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파이 이야기>는 2005년 수술을 받고 병실에서 읽은 책이다. 오래 다니던 직장을 더 이상 다닐 수 없을 만큼 당시의 나는 건강이 좋지 않았고 퇴원 후 아무런 계획이 없어 더없이 울적한 상태였다. 의욕없이 펼친 책이었는데 나는 어느새 소년 ‘파이’와 함께 광활한 바다 한 가운데서 고난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동물, 가족, 모험은 내가 원래 소설에서 반기는 주제가 아닌데, 이렇게 재미있고 감동적일 수가 있다니 정신이 아득할 지경이었다. 인생에서 몇 번 없는 강렬한 독서 경험이었다. 그리고 퇴원 후 흡사 소년 ‘파이’처럼 나는 두려움과 용기를 동시에 끌어안은 채,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