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UN이 지정한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다. 말인즉슨 올해 내내 양자에 관한 이야기가 들릴 예정이라는 얘기다. 모두가 양자, 양자 외치는 날들의 중심에서 양자란 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양자역학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아두어 앞으로 있을 뉴스들을 놓치지 않고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이 제격이다.
책은 양자역학의 100년 역사를 돌이켜본다. 양자역학은 무엇이며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살필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양자역학을 둘러싼 학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일 테다. 책은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디랙, 파인먼, 힉스, 겔만 등 과학사에서 무게감 있는 물리학자들의 역사적 일화들을 통해 양자역학의 역사를 추적한다.
<양자역학의 역사>라는 제목에서 지적 만족감을 넘어선 재미까지 기대하는 독자는 별로 없겠지만, 예상과 달리 이 책은 읽는 재미가 있다. 학자들의 관계, 성격적 특징과 그들의 일화가 이리저리 포개지고 겹쳐지며 영화적 재미를 만들어낸다. 교과서에 박제돼 있던 천재 과학자들의 인간적 면모들을 흥미롭게 따라가다 보면 현시대 가장 뜨거운 과학, 양자역학의 커다란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올해의 필독 과학서.
새해가 되면 우리는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 보내세요." 같은 말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가장 많이 들리는 덕담이 있다. 바로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다. 시대가 변했고, 이제 부자가 되는 것이 많은 사람의 소망이 되었다. 그렇다면 ‘부자’란 무엇일까? 그리고 왜 누구는 부자가 되고, 누구는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왜 그들만 부자가 되는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 누군가는 위기 속에서도 부를 쌓고, 누군가는 끝없이 가난의 굴레에 갇힌다. 이 책의 두 저자는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을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부족이 아닌, 국가가 주도하는 화폐 시스템에서 찾는다. 화폐의 탄생부터 현재의 금융 시스템이 어떻게 부자들에게 유리한 구조로 움직이는지를 명확히 분석하고, 우리가 흔히 놓치는 돈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빈부격차가 단순한 경제 현상이 아닌, 구조적 문제임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도 부자가 되기 어려운 이유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시선을 구조로 돌려, 우리가 진짜로 알아야 할 경제적 진실을 보여준다. 더 이상 시스템의 틀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돈의 본질을 이해하고 스스로 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부자가 되는 길은 단순한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특히 고물가와 가계부채로 힘겨운 지금, 돈의 본질을 파악하고 나의 재산을 지키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더 이상 바보 취급당하지 말자. 이제는 우리가 알아야 할 때다.
2020년 봄. 뉴욕에 살며 산책을 즐기는 노년의 소설가는 세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첫 번째 문제는, 감염병으로 도시가 봉쇄된 이후 여행지에서 복귀하지 못하고 격리 중인 지인의 홀로 남은 앵무새를 돌봐주게 된 것. 지능이 높고 사교적이어서 이틀 이상 혼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그 앵무새의 이름은 유레카였다. 두 번째 문제는,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뉴욕에 온 은퇴한 호흡기 내과 전문의가 갈 곳이 없어진 것. 작가는 자신의 집을 의사에게 양보하고, 앵무새가 있는 지인의 아파트에서 지내기로 했다. 세 번째 문제는, 작가보다 앞서서 앵무새를 돌보다가 연락도 없이 사라져 버린 무책임한 대학생이 소식도 없이 갑자기 다시 나타난 것. 결국 작가는 앵무새 유레카와 Z세대 이상주의자 에코 테러리스트이며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고 있는 대학생 베치와 함께 기묘한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전미 도서상 수상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신작 장편소설.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노년의 소설가와 젊은 대학생이 앵무새 유레카와 함께 동거하며 여러 사건을 겪고 서로 연대감을 쌓아가는 이야기이지만, 이 소설을 이러한 플롯으로 요약하고 마는 것은 아쉽다. 이 소설의 백미는 작중 화자인 소설가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흘러가며 펼쳐지는 과거와 현재, 문학, 예술, 인생, 그리고 상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건조한 듯 온기 있는 문체와 독특한 유머 감각이 빛을 발하는 가운데 때로는 날카로운 성찰이 번뜩이는 잠언같이, 때로는 나른하게 늘어놓는 노인의 넋두리같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이야기의 전개가 리드미컬한 하나의 음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했던 각자의 2020년 봄을 건너오며, 우리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작중 화자이자, 아마도 작가 그 자신이기도 할 소설가는 마지막에 대해 생각하며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는 듯 보였다.
