서, 아내로서, 친구로서, 인간으로서 사거리에 선 이 여성은 이제 입장을 정해 몸을 틀어야 한다.

    2005년 발표된 작가의 단편 <삼풍백화점>은 백화점이 무너져내린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90년대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를 질문한 탁월한 소설이었다. 이제 작가는 그 예리함으로 2020년대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미움과 단절을 본다. <실패담 크루>에 가입한 삼십대 중반 변호사는 모임의 '막내'로서 자신들이 '전형적인 꼰대'가 아니라고 하는 '90년대 초중반 학번'들의 심기를 보필해야 하고, <이모에 관하여>의 재연은 회사생활을 병행하려면 중국 국적 시터 '이모'를 믿어야 한다. 세속에 관한 탁월한 감각을 지닌 소설가가 포착한 2020년대. '제 안과 밖의 모순과 욕망들을 오래 들여다보면서 천천히, 멈추지 않고 썼습니다.' (작가의 말) 부대낌을 무릅쓰고 선을 넘을 독자의 용기를 기다리는 소설이 출발선 앞에 함께 섰다.

  • 나는 3학년 2반 전설의 애벌레
    김원아 (지은이), 이주희 (그림) | 창비 | 2025년 10월 "1번 애벌레의 특별한 모험 이야기"

    현직 초등 교사로서 아이들을 돌보고, 작가로서 이야기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김원아. 2016년 발간된 <나는 3학년 2반 7번 애벌레>는 김원아 작가의 대표작이자, 최고작이라 할 수 있다. 첫 출간 이후 9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길고 긴 시간을 깨고, 마침내 새로운 애벌레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전작이 7번 애벌레의 이야기라면, 이번 책은 그보다 앞선 1번 애벌레의 모험을 그린다. 3학년 2반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1번 애벌레는 알 수 없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늘 궁금해하고 질문한다. 아이들과 노린재 같은 천적이 무섭고 두렵지만, 시도하고, 경험하는 걸 멈추지 않는다. 1번 애벌레가 용감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해 가는 여정에 이주희 작가의 따뜻한 그림이 어우러져 이야기는 한층 포근하고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애벌레와 아이들의 올망졸망하고 순수한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10.282025
  • 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최은미, 강화길, 김인숙, 김혜진, 배수아, 최진영, 황정은 (지은이)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가을엔 김승옥문학상, 최은미 대상"

    등단 10년 이상, 무르익은 소설 세계를 선보이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심사하는 김승옥문학상의 제10회 수상작품집. 최은미, 강화길, 김인숙, 김혜진, 배수아, 최진영, 황정은의 작품을 실었다. 2025년의 대상 작가는 <아홉번째 파도>의 최은미. 1980년 화운령 탄광촌 노동쟁의(사북항쟁을 연상케하는)를 겪은 한 여성 인물의 생애사를 다룬 소설 <김춘영>으로 수상했다. 지역과 여성의 기억을 아카이빙하는 '박정윤'은 탄광촌 여성 생애사 작업을 위해 귀하신 구술자인 '김춘영'을 만난다. 그는 당시 화운령에서 술집을 운영하다 함께 구속돼 고문을 당하기도 한 인물로, 그가 귀한 것은 기록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전개할 줄 아는, 연출된 구술을 할 줄 아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4월의 폭설로 김춘영의 집에 길을 잃은 등산객과 군인이 들이닥친 순간 서사의 기둥이 무너지고 김춘영은 박정윤의 손목을 붙든다.

    어용노조 간부의 아내를 광부들이 린치한 사건이 있고, 이 사건을 함구한 지역사회가 있다.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 누구의 언어를 기록할 것인지, 기록을 위해 어디까지 편집할 수 있을지, 박정윤의 아카이빙은 소설 읽기, 소설 쓰기에 임하는 자의 윤리를 되짚게 한다. 최은미는 작가노트에 이 소설은 <아홉번째 파도> 작업 당시의 자료조사, 1.65GB의 차마 열어보지 못하는 파일에서 시작되었다고 적었다. 이 작품에 출발해 작가의 전작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질 정도로 한 분기점이 될 만한 소설이다.

    스타일이 확고한 작가들은 당대의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노동문제와 챗지피티와 12.3 비상계엄을 함께 다룬 최진영의 <돌아오는 밤>, 베트남의 폭우와 팔레스타인의 폭격을 응시하는, '악을 자주 생각하는' 작가 황정은의 <문제없는, 하루> 등의 소설이 세계와 대결한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소설, 한국소설이다.

  • 여름의 비행운
    이혜령 (지은이) | 소원나무 | 2025년 10월 "상실을 관통하는 다섯 개의 이야기"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상실을 경험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감정은 배가 된다. 상실과 아픔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건 어려운 일일 것 같다.

    제1회 소원청소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이 책은 다섯 편의 이야기로 엮인 소설집이다. 관통하는 주제는 여름과 상실이다. 만물의 생명력이 온 곳으로 뻗쳐나가는 그 계절에 소중한 이를 잃은 다섯 명의 인물.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부터 근미래 SF까지 다양한 배경까지 더해져 마치 다섯 편의 잘 만든 드라마를 본 기분이다.

