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의 계엄은 이전부터 서서히 변화해온 한국의 정치 상황을 수면 위로 드러낸 사건이자 이후로 급변한 사회 상황을 촉발한 사건이다. 민주 사회에서 명시적으로, 암묵적으로 합의되어 왔던 상호 신뢰의 규칙들이 손쓸 새 없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그러니 계엄은 그 자체의 실패와 관계없이, 하나의 정치적 일탈을 넘어서 어두운 시대의 시작점이 되는 중이다. 한국은 지금 어디로 쓸려가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을 읽자니 지금의 한국이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조금 선명하게, 그리고 무섭게 보인다. 내전, 정치적 폭력 전문가인 저자 바버라 F. 월터는 현재 세계의 내전들에 대해 설명한다. 최근 20년간 전 세계에서 발발한 내전은 그 이전에 비해 두 배가량 늘었다. 그는 다양한 국가의 사례들을 통해 내전의 징조와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분석하고 오늘날의 내전이 이전과 어떤 다른 양상을 띄는지도 말한다. 한국의 사례를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지만 저자의 분석은 한국에도 들어맞고, 어떤 특징과 사례들은 놀라울 만큼 일치한다.
특수하다고 여긴 한국의 현 상황이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과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이 한두 국가의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흐름이라는 사실에 아연해진다. 우리는 이 흐름을 끊어낼 수 있을까? 맞이할 국면마다 현명함을 선택해야만 파국적인 결말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책임 있는 모두의 손에 쥐어져 있어야 한다.
- 사회과학 MD 김경영
이 책의 첫 문장
애덤 폭스는 카펫을 젖히고 바닥 문을 열었다.
책 속에서
내전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파벌화다. 시민들이 종족이나 종교, 지리적 구분을 바탕으로 집단을 형성하고, 정당들이 약탈적으로 바뀌어 경쟁자를 배제하고 주로 자신과 지지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실행할 때 파벌화가 완성된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만큼 파벌화를 부추기고 가속화하는 것은 없다. - 264쪽
요로즈 하루(萬春). 자신의 이름에 무수한 계절을 품은 독보적인 무용가이자 안무가. 세상을 가만히 관찰하며 일상을 보내던 어린 소년은 우연히 체조 선수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자신의 몸속에서 무언가 딸깍, 하는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듣는다. 이를 계기로 하루는 마침내 발레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소설은 발레 학교 시절 친구이자 동료 무용수 후카쓰 준, 그의 교양을 담당한 삼촌 미노루, 음악적 ‘뮤즈’이자 동료인 작곡가 나나세의 시점에서 하루의 유년기, 학생 시절, 프로 안무가로 자리를 잡고 활동하는 시기 등 발레의 신에게 가닿고자 하는 하루의 여정을 저마다의 시선으로 흥미롭게 그려낸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이르러 드디어 하루 본인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며, 속을 알 수 없는 고독한 천재 안무가인 듯한 그의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드러난다. 춤을 통해 ‘이 세상의 형태’를 찾고자 하는 그의 길은 어디에 가닿을까.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소설가 온다 리쿠의 데뷔 30주년 기념작. <꿀벌과 천둥>으로 피아노 콩쿠르 무대의 천재 피아니스트들의 이야기를 그렸던 그가 이번에는 발레 무대를 배경으로 또 한 번 천재 예술가의 이야기를 완성했다. 발레 장면을 글로 표현해야 한다는 제약은 작가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움직임이 눈앞에 보이는 듯 묘사해 내는 문장은 그것을 읽는 행위 자체를 대단히 즐거운 일로 만든다. 작중에 등장하는 발레 작품 가운데에는 오롯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완성된 오리지널 발레 작품도 등장하는데, 소설 속에서 느껴지는 현장감과 생동감은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공연 장면만큼이나 생생하게 그려낸 작중 인물들의 입체적인 심리와 내면까지. 여러모로 읽는 행위의 즐거움을 새삼 일깨워 주는 소설.
- 소설 MD 박동명
첫 소설집 <사랑과 결함>이 지난 해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로 선정되기도 한, 기세가 좋은 작가 예소연의 신작 소설이 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캄보디아 해외봉사단으로 9년 전 한 계절을 같이 보낸 친구 '란'이 '석'이 캄보디아에서 실종되었다고 연락을 해왔다. 얼마 전 돌아가신 엄마 장례식에 오지 않을 정도로 석은 나와 이미 멀어진 상태인데도, '나'는 그 시절의 석을 만나기 위해 란과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오른다.
캄보디아에 머문 해에 세 친구는 '온종일 배가 침몰하는 과정을 생중계로'(33쪽) 함께 보았다. '대상 없는 배신감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33쪽)은 그들이 멀어진 이유 중 하나였다. 친구를 되찾기 위해 떠난 곳에서 그들의 여정에 2010년 프놈펜 꺼삑섬 물축제에서 벌어진 압사 사고와 2022년의 이태원이 포개진다. 예소연은 역사와 우정의 문제를 섬세하게 교차시켜 슬픔에 빚진 채로 '갈라지고 쪼개지고 으깨지고 녹아내렸'(113쪽)던 우리가 계속 우리답게 살아갈 수 있는 좁은 길을 향해 나아간다.
'도대체 어떡하자는 건데, 이미 일어난 일을. (84쪽)' 같은 말에 다쳐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시절을 견디기 어려워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까지 그곳에 두고 온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슬픔을 믿는 사람이라면 소설에 빚을 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소설은 언제나 길을 내어줄 것이다.
- 소설 MD 김효선
이 책의 한 문장
“얘들아, 누구를 섬긴다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얘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어 내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혜란은 한국에 있는 애인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종이 주인을 섬기는 거지.”
“그래? 그것 말고 다른 건 없을까?”
나는 고민 끝에 조금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뭔가를 단단히 받치고 있는 두 손이 떠올라.”
“두 손?”
“그러니까, 너희들이 신을 섬기듯이 말이야.”
코로나 시기,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여행에 대한 해갈을 도왔던 <우연히, 웨스 앤더슨>의 두 번째 이야기 <우연히, 웨스 앤더슨 : 어드벤처>가 출간되었다. 눈이 즐거워지는 밝은 색감과 환상적인 대칭의 컷 등 웨스 앤더슨 특유의 정돈된 미쟝센을 지도삼아, 챕터별로 대륙을 오가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특별한 아름다움과 생동감을 전한다. 이번 책은 아시아 대륙의 대한민국 서울의 풍경을 담아, 국내 독자들에게 한층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더없이 자유분방한 색감으로 연결된 190개의 장소들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뿌리 깊은 역사의 아픔, 이름 모를 소도시의 주민들이 시대에 발맞춰 나아가는 현재의 모습까지, 가벼운 이야기 속에 묵직한 주제를 담고있어, 특정할 수 없는 은밀하고 흥미로운 매력의 이야기를 선사한다. 책을 펼치면 쏟아져 나오는 이미지는 삶의 행운의 순간을 포착한 듯 긍정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이 책이 긍정을 발견하는 모험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 예술 MD 권윤경
이 책의 첫 문장
아무리 봐도 내가 창조한 영화 속 공간들 같다. 그러나 이곳들은 지구상에 분명 실재한다_ 웨스 앤더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