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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수상 이력을 자랑하는 미국 범죄 스릴러의 거장 로런스 블록. 그가 동료들-역시 영미권에서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들-을 한데 모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소재로 소설집을 냈다. 서문에 따르면 호퍼는 휘트니 미술관을 자주 방문하는 미술 애호가인 듯하다. 미국의 미술 애호가가 에드워드 호퍼를 좋아하는 건 꽤 자연스러운 일이다. 블록은 이 소설집의 기획이 그냥 거기에 있었다고 말하는데, 그러니까 그건 '팬심'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빛 혹은 그림자>는 최고 수준의 작가들이 참여한 에드워드 호퍼 2차 창작물인 셈이다. 재미있는 기획이다.
수록된 작품들의 분위기는 제각각이다. 무엇보다 각 작가들의 다양한 개성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읽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다양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림 속 인물의 웃음에서 광기를 읽어낸 작가도 있고, 무표정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호퍼의 그림에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지)의 시선에서 권태를 감지한 작가가 있는가 하면 불안과 두려움을 포착한 작가도 있다. 이렇게 포착된 분위기들은 다시 여러 장르의 이야기로 탄생한다. 작가들의 구성상 스릴러를 기반으로 한 단편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그와 거리가 먼 작품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그림에서 시작된 이야기들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일관된 기조를 가진 단편집보다는 이런 다양한 분위기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짧은 이야기를 한 편씩 읽어가도 좋고, 책을 기획한 로런스 블록의 말처럼 한 번에 이어서 읽어도 무방하다.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