오직 첼로가 좋아 예고에 입학한 서인혜. 첼로 전공은 단 5명뿐인데 연수처럼 재능이 빛나는 것도 아니고 쌍둥이네 집처럼 부자도 아니다. 실기 시험에는 인혜를 중학교 내내 힘들게 가르친 엄 선생님이 심사위원으로 들어온다. 엄 선생님에 대한 부담감, 가족 중 가장 의지한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시험을 망치고...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갈 계속할 수 있을까. 애매한 재능만이 굵은 글씨로 낙인찍혀버린 것 같다.
문경민 작가는 섬세한 문체로 고등학생 인혜의 삶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브릿지'는 첼로의 줄과 앞판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줄에서 소리를 내어 몸통으로 연결해 주는 유일한 도구다. 강한 압력이 들어가면 휠 수밖에 없고 휘어짐이 그 아티스트의 노력을 보여주기도 할 테다. 인혜는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과 음악 사이에서 힘겹게 브릿지 역할을 한다. 힘에 못 이겨 부러질 때도 있겠지만 그러면 또 그런대로 자기의 길을 걸어갈 모든 인혜들에게 이 이야기가 꼭 닿기를 바란다.
2024년 12월 3일의 계엄은 이전부터 서서히 변화해온 한국의 정치 상황을 수면 위로 드러낸 사건이자 이후로 급변한 사회 상황을 촉발한 사건이다. 민주 사회에서 명시적으로, 암묵적으로 합의되어 왔던 상호 신뢰의 규칙들이 손쓸 새 없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그러니 계엄은 그 자체의 실패와 관계없이, 하나의 정치적 일탈을 넘어서 어두운 시대의 시작점이 되는 중이다. 한국은 지금 어디로 쓸려가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을 읽자니 지금의 한국이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조금 선명하게, 그리고 무섭게 보인다. 내전, 정치적 폭력 전문가인 저자 바버라 F. 월터는 현재 세계의 내전들에 대해 설명한다. 최근 20년간 전 세계에서 발발한 내전은 그 이전에 비해 두 배가량 늘었다. 그는 다양한 국가의 사례들을 통해 내전의 징조와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분석하고 오늘날의 내전이 이전과 어떤 다른 양상을 띄는지도 말한다. 한국의 사례를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지만 저자의 분석은 한국에도 들어맞고, 어떤 특징과 사례들은 놀라울 만큼 일치한다.
특수하다고 여긴 한국의 현 상황이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과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이 한두 국가의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흐름이라는 사실에 아연해진다. 우리는 이 흐름을 끊어낼 수 있을까? 맞이할 국면마다 현명함을 선택해야만 파국적인 결말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책임 있는 모두의 손에 쥐어져 있어야 한다.