    "청소년을 향한 애정과 믿음을 오롯이 담아낸 작가의 솜씨가 반갑다"라는 심사평이 이 책의 단단함을 잘 표현해 준다. 맑고 청아한 청소년 문학의 첫걸음을 뗀 작가를 응원한다.

  • 평범하지만 부자가 되고 싶어
    김종봉, 제갈현열 (지은이) | 다산북스 | 2025년 10월 "평범하지만, 오늘도 꿈을 향해 걷는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공부는 미래를 위한 투자니 열심히 해야 한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이 말의 참된 의미는 단지 교실에서의 시험점수나 '더 좋은 대학'이라는 외형적 성취에 있지 않다. 진짜 핵심은 '태도'에 있다. 매일 책상에 앉아 머무를 수 있는 끈기, 스스로 세운 작은 목표 앞에 책임감 있게 응하는 자세,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도 반복을 멈추지 않는 습관, 모든 것이 인생의 태도로서 자리 잡을 때, 그 사람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학벌'이 아닌 '습관', '특별함'이 아닌 '지속성', '운'이 아닌 '태도의 축적'이야말로 삶을 바꾸는 힘이다. 그리고 이 원리는 '부자가 되는 길'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재능이 빼어나거나, 운이 마구 따라주거나, 시작부터 유리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오늘 내가 가진 평범함을 수용하고, 나만의 시간을 설계하고, 조금씩 쌓아 나가는 사람이 결국 삶의 체질을 바꾸고, 그 태도가 자산으로 바뀌며, 마침내 '부자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태도의 힘'을 이야기한다. 전작을 통해 '돈 공부'의 본질을 짚어온 김종봉, 제갈현열 콤비가 이번엔 삶의 구조를 근본부터 재설계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들은 재능도, 운도, 돈도 없던 시절을 지나며 깨달았다. 바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평범함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태도라는 것을.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치며 쌓은 현실적인 통찰이 이 책의 밑바탕이 되었다. 결국 부자가 된다는 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생각의 습관을 바꾸고, 행동의 무게를 다르게 두는 것, 그것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가 아닐까?

  •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
    케이트 마블 (지은이), 송섬별 (옮긴이)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0월 "재앙 앞에 선 과학자의 비명"

    몇 해 전, 기후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재난의 웅장한 습격을 제일 먼저 예감하면서 끝없는 우울에 갇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그래, 한정된 정보만 보는 일반인들도 기후 우울을 겪는데 일선에서 현재와 미래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그 암울함을 어찌 견디겠나 싶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두려우면서도 궁금했다. 그리고 이 책이 나왔다.

    영화 '돈룩업'의 내용은 이들의 현실 그 자체일 것이다. 저자 케이트 마블은 NASA 출신의 기후학자, 하루에도 몇 번씩 지구가 망하는 미래를 시뮬레이션해 본다. 세상이 망하는데 냉철할 수가 있나? 마블은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다. 현실을 날조하고 모르는 체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 환경 파괴에 대한 죄책감, 기후 재난의 일상화 앞에서의 두려움 등의 감정을 그는 온전히 드러낸다. 책은 이 감정을 따라 진행된다.

    마블의 감정들은 인간적이고 그렇기에 온전히 공감된다. 동시에 그는 과학자로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놓치지 않고 꽉 채워낸다. 기후과학과 역사, 신화를 오가며 책은 우리가 잃어가는 세계, 우리가 향하는 암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후 위기를 (믿지 않아) 외면해 온 이도, (이미 알기에)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 이도 이 책에선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0.312025
  • 좋아서 그래
    이병률 (지은이), 최산호 (그림) | | 2025년 10월 "이병률의 파리, 그리고 결국은 사랑"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등 독보적인 여행 에세이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이병률 작가의 신작 산문집이 3년 만에 출간됐다. 파리에서 보낸 시간 동안 그가 손끝으로 매만지고 마음으로 감각한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그리움이 묻어나는 섬세한 감정의 결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특히 이번 작품은 출판사 ‘달’이 선보이는 첫 ‘여행그림책’으로, 환상적인 색채로 잘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 최산호의 그림이 더해져 읽는 이를 단숨에 파리의 한가운데로 이끈다.

    이병률의 문장은 여전히 조용하고, 그러나 깊게 스며든다. 그는 여행지의 풍경을 묘사하기보다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리움과 사랑, 시간의 온도를 가만히 짚어 나간다. 이 책 <좋아서 그래>는 결국 ‘돌아감’에 대한 이야기다. 좋아서 다시 찾고, 그리워서 또 머무는 마음. 그 단순한 이유 하나로 떠나고, 다시 쓰고, 끝내 삶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이 책 안에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순간에게도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좋아서 그래.”