요로즈 하루(萬春). 자신의 이름에 무수한 계절을 품은 독보적인 무용가이자 안무가. 세상을 가만히 관찰하며 일상을 보내던 어린 소년은 우연히 체조 선수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자신의 몸속에서 무언가 딸깍, 하는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듣는다. 이를 계기로 하루는 마침내 발레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소설은 발레 학교 시절 친구이자 동료 무용수 후카쓰 준, 그의 교양을 담당한 삼촌 미노루, 음악적 ‘뮤즈’이자 동료인 작곡가 나나세의 시점에서 하루의 유년기, 학생 시절, 프로 안무가로 자리를 잡고 활동하는 시기 등 발레의 신에게 가닿고자 하는 하루의 여정을 저마다의 시선으로 흥미롭게 그려낸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이르러 드디어 하루 본인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며, 속을 알 수 없는 고독한 천재 안무가인 듯한 그의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드러난다. 춤을 통해 ‘이 세상의 형태’를 찾고자 하는 그의 길은 어디에 가닿을까.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소설가 온다 리쿠의 데뷔 30주년 기념작. <꿀벌과 천둥>으로 피아노 콩쿠르 무대의 천재 피아니스트들의 이야기를 그렸던 그가 이번에는 발레 무대를 배경으로 또 한 번 천재 예술가의 이야기를 완성했다. 발레 장면을 글로 표현해야 한다는 제약은 작가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움직임이 눈앞에 보이는 듯 묘사해 내는 문장은 그것을 읽는 행위 자체를 대단히 즐거운 일로 만든다. 작중에 등장하는 발레 작품 가운데에는 오롯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완성된 오리지널 발레 작품도 등장하는데, 소설 속에서 느껴지는 현장감과 생동감은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공연 장면만큼이나 생생하게 그려낸 작중 인물들의 입체적인 심리와 내면까지. 여러모로 읽는 행위의 즐거움을 새삼 일깨워 주는 소설.
첫 소설집 <사랑과 결함>이 지난 해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로 선정되기도 한, 기세가 좋은 작가 예소연의 신작 소설이 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캄보디아 해외봉사단으로 9년 전 한 계절을 같이 보낸 친구 '란'이 '석'이 캄보디아에서 실종되었다고 연락을 해왔다. 얼마 전 돌아가신 엄마 장례식에 오지 않을 정도로 석은 나와 이미 멀어진 상태인데도, '나'는 그 시절의 석을 만나기 위해 란과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오른다.
캄보디아에 머문 해에 세 친구는 '온종일 배가 침몰하는 과정을 생중계로'(33쪽) 함께 보았다. '대상 없는 배신감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33쪽)은 그들이 멀어진 이유 중 하나였다. 친구를 되찾기 위해 떠난 곳에서 그들의 여정에 2010년 프놈펜 꺼삑섬 물축제에서 벌어진 압사 사고와 2022년의 이태원이 포개진다. 예소연은 역사와 우정의 문제를 섬세하게 교차시켜 슬픔에 빚진 채로 '갈라지고 쪼개지고 으깨지고 녹아내렸'(113쪽)던 우리가 계속 우리답게 살아갈 수 있는 좁은 길을 향해 나아간다.
'도대체 어떡하자는 건데, 이미 일어난 일을. (84쪽)' 같은 말에 다쳐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시절을 견디기 어려워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까지 그곳에 두고 온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슬픔을 믿는 사람이라면 소설에 빚을 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소설은 언제나 길을 내어줄 것이다.
코로나 시기,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여행에 대한 해갈을 도왔던 <우연히, 웨스 앤더슨>의 두 번째 이야기 <우연히, 웨스 앤더슨 : 어드벤처>가 출간되었다. 눈이 즐거워지는 밝은 색감과 환상적인 대칭의 컷 등 웨스 앤더슨 특유의 정돈된 미쟝센을 지도삼아, 챕터별로 대륙을 오가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특별한 아름다움과 생동감을 전한다. 이번 책은 아시아 대륙의 대한민국 서울의 풍경을 담아, 국내 독자들에게 한층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더없이 자유분방한 색감으로 연결된 190개의 장소들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뿌리 깊은 역사의 아픔, 이름 모를 소도시의 주민들이 시대에 발맞춰 나아가는 현재의 모습까지, 가벼운 이야기 속에 묵직한 주제를 담고있어, 특정할 수 없는 은밀하고 흥미로운 매력의 이야기를 선사한다. 책을 펼치면 쏟아져 나오는 이미지는 삶의 행운의 순간을 포착한 듯 긍정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이 책이 긍정을 발견하는 모험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