  • AI 2026
    김덕진 (지은이) | 스마트북스 | 2025년 10월 "나와라, 가제트 만능 팔"

    점심시간, "오늘 뭐 먹지?"라고 묻자 AI 비서가 몇 개의 메뉴를 추천해 준다. "그래, 오늘 점심은 너로 정했다. 얼큰 수제비!" 회의가 끝나면 AI가 자동으로 회의록을 정리하고, 오후엔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다음 마케팅 전략을 제안한다. 아이 숙제를 돕던 부모는 'AI 선생님'이 문제 풀이 과정을 대신 설명하는 걸 지켜본다. 이제 우리는 알게 모르게, AI와 '함께 일하고, 배우고, 생각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이 책은 바로 이 일상의 변화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전환점을 해부하고 있다. 도와주는 기술에서 판단하고 제안하는 기술로, AI가 인간의 '보조자'를 넘어 '의사결정의 파트너'가 되는 순간을 조명한다.

    이 책은 단순히 AI 기술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오늘날, 중요한 것은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현실에 적용하고 전략으로 전환하는 능력이다. 시장의 흐름을 읽고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고자 하는 직장인, 의사결정의 정확도를 높이고 싶은 관리자, 혹은 조직과 개인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모든 독자에게 이 책은 실질적인 길잡이가 되리라 확신한다. 실제 사례와 활용법을 통해 독자들은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업무와 전략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제안하는 파트너로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일상의 선택과 전략적 결정이 한층 명확해지는 경험을 하길 원한다면 이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문득, 어릴 적 보던 '가제트 형사'가 떠올랐다. AI를 제대로 다룬다면, 가제트 형사의 만능 팔을 넘어서는 능력을 얻는 느낌이지 않을까? "나와라, 가제트 만능 팔!"

  • 호기심 가득한 어린이를 위한 이토록 굉장한 세계
    에드 용 (지은이), 레베카 밀스 (그림), 양병찬 (옮긴이), 앤마리 앤더슨 (각색) | 어크로스주니어 | 2025년 10월 "퓰리처상 수상 작가 에드 용의 어린이책"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은 에드 용의 대표작 <이토록 굉장한 세계>가 이제 어린이 독자들을 찾아왔다. 어린이 에디션이지만, 어린이 독자에 국한되지 않고, 청소년, 성인층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난이도의 책이다. 특히, 다채로운 컬러 그림이 곁들여져 시각적 즐거움과 높은 가독성을 선사한다.

    세상은 인간이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대하다. 에드 용은, 인간의 감각으로는 닿을 수 없는 동물들의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의 세계가 확장된다고 설파한다. 냄새와 맛, 빛, 색깔, 통증, 열, 촉감과 흐름, 표면 진동, 소리, 메아리, 전기장과 자기장까지. 이 책은 인간과 전혀 다른 방식과 감각으로 환경을 인식하는 크고 작은 다양한 동물을 다각도로 세세하게 파헤친다. 경이로운 이야기가 가득 담긴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의 감각을 확장하고,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는 경험이다.

  • 빛을 먹는 존재들
    조이 슐랭거 (지은이), 정지인 (옮긴이) | 생각의힘 | 2025년 10월 "리베카 솔닛 추천! 식물 지능의 세계"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하고 멈춰 있는 상태를, 인간들은 식물에 비유하곤 한다. 식물인간, 식물 국회, 식물 노조... 식물 입장에서 보면 이 얼마나 황당하고 막돼먹은 일인지. 이 모든 오해는 인간의 무지에서 비롯됐다. 최근의 식물 연구들에 따르면 식물은 결코 멈춰 있거나 수동적으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식물들은 포식자가 가까이 오면 여러 종류의 화합물을 분비하며 서로에게 알려준다. 꿀벌의 날개 소리를 들으면 3분 내로 꿀의 당도를 높이고, 어떤 식물은 수분 매개자가 찾아오는 빈도를 기억하고 예측해서 꽃가루를 내놓기도 한다.

    귀도 없는 식물이 어떻게 소리를 듣냐고? 글쎄, 귀를 통해서 듣는다는 생각은 너무 동물 중심의 고정 관념 아닐까? 식물학자들은 덩굴식물 보킬라가 '시각'으로 정보를 습득할 것이라는 추정한다. 눈이 없어도 시각이 있을 수 있다. 뇌 없는 AI를 우리가 지능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과학, 환경 전문 기자 조이 슐랭거는 식물 지능에 대한 연구들을 집대성하여 이 책 안에 정리해두었다. 인간이 간과해왔던 식물의 능력들은 경이롭다.

    세상사 번잡한데 식물의 지능까지 알아야 하나, 반문하는 이도 있겠지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자연에 대해 더 깊이 아는 일은 결국 늘 모두가 함께 풍요로워지는 결과로 향한다. <향모를 땋으며>의 저자 로빈 월 키머러는 이 책을 "오만에 대한 해독제"라고 썼다. 최근 10~20년 사이에야 활발히 연구되기 시작한 식물 지능의 세계, 인간 중심 사고의 오만에서 벗어나 새로운 우주로 향